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백년 전 방역에 지친 미국인들이 했던 실수…“방심하지 말라”

입력 2021.12.18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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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시내 페리 건물 인근에서 경찰관이 두 명의 남자를 연행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치장에 끌려가는 중 . 출처:캘리포니아 주립 도서관샌프란시스코 시내 페리 건물 인근에서 경찰관이 두 명의 남자를 연행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치장에 끌려가는 중 . 출처:캘리포니아 주립 도서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남성을 경찰이 연행한다.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쓰기는 법적으로 강제되고, 실내는 물론 야외에서도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한다. 마스크 쓰기는 물론 사람들의 모이는 극장, 술집, 식당은 문을 닫고, 모임은 금지된다. 이를 어긴 이들은 경찰에 연행돼 유치장 신세를 져야 한다. 전염병의 감염과 그로 인한 사망의 물결을 막기 위해서 이뤄진 조치다.

코로나19가 창궐해 엄격한 방역 속에서 살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아니다. 백 년 전 미국의 모습이다. 미국의 주 정부와 지방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례를 제정하고, 금지, 폐쇄, 규제를 강행했다. 1918년 1차 세계대전 직후 전 세계를 강타한 스페인 독감 대유행 당시의 모습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들은 대중교통(전차) 탑승을 거부당했고, 경찰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들에게 "감옥에 가고 싶냐"며 검문검색을 했다. 극장과 식당, 댄스홀 주인들은 장사를 못 해 금전적 손실을 호소했다.

대유행이 몇 주, 몇 달, 1년 넘게 지속되자 규제들은 견디기 어려워졌다. 성직자들은 교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공장주들은 공장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 관계자들은 아이들이 학업 격차가 벌어진다며 집에 있어도 교실에 있는 것보다 안전하지 않다고 논쟁을 벌였다. 시민들은 마침내, 정부가 그들의 자유를 침해할 권리가 없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1918년 1918년

2021년 이 모든 것이 낯익다. 하지만 1918년,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인플루엔자 대유행 기간 미국 언론에 보도된 모습들이다. 마치 백 년 전 상황을 현재로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1년 반이 넘는 기간, 엄격한 방역에 지친 우리처럼 이들이 지치고, 지쳐서 했던 일은 전염병의 종식에 이른 것처럼 행동했다는 거다.

■"백 년 전 조상들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미시간 대학의 의학사 연구소 부소장인 알렉산더 나바로 박사는 의학사 학자로 한 세기 전 미국인들이 했던 실수를 현재의 미국인들이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COVID-19 대유행이 2년째에 접어들면서, 많은 사람들은 삶이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으로 돌아가길 열망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우성치고 있다는 거다. 백 년 전에도 시민들은 정부를 향해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쳤고, 결국 주 정부와 지방정부는 공중보건 명령을 하나 둘씩 폐지하기 시작했다.

1918년 스페인독감 대유행 당시 마스크 의무화 규제1918년 스페인독감 대유행 당시 마스크 의무화 규제

그 결과는?
나바로 박사는 "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말한다. 전염병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식당과 극장이 사람들로 가득차고, 댄스홀은 발 디딜 틈 없이 뜨거운 열기로 채워졌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919년 봄, 스페인 독감은 치명적인 3차 대유행을 일으켰고, 1920년 겨울에는 4차 대유행이 미 전역을 강타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똑같은 형태로. 돌연변이가 지속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수십 만 명이 사망했고, 20대에서 40대 사망자가 가장 많았다. 수많은 어린이들이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삶은 슬픔으로 가득찼고, 연방 정부의 사회적 안전망이 없던 시기에 부모와 가장을 잃은 이들은 생계를 꾸리기 어려워 빈곤으로 내몰렸다. 빈곤으로 내몰린 이들은 다시금 전염병의 표적이 돼 사망에 이르는 악순환을 불러왔다.

■그래서 다시 방역을 시작했을까?
나바로 박사는 1918년 스페인 독감의 대유행이 1919년 봄 3차 유행에서 끝나지 않고 1920년 겨울 4차 대유행까지 지속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진단했다.

첫째는 언론이다. 인플루엔자는 아주 빠르게 오래된 뉴스가 되었다. 사람들은 사회 경제적으로 옥죄었던 공중보건 대책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았고, 더 이상 죽음은 뉴스가 아니게 되었다. 병원에는 병상이 없었고,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죽어갔지만, 더 이상 전염병으로 인한 죽음은 뉴스가 아니었다. 단순한 사건사고로 신문기사 뒷면에 실릴 뿐이었다. 사망 원인에 대한 진단도, 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사라졌다. 당시 1차 세계대전을 승전한 미국은 종전과 승전을 축하하며 돌아온 병사들을 환영하고,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몰두했다. 죽음은 뒷전이었다.

1918년 제 1차 세계대전을 이기고 프랑스에서 전역한 38사단.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출처:미 국립 아카이브1918년 제 1차 세계대전을 이기고 프랑스에서 전역한 38사단.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출처:미 국립 아카이브

두번째는 당시 의학의 발전 수준 때문이다. 20세기 초 질병으로 인한 사망은 많았다. 홍역, 결핵, 장티푸스, 백일해, 성홍열, 폐렴, 디프테리아 같은 질병으로 매년 수만 명의 미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죽었다. 독감의 원인과 역학 모두 이해하기 어려운 시대였다. 전문가들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방역 조처가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측정 가능한 자료를 제시하지도, 확신하지도 못했다.

■지금은 무엇이 다른가?
백 년이 지난 지금, 백 년 전과 비슷한 전염병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지만 다른 점은 백신이 있다는 거다. 스페인 독감 이후 바이러스는 이후 15년간 나타나지 않았고, 1945년에 이르기까지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은 발명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당시에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은 엄격하고 까다로운 공중보건 규제였고, 지금은 백신이라는 도구가 생겨난 거다.

나바로 박사는 100년이 지난 지금, 그리고 COVID-19 대유행 2년 가까인 지난 지금, 사람들이 모두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전염병의 종식은 필연적으로 올 것이다. 인류가 경험했던 바에 따르면 그렇다. 러나 1918년의 "일상으로의 회복"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면, "아직은 이르다"는 것이다. 치명적인 델타 변이 이후 우리는 다시 한번 오미크론 변이를 겪고 있고, 이 변이들의 대행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COVID-19는 인플루엔자보다 전염성이 훨씬 강하며, 몇몇 말썽 많은 SARS-CoV-2 변이는 자꾸만 나타나서 이미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1919년 치명적인 3차 대유행, 1920년 4차 대유행의 경험은 우리에게 말한다. 아직은 방심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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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백년 전 방역에 지친 미국인들이 했던 실수…“방심하지 말라”
    • 입력 2021-12-18 09:25:41
    특파원 리포트
샌프란시스코 시내 페리 건물 인근에서 경찰관이 두 명의 남자를 연행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치장에 끌려가는 중 . 출처:캘리포니아 주립 도서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남성을 경찰이 연행한다.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쓰기는 법적으로 강제되고, 실내는 물론 야외에서도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한다. 마스크 쓰기는 물론 사람들의 모이는 극장, 술집, 식당은 문을 닫고, 모임은 금지된다. 이를 어긴 이들은 경찰에 연행돼 유치장 신세를 져야 한다. 전염병의 감염과 그로 인한 사망의 물결을 막기 위해서 이뤄진 조치다.

코로나19가 창궐해 엄격한 방역 속에서 살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아니다. 백 년 전 미국의 모습이다. 미국의 주 정부와 지방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례를 제정하고, 금지, 폐쇄, 규제를 강행했다. 1918년 1차 세계대전 직후 전 세계를 강타한 스페인 독감 대유행 당시의 모습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들은 대중교통(전차) 탑승을 거부당했고, 경찰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들에게 "감옥에 가고 싶냐"며 검문검색을 했다. 극장과 식당, 댄스홀 주인들은 장사를 못 해 금전적 손실을 호소했다.

대유행이 몇 주, 몇 달, 1년 넘게 지속되자 규제들은 견디기 어려워졌다. 성직자들은 교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공장주들은 공장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 관계자들은 아이들이 학업 격차가 벌어진다며 집에 있어도 교실에 있는 것보다 안전하지 않다고 논쟁을 벌였다. 시민들은 마침내, 정부가 그들의 자유를 침해할 권리가 없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1918년
2021년 이 모든 것이 낯익다. 하지만 1918년,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인플루엔자 대유행 기간 미국 언론에 보도된 모습들이다. 마치 백 년 전 상황을 현재로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1년 반이 넘는 기간, 엄격한 방역에 지친 우리처럼 이들이 지치고, 지쳐서 했던 일은 전염병의 종식에 이른 것처럼 행동했다는 거다.

■"백 년 전 조상들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미시간 대학의 의학사 연구소 부소장인 알렉산더 나바로 박사는 의학사 학자로 한 세기 전 미국인들이 했던 실수를 현재의 미국인들이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COVID-19 대유행이 2년째에 접어들면서, 많은 사람들은 삶이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으로 돌아가길 열망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우성치고 있다는 거다. 백 년 전에도 시민들은 정부를 향해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쳤고, 결국 주 정부와 지방정부는 공중보건 명령을 하나 둘씩 폐지하기 시작했다.

1918년 스페인독감 대유행 당시 마스크 의무화 규제
그 결과는?
나바로 박사는 "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말한다. 전염병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식당과 극장이 사람들로 가득차고, 댄스홀은 발 디딜 틈 없이 뜨거운 열기로 채워졌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919년 봄, 스페인 독감은 치명적인 3차 대유행을 일으켰고, 1920년 겨울에는 4차 대유행이 미 전역을 강타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똑같은 형태로. 돌연변이가 지속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수십 만 명이 사망했고, 20대에서 40대 사망자가 가장 많았다. 수많은 어린이들이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삶은 슬픔으로 가득찼고, 연방 정부의 사회적 안전망이 없던 시기에 부모와 가장을 잃은 이들은 생계를 꾸리기 어려워 빈곤으로 내몰렸다. 빈곤으로 내몰린 이들은 다시금 전염병의 표적이 돼 사망에 이르는 악순환을 불러왔다.

■그래서 다시 방역을 시작했을까?
나바로 박사는 1918년 스페인 독감의 대유행이 1919년 봄 3차 유행에서 끝나지 않고 1920년 겨울 4차 대유행까지 지속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진단했다.

첫째는 언론이다. 인플루엔자는 아주 빠르게 오래된 뉴스가 되었다. 사람들은 사회 경제적으로 옥죄었던 공중보건 대책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았고, 더 이상 죽음은 뉴스가 아니게 되었다. 병원에는 병상이 없었고,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죽어갔지만, 더 이상 전염병으로 인한 죽음은 뉴스가 아니었다. 단순한 사건사고로 신문기사 뒷면에 실릴 뿐이었다. 사망 원인에 대한 진단도, 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사라졌다. 당시 1차 세계대전을 승전한 미국은 종전과 승전을 축하하며 돌아온 병사들을 환영하고,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몰두했다. 죽음은 뒷전이었다.

1918년 제 1차 세계대전을 이기고 프랑스에서 전역한 38사단.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출처:미 국립 아카이브
두번째는 당시 의학의 발전 수준 때문이다. 20세기 초 질병으로 인한 사망은 많았다. 홍역, 결핵, 장티푸스, 백일해, 성홍열, 폐렴, 디프테리아 같은 질병으로 매년 수만 명의 미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죽었다. 독감의 원인과 역학 모두 이해하기 어려운 시대였다. 전문가들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방역 조처가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측정 가능한 자료를 제시하지도, 확신하지도 못했다.

■지금은 무엇이 다른가?
백 년이 지난 지금, 백 년 전과 비슷한 전염병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지만 다른 점은 백신이 있다는 거다. 스페인 독감 이후 바이러스는 이후 15년간 나타나지 않았고, 1945년에 이르기까지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은 발명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당시에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은 엄격하고 까다로운 공중보건 규제였고, 지금은 백신이라는 도구가 생겨난 거다.

나바로 박사는 100년이 지난 지금, 그리고 COVID-19 대유행 2년 가까인 지난 지금, 사람들이 모두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전염병의 종식은 필연적으로 올 것이다. 인류가 경험했던 바에 따르면 그렇다. 러나 1918년의 "일상으로의 회복"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면, "아직은 이르다"는 것이다. 치명적인 델타 변이 이후 우리는 다시 한번 오미크론 변이를 겪고 있고, 이 변이들의 대행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COVID-19는 인플루엔자보다 전염성이 훨씬 강하며, 몇몇 말썽 많은 SARS-CoV-2 변이는 자꾸만 나타나서 이미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1919년 치명적인 3차 대유행, 1920년 4차 대유행의 경험은 우리에게 말한다. 아직은 방심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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