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일 없었다”더니…부산 지하 8층 지하철역 CCTV 보니

입력 2021.12.1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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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18일 부산 도시철도 3호선 배산역 CCTV 영상

늦은 밤, 부산의 한 도시철도 승강장.

승강장을 따라 집으로 향하는 승객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역사 안으로 전동차가 들어서고, 멈춰 선 전동차 위쪽으로 갑작스럽게 섬광이 번쩍거립니다. 전동차 안에 있던 승객들은 깜짝 놀라 전동차 문이 열리자마자 밖으로 뛰쳐나옵니다.

또다시 폭발음과 함께 섬광이 일자, 승강장에 있던 승객 수십여 명은 앞다퉈 지하 8층에 있는 승강장에서 지상까지 계단을 뛰어 올라 갑니다. 승객들이 대부분이 달아난 뒤에도 전동차 위쪽으로 이따금 불빛이 번쩍거립니다.


■ "전쟁터 같았다" vs "소동 없었다"

지난 8월 18일 밤 9시 18분쯤, 부산 도시철도 3호선 배산역에서 일어난 전동차 사고 CCTV 영상입니다.

전동차 위쪽, 이상 전압이 생길 때 전동차를 보호하는 부품인 '피뢰기'가 오작동해 차량 운행이 멈췄고, 기관사가 시동을 다시 거는 과정에서 폭발음이 났습니다. 이날 섬광과 폭발음은 6차례 가량이나 이어졌는데요.

'사고 직후 굉음과 함께 전동차 불이 꺼지고, 승객들이 밖으로 달아났었다'며 긴박했던 상황을 전하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잇따라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실제 사고 전동차에 타고 있었던 승객 한 명은 취재진에게 "그때 상황이 재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고 증언했습니다.

하지만 사고 다음 날, 배산역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CCTV 상으로 특별한 소동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부산교통공사 전경. 자료화면부산교통공사 전경. 자료화면

아무 일 없었다면서…CCTV 영상 공개는 '거부'

취재진은 정보공개 홈페이지를 통해 그때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CCTV 영상 공개를 요청했습니다. 사고 다음 날인 8월 19일 영상 공개를 요청했지만, 부산교통공사 측은 2주가 지난 후에야 CCTV를 공개할 수 없다고 통보했습니다.

단순한 CCTV 영상 열람도 불가능했습니다. 사생활 침해 등의 우려가 있고, 비공개와 공개 대상 정보를 분리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례에 따랐다는 비공개 사유도 함께 덧붙였습니다.

취재진은 해당 대법원 판례는 1인 시위자가 시위 용품을 훼손당했다며 개인적으로 범인을 찾기 위해 CCTV 공개를 요청했던 내용이고, 시민이 이용하는 도시철도의 안전 문제를 지적하는 공익적 목적과는 달라 적절한 판례 인용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이의 신청을 했습니다.

하지만 부산교통공사 측은 재차 비공개 결정을 내렸고, KBS 취재팀은 행정심판을 청구한 상태였습니다.

지난 8월 사고 열차 조사가 진행됐던 부산 강서구 기지창. 자료화면지난 8월 사고 열차 조사가 진행됐던 부산 강서구 기지창. 자료화면

■ 행정심판 이틀 전 CCTV 공개…대피 과정에 역무원 안 보여

넉 달째 CCTV를 공개하지 않던 부산교통공사 측은 행정심판을 이틀 앞둔 지난 7일, 갑작스럽게 CCTV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또 행정심판 청구도 취하해 달라고 요청했는데요. 영상 공개 이후에도 교통공사 측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그동안 CCTV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교통공사 측의 판례 해석에 오해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해당 판례가 CCTV를 '공개하면 안 된다.'라고 돼 있는 게 아니라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돼 있다는 겁니다. 결국, 교통공사 측이 어떤 이유에선지 CCTV를 공개하지 않기 위해 판례를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겁니다.

지하 8층 승강장에서 지상까지 달아나는 과정에서 안내방송도 듣지 못했고, 역무원도 만나지 못했다는 승객 진술도 나왔는데요. 사고 당시 미흡했던 대처를 숨기려고 일부러 영상을 공개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특히 신임 사장이 취임한 직후 CCTV 영상이 공개된 만큼 사장 공석 상태에서 CCTV 공개조차 결정하지 못할 만큼 업무 공백이 심각했다는 비판도 잇따릅니다.


■ 부산시, 교통공사 대처 '부적절'…"앞으로 브리핑 통해 적극 설명"

사고 이후 관계기관과 합동 점검에 나선 부산시는 실제 당시 역무원들의 대응이 적절치 않았다고 판단했는데요. 앞으로 사고가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원인 등을 시민들에게 알리라고 교통공사에 요구했습니다.

또 현행 지침에는 전동차가 승강장 밖에서 고장 났을 때만 역무원이 승객 대피를 지원하게 돼 있다면서 이 지침을 개정해 전동차 사고가 승강장 안에서 났을 때도 승객 대피를 돕게 했습니다.

특히 배산역처럼 지하 깊은 곳에 있는 역사는 역무원의 승객 대피 교육과 훈련을 강화하라고도 주문했습니다. 무엇보다 사고 뒤에는 원인 조사 결과와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적극적으로 알려 승객들이 안심할 수 있게 하라고 했습니다.

교통공사 측은 앞으로 중대 사고나 운행 장애 등 사고가 났을 때 언론 브리핑 등 통해 시민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겠다고 해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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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일 없었다”더니…부산 지하 8층 지하철역 CCTV 보니
    • 입력 2021-12-13 14:01:47
    취재K
▲ 지난 8월 18일 부산 도시철도 3호선 배산역 CCTV 영상

늦은 밤, 부산의 한 도시철도 승강장.

승강장을 따라 집으로 향하는 승객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역사 안으로 전동차가 들어서고, 멈춰 선 전동차 위쪽으로 갑작스럽게 섬광이 번쩍거립니다. 전동차 안에 있던 승객들은 깜짝 놀라 전동차 문이 열리자마자 밖으로 뛰쳐나옵니다.

또다시 폭발음과 함께 섬광이 일자, 승강장에 있던 승객 수십여 명은 앞다퉈 지하 8층에 있는 승강장에서 지상까지 계단을 뛰어 올라 갑니다. 승객들이 대부분이 달아난 뒤에도 전동차 위쪽으로 이따금 불빛이 번쩍거립니다.


■ "전쟁터 같았다" vs "소동 없었다"

지난 8월 18일 밤 9시 18분쯤, 부산 도시철도 3호선 배산역에서 일어난 전동차 사고 CCTV 영상입니다.

전동차 위쪽, 이상 전압이 생길 때 전동차를 보호하는 부품인 '피뢰기'가 오작동해 차량 운행이 멈췄고, 기관사가 시동을 다시 거는 과정에서 폭발음이 났습니다. 이날 섬광과 폭발음은 6차례 가량이나 이어졌는데요.

'사고 직후 굉음과 함께 전동차 불이 꺼지고, 승객들이 밖으로 달아났었다'며 긴박했던 상황을 전하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잇따라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실제 사고 전동차에 타고 있었던 승객 한 명은 취재진에게 "그때 상황이 재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고 증언했습니다.

하지만 사고 다음 날, 배산역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CCTV 상으로 특별한 소동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부산교통공사 전경. 자료화면
아무 일 없었다면서…CCTV 영상 공개는 '거부'

취재진은 정보공개 홈페이지를 통해 그때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CCTV 영상 공개를 요청했습니다. 사고 다음 날인 8월 19일 영상 공개를 요청했지만, 부산교통공사 측은 2주가 지난 후에야 CCTV를 공개할 수 없다고 통보했습니다.

단순한 CCTV 영상 열람도 불가능했습니다. 사생활 침해 등의 우려가 있고, 비공개와 공개 대상 정보를 분리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례에 따랐다는 비공개 사유도 함께 덧붙였습니다.

취재진은 해당 대법원 판례는 1인 시위자가 시위 용품을 훼손당했다며 개인적으로 범인을 찾기 위해 CCTV 공개를 요청했던 내용이고, 시민이 이용하는 도시철도의 안전 문제를 지적하는 공익적 목적과는 달라 적절한 판례 인용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이의 신청을 했습니다.

하지만 부산교통공사 측은 재차 비공개 결정을 내렸고, KBS 취재팀은 행정심판을 청구한 상태였습니다.

지난 8월 사고 열차 조사가 진행됐던 부산 강서구 기지창. 자료화면
■ 행정심판 이틀 전 CCTV 공개…대피 과정에 역무원 안 보여

넉 달째 CCTV를 공개하지 않던 부산교통공사 측은 행정심판을 이틀 앞둔 지난 7일, 갑작스럽게 CCTV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또 행정심판 청구도 취하해 달라고 요청했는데요. 영상 공개 이후에도 교통공사 측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그동안 CCTV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교통공사 측의 판례 해석에 오해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해당 판례가 CCTV를 '공개하면 안 된다.'라고 돼 있는 게 아니라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돼 있다는 겁니다. 결국, 교통공사 측이 어떤 이유에선지 CCTV를 공개하지 않기 위해 판례를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겁니다.

지하 8층 승강장에서 지상까지 달아나는 과정에서 안내방송도 듣지 못했고, 역무원도 만나지 못했다는 승객 진술도 나왔는데요. 사고 당시 미흡했던 대처를 숨기려고 일부러 영상을 공개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특히 신임 사장이 취임한 직후 CCTV 영상이 공개된 만큼 사장 공석 상태에서 CCTV 공개조차 결정하지 못할 만큼 업무 공백이 심각했다는 비판도 잇따릅니다.


■ 부산시, 교통공사 대처 '부적절'…"앞으로 브리핑 통해 적극 설명"

사고 이후 관계기관과 합동 점검에 나선 부산시는 실제 당시 역무원들의 대응이 적절치 않았다고 판단했는데요. 앞으로 사고가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원인 등을 시민들에게 알리라고 교통공사에 요구했습니다.

또 현행 지침에는 전동차가 승강장 밖에서 고장 났을 때만 역무원이 승객 대피를 지원하게 돼 있다면서 이 지침을 개정해 전동차 사고가 승강장 안에서 났을 때도 승객 대피를 돕게 했습니다.

특히 배산역처럼 지하 깊은 곳에 있는 역사는 역무원의 승객 대피 교육과 훈련을 강화하라고도 주문했습니다. 무엇보다 사고 뒤에는 원인 조사 결과와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적극적으로 알려 승객들이 안심할 수 있게 하라고 했습니다.

교통공사 측은 앞으로 중대 사고나 운행 장애 등 사고가 났을 때 언론 브리핑 등 통해 시민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겠다고 해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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