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빈곤과 코로나

입력 2021.12.16 (13:34) 수정 2021.12.1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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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코로나가 진정세를 보이자, 태국의 보험사들은 저렴한 코로나 상품을 무더기로 출시했다. 보험료는 1천 바트 정도(3만 5천원 정도). 수많은 서민들이 가입했다. 그런데 8월 확진자가 무섭게 급증했다,

그러자 확진자의 침을 사고판다는 글이 SNS에 올라왔다. 보험금 10만 바트(350만 원 정도)를 받기위해 일부러 코로나에 감염되려는 젊은이들이 늘자, 태국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 가난한 사람들에게 코로나는 어떤 모습일까

어디든 가난한 사람들은 좁은 공간에 모여 산다. 주로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캐셔나 식당종업원, 뚝뚝이 기사, 편의점 아르바이트, 모두 사람을 직접 만나야한다. 밀접접촉해야 돈을 번다. 백신 접종도 어렵다.

방콕에서 위험하거나 힘든 일은 대부분 미얀마 사람들의 몫이다(태국의 1인당 GDP는 한국의 1/4이지만, 미얀마의 5배다). 줄잡아 100만 명 이상의 미얀마인 불법 체류자가 태국에서 일한다. 불법체류자에겐 백신 순서가 돌아오지 않는다.

태국 공공의료는 ‘30바트’의 원칙이 있다. 모든 진료가 30바트(1천원 정도)만 내면 된다. 그런데 정작 공공병원이 부족하다. 코로나가 범람하자 방콕 외곽의 공공병원까지 확진자들이 몰려들었다. 수많은 확진자들이 입원을 기다리다 죽었다.

반면 민간 보험이 있는 소수의 시민들(하이소: 상류층 high society를 줄여 highso라 부른다)은 시설 좋은 종합병원을 찾는다. 방콕에는 10여 개의 고급 종합 병원이 있다.

에스컬레이터와 샹들리에... 문은 도어맨이 열어주고, 가죽소파에 앉아 진료를 기다린다. 하지만 민간 보험이 없는 시민들에겐 입원조차 어렵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안가리지만, 병원은 사람을 가려받는다.(방콕은 정돈되지 않은 도시지만, 일부 시민들에겐 매우 정돈된 곳이다).


방콕 범룽랏병원, 민간 보험이 없는 대다수의 방콕 시민은 들어가 본적도 없다(윗사진). 지난 8월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방콕의 한 공공병원 주차장까지 확진자들의 병상이 이어졌다(아랫사진). 사진 SNS방콕 범룽랏병원, 민간 보험이 없는 대다수의 방콕 시민은 들어가 본적도 없다(윗사진). 지난 8월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방콕의 한 공공병원 주차장까지 확진자들의 병상이 이어졌다(아랫사진). 사진 SNS

■ 절망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이번엔 물가가 오른다. 지난 11월 태국의 물가는 2.71% 급등했다. 휘발유나 디젤, 돼지고기 등의 가격은 크게 뛰었다. 물가가 오르면 서민들이 훨씬 더 버겁다. 말레이시아에선 요리에서 고기가 사라지고, 인도 서민들은 램프에 쓰는 기름을 요리에 사용중이다.

올해 태국은 0.7% 성장이 예상된다. 하지만 물가가 오르면 서민들에게 GDP는 참으로 의미없는 숫자 놀음이다.(심지어 물가가 오르면 GDP는 더 올라간다)

지난 10월 태국 나콘랏차, 한 여성이 코로나로 소득이 줄고, 특히 11세 아들의 자폐증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며 자신의 신장을 팔겠다는 현수막을 걸었다. 이 사진은 빠르게 SNS에 퍼졌다. 그녀는 이미 10만 바트(350만 원)가 넘는 빚이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장기 밖에 없다고 했다.

코로나가 얼마나 많은 서민들을 절벽 끝으로 몰아세웠을까. 하지만 누군가 죽어가는 소리는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3/4분기 코로나로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도시 서민의 증가 추이' 같은 정부 통계는 없다.

“신장 1개를 팝니다. 저희는 빚이 너무 많고 제 아들은 자폐증입니다” 사진 TV뉴스 갈무리“신장 1개를 팝니다. 저희는 빚이 너무 많고 제 아들은 자폐증입니다” 사진 TV뉴스 갈무리

■ 어느 한쪽에선 코로나 파티가 열린다

삼라만상 모든 자산가격이 오른다. 지난해 미국에선 모두 32만 척의 요트가 팔렸다. 수십 년간 쌓였던 거의 모든 재고가 소진됐고, 특히 수십억 원씩 하는 고급·대형요트는 물건이 없어서 못팔았다. 50피트 이상 요트는 정박할 곳을 찾기도 어렵다(자료 National Marine Manufacturers Assn)

테슬라의 시가 총액은 지금도 1조 달러가 넘는다. 태국 국가 GDP(5,017억 달러)의 2배다. 일론 머스크Elon Musk 개인의 재산은 칠레나 베트남의 GDP보다 많다.

1억 명의 베트남 사람들이 1년간 생산하고 소비한 재화와 서비스의 합계보다 머스크의 재산이 더 많다. 이게 정상인가.

"일론 머스크만큼 돈을 벌려면, 미국의 중간 소득 노동자가 ‘4백만 년’을 일해야 한다'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 전 노동부장관


정작 머스크가 20년 넘게 살았던 캘리포니아 인구의 1/3이 빈곤선 가까이에 살고 있다(주 정부가 의료보험을 전액 커버해주는 기준선이 저소득 평균 소득의 138%까지인데 그 대상이 이미 인구의 1/3이나 된다).

앞으로는 나아질까?

캘리포니아 시민 10명 중 6명은 자신의 자녀가 자신보다 더 가난할 것이라도 믿는다(자료 캘리포니아 공공정책연구소 Public Policy Institute of California)

0.1%는 너무 너무 잘 살고, 40~50%는 적당히 또는 지독하게 가난한 사회가 완성되고 있다. 실제 캘리포니아에 재산이 10억 달러(1조 2천억 원)가 넘는 억만장자도 189명이 산다(포춘 2021년 4월 전세계 억만장자 분포 조사/머스크는 세금을 아끼려고 텍사스로 이사를 가서 189명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어떤 가난한 나라의 국가 GDP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한다. 250여 년 전에 '국가의 부는 생산과 소비의 합계'라고 알려줬던 애덤 스미스(Adam Smith)선생이 지금 이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까. 코로나를 탓할까.

자산 시장이 이렇게 펄펄 끓는 동안 어느 한 켠에선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미국 일리노이와 미시간, 위스콘신 등 연구가 이뤄진 대부분의 주에서 코로나로 숨진 흑인의 비율은 인구 비례보다 2~3배 이상 높았다.

코로나 공포가 들이닥친 지난해 4월, 위스콘신 밀워키 카운티의 흑인 비율은 28%였지만 사망자의 73%가 흑인이였다. 코로나는 사람을 고르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회적 약자를 더 가혹하게 공격한다.

코로나는 누군가에겐 자산 증식의 기회가 되고, 누군가에겐 해외여행을 못가는 불편함을 불러오지만, 또 누군가의 일자리를 뺏고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간다.
당신이 사회적 약자거나 저소득층이라면 후자에 포함될 가능성은 훨씬 더 커진다.

LA카운티 보건국은 올 초, 최저소득 지역 사망자의 숫자가 최고 소득 지역의 사망자에 비해 3배가 더 높다고 밝혔다. 알고보니 바이러스는 죽을 사람을 고르고 있었다.


■ 지난 2년 동안 격차는 훨씬 더 커졌다.

코로나로 ‘지속가능한 부자들의 시대’가 더 굳어진다. 하지만 격차가 꾸준히 커지는 동안 “ 부자 좀 그만 괴롭혀라”는 이데올로기도 따라 단단해졌다.

부의 불균형 이야기는 이제 식상하다. “이 자율주행의 시대에 무슨 격차 타령인가..”

주식이나 비트코인으로 한몫 잡은 청년들이 많아서인지, SNS는 툭하면 가난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다. 가난을 탓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을 탓한다.

잠깐 어느 정당의 선거본부장을 지낸 어떤 청년은 “가난한 사람들은 맺힌 게 많고 그걸 이용하려고 한다”고 했다. 박정희는 가난과 싸웠는데, 어떤 보수는 가난한 사람들과 싸운다.

지금은 가난해서 더 위험해진 사람들을 위해 더 높은 성을 쌓아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이 구호는 중국의 공동부유(共同富裕)처럼 점점 더 허망해진다.

케네디(John F. Kennedy)는 "밀물이 들어오면 모든 배가 떠 오른다"고 했다. 진짜 그럴까.

이 안개가 걷히고 나면 우리 모두가 다시 떠오를 수 있을까.

코로나가 더 잔인한 이유는 ‘함께 잘살자’는 의지를 꺾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학생들의 교육 실태 점검에 나선 태국 교육부는 12월 13일, 올 한해 모두 6만 5천여 명의 초등학생들이 교과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이탈했다고 밝혔다. 바이러스는 가장 약한 초등학생 6만 5천여 명을 골라 발목을 잡아 끌어내린다.

박영희 시인은 '가난이란 한발을 빼려고 하면 또 한발이 빠져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 아이들에겐 더 모진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가난에서 한쪽 발을 빼려고 하면, 또 한쪽발이 빠져들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바이러스는 더 모질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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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2-16 13:34:41
    • 수정2021-12-16 13:35:48
    특파원 리포트

지난 봄 코로나가 진정세를 보이자, 태국의 보험사들은 저렴한 코로나 상품을 무더기로 출시했다. 보험료는 1천 바트 정도(3만 5천원 정도). 수많은 서민들이 가입했다. 그런데 8월 확진자가 무섭게 급증했다,

그러자 확진자의 침을 사고판다는 글이 SNS에 올라왔다. 보험금 10만 바트(350만 원 정도)를 받기위해 일부러 코로나에 감염되려는 젊은이들이 늘자, 태국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 가난한 사람들에게 코로나는 어떤 모습일까

어디든 가난한 사람들은 좁은 공간에 모여 산다. 주로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캐셔나 식당종업원, 뚝뚝이 기사, 편의점 아르바이트, 모두 사람을 직접 만나야한다. 밀접접촉해야 돈을 번다. 백신 접종도 어렵다.

방콕에서 위험하거나 힘든 일은 대부분 미얀마 사람들의 몫이다(태국의 1인당 GDP는 한국의 1/4이지만, 미얀마의 5배다). 줄잡아 100만 명 이상의 미얀마인 불법 체류자가 태국에서 일한다. 불법체류자에겐 백신 순서가 돌아오지 않는다.

태국 공공의료는 ‘30바트’의 원칙이 있다. 모든 진료가 30바트(1천원 정도)만 내면 된다. 그런데 정작 공공병원이 부족하다. 코로나가 범람하자 방콕 외곽의 공공병원까지 확진자들이 몰려들었다. 수많은 확진자들이 입원을 기다리다 죽었다.

반면 민간 보험이 있는 소수의 시민들(하이소: 상류층 high society를 줄여 highso라 부른다)은 시설 좋은 종합병원을 찾는다. 방콕에는 10여 개의 고급 종합 병원이 있다.

에스컬레이터와 샹들리에... 문은 도어맨이 열어주고, 가죽소파에 앉아 진료를 기다린다. 하지만 민간 보험이 없는 시민들에겐 입원조차 어렵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안가리지만, 병원은 사람을 가려받는다.(방콕은 정돈되지 않은 도시지만, 일부 시민들에겐 매우 정돈된 곳이다).


방콕 범룽랏병원, 민간 보험이 없는 대다수의 방콕 시민은 들어가 본적도 없다(윗사진). 지난 8월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방콕의 한 공공병원 주차장까지 확진자들의 병상이 이어졌다(아랫사진). 사진 SNS
■ 절망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이번엔 물가가 오른다. 지난 11월 태국의 물가는 2.71% 급등했다. 휘발유나 디젤, 돼지고기 등의 가격은 크게 뛰었다. 물가가 오르면 서민들이 훨씬 더 버겁다. 말레이시아에선 요리에서 고기가 사라지고, 인도 서민들은 램프에 쓰는 기름을 요리에 사용중이다.

올해 태국은 0.7% 성장이 예상된다. 하지만 물가가 오르면 서민들에게 GDP는 참으로 의미없는 숫자 놀음이다.(심지어 물가가 오르면 GDP는 더 올라간다)

지난 10월 태국 나콘랏차, 한 여성이 코로나로 소득이 줄고, 특히 11세 아들의 자폐증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며 자신의 신장을 팔겠다는 현수막을 걸었다. 이 사진은 빠르게 SNS에 퍼졌다. 그녀는 이미 10만 바트(350만 원)가 넘는 빚이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장기 밖에 없다고 했다.

코로나가 얼마나 많은 서민들을 절벽 끝으로 몰아세웠을까. 하지만 누군가 죽어가는 소리는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3/4분기 코로나로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도시 서민의 증가 추이' 같은 정부 통계는 없다.

“신장 1개를 팝니다. 저희는 빚이 너무 많고 제 아들은 자폐증입니다” 사진 TV뉴스 갈무리
■ 어느 한쪽에선 코로나 파티가 열린다

삼라만상 모든 자산가격이 오른다. 지난해 미국에선 모두 32만 척의 요트가 팔렸다. 수십 년간 쌓였던 거의 모든 재고가 소진됐고, 특히 수십억 원씩 하는 고급·대형요트는 물건이 없어서 못팔았다. 50피트 이상 요트는 정박할 곳을 찾기도 어렵다(자료 National Marine Manufacturers Assn)

테슬라의 시가 총액은 지금도 1조 달러가 넘는다. 태국 국가 GDP(5,017억 달러)의 2배다. 일론 머스크Elon Musk 개인의 재산은 칠레나 베트남의 GDP보다 많다.

1억 명의 베트남 사람들이 1년간 생산하고 소비한 재화와 서비스의 합계보다 머스크의 재산이 더 많다. 이게 정상인가.

"일론 머스크만큼 돈을 벌려면, 미국의 중간 소득 노동자가 ‘4백만 년’을 일해야 한다'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 전 노동부장관


정작 머스크가 20년 넘게 살았던 캘리포니아 인구의 1/3이 빈곤선 가까이에 살고 있다(주 정부가 의료보험을 전액 커버해주는 기준선이 저소득 평균 소득의 138%까지인데 그 대상이 이미 인구의 1/3이나 된다).

앞으로는 나아질까?

캘리포니아 시민 10명 중 6명은 자신의 자녀가 자신보다 더 가난할 것이라도 믿는다(자료 캘리포니아 공공정책연구소 Public Policy Institute of California)

0.1%는 너무 너무 잘 살고, 40~50%는 적당히 또는 지독하게 가난한 사회가 완성되고 있다. 실제 캘리포니아에 재산이 10억 달러(1조 2천억 원)가 넘는 억만장자도 189명이 산다(포춘 2021년 4월 전세계 억만장자 분포 조사/머스크는 세금을 아끼려고 텍사스로 이사를 가서 189명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어떤 가난한 나라의 국가 GDP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한다. 250여 년 전에 '국가의 부는 생산과 소비의 합계'라고 알려줬던 애덤 스미스(Adam Smith)선생이 지금 이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까. 코로나를 탓할까.

자산 시장이 이렇게 펄펄 끓는 동안 어느 한 켠에선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미국 일리노이와 미시간, 위스콘신 등 연구가 이뤄진 대부분의 주에서 코로나로 숨진 흑인의 비율은 인구 비례보다 2~3배 이상 높았다.

코로나 공포가 들이닥친 지난해 4월, 위스콘신 밀워키 카운티의 흑인 비율은 28%였지만 사망자의 73%가 흑인이였다. 코로나는 사람을 고르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회적 약자를 더 가혹하게 공격한다.

코로나는 누군가에겐 자산 증식의 기회가 되고, 누군가에겐 해외여행을 못가는 불편함을 불러오지만, 또 누군가의 일자리를 뺏고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간다.
당신이 사회적 약자거나 저소득층이라면 후자에 포함될 가능성은 훨씬 더 커진다.

LA카운티 보건국은 올 초, 최저소득 지역 사망자의 숫자가 최고 소득 지역의 사망자에 비해 3배가 더 높다고 밝혔다. 알고보니 바이러스는 죽을 사람을 고르고 있었다.


■ 지난 2년 동안 격차는 훨씬 더 커졌다.

코로나로 ‘지속가능한 부자들의 시대’가 더 굳어진다. 하지만 격차가 꾸준히 커지는 동안 “ 부자 좀 그만 괴롭혀라”는 이데올로기도 따라 단단해졌다.

부의 불균형 이야기는 이제 식상하다. “이 자율주행의 시대에 무슨 격차 타령인가..”

주식이나 비트코인으로 한몫 잡은 청년들이 많아서인지, SNS는 툭하면 가난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다. 가난을 탓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을 탓한다.

잠깐 어느 정당의 선거본부장을 지낸 어떤 청년은 “가난한 사람들은 맺힌 게 많고 그걸 이용하려고 한다”고 했다. 박정희는 가난과 싸웠는데, 어떤 보수는 가난한 사람들과 싸운다.

지금은 가난해서 더 위험해진 사람들을 위해 더 높은 성을 쌓아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이 구호는 중국의 공동부유(共同富裕)처럼 점점 더 허망해진다.

케네디(John F. Kennedy)는 "밀물이 들어오면 모든 배가 떠 오른다"고 했다. 진짜 그럴까.

이 안개가 걷히고 나면 우리 모두가 다시 떠오를 수 있을까.

코로나가 더 잔인한 이유는 ‘함께 잘살자’는 의지를 꺾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학생들의 교육 실태 점검에 나선 태국 교육부는 12월 13일, 올 한해 모두 6만 5천여 명의 초등학생들이 교과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이탈했다고 밝혔다. 바이러스는 가장 약한 초등학생 6만 5천여 명을 골라 발목을 잡아 끌어내린다.

박영희 시인은 '가난이란 한발을 빼려고 하면 또 한발이 빠져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 아이들에겐 더 모진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가난에서 한쪽 발을 빼려고 하면, 또 한쪽발이 빠져들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바이러스는 더 모질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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