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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기후위기가 금융위기 부를 수도…”
입력 2021.12.08 (07:01) 수정 2021.12.08 (07:02) 취재후·사건후

요즘 광고를 보다 보면 'ESG' 또는 'ESG 경영'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탄소중립'이 사회 이슈로 떠오르면서 부쩍 강조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ESG는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 기업 지배구조(Governance)의 앞글자를 딴 말입니다. 기업이 이익만 생각할 게 아니라, 환경과 사회 윤리, 건전한 지배구조까지 고려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받는 분야가 '환경(Environment)'입니다. 기업 활동이 '기후위기'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하자는 겁니다.

■ 기업이 '탄소 중립'을 외치는 이유는?

기업이 앞다퉈 'ESG 경영'을 전면에 내세우고,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먼저, '탄소중립'이라는 '사회적 트렌드'를 더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됐다는 사회적 배경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을 ESG 경영으로 내모는 진짜 이유는 바로 '돈'입니다.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투자하는 금융기관들이 이제는 기업에 '친환경'을 강하게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약 9조 달러, 우리 돈으로 1경 원을 운영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지난해 석탄 생산 기업 등 기후위기 고위험 기업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블랙록 등 세계 600여 개 투자기관의 모임인 '기후행동 100+'는 탄소 감축을 위한 주주행동을 하겠다며 국내 주요 기업도 압박하고 있습니다.

겁만 주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APG)은 지난해 말, 국내외에서 석탄발전소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전력의 채권과 주식 수천억 원어치를 팔아버렸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석탄발전소 퇴출 위해 한국 기업에 주주행동”…세계 최대 투자모임의 경고 (21.10.11)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97643

■ 화석연료에 통 큰 투자…ESG 역주행 하는 '한국 공적 금융기관'

이처럼 세계가 바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주행 중입니다. 국책은행을 비롯해 우리나라 공적 금융기관들이 석탄과 LNG(천연가스), 석유 등 화석연료에 여전히 통 큰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환경단체 오일체인지 인터내셔널(Oil Change International)은 최근 3년간 주요 20개국 공적 금융기관의 화석연료 투자를 분석했습니다.

2018년에서 2020년까지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산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우리나라 공적 금융기관들이 해외 석탄 투자 규모는 5조 원(42억 7,200만 달러)에 달합니다.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해외 천연가스(LNG)와 석유 투자 같은 기간 32조 원(276억 달러)을 투자해 세계 1위를 기록했습니다.

해외 국책은행(개발은행)들은 2010년대 중반부터 석탄투자를 중단하고, 화석연료 전체에 대한 대출과 투자도 중단하는 모습과 매우 대조적입니다.

■ 우리나라 국책은행의 '친환경 클래스'는?

그럼 실태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대표 국책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산업은행을 보겠습니다.

한국수출입은행의 해외 석탄발전소 13곳에 대출 규모는 총 7조 2천억 원이 넘습니다. 한국산업은행은 국내 석탄발전소 6곳과 해외 2곳에 약속한 대출 금액이 1조 1천억 원을 넘겼고, 다른 금융회사의 대출을 알선해준 '금융주선' 규모는 7조 원에 달합니다.

국내외 석탄발전소에 수조 원 규모의 대출을 해주고, 나아가 다른 금융기관을 섭외해 대규모 대출을 적극적으로 알선해준 겁니다.


반면,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은 부실합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 7월,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050년까지 은행이 대출하고 투자한 회사를 포함해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취재 결과, 탄소중립 선언에 기초가 되는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수출입은행은 투자·대출 대상 기업 2,104개 중 232개만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했습니다. 전체의 11%에 불과합니다. 신한과 KB, 우리 금융지주 등 비슷한 시기 탄소중립을 선언한 민간 금융회사들은 투자·대출 대상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산업은행은 업무 차량을 친환경 차로 교체하고 은행 사무실에서 쓰는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바꾼다는 계획은 있습니다. 투자자산에 대한 탄소중립 계획은 검토 중입니다.

[연관 기사] 화석연료 투자 여전…탄소감축 의지 부족한 국책은행 (KBS 뉴스9 21.12.04)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40907

■ 세계 금융의 생존 전략 '탄소 중립'

세계 투자기관들은 탄소중립과 탈석탄·탈 화석연료를 외치고 있습니다. 금융권이 '탄소중립'과 무슨 상관이냐 고개를 갸우뚱하시는 분들 계실겁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앞으로 탄소중립을 하지 않는 기업이나 산업은 '돈'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 역시, 소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이 금전적인 투자 손실과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양춘승 /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화석연료에 투자하는 것이 예상했던 것보다 돈을 못 볼 것으로 보입니다. 탄소국경세 등이 시행되면 기업이 영향을 받고, 기업이 영향을 받으면 금융기관도 영향을 받을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기후변화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은 금융이라고 저는 이야기합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관리를 잘 못 하면, 옛날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처럼 (금융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이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금융기관입니다."

현실은 이런데, 우리나라 공적 금융기관들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정부의 '해외 신규 석탄발전소 공적 금융지원 중단' 선언 외에는 뚜렷한 움직임 하나 없는 게 현실입니다.

문제는 정부의 방침에만 마냥 목을 빼고 기다리는 국책은행들의 수동적 자세입니다. 정부의 지침과 별도로 대출 심사와 투자 결정 등의 업무는 금융기관의 역할인데, 눈치만 보면서 정부 움직임을 따라가기 바쁩니다.

박유경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APG) 이사가 "민간 금융시장에 선도적인 모범을 보여주는 게 공적 금융기관의 사회적 책임이다. 정부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건 말이 안 된다."라고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회의에서 화석연료 투자 중단에 국제 합의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라는 거창한 명분 말고도, '탄소중립'은 이제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입니다.
  • [취재후] “기후위기가 금융위기 부를 수도…”
    • 입력 2021-12-08 07:01:15
    • 수정2021-12-08 07:02:05
    취재후·사건후

요즘 광고를 보다 보면 'ESG' 또는 'ESG 경영'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탄소중립'이 사회 이슈로 떠오르면서 부쩍 강조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ESG는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 기업 지배구조(Governance)의 앞글자를 딴 말입니다. 기업이 이익만 생각할 게 아니라, 환경과 사회 윤리, 건전한 지배구조까지 고려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받는 분야가 '환경(Environment)'입니다. 기업 활동이 '기후위기'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하자는 겁니다.

■ 기업이 '탄소 중립'을 외치는 이유는?

기업이 앞다퉈 'ESG 경영'을 전면에 내세우고,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먼저, '탄소중립'이라는 '사회적 트렌드'를 더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됐다는 사회적 배경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을 ESG 경영으로 내모는 진짜 이유는 바로 '돈'입니다.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투자하는 금융기관들이 이제는 기업에 '친환경'을 강하게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약 9조 달러, 우리 돈으로 1경 원을 운영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지난해 석탄 생산 기업 등 기후위기 고위험 기업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블랙록 등 세계 600여 개 투자기관의 모임인 '기후행동 100+'는 탄소 감축을 위한 주주행동을 하겠다며 국내 주요 기업도 압박하고 있습니다.

겁만 주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APG)은 지난해 말, 국내외에서 석탄발전소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전력의 채권과 주식 수천억 원어치를 팔아버렸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석탄발전소 퇴출 위해 한국 기업에 주주행동”…세계 최대 투자모임의 경고 (21.10.11)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97643

■ 화석연료에 통 큰 투자…ESG 역주행 하는 '한국 공적 금융기관'

이처럼 세계가 바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주행 중입니다. 국책은행을 비롯해 우리나라 공적 금융기관들이 석탄과 LNG(천연가스), 석유 등 화석연료에 여전히 통 큰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환경단체 오일체인지 인터내셔널(Oil Change International)은 최근 3년간 주요 20개국 공적 금융기관의 화석연료 투자를 분석했습니다.

2018년에서 2020년까지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산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우리나라 공적 금융기관들이 해외 석탄 투자 규모는 5조 원(42억 7,200만 달러)에 달합니다.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해외 천연가스(LNG)와 석유 투자 같은 기간 32조 원(276억 달러)을 투자해 세계 1위를 기록했습니다.

해외 국책은행(개발은행)들은 2010년대 중반부터 석탄투자를 중단하고, 화석연료 전체에 대한 대출과 투자도 중단하는 모습과 매우 대조적입니다.

■ 우리나라 국책은행의 '친환경 클래스'는?

그럼 실태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대표 국책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산업은행을 보겠습니다.

한국수출입은행의 해외 석탄발전소 13곳에 대출 규모는 총 7조 2천억 원이 넘습니다. 한국산업은행은 국내 석탄발전소 6곳과 해외 2곳에 약속한 대출 금액이 1조 1천억 원을 넘겼고, 다른 금융회사의 대출을 알선해준 '금융주선' 규모는 7조 원에 달합니다.

국내외 석탄발전소에 수조 원 규모의 대출을 해주고, 나아가 다른 금융기관을 섭외해 대규모 대출을 적극적으로 알선해준 겁니다.


반면,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은 부실합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 7월,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050년까지 은행이 대출하고 투자한 회사를 포함해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취재 결과, 탄소중립 선언에 기초가 되는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수출입은행은 투자·대출 대상 기업 2,104개 중 232개만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했습니다. 전체의 11%에 불과합니다. 신한과 KB, 우리 금융지주 등 비슷한 시기 탄소중립을 선언한 민간 금융회사들은 투자·대출 대상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산업은행은 업무 차량을 친환경 차로 교체하고 은행 사무실에서 쓰는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바꾼다는 계획은 있습니다. 투자자산에 대한 탄소중립 계획은 검토 중입니다.

[연관 기사] 화석연료 투자 여전…탄소감축 의지 부족한 국책은행 (KBS 뉴스9 21.12.04)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40907

■ 세계 금융의 생존 전략 '탄소 중립'

세계 투자기관들은 탄소중립과 탈석탄·탈 화석연료를 외치고 있습니다. 금융권이 '탄소중립'과 무슨 상관이냐 고개를 갸우뚱하시는 분들 계실겁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앞으로 탄소중립을 하지 않는 기업이나 산업은 '돈'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 역시, 소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이 금전적인 투자 손실과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양춘승 /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화석연료에 투자하는 것이 예상했던 것보다 돈을 못 볼 것으로 보입니다. 탄소국경세 등이 시행되면 기업이 영향을 받고, 기업이 영향을 받으면 금융기관도 영향을 받을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기후변화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은 금융이라고 저는 이야기합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관리를 잘 못 하면, 옛날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처럼 (금융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이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금융기관입니다."

현실은 이런데, 우리나라 공적 금융기관들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정부의 '해외 신규 석탄발전소 공적 금융지원 중단' 선언 외에는 뚜렷한 움직임 하나 없는 게 현실입니다.

문제는 정부의 방침에만 마냥 목을 빼고 기다리는 국책은행들의 수동적 자세입니다. 정부의 지침과 별도로 대출 심사와 투자 결정 등의 업무는 금융기관의 역할인데, 눈치만 보면서 정부 움직임을 따라가기 바쁩니다.

박유경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APG) 이사가 "민간 금융시장에 선도적인 모범을 보여주는 게 공적 금융기관의 사회적 책임이다. 정부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건 말이 안 된다."라고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회의에서 화석연료 투자 중단에 국제 합의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라는 거창한 명분 말고도, '탄소중립'은 이제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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