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人] 60번의 덧칠로 완성한 광채, ‘옻칠 회화 작가’ 김성수

입력 2021.12.07 (19:42) 수정 2021.12.0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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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경남의 가치를 찾아가는 사람들을 조명하는 특별기획 ‘경남인’입니다.

전통가구에 윤기를 내는 천연도료 옻을 회화에 접목시킨 예술이 '옻칠 회화' 입니다.

한국에서 공예에 머물렀던 옻칠이 회화로까지 지평을 넓힌 데는 70년 평생 옻칠 외길을 걸어온 거장의 역할이 컸는데요.

통영 옻칠미술관 김성수 관장을 만났습니다.

[리포트]

[유익서 소설 ‘세발까마귀’ : “중세 유럽의 찬란한 예술문화는 화석으로 응고되어 있을 뿐이고, 유화는 쇠퇴기를 지나 소멸기로 접어들었다. 오늘날 새로운 예술의 출현에 대한 기대는 필연적이다. 그 새로운 예술의 세계를 옻칠 회화가 열어갈 것이다.”]

통영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국내 유일의 옻칠미술관입니다.

전통 옻칠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공예품과 회화 150여 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작품들이 눈길을 끄는데요.

붉고 푸른 원색의 강렬한 대비 속에 보석 같은 눈동자가 빛나는 '초점'이라는 작품입니다.

옻칠 회화가 가진 우아하고도 심오한 깊이를 품고 있습니다.

달밤, 두 개의 문을 지나 유희하듯 날아오르는 봉황 두 마리, 품격 높은 '천연 옻칠'을 상징합니다.

옻나무에서 채취한 진액을 표면에 도색하는 옻칠은 중국과 일본, 한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5천 년 넘게 활용됐습니다.

특히 옻칠과 나전이 어우러진 나전칠기는 고려의 뛰어난 공예 기술을 상징하는 예술품이었는데요.

전통 옻칠 공예를 현대 회화에 접목한 옻칠회화의 선구자가 바로 김성수 관장입니다.

[김성수/통영옻칠미술관 관장 : “새로운 방법으로 얼마든 옻칠이 가지고 있는 물성 자체가 뭐라도 다 할 수 있는데, 왜 여기서 머물러 있었을까 이제 그 때부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미술관 옆에 자리한 작업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손에서 조각칼을 놓지 못합니다.

전통 방식의 옻칠은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반년 이상 걸립니다.

나무판에 삼베를 입힌 뒤 옻칠과 건조를 수없이 반복한 뒤에야 비로서 서양화의 캔버스에 해당하는 옻칠 목판이 완성됩니다.

조개껍데기에서 얻은 자개를 박아 넣거나 끊고 붙이는 다양한 기법으로 나전 작업을 합니다.

옻에 물감을 넣어 채색하며 또다시 옻칠을 덧입히기를 수십 차례, 예순 번의 덧칠과 기다림으로 완성되는 옻칠을 ‘시간의 예술’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김성수/통영옻칠미술관 관장 : “색깔도 여기는 밝고 어둡고, 이런 변화를 주거든요. 제가 지금 그 과정(색깔의 밝기를 조절하는)을 하기 위해서 기본 말하자면 작업을 하는 겁니다.”]

통영 항남동 옛 도심, 조선 통제영 12공방의 맥을 잇는 나전칠기기술원 양성소가 있던 곳입니다.

김 관장은 중학생이던 1951년 이 양성소 1기생으로 옻칠에 입문했습니다.

고 이중섭 선생으로부터 소묘를, 김봉룡 나전장 무형문화재로부터 나전 기법을 배웠습니다.

숙명여대 교수로 재직했던 1976년, 옻칠에‘목공상감기법’을 창안하면서, 국내 처음 '옻칠 회화'라는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하정선/옻칠 작가 : “나전 칠기하면 우리 생활의 공예품이라든지 거기에서 국한되는데, 지금 같은 경우에는 공예품에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어서 예술품으로서 앞으로 세계화 할 수 있는 그런 기반을 마련해주셨습니다.”]

2006년에는 평생을 모은 재산 15억 원을 털어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옻칠미술관을 세웠습니다.

합성도료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사라져가는 옻칠의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절박함에서였습니다.

[김성수/통영옻칠미술관 관장 : “통영 시민이면 누구든지 와서 배우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설명을 해서 모든 통영시민에게 알리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본격적으로 그 다음으로 올라가야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10년 동안 기성 작가 10명이 선생의 가르침으로 옻칠 회화에 입문했습니다.

미국과 호주, 중국의 작가들도 포함됐는데, 대부분 전시회에서 김 관장의 작품을 접한 뒤 한국의 옻칠에 매료됐습니다.

제자인 서양화가 이진숙 씨, 2007년 김성수 관장이 운영한 옻칠 아카데미를 통해 옻칠회화에 입문했습니다.

유화의 입체감을 옻칠에 구현하며,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습니다.

[이진숙/옻칠 작가 : “(방부, 방습 등) 다른 재료에 비해서 훨씬 좋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뿌리 자체가 통영 한국적인 재료이기 때문에 (매력적입니다.)”]

예순 번의 덧칠로 그 광채를 완성해가는 옻칠처럼, 자신의 걸어온 70년 외길이 후학들의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김성수/통영옻칠미술관 관장 : “훌륭한 인재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 문화유산은 그 시대별로 확실하게 나타날 것이고 고정이 될 것이고, 후배들도 보면 이것을 이어가겠다는 욕망이 생기게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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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人] 60번의 덧칠로 완성한 광채, ‘옻칠 회화 작가’ 김성수
    • 입력 2021-12-07 19:42:35
    • 수정2021-12-07 20: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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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가치를 찾아가는 사람들을 조명하는 특별기획 ‘경남인’입니다.

전통가구에 윤기를 내는 천연도료 옻을 회화에 접목시킨 예술이 '옻칠 회화' 입니다.

한국에서 공예에 머물렀던 옻칠이 회화로까지 지평을 넓힌 데는 70년 평생 옻칠 외길을 걸어온 거장의 역할이 컸는데요.

통영 옻칠미술관 김성수 관장을 만났습니다.

[리포트]

[유익서 소설 ‘세발까마귀’ : “중세 유럽의 찬란한 예술문화는 화석으로 응고되어 있을 뿐이고, 유화는 쇠퇴기를 지나 소멸기로 접어들었다. 오늘날 새로운 예술의 출현에 대한 기대는 필연적이다. 그 새로운 예술의 세계를 옻칠 회화가 열어갈 것이다.”]

통영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국내 유일의 옻칠미술관입니다.

전통 옻칠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공예품과 회화 150여 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작품들이 눈길을 끄는데요.

붉고 푸른 원색의 강렬한 대비 속에 보석 같은 눈동자가 빛나는 '초점'이라는 작품입니다.

옻칠 회화가 가진 우아하고도 심오한 깊이를 품고 있습니다.

달밤, 두 개의 문을 지나 유희하듯 날아오르는 봉황 두 마리, 품격 높은 '천연 옻칠'을 상징합니다.

옻나무에서 채취한 진액을 표면에 도색하는 옻칠은 중국과 일본, 한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5천 년 넘게 활용됐습니다.

특히 옻칠과 나전이 어우러진 나전칠기는 고려의 뛰어난 공예 기술을 상징하는 예술품이었는데요.

전통 옻칠 공예를 현대 회화에 접목한 옻칠회화의 선구자가 바로 김성수 관장입니다.

[김성수/통영옻칠미술관 관장 : “새로운 방법으로 얼마든 옻칠이 가지고 있는 물성 자체가 뭐라도 다 할 수 있는데, 왜 여기서 머물러 있었을까 이제 그 때부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미술관 옆에 자리한 작업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손에서 조각칼을 놓지 못합니다.

전통 방식의 옻칠은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반년 이상 걸립니다.

나무판에 삼베를 입힌 뒤 옻칠과 건조를 수없이 반복한 뒤에야 비로서 서양화의 캔버스에 해당하는 옻칠 목판이 완성됩니다.

조개껍데기에서 얻은 자개를 박아 넣거나 끊고 붙이는 다양한 기법으로 나전 작업을 합니다.

옻에 물감을 넣어 채색하며 또다시 옻칠을 덧입히기를 수십 차례, 예순 번의 덧칠과 기다림으로 완성되는 옻칠을 ‘시간의 예술’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김성수/통영옻칠미술관 관장 : “색깔도 여기는 밝고 어둡고, 이런 변화를 주거든요. 제가 지금 그 과정(색깔의 밝기를 조절하는)을 하기 위해서 기본 말하자면 작업을 하는 겁니다.”]

통영 항남동 옛 도심, 조선 통제영 12공방의 맥을 잇는 나전칠기기술원 양성소가 있던 곳입니다.

김 관장은 중학생이던 1951년 이 양성소 1기생으로 옻칠에 입문했습니다.

고 이중섭 선생으로부터 소묘를, 김봉룡 나전장 무형문화재로부터 나전 기법을 배웠습니다.

숙명여대 교수로 재직했던 1976년, 옻칠에‘목공상감기법’을 창안하면서, 국내 처음 '옻칠 회화'라는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하정선/옻칠 작가 : “나전 칠기하면 우리 생활의 공예품이라든지 거기에서 국한되는데, 지금 같은 경우에는 공예품에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어서 예술품으로서 앞으로 세계화 할 수 있는 그런 기반을 마련해주셨습니다.”]

2006년에는 평생을 모은 재산 15억 원을 털어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옻칠미술관을 세웠습니다.

합성도료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사라져가는 옻칠의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절박함에서였습니다.

[김성수/통영옻칠미술관 관장 : “통영 시민이면 누구든지 와서 배우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설명을 해서 모든 통영시민에게 알리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본격적으로 그 다음으로 올라가야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10년 동안 기성 작가 10명이 선생의 가르침으로 옻칠 회화에 입문했습니다.

미국과 호주, 중국의 작가들도 포함됐는데, 대부분 전시회에서 김 관장의 작품을 접한 뒤 한국의 옻칠에 매료됐습니다.

제자인 서양화가 이진숙 씨, 2007년 김성수 관장이 운영한 옻칠 아카데미를 통해 옻칠회화에 입문했습니다.

유화의 입체감을 옻칠에 구현하며,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습니다.

[이진숙/옻칠 작가 : “(방부, 방습 등) 다른 재료에 비해서 훨씬 좋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뿌리 자체가 통영 한국적인 재료이기 때문에 (매력적입니다.)”]

예순 번의 덧칠로 그 광채를 완성해가는 옻칠처럼, 자신의 걸어온 70년 외길이 후학들의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김성수/통영옻칠미술관 관장 : “훌륭한 인재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 문화유산은 그 시대별로 확실하게 나타날 것이고 고정이 될 것이고, 후배들도 보면 이것을 이어가겠다는 욕망이 생기게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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