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 차량 2대에 잇따라 치여 숨져…운전자 처벌은?

입력 2021.12.0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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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던 지난 6월 자정 무렵, 경남 창원의 왕복 6차로 도로를 건너던 50대 남성이 차에 치였습니다. 건널목 표시가 없는 곳에서 무단횡단하다 사고가 난 겁니다.

특이한 점은 사고 발생 약 5분 뒤 이 남성이 최초 사고 장소에서 무려 5㎞나 떨어진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겁니다. 경찰이 피의자로 지목한 용의자는 두 사람, 택시기사와 고객의 승용차를 운전하던 대리운전기사였습니다.


■ CCTV에 담긴 5㎞의 행적

사고가 난 장소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자유무역지역 사거리였습니다. 다행히 사거리에는 도로의 모든 방향을 비추는 CCTV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여기에 사건의 실마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마산자유무역지역 사거리에 설치된 경찰청 CCTV 화면마산자유무역지역 사거리에 설치된 경찰청 CCTV 화면

# 6월 3일 밤 11 시 59분 10초

녹화된 CCTV 화면을 보면 6월 3일 밤 11시 59분쯤 한 남성이 무단횡단을 하며 도로를 가로지릅니다. 이 남성이 도로 끝 지점에 거의 다다랐을 때, 2차로를 달리던 택시가 이 남성을 들이받습니다. 남성은 사고 충격으로 3차로에 쓰러졌습니다.

# 6월 3일 밤 11시 59분 20초

이 남성이 도로에 쓰러진 지 약 10초 뒤. 승용차 1대가 이 남성이 쓰러진 3차로를 지나갔습니다. 앞서 택시에 치여 쓰러져 있던 남성을 승용차가 다시 한번 충돌한 겁니다. 그 순간 남성은 CCTV 화면에서 사라졌습니다. 당시 승용차를 몰았던 사람은 차량 주인이 아닌 대리운전 기사였습니다.

# 6월 4일 새벽 0시 05분

사고가 발생한 지 5분쯤 뒤. 창원시내의 한 사거리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112상황실에 접수됐습니다. 신고가 들어온 장소는 최초 사고가 난 곳으로부터 약 5㎞ 떨어진 창원시 의창구 팔용동 차상사거리 부근이었습니다.

경찰은 이곳에서부터 CCTV를 역으로 추적해 최초 사고 장소를 특정했고, 택시기사와 대리운전기사를 피의자로 입건했습니다. 택시기사가 먼저 보행자를 들이받았고, 약 10초 뒤 대리운전기사가 잇따라 보행자를 들이받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현장에서 사라졌던 보행자는 대리운전기사가 몰던 차량에 의해 약 5㎞나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찰, "택시기사 구호·신고 조치 미흡"

지난 6월 밤 11시 59분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도로에서 2차로를 달리던 택시가 무단횡단하던 보행자를 들이받았다. 1차 사고 후 3차로로 튕겨 나간 보행자를 승용차가 잇따라 들이받았다. 빨간 원은 사고 발생 장소.지난 6월 밤 11시 59분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도로에서 2차로를 달리던 택시가 무단횡단하던 보행자를 들이받았다. 1차 사고 후 3차로로 튕겨 나간 보행자를 승용차가 잇따라 들이받았다. 빨간 원은 사고 발생 장소.

#1차 사고 택시기사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 혐의 적용

경찰은 1차 사고를 낸 택시기사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택시기사가 보행자를 들이받은 뒤 구호 조치와 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다고 판단한 겁니다.

경찰은 택시기사가 사고 직후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봤지만, 최초 충격이 있었던 장소까지 가서 적극적으로 확인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택시기사가 차에서 내렸을 때는 숨진 남성이 다른 차에 의해 5㎞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 뒤였지만, 현장에는 이 남성의 핸드폰과 우산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고 봤습니다.

또 숨진 남성이 다른 차로로 튕겨 나갈 만큼 큰 충격을 받은 사실을 택시기사가 인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택시기사는 경찰 조사에서 "사람을 들이받은 사실을 모르고 있던 상황에서 구호 조치 의무가 있었다는 것은 부당하다"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2차 사고 대리운전기사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 적용

경찰은 대리운전기사에게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숨진 남성을 친 사실은
인정되지만, 도주의 고의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CCTV에는 대리운전 기사가 이 남성을 충격한 뒤 곧장 차를 세워 주변을 확인하는 장면이 찍혔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곧장 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대리운전기사는 경찰 조사에서 "차에서 내려 확인까지 했지만, 사람을 친 사실을 알지 못했다"라고 진술했습니다.

경찰은 택시기사와 대리운전기사를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 "대수롭지 않은 사고라도 신고, 구호조치 해야"

경찰은 이번 사고가 굉장히 특이한 사고 사례지만, 운전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도로교통법에는 교통사고가 났을 때 사상자를 구조, 보호하는 조치를 해야 하고, 가까운 지구대나 경찰서에 신고해야 한다는 의무를 규정해놓고 있습니다.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을 때는 도주차량으로 보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가중처벌 할 수 있습니다.

경남경찰청 관계자는 "부상 정도가 경미하더라도 인명피해가 발생하면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이 도착하기 전 추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구호조치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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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행자, 차량 2대에 잇따라 치여 숨져…운전자 처벌은?
    • 입력 2021-12-08 07:01:15
    취재K

비가 내리던 지난 6월 자정 무렵, 경남 창원의 왕복 6차로 도로를 건너던 50대 남성이 차에 치였습니다. 건널목 표시가 없는 곳에서 무단횡단하다 사고가 난 겁니다.

특이한 점은 사고 발생 약 5분 뒤 이 남성이 최초 사고 장소에서 무려 5㎞나 떨어진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겁니다. 경찰이 피의자로 지목한 용의자는 두 사람, 택시기사와 고객의 승용차를 운전하던 대리운전기사였습니다.


■ CCTV에 담긴 5㎞의 행적

사고가 난 장소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자유무역지역 사거리였습니다. 다행히 사거리에는 도로의 모든 방향을 비추는 CCTV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여기에 사건의 실마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마산자유무역지역 사거리에 설치된 경찰청 CCTV 화면
# 6월 3일 밤 11 시 59분 10초

녹화된 CCTV 화면을 보면 6월 3일 밤 11시 59분쯤 한 남성이 무단횡단을 하며 도로를 가로지릅니다. 이 남성이 도로 끝 지점에 거의 다다랐을 때, 2차로를 달리던 택시가 이 남성을 들이받습니다. 남성은 사고 충격으로 3차로에 쓰러졌습니다.

# 6월 3일 밤 11시 59분 20초

이 남성이 도로에 쓰러진 지 약 10초 뒤. 승용차 1대가 이 남성이 쓰러진 3차로를 지나갔습니다. 앞서 택시에 치여 쓰러져 있던 남성을 승용차가 다시 한번 충돌한 겁니다. 그 순간 남성은 CCTV 화면에서 사라졌습니다. 당시 승용차를 몰았던 사람은 차량 주인이 아닌 대리운전 기사였습니다.

# 6월 4일 새벽 0시 05분

사고가 발생한 지 5분쯤 뒤. 창원시내의 한 사거리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112상황실에 접수됐습니다. 신고가 들어온 장소는 최초 사고가 난 곳으로부터 약 5㎞ 떨어진 창원시 의창구 팔용동 차상사거리 부근이었습니다.

경찰은 이곳에서부터 CCTV를 역으로 추적해 최초 사고 장소를 특정했고, 택시기사와 대리운전기사를 피의자로 입건했습니다. 택시기사가 먼저 보행자를 들이받았고, 약 10초 뒤 대리운전기사가 잇따라 보행자를 들이받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현장에서 사라졌던 보행자는 대리운전기사가 몰던 차량에 의해 약 5㎞나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찰, "택시기사 구호·신고 조치 미흡"

지난 6월 밤 11시 59분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도로에서 2차로를 달리던 택시가 무단횡단하던 보행자를 들이받았다. 1차 사고 후 3차로로 튕겨 나간 보행자를 승용차가 잇따라 들이받았다. 빨간 원은 사고 발생 장소.
#1차 사고 택시기사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 혐의 적용

경찰은 1차 사고를 낸 택시기사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택시기사가 보행자를 들이받은 뒤 구호 조치와 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다고 판단한 겁니다.

경찰은 택시기사가 사고 직후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봤지만, 최초 충격이 있었던 장소까지 가서 적극적으로 확인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택시기사가 차에서 내렸을 때는 숨진 남성이 다른 차에 의해 5㎞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 뒤였지만, 현장에는 이 남성의 핸드폰과 우산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고 봤습니다.

또 숨진 남성이 다른 차로로 튕겨 나갈 만큼 큰 충격을 받은 사실을 택시기사가 인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택시기사는 경찰 조사에서 "사람을 들이받은 사실을 모르고 있던 상황에서 구호 조치 의무가 있었다는 것은 부당하다"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2차 사고 대리운전기사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 적용

경찰은 대리운전기사에게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숨진 남성을 친 사실은
인정되지만, 도주의 고의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CCTV에는 대리운전 기사가 이 남성을 충격한 뒤 곧장 차를 세워 주변을 확인하는 장면이 찍혔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곧장 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대리운전기사는 경찰 조사에서 "차에서 내려 확인까지 했지만, 사람을 친 사실을 알지 못했다"라고 진술했습니다.

경찰은 택시기사와 대리운전기사를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 "대수롭지 않은 사고라도 신고, 구호조치 해야"

경찰은 이번 사고가 굉장히 특이한 사고 사례지만, 운전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도로교통법에는 교통사고가 났을 때 사상자를 구조, 보호하는 조치를 해야 하고, 가까운 지구대나 경찰서에 신고해야 한다는 의무를 규정해놓고 있습니다.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을 때는 도주차량으로 보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가중처벌 할 수 있습니다.

경남경찰청 관계자는 "부상 정도가 경미하더라도 인명피해가 발생하면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이 도착하기 전 추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구호조치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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