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 무릎 호소’ 4년 지났지만…여전히 먼 ‘학교 가는 길’

입력 2021.12.1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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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모욕을 주셔도 저희 괜찮습니다. 여러분들이 지나가다가 때리셔도 맞겠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2017년 9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수십 명의 엄마들. 이 한 장의 사진이 준 울림은 컸습니다. 그렇게 17년 만에, 서울에 새 특수학교가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4년이 지난 지금, 장애 학생들의 '학교 가는 길'은 조금 달라졌을까요?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의 '통합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일반고등학교의 특수학급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봤습니다.


■ 특수교육 대상자 매년 증가세…학급은 '포화 상태'

교육부 통계를 보면, 최근 5년간 특수교육 대상자는 매년 늘었습니다. 특히 통합교육이 확산하면서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배치되는 학생 수는 더 가파르게 늘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특수교육 대상자 가운데 72.2%인 7만 866명은 일반학교에 배치됐습니다.

이에 맞춰 특수학급과 특수학교, 특수교원도 증가하고는 있지만, 학생 수를 따라잡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수교육법에 따르면, 특수학급당 학생 정원은 유치원 4명, 초·중학교 6명, 고등학교 7명입니다. 하지만 서울에선 이 학급당 정원을 초과하는 '과밀지원' 학교가 23개교로, 올해 18개교 대비 늘었습니다.

지방보다 대형병원, 장애인 편의시설, 복지시설 등 인프라가 잘 돼 있다 보니, 특수교육 대상 학생 수도 그만큼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서울시교육청의 설명입니다.


■ 전체 특수학급 92%는 국·공립고에…"불균형 심각"

교육 당국은 매년 이맘 때쯤이면 특수학급 배정에 골머리를 앓곤 합니다. 학생들이 많아 지원자가 몰리는 학교가 있는데, 이 학생들을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학교로 이동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학부모나 학생에게 불편을 감수해달라고 설득하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학교를 설득해 특수학급을 새로 만드는 일은 이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학교가 아닌 학생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행정을 해왔습니다.



국·공립학교가 대부분인 초등학교나 중학교는 그나마 사정이 낫습니다. 교육 당국 주도로 특수학급을 설치하면 됩니다.

문제는 사립학교가 많은 고등학교입니다. 서울의 경우 전체 고등학교 10곳 중 6곳 이상이 사립고인데, 특수학급의 87.4%는 국·공립학교에 설치돼있습니다. 불균형이 심각한 겁니다. 전국으로 넓혀보면 국·공립학교에 설치된 특수학급이 전체의 91.8%에 달합니다.


■ 사립고 "준비 안 됐다"…특수학급 '배정 기피' 여전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뭘까요. 서울의 한 공립고등학교 특수학급 담당 교사는 "사립고가 특수학급 설치를 기피하는 것"이라며 "교장 선생님을 비롯해 저항이 많다고 하더라"고 전했습니다.

이 교사는 "아무래도 장애 학생이 학교에 있으면 시설 등 다양한 고려사항이 있다"며 "또 사립고는 대학 진학을 중시하는데, 장애 학생들은 성적 같은 부분은 비교적 상관이 없으니까 그런 점에서 더 기피하는 요인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주변에 특수학급이 없는 사립고가 많다 보니, 해당 공립고등학교에는 내년도 입학생 정원의 2배 가까이가 지원했다고 합니다. 이 교사는 "정답은 사립학교에 특수학급을 설치하는 것뿐인데, 잘 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습니다.

지적장애를 가진 중학생 김서희 양은 내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합니다. 집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중학교와 달리, 40분 거리의 고등학교에 배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상 김 양이 걸어서는 통학할 수 없는 거리입니다.지적장애를 가진 중학생 김서희 양은 내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합니다. 집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중학교와 달리, 40분 거리의 고등학교에 배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상 김 양이 걸어서는 통학할 수 없는 거리입니다.

사립고에도 특수학급 신설이 어려운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서울의 A 사립고는 "특수교육대상자를 위한 편의시설 미비가 가장 큰 이유"라며 "휠체어를 타는 학생은 계단을 오를 수 없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교육 당국은 엘리베이터 설치가 특수학급을 만들기 위한 필수 조건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시설에 적합한 학생을 배정하면 된다는 얘깁니다.)

B 사립고 역시 시설 미비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학교가 여러 건물로 나뉘어 있는데 특수교육대상자의 이동이 불편할 것으로 예상돼, 특수학급을 설치할 만한 공간적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학생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이 학생을 제대로 교육하려면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성급하게 학생 몇 명을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언제쯤 준비가 완료될지, 어떤 준비를 해나갈지 등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C 사립고의 경우, 사정을 듣기 위해 닷새 동안 전화 연결을 시도했지만 끝내 "인터뷰를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해오기도 했습니다.


■ 교육청 "권한은 있지만 일방적 추진은 부담"…이젠 한계 봉착

사실 특수학급 설치는 법적 근거가 명확합니다. 특수교육법은 장애학생의 학습권을 명시하고 있고, 2019년부터 시행된 서울시교육청의 특수학급 설치 및 지원 조례를 봐도 그렇습니다.


그럼 강제로라도 필요한 만큼 학급을 설치할 수는 없는 것인지, 교육청에 물어봤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아무리 좋은 정책과 법도 주민이나 학부모들이 반대하면 쉽지 않다"며 "교육청에서 아무리 권한이 있고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을 설득하고 소통하며 이끌어나가야 힘든 과정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억지로 특수학급을 만들었을 때, 그 학교에 다니게 될 학생과 학부모가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상처입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습니다. 원만한 합의를 이루는 게 최선이라는 겁니다.

그동안은 교육청이 공문을 보내고, 찾아가서 면담하고, 마음을 열지 않으면 다시 전화하고 방문하며 설득을 거듭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젠 이마저도 한계에 다다랐다고 합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부터는 부득이할 경우 특수학급을 강제로 지정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사립학교에서도 장애인 학습권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태도를 가져달라"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라든지 특수학급 운영에 따른 실무적인 부담, 불편함의 관점에서만 특수학급 설치 문제를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 왕복 2시간 넘는 학생도 2천여 명…"학습권 차원서 접근해야"

올해 교육부가 발표한 특수교육 통계를 보면, 여전히 특수교육 대상자 가운데 9,390명은 통학을 위해 왕복 1시간 넘는 거리를 오가고 있습니다. 2,092명은 왕복 2시간을 초과합니다. 그마저도 남는 자리가 없어 배정이 힘든 경우도 많습니다.


4년 전 엄마들의 '무릎 호소'는 우리 사회에 큰 분노와 울림을 전했지만, 여전히 학교 하나는 커녕 학급 하나를 만들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내년에 고등학교 특수학급 입학을 앞둔 김서희 양의 아버지는 "아직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는 것 같다"며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도 한 사람으로서 교육환경을 충분히 누리고 가까운 곳에서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학교 당국과 국민들이 여론을 형성해주고 응원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인포그래픽: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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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들 무릎 호소’ 4년 지났지만…여전히 먼 ‘학교 가는 길’
    • 입력 2021-12-10 14:31:21
    취재K

"여러분들이 모욕을 주셔도 저희 괜찮습니다. 여러분들이 지나가다가 때리셔도 맞겠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2017년 9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수십 명의 엄마들. 이 한 장의 사진이 준 울림은 컸습니다. 그렇게 17년 만에, 서울에 새 특수학교가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4년이 지난 지금, 장애 학생들의 '학교 가는 길'은 조금 달라졌을까요?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의 '통합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일반고등학교의 특수학급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봤습니다.


■ 특수교육 대상자 매년 증가세…학급은 '포화 상태'

교육부 통계를 보면, 최근 5년간 특수교육 대상자는 매년 늘었습니다. 특히 통합교육이 확산하면서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배치되는 학생 수는 더 가파르게 늘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특수교육 대상자 가운데 72.2%인 7만 866명은 일반학교에 배치됐습니다.

이에 맞춰 특수학급과 특수학교, 특수교원도 증가하고는 있지만, 학생 수를 따라잡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수교육법에 따르면, 특수학급당 학생 정원은 유치원 4명, 초·중학교 6명, 고등학교 7명입니다. 하지만 서울에선 이 학급당 정원을 초과하는 '과밀지원' 학교가 23개교로, 올해 18개교 대비 늘었습니다.

지방보다 대형병원, 장애인 편의시설, 복지시설 등 인프라가 잘 돼 있다 보니, 특수교육 대상 학생 수도 그만큼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서울시교육청의 설명입니다.


■ 전체 특수학급 92%는 국·공립고에…"불균형 심각"

교육 당국은 매년 이맘 때쯤이면 특수학급 배정에 골머리를 앓곤 합니다. 학생들이 많아 지원자가 몰리는 학교가 있는데, 이 학생들을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학교로 이동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학부모나 학생에게 불편을 감수해달라고 설득하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학교를 설득해 특수학급을 새로 만드는 일은 이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학교가 아닌 학생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행정을 해왔습니다.



국·공립학교가 대부분인 초등학교나 중학교는 그나마 사정이 낫습니다. 교육 당국 주도로 특수학급을 설치하면 됩니다.

문제는 사립학교가 많은 고등학교입니다. 서울의 경우 전체 고등학교 10곳 중 6곳 이상이 사립고인데, 특수학급의 87.4%는 국·공립학교에 설치돼있습니다. 불균형이 심각한 겁니다. 전국으로 넓혀보면 국·공립학교에 설치된 특수학급이 전체의 91.8%에 달합니다.


■ 사립고 "준비 안 됐다"…특수학급 '배정 기피' 여전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뭘까요. 서울의 한 공립고등학교 특수학급 담당 교사는 "사립고가 특수학급 설치를 기피하는 것"이라며 "교장 선생님을 비롯해 저항이 많다고 하더라"고 전했습니다.

이 교사는 "아무래도 장애 학생이 학교에 있으면 시설 등 다양한 고려사항이 있다"며 "또 사립고는 대학 진학을 중시하는데, 장애 학생들은 성적 같은 부분은 비교적 상관이 없으니까 그런 점에서 더 기피하는 요인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주변에 특수학급이 없는 사립고가 많다 보니, 해당 공립고등학교에는 내년도 입학생 정원의 2배 가까이가 지원했다고 합니다. 이 교사는 "정답은 사립학교에 특수학급을 설치하는 것뿐인데, 잘 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습니다.

지적장애를 가진 중학생 김서희 양은 내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합니다. 집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중학교와 달리, 40분 거리의 고등학교에 배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상 김 양이 걸어서는 통학할 수 없는 거리입니다.
사립고에도 특수학급 신설이 어려운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서울의 A 사립고는 "특수교육대상자를 위한 편의시설 미비가 가장 큰 이유"라며 "휠체어를 타는 학생은 계단을 오를 수 없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교육 당국은 엘리베이터 설치가 특수학급을 만들기 위한 필수 조건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시설에 적합한 학생을 배정하면 된다는 얘깁니다.)

B 사립고 역시 시설 미비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학교가 여러 건물로 나뉘어 있는데 특수교육대상자의 이동이 불편할 것으로 예상돼, 특수학급을 설치할 만한 공간적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학생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이 학생을 제대로 교육하려면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성급하게 학생 몇 명을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언제쯤 준비가 완료될지, 어떤 준비를 해나갈지 등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C 사립고의 경우, 사정을 듣기 위해 닷새 동안 전화 연결을 시도했지만 끝내 "인터뷰를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해오기도 했습니다.


■ 교육청 "권한은 있지만 일방적 추진은 부담"…이젠 한계 봉착

사실 특수학급 설치는 법적 근거가 명확합니다. 특수교육법은 장애학생의 학습권을 명시하고 있고, 2019년부터 시행된 서울시교육청의 특수학급 설치 및 지원 조례를 봐도 그렇습니다.


그럼 강제로라도 필요한 만큼 학급을 설치할 수는 없는 것인지, 교육청에 물어봤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아무리 좋은 정책과 법도 주민이나 학부모들이 반대하면 쉽지 않다"며 "교육청에서 아무리 권한이 있고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을 설득하고 소통하며 이끌어나가야 힘든 과정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억지로 특수학급을 만들었을 때, 그 학교에 다니게 될 학생과 학부모가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상처입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습니다. 원만한 합의를 이루는 게 최선이라는 겁니다.

그동안은 교육청이 공문을 보내고, 찾아가서 면담하고, 마음을 열지 않으면 다시 전화하고 방문하며 설득을 거듭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젠 이마저도 한계에 다다랐다고 합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부터는 부득이할 경우 특수학급을 강제로 지정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사립학교에서도 장애인 학습권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태도를 가져달라"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라든지 특수학급 운영에 따른 실무적인 부담, 불편함의 관점에서만 특수학급 설치 문제를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 왕복 2시간 넘는 학생도 2천여 명…"학습권 차원서 접근해야"

올해 교육부가 발표한 특수교육 통계를 보면, 여전히 특수교육 대상자 가운데 9,390명은 통학을 위해 왕복 1시간 넘는 거리를 오가고 있습니다. 2,092명은 왕복 2시간을 초과합니다. 그마저도 남는 자리가 없어 배정이 힘든 경우도 많습니다.


4년 전 엄마들의 '무릎 호소'는 우리 사회에 큰 분노와 울림을 전했지만, 여전히 학교 하나는 커녕 학급 하나를 만들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내년에 고등학교 특수학급 입학을 앞둔 김서희 양의 아버지는 "아직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는 것 같다"며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도 한 사람으로서 교육환경을 충분히 누리고 가까운 곳에서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학교 당국과 국민들이 여론을 형성해주고 응원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인포그래픽: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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