[특파원 리포트] 공산당역사박물관① 김일성·마오쩌둥 친필문서가 말하는 6.25의 진실

입력 2021.12.04 (09:00) 수정 2021.12.0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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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해 베이징에 문을 연 '공산당 역사박물관'을 찾았습니다.
이른바 항미원조 역사 코너가 상당히 비중있게 전시돼 있었습니다.

중국 정부는 6.25 전쟁 참전을 항미원조(抗美援朝)를 위한 파병이라고 주장합니다.
미국에 대항하고 조선(북한)을 도왔다는 뜻입니다.

■ '항미원조' 전시관의 김일성 편지..."약속한 바와 같이 중국인민군 직접 출동 필요"

전시 코너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게 전시한 문서가 보였습니다. 김일성과 박헌영이 함께 서명해 마오쩌둥에게 보낸 편지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한글본과 중문 번역본이 함께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모택동 동지 앞"으로 시작하는 이 편지를 보낸 날짜는 1950년 10월 1일 입니다.

북한 김일성과 박헌영 명의로 1950년 10월 1일 마오쩌둥에게 보낸 파병 요청 편지(사진 조성원 기자)북한 김일성과 박헌영 명의로 1950년 10월 1일 마오쩌둥에게 보낸 파병 요청 편지(사진 조성원 기자)

국군과 유엔군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을 거쳐 서울을 수복합니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김일성이 마오쩌둥에게 지원군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엄중하고 위중한 형편", "계속 진공하여 38도선을 침공하게 되는 때에는 우리의 자체 힘으로써는 이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당신의 특별한 원조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라고 썼습니다.

김일성과 박헌영이 마오쩌둥에게 보낸 편지에 “약속한 바와 갓치(같이) 중국인민군의 직접 출동이 절대 필요하게 됩니다”라고 쓰여있다.김일성과 박헌영이 마오쩌둥에게 보낸 편지에 “약속한 바와 갓치(같이) 중국인민군의 직접 출동이 절대 필요하게 됩니다”라고 쓰여있다.


바로 이어 주목할 대목이 나옵니다. "적군이 38도선 이북을 침공하게 될 때에는 약속한 바와 갓치(같이) 중국인민군의 직접 출동이 절대 필요하게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약속한 바와 갓치...". 중국의 6.25 전쟁 참전이 사전에 약속돼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대목입니다. 국군과 유엔군이 북위 38도선을 돌파하기 한참 전에 이미 양국 지도자간에 밀약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북중관계 전문가인 션즈화 화둥사범대 역사학과 종신교수는 저서 <최후의 천조>에서 <주은래 연보(1949~1976)>를 인용해 이미 1950년 7월 12일 중국의 저우언라이가 북한이 필요하는 모든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통보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저우언라이가 북한군 군복 견본도 보내달라고 했는데, 이는 마오쩌둥의 구상에 따라 북한군으로 위장해 한반도에 들어오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앞서 저우언라이와 스탈린이 '미국이 38도선을 넘을 때'로 중국군 출병 시기를 정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마오쩌둥의 중국군 출병 명령서는 중국 학자들도 밝히고 있는 이같은 역사적 사실들을 뒷받침합니다.

냉전 종식 이후 소련측 자료로도 이미 확인된 '사전 공모한 남침'의 또다른 방증입니다.

마오쩌둥이 1950년 10월 8일 베이징에서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는 출병 명령서. (사진 조성원 기자)마오쩌둥이 1950년 10월 8일 베이징에서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는 출병 명령서. (사진 조성원 기자)

김일성 편지 바로 옆, 또 하나의 흥미로운 문서가 있습니다.

이번엔 마오쩌둥의 친필 문서입니다. 1950년 10월 8일자로 작성한 참전 파병 명령서입니다. 펑더화이 등 군 지도자들에게 압록강을 건너라며 보낸 것입니다.

■ 마오쩌둥 파병 명령서 곳곳 수정...支援軍을 志願軍으로

친필 문서 여러 곳을 고친 흔적이 남아있는데 이 가운데 특히 한 단어를 반복적으로 고쳤습니다.

'支援(지원)'을 '志願(지원)'으로 바꾼 겁니다. 음이 같지만 뜻은 다릅니다. 그 결과 '북한을 돕기 위한 군대(支援軍)'에서 '자원해서 가는 군대(志願軍)'로 바뀝니다

마오쩌둥의 출병 명령서를 보면 곳곳에  支援軍을 志願軍으로 바꿔 쓴 흔적이 보인다. 의도를 가지고 고친 증거다.마오쩌둥의 출병 명령서를 보면 곳곳에 支援軍을 志願軍으로 바꿔 쓴 흔적이 보인다. 의도를 가지고 고친 증거다.

이처럼 마오가 직접 명령서를 수정한 이유는 9월에 보도한 <[특파원 리포트] “영웅이 돌아왔다”…中, 6·25 참전 군인 유해 송환에 들썩> 에서도 밝혔지만 미국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

1950년 10월 초 파병을 논의하는 중국 수뇌부 회의에서 민주당파(비공산당원) 황옌페이가 支援軍 이라고 할 경우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로 비칠 우려가 있다고 말하자 이를 마오쩌둥이 수용했다는 겁니다.

그 결과 국가가 동원한 것이 아니라 인민이 자발적, 개별적으로 지원한 군대라는 취지의 志願軍이 된 것입니다. (<彭德懷與朝鮮戰爭: 팽덕회와 조선전쟁>, 양봉안·왕천성, 중앙문헌출판사)

■ 종전선언 논의 속 志願軍 의미

중국은 최근 6.25 전쟁 종전선언에 참여하겠다면서 정전협정 당사국임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 11월 주중 한국대사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은 정전협정에 서명한 국가로서 종전선언에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물론 志願軍으로서의 중국의 6.25 전쟁 참전은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중국의 참전이 정부 차원이 아닌 '중국인들의 자발적, 개별적 참전'이었다면 중국 정부의 '당사국' 주장은 일정 부분 힘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사실 중국이 국가적으로 참전했다고 하면 중국이 오늘 날까지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는 '내정 간섭 반대'에도 어긋납니다.

마오쩌둥의 명령서는 이처럼 중국의 일견 모순된 입장과 전쟁 당시 얼마나 미국을 두려워했는지를 다시 한번 드러냅니다. 그럼에도 중국이 이같은 역사 문건을 새로 문을 연 공산당역사박물관에 비중 있게 전시하는데는 분명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6.25 전쟁에 출전했다 돌아오는 중국 군인들을 환영하기 위해 세운 개선문 사진 (사진 조성원 기자)6.25 전쟁에 출전했다 돌아오는 중국 군인들을 환영하기 위해 세운 개선문 사진 (사진 조성원 기자)
박물관 전체의 흐름과 함께 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직후 사실상 가장 큰 사건으로 항미원조 전시관을 배치했습니다. 미중 전략 경쟁이 치열한 시점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항미원조 전시관은 중국이 6.25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주장합니다. 전면을 정전 직후 실제 세웠던 '개선문'을 재현해 장식했습니다.

중국공산당역사박물관의 '항미원조' 전시관은 입구 좌측에 출병을 결정하는 중국 수뇌부 모습 그림, 압록강을 건너는 중국 군대 등을 전시했고, 우측에 김일성의 파병 요청 편지, 마오쩌둥의 파병 명령서를 전시했다. 전시관 배경으로 6.25 전쟁 직후에 세운 '개선문'을 재현했다. (사진 조성원 기자)중국공산당역사박물관의 '항미원조' 전시관은 입구 좌측에 출병을 결정하는 중국 수뇌부 모습 그림, 압록강을 건너는 중국 군대 등을 전시했고, 우측에 김일성의 파병 요청 편지, 마오쩌둥의 파병 명령서를 전시했다. 전시관 배경으로 6.25 전쟁 직후에 세운 '개선문'을 재현했다. (사진 조성원 기자)

전시물 순서 역시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습니다. 항미원조 코너 좌측 첫 전시물은 6.25 전쟁 참전을 논의한 중국 수뇌부의 회의 그림입니다. 중지를 모아 단합된 모습으로 결정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그 반대쪽에 김일성의 파병 요청 편지와 마오쩌둥의 파병 명령서를 전시해 6.25 전쟁 참전을 정당화합니다.

중국공산당역사박물관의 항미원조 전시관 중앙에 김일성의 파병 요청서 한글본과 중문 번역본, 마오쩌둥의 파병 명령서 등을 전시했다.중국공산당역사박물관의 항미원조 전시관 중앙에 김일성의 파병 요청서 한글본과 중문 번역본, 마오쩌둥의 파병 명령서 등을 전시했다.
바로 이어 압록강을 건너는 중국 군대의 모습과 당시 사용한 무기, 노획물 등이 보입니다. 그리고 주요 유공자들과 희생자들 관련 기록물이 있습니다.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의 사진과 유품도 빠지지 않습니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을 '영웅'으로 기리려는 의지가 읽힙니다.

6.25 전쟁에 참전했다 사망한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의 유품. (사진 조성원 기자)6.25 전쟁에 참전했다 사망한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의 유품. (사진 조성원 기자)

중국 베이징에 새로 문을 연 공산당역사박물관은 이처럼 한반도와 관련해 중요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오늘의 미중 관계, 한반도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 전략적 관점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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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공산당역사박물관① 김일성·마오쩌둥 친필문서가 말하는 6.25의 진실
    • 입력 2021-12-04 09:00:13
    • 수정2021-12-04 10:56:04
    특파원 리포트

올해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해 베이징에 문을 연 '공산당 역사박물관'을 찾았습니다.
이른바 항미원조 역사 코너가 상당히 비중있게 전시돼 있었습니다.

중국 정부는 6.25 전쟁 참전을 항미원조(抗美援朝)를 위한 파병이라고 주장합니다.
미국에 대항하고 조선(북한)을 도왔다는 뜻입니다.

■ '항미원조' 전시관의 김일성 편지..."약속한 바와 같이 중국인민군 직접 출동 필요"

전시 코너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게 전시한 문서가 보였습니다. 김일성과 박헌영이 함께 서명해 마오쩌둥에게 보낸 편지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한글본과 중문 번역본이 함께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모택동 동지 앞"으로 시작하는 이 편지를 보낸 날짜는 1950년 10월 1일 입니다.

북한 김일성과 박헌영 명의로 1950년 10월 1일 마오쩌둥에게 보낸 파병 요청 편지(사진 조성원 기자)
국군과 유엔군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을 거쳐 서울을 수복합니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김일성이 마오쩌둥에게 지원군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엄중하고 위중한 형편", "계속 진공하여 38도선을 침공하게 되는 때에는 우리의 자체 힘으로써는 이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당신의 특별한 원조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라고 썼습니다.

김일성과 박헌영이 마오쩌둥에게 보낸 편지에 “약속한 바와 갓치(같이) 중국인민군의 직접 출동이 절대 필요하게 됩니다”라고 쓰여있다.

바로 이어 주목할 대목이 나옵니다. "적군이 38도선 이북을 침공하게 될 때에는 약속한 바와 갓치(같이) 중국인민군의 직접 출동이 절대 필요하게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약속한 바와 갓치...". 중국의 6.25 전쟁 참전이 사전에 약속돼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대목입니다. 국군과 유엔군이 북위 38도선을 돌파하기 한참 전에 이미 양국 지도자간에 밀약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북중관계 전문가인 션즈화 화둥사범대 역사학과 종신교수는 저서 <최후의 천조>에서 <주은래 연보(1949~1976)>를 인용해 이미 1950년 7월 12일 중국의 저우언라이가 북한이 필요하는 모든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통보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저우언라이가 북한군 군복 견본도 보내달라고 했는데, 이는 마오쩌둥의 구상에 따라 북한군으로 위장해 한반도에 들어오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앞서 저우언라이와 스탈린이 '미국이 38도선을 넘을 때'로 중국군 출병 시기를 정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마오쩌둥의 중국군 출병 명령서는 중국 학자들도 밝히고 있는 이같은 역사적 사실들을 뒷받침합니다.

냉전 종식 이후 소련측 자료로도 이미 확인된 '사전 공모한 남침'의 또다른 방증입니다.

마오쩌둥이 1950년 10월 8일 베이징에서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는 출병 명령서. (사진 조성원 기자)
김일성 편지 바로 옆, 또 하나의 흥미로운 문서가 있습니다.

이번엔 마오쩌둥의 친필 문서입니다. 1950년 10월 8일자로 작성한 참전 파병 명령서입니다. 펑더화이 등 군 지도자들에게 압록강을 건너라며 보낸 것입니다.

■ 마오쩌둥 파병 명령서 곳곳 수정...支援軍을 志願軍으로

친필 문서 여러 곳을 고친 흔적이 남아있는데 이 가운데 특히 한 단어를 반복적으로 고쳤습니다.

'支援(지원)'을 '志願(지원)'으로 바꾼 겁니다. 음이 같지만 뜻은 다릅니다. 그 결과 '북한을 돕기 위한 군대(支援軍)'에서 '자원해서 가는 군대(志願軍)'로 바뀝니다

마오쩌둥의 출병 명령서를 보면 곳곳에  支援軍을 志願軍으로 바꿔 쓴 흔적이 보인다. 의도를 가지고 고친 증거다.
이처럼 마오가 직접 명령서를 수정한 이유는 9월에 보도한 <[특파원 리포트] “영웅이 돌아왔다”…中, 6·25 참전 군인 유해 송환에 들썩> 에서도 밝혔지만 미국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

1950년 10월 초 파병을 논의하는 중국 수뇌부 회의에서 민주당파(비공산당원) 황옌페이가 支援軍 이라고 할 경우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로 비칠 우려가 있다고 말하자 이를 마오쩌둥이 수용했다는 겁니다.

그 결과 국가가 동원한 것이 아니라 인민이 자발적, 개별적으로 지원한 군대라는 취지의 志願軍이 된 것입니다. (<彭德懷與朝鮮戰爭: 팽덕회와 조선전쟁>, 양봉안·왕천성, 중앙문헌출판사)

■ 종전선언 논의 속 志願軍 의미

중국은 최근 6.25 전쟁 종전선언에 참여하겠다면서 정전협정 당사국임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 11월 주중 한국대사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은 정전협정에 서명한 국가로서 종전선언에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물론 志願軍으로서의 중국의 6.25 전쟁 참전은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중국의 참전이 정부 차원이 아닌 '중국인들의 자발적, 개별적 참전'이었다면 중국 정부의 '당사국' 주장은 일정 부분 힘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사실 중국이 국가적으로 참전했다고 하면 중국이 오늘 날까지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는 '내정 간섭 반대'에도 어긋납니다.

마오쩌둥의 명령서는 이처럼 중국의 일견 모순된 입장과 전쟁 당시 얼마나 미국을 두려워했는지를 다시 한번 드러냅니다. 그럼에도 중국이 이같은 역사 문건을 새로 문을 연 공산당역사박물관에 비중 있게 전시하는데는 분명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6.25 전쟁에 출전했다 돌아오는 중국 군인들을 환영하기 위해 세운 개선문 사진 (사진 조성원 기자)박물관 전체의 흐름과 함께 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직후 사실상 가장 큰 사건으로 항미원조 전시관을 배치했습니다. 미중 전략 경쟁이 치열한 시점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항미원조 전시관은 중국이 6.25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주장합니다. 전면을 정전 직후 실제 세웠던 '개선문'을 재현해 장식했습니다.

중국공산당역사박물관의 '항미원조' 전시관은 입구 좌측에 출병을 결정하는 중국 수뇌부 모습 그림, 압록강을 건너는 중국 군대 등을 전시했고, 우측에 김일성의 파병 요청 편지, 마오쩌둥의 파병 명령서를 전시했다. 전시관 배경으로 6.25 전쟁 직후에 세운 '개선문'을 재현했다. (사진 조성원 기자)
전시물 순서 역시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습니다. 항미원조 코너 좌측 첫 전시물은 6.25 전쟁 참전을 논의한 중국 수뇌부의 회의 그림입니다. 중지를 모아 단합된 모습으로 결정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그 반대쪽에 김일성의 파병 요청 편지와 마오쩌둥의 파병 명령서를 전시해 6.25 전쟁 참전을 정당화합니다.

중국공산당역사박물관의 항미원조 전시관 중앙에 김일성의 파병 요청서 한글본과 중문 번역본, 마오쩌둥의 파병 명령서 등을 전시했다.바로 이어 압록강을 건너는 중국 군대의 모습과 당시 사용한 무기, 노획물 등이 보입니다. 그리고 주요 유공자들과 희생자들 관련 기록물이 있습니다.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의 사진과 유품도 빠지지 않습니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을 '영웅'으로 기리려는 의지가 읽힙니다.

6.25 전쟁에 참전했다 사망한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의 유품. (사진 조성원 기자)
중국 베이징에 새로 문을 연 공산당역사박물관은 이처럼 한반도와 관련해 중요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오늘의 미중 관계, 한반도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 전략적 관점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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