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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 5급 교육공채 수석합격 강민영 씨 그리고 ‘엄마’
입력 2021.12.18 (08:02) 취재K

■ 5급 교육행정 수석합격자 강민영 씨, 세상을 손으로 읽다

코로나 19의 엄중한 상황과 대통령 선거 등으로 뉴스가 넘쳐납니다. 이런 때면 안타깝게도 더 많은 사람들이 박수쳐 주면 좋을 '따뜻한 뉴스'들이 묻히기 쉽습니다. 이 뉴스가 그랬습니다. 사무관 선발 역사 73년 만에 처음으로 시각장애인 합격자가 탄생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지난달 말 발표된 5급 공채 합격자였습니다.

주인공은 서울대학교 교육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인 26살 강민영 씨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는 선천성 시각장애로 전맹인 민영 씨는 교육행정 부문에서 수석으로 합격했습니다. 5급 채용은 별도의 장애인 전형이 없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경쟁합니다.

흔히들 5급 공채를 '행정고시'라 부르지요. 눈에 문제가 잘 보여도 풀기 어려웠을 시험입니다. 민영 씨가 그 어렵다는 고시에 도전하고 결국 승리하도록 도운 인생 최고의 조력자 '엄마'가 궁금했습니다.

강민영 씨 어머니는 KBS와의 통화해서 민영이의 성과인 만큼 그저 '민영 엄마'로 인터뷰 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 책 읽고 싶은 딸과 전무한 점자책…엄마 점자책을 만들다

엄마가 기억하는 어린 딸은 책을 참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민영 씨의 책사랑은 남달랐습니다. 대형마트에 가면 보통 장난감 코너에 가서 장난감을 사달라는 아이들이 많은데, 민영 씨는 책 파는 곳으로 갔습니다. "책이 진열된 큰 책장 앞에 양팔을 벌리고 서서 '엄마 이 책 다 설명해줘' 이러면서 집에를 안 가요."

 [왼쪽] 어린시절 강민영 씨                                              [오른쪽]  5급공채 시험 후 수험서적을 바라보는 강민영 씨 [왼쪽] 어린시절 강민영 씨 [오른쪽] 5급공채 시험 후 수험서적을 바라보는 강민영 씨

엄마는 민영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었던 20여년 전에 얼마나 점자책을 구하기 어려웠는지 회상합니다. 국내에는 특히 점자로 된 동화책이 거의 없었습니다. 책을 읽고 싶다고 조르는 자식에게 책이 없어서 못 읽는다는 말을 할 수 없었던 엄마는, 자신이 직접 책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자식이 책을 읽고 싶다는데 가만히 있을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엄마가 동화책 글자 하나하나를 타이핑을 쳐 문서를 만들어, 복지관 등 점자를 변환해 주는 곳에 가서 의뢰해야 책 한 권이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독수리타법으로 동화책을 점자책으로 만들던 엄마는 결국 중학교, 고등학교, 공무원 시험까지 결국 손수 점자책을 만들어줘야 했습니다. 합격 직후 민영 씨는 공개인터뷰에서 "이번 5급 공채 합격에도 교재와 자료 대부분을 부모님께서 스캔하고 편집해 만들어주셨다"고 감사함을 전한 바 있습니다.

■ 점자책 공부로 지문이 닳은 딸…엄마의 기도 "첫 사회생활 조금느려도 해내길"

민영 씨가 서울대학교에 합격했을 때보다, 이번 5급 공채 시험이 더 의미가 있었다는 민영 엄마. 반가운 5급 공채 합격 소식에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지 않고, 담담했다고 합니다.

" 민영이가 2019년부터 시험을 준비했는데 연이어 불합격했어요. 남들이 다 안될거라는 어려운 시험에 도전한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올해 마지막으로 해 보고 그만하자고 딸을 다독였어요. 앞이 하나도 안 보이니까, 소리와 손가락 끝 촉각에만 의지해 공부해요. 너무 열심히 점자책을 읽으니 지문이 다 닳을 정도였어요. 너무 열심히 하는 딸을 보기가 엄마로서 안쓰러습니다."

세상을 못 보는 대신, 세상을 '읽어' 알고 싶어 했던 딸, 그렇지만 부족한 점자책과 시설. 분명 뼈아픈 현실 지적이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엄마는 더 멀리 내다봤습니다.

"민영이가 걸어온 근 30여 년 동안 우리 사회 역시 급속도로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전혀 없다시피 했던 시각장애인 지원이 많이 확대됐죠. 그럼에도 이제 학생이 아닌 사회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는 딸이 걱정됩니다. 학교는 늦어도 조금 기다려주지만, 삶의 현장은 기다림이 없잖아요. 보지 못하는 환경을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보고, 점자로 읽으려면 남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거든요. 엄마로서 그게 가장 걱정이 됩니다. 느리더라도 우리 딸은 꼭 해낼 겁니다."

■ 강민영 씨 "온 가족이 매달리지 않아도 장애인이 배울 수 있는 세상 꿈 꿔"

"점자책이 없던 시절, 부모님의 헌신적인 책 만들기 등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못 와있을 것"이라는 민영 씨에겐 이제 '자신과 같은 장애인들을 위한 행정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다.

자신이 읽고 싶은 모든 책을 점자책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 부모님에 대한 마음은, 감사함이자 또한 미안함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민영 씨는 "시각장애인으로 여러 입시들을 거쳐 오면서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인 일이 누군가에는 온 가족이 매달려야 가능한 도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게 됐다"고 말합니다. "배움의 의지는 있지만 방법을 몰라 포기하는 장애인들과 사회적 약자들이 많다"면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를 만들고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부모가 모든 책들을 타이핑해 점자책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장애인들도 쉽게 공부하고 도전할 수 있는 세상을 꿈 꾸는 것입니다.

1년의 연수과정을 거친 뒤 시각장애 첫 사무관으로 교육부 현장을 누빌 민영 씨의 남다른 교육행정을 기대해봅니다.
  • ‘시각장애’ 5급 교육공채 수석합격 강민영 씨 그리고 ‘엄마’
    • 입력 2021-12-18 08:02:29
    취재K

■ 5급 교육행정 수석합격자 강민영 씨, 세상을 손으로 읽다

코로나 19의 엄중한 상황과 대통령 선거 등으로 뉴스가 넘쳐납니다. 이런 때면 안타깝게도 더 많은 사람들이 박수쳐 주면 좋을 '따뜻한 뉴스'들이 묻히기 쉽습니다. 이 뉴스가 그랬습니다. 사무관 선발 역사 73년 만에 처음으로 시각장애인 합격자가 탄생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지난달 말 발표된 5급 공채 합격자였습니다.

주인공은 서울대학교 교육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인 26살 강민영 씨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는 선천성 시각장애로 전맹인 민영 씨는 교육행정 부문에서 수석으로 합격했습니다. 5급 채용은 별도의 장애인 전형이 없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경쟁합니다.

흔히들 5급 공채를 '행정고시'라 부르지요. 눈에 문제가 잘 보여도 풀기 어려웠을 시험입니다. 민영 씨가 그 어렵다는 고시에 도전하고 결국 승리하도록 도운 인생 최고의 조력자 '엄마'가 궁금했습니다.

강민영 씨 어머니는 KBS와의 통화해서 민영이의 성과인 만큼 그저 '민영 엄마'로 인터뷰 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 책 읽고 싶은 딸과 전무한 점자책…엄마 점자책을 만들다

엄마가 기억하는 어린 딸은 책을 참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민영 씨의 책사랑은 남달랐습니다. 대형마트에 가면 보통 장난감 코너에 가서 장난감을 사달라는 아이들이 많은데, 민영 씨는 책 파는 곳으로 갔습니다. "책이 진열된 큰 책장 앞에 양팔을 벌리고 서서 '엄마 이 책 다 설명해줘' 이러면서 집에를 안 가요."

 [왼쪽] 어린시절 강민영 씨                                              [오른쪽]  5급공채 시험 후 수험서적을 바라보는 강민영 씨 [왼쪽] 어린시절 강민영 씨 [오른쪽] 5급공채 시험 후 수험서적을 바라보는 강민영 씨

엄마는 민영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었던 20여년 전에 얼마나 점자책을 구하기 어려웠는지 회상합니다. 국내에는 특히 점자로 된 동화책이 거의 없었습니다. 책을 읽고 싶다고 조르는 자식에게 책이 없어서 못 읽는다는 말을 할 수 없었던 엄마는, 자신이 직접 책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자식이 책을 읽고 싶다는데 가만히 있을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엄마가 동화책 글자 하나하나를 타이핑을 쳐 문서를 만들어, 복지관 등 점자를 변환해 주는 곳에 가서 의뢰해야 책 한 권이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독수리타법으로 동화책을 점자책으로 만들던 엄마는 결국 중학교, 고등학교, 공무원 시험까지 결국 손수 점자책을 만들어줘야 했습니다. 합격 직후 민영 씨는 공개인터뷰에서 "이번 5급 공채 합격에도 교재와 자료 대부분을 부모님께서 스캔하고 편집해 만들어주셨다"고 감사함을 전한 바 있습니다.

■ 점자책 공부로 지문이 닳은 딸…엄마의 기도 "첫 사회생활 조금느려도 해내길"

민영 씨가 서울대학교에 합격했을 때보다, 이번 5급 공채 시험이 더 의미가 있었다는 민영 엄마. 반가운 5급 공채 합격 소식에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지 않고, 담담했다고 합니다.

" 민영이가 2019년부터 시험을 준비했는데 연이어 불합격했어요. 남들이 다 안될거라는 어려운 시험에 도전한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올해 마지막으로 해 보고 그만하자고 딸을 다독였어요. 앞이 하나도 안 보이니까, 소리와 손가락 끝 촉각에만 의지해 공부해요. 너무 열심히 점자책을 읽으니 지문이 다 닳을 정도였어요. 너무 열심히 하는 딸을 보기가 엄마로서 안쓰러습니다."

세상을 못 보는 대신, 세상을 '읽어' 알고 싶어 했던 딸, 그렇지만 부족한 점자책과 시설. 분명 뼈아픈 현실 지적이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엄마는 더 멀리 내다봤습니다.

"민영이가 걸어온 근 30여 년 동안 우리 사회 역시 급속도로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전혀 없다시피 했던 시각장애인 지원이 많이 확대됐죠. 그럼에도 이제 학생이 아닌 사회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는 딸이 걱정됩니다. 학교는 늦어도 조금 기다려주지만, 삶의 현장은 기다림이 없잖아요. 보지 못하는 환경을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보고, 점자로 읽으려면 남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거든요. 엄마로서 그게 가장 걱정이 됩니다. 느리더라도 우리 딸은 꼭 해낼 겁니다."

■ 강민영 씨 "온 가족이 매달리지 않아도 장애인이 배울 수 있는 세상 꿈 꿔"

"점자책이 없던 시절, 부모님의 헌신적인 책 만들기 등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못 와있을 것"이라는 민영 씨에겐 이제 '자신과 같은 장애인들을 위한 행정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다.

자신이 읽고 싶은 모든 책을 점자책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 부모님에 대한 마음은, 감사함이자 또한 미안함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민영 씨는 "시각장애인으로 여러 입시들을 거쳐 오면서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인 일이 누군가에는 온 가족이 매달려야 가능한 도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게 됐다"고 말합니다. "배움의 의지는 있지만 방법을 몰라 포기하는 장애인들과 사회적 약자들이 많다"면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를 만들고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부모가 모든 책들을 타이핑해 점자책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장애인들도 쉽게 공부하고 도전할 수 있는 세상을 꿈 꾸는 것입니다.

1년의 연수과정을 거친 뒤 시각장애 첫 사무관으로 교육부 현장을 누빌 민영 씨의 남다른 교육행정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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