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주부들…“인도 해마다 2만여 명 자살” BBC가 분석한 원인은

입력 2021.12.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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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명의 인도 주부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매우 도발적인 이 질문은 최근 영국 BBC 인터넷판 특집기사의 화두입니다.

BBC는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다양한 심층 취재를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이번엔 인도 내 가정 폭력의 실태와 기혼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집중 조명했습니다.

■인도, 하루 평균 61명의 주부 '극단적 선택'

BBC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에서 자살한 사람은 15만 3,052명입니다. 이중 주부가 14.6%(22,372명)를 차지하는데, 하루 평균으로 보면 61명, 약 25분에 1명의 주부가 자살을 하는 셈입니다.


지난해가 특수한 경우였을까요? BBC는 인도 국가범죄기록국(NCRB)이 발표한 통계에서 매우 의미 있는 흐름을 포착했습니다.

NCRB이 자살 자료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7년 이후 해마다 2만 명이 넘는 주부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왔고, 2009년에는 극단적 선택을 한 주부의 숫자가 25,092명으로 크게 늘기도 했습니다.

인도 정부의 이 자료는 자살의 구체적인 '원인'들을 분석하지는 않았지만, 인도에서 주부의 자살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란 사실은, 통계를 통해 입증된 셈입니다.

전문가 "가정 폭력, 억압적 결혼생활 등이 원인"

정신과 전문가들은 인도 내 상당수의 주부는 가정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최근 인도 정부 조사에서는, 전체 기혼 여성의 30%가 배우자들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 여성이 가사 노동을 전담하는 구습(舊習)과 전통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조혼(早婚) 등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인도 여성 대부분은 법적 결혼 연령인 18세가 되자마자 결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시의 일부 교육받은 여성을 제외하고는 10대 청소년이 결혼한 뒤 바로 집에서 전업 주부가 되어 세 끼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는 것이 평범한 일상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인도인들이 대부분 믿는 힌두교의 특성상 절기마다 종교 행사가 있는데, 이에 맞는 음식과 옷을 준비해야 하는 것도 오롯이 주부의 일입니다.

이렇다 보니 인도 여성들은 지금까지도 집권자인 인도 총리를 상대로 "집안일을 남자도 해야 한다"는 평범한 주장을 소리 높여 외쳐야 하는 지경입니다.

중년 이후 여성들의 우울감도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임상 심리학자 베르마 스리바스타바 박사는 "주부들의 경우 아이들이 커서 집을 나간 뒤 '빈둥지 증후군'을 겪는 경우가 많고 우울감을 유발할 수 있는 갱년기 증상을 겪는 경우도 많다고 분석했습니다.

■상담 등 통해 "충동적 선택 막아야"...'코로나19 관련 제한 조치'도 영향

결국 인도 내 주부의 자살에는 사회문화적 요인들이 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사회문화적 변화가 필요하고, 거기에 시간이 걸린다면, 여러 조치들을 통해 적극적으로 예방이라도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우울감을 표현하는 여성들의 곁에 누군가 귀담아 문제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절체절명의 순간에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도 여성들의 화려한 결혼 장식. 재력이 있는 가문에서는 결혼 장식을 위한 보석 구매 등에 수억 원 이상을 지출하기도 한다.인도 여성들의 화려한 결혼 장식. 재력이 있는 가문에서는 결혼 장식을 위한 보석 구매 등에 수억 원 이상을 지출하기도 한다.

정신과 전문의 수미트라 파타레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당신이 누군가를 (극단적 선택에 앞서) 잠깐이라도 멈추게 한다면 그들은 멈출 가능성이 있다"며 "많은 인도 여성들의 선택은 충동적으로 보이는데, 집에서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면 바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주부들의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은 최근 여성들에게 많은 제약을 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심리학자 차이탈리 신하는 "가정폭력 아래 있는 많은 여성이 상담 서비스 같은 비공식적인 지원 덕분에 정신 건강을 유지해왔다" 며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전염과 이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이 주부들의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통계의 배경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이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인도 주부들은 남편이 일하러 떠난 후 안전한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해왔는데, 코로나 19로 인해 재택근무이나 실직이 많아지면서, 그 공간마저 사라졌다는 것. 여성들의 외부 일자리가 줄어든 것도 일부 영향을 준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인도 전문가들은 극단적 선택 방지를 위해선 여성에 대한 심리 상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성 있는 정부 통계조사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정부 통계에서 나타난 수치보다 더 많은 여성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그 원인으로 가정 폭력이 지목되고 있지만, 이런 사안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싫어하는 인도인들의 특성 때문에 '숨겨진 숫자'가 있을 수 있다, 즉 실제 폭력을 당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여성들의 수는 훨씬 더 많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도, 여성의 법정 결혼 최저 연령 18세→21세로

이런 자살 관련 통계를 직접 반영한 것은 아니지만, 인도 정부도 최근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성 인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최근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와 맞물려 여성의 법정 혼인 최저 연령(年齡)을 21세로 상향 조정할 예정입니다.

최근 더힌두 등 인도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인도 연방정부 내각은 이런 내용으로 여성 혼인 법정 최저 연령을 수정하기로 했습니다.


관련 수정 법안이 의회를 통과해 공식 효력을 얻게 되면 인도의 법정 혼인 최저 연령은 남녀 모두 21세로 같아지는데, 지금까지는 남자만 21세였습니다.

이번 조치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정부는 딸과 여동생의 건강을 염려하고 있다"며 혼인 최저 연령 수정 필요성을 제기한 후 탄력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런 나이 상향 조정으로 인해 주부들의 삶이 바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력이 있고 사회 경험을 많이 한 여성들이 늘어나면 인도 가정 내 여성의 지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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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의 주부들…“인도 해마다 2만여 명 자살” BBC가 분석한 원인은
    • 입력 2021-12-19 07:00:30
    세계는 지금

"수천 명의 인도 주부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매우 도발적인 이 질문은 최근 영국 BBC 인터넷판 특집기사의 화두입니다.

BBC는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다양한 심층 취재를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이번엔 인도 내 가정 폭력의 실태와 기혼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집중 조명했습니다.

■인도, 하루 평균 61명의 주부 '극단적 선택'

BBC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에서 자살한 사람은 15만 3,052명입니다. 이중 주부가 14.6%(22,372명)를 차지하는데, 하루 평균으로 보면 61명, 약 25분에 1명의 주부가 자살을 하는 셈입니다.


지난해가 특수한 경우였을까요? BBC는 인도 국가범죄기록국(NCRB)이 발표한 통계에서 매우 의미 있는 흐름을 포착했습니다.

NCRB이 자살 자료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7년 이후 해마다 2만 명이 넘는 주부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왔고, 2009년에는 극단적 선택을 한 주부의 숫자가 25,092명으로 크게 늘기도 했습니다.

인도 정부의 이 자료는 자살의 구체적인 '원인'들을 분석하지는 않았지만, 인도에서 주부의 자살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란 사실은, 통계를 통해 입증된 셈입니다.

전문가 "가정 폭력, 억압적 결혼생활 등이 원인"

정신과 전문가들은 인도 내 상당수의 주부는 가정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최근 인도 정부 조사에서는, 전체 기혼 여성의 30%가 배우자들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 여성이 가사 노동을 전담하는 구습(舊習)과 전통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조혼(早婚) 등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인도 여성 대부분은 법적 결혼 연령인 18세가 되자마자 결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시의 일부 교육받은 여성을 제외하고는 10대 청소년이 결혼한 뒤 바로 집에서 전업 주부가 되어 세 끼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는 것이 평범한 일상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인도인들이 대부분 믿는 힌두교의 특성상 절기마다 종교 행사가 있는데, 이에 맞는 음식과 옷을 준비해야 하는 것도 오롯이 주부의 일입니다.

이렇다 보니 인도 여성들은 지금까지도 집권자인 인도 총리를 상대로 "집안일을 남자도 해야 한다"는 평범한 주장을 소리 높여 외쳐야 하는 지경입니다.

중년 이후 여성들의 우울감도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임상 심리학자 베르마 스리바스타바 박사는 "주부들의 경우 아이들이 커서 집을 나간 뒤 '빈둥지 증후군'을 겪는 경우가 많고 우울감을 유발할 수 있는 갱년기 증상을 겪는 경우도 많다고 분석했습니다.

■상담 등 통해 "충동적 선택 막아야"...'코로나19 관련 제한 조치'도 영향

결국 인도 내 주부의 자살에는 사회문화적 요인들이 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사회문화적 변화가 필요하고, 거기에 시간이 걸린다면, 여러 조치들을 통해 적극적으로 예방이라도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우울감을 표현하는 여성들의 곁에 누군가 귀담아 문제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절체절명의 순간에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도 여성들의 화려한 결혼 장식. 재력이 있는 가문에서는 결혼 장식을 위한 보석 구매 등에 수억 원 이상을 지출하기도 한다.
정신과 전문의 수미트라 파타레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당신이 누군가를 (극단적 선택에 앞서) 잠깐이라도 멈추게 한다면 그들은 멈출 가능성이 있다"며 "많은 인도 여성들의 선택은 충동적으로 보이는데, 집에서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면 바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주부들의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은 최근 여성들에게 많은 제약을 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심리학자 차이탈리 신하는 "가정폭력 아래 있는 많은 여성이 상담 서비스 같은 비공식적인 지원 덕분에 정신 건강을 유지해왔다" 며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전염과 이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이 주부들의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통계의 배경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이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인도 주부들은 남편이 일하러 떠난 후 안전한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해왔는데, 코로나 19로 인해 재택근무이나 실직이 많아지면서, 그 공간마저 사라졌다는 것. 여성들의 외부 일자리가 줄어든 것도 일부 영향을 준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인도 전문가들은 극단적 선택 방지를 위해선 여성에 대한 심리 상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성 있는 정부 통계조사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정부 통계에서 나타난 수치보다 더 많은 여성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그 원인으로 가정 폭력이 지목되고 있지만, 이런 사안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싫어하는 인도인들의 특성 때문에 '숨겨진 숫자'가 있을 수 있다, 즉 실제 폭력을 당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여성들의 수는 훨씬 더 많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도, 여성의 법정 결혼 최저 연령 18세→21세로

이런 자살 관련 통계를 직접 반영한 것은 아니지만, 인도 정부도 최근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성 인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최근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와 맞물려 여성의 법정 혼인 최저 연령(年齡)을 21세로 상향 조정할 예정입니다.

최근 더힌두 등 인도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인도 연방정부 내각은 이런 내용으로 여성 혼인 법정 최저 연령을 수정하기로 했습니다.


관련 수정 법안이 의회를 통과해 공식 효력을 얻게 되면 인도의 법정 혼인 최저 연령은 남녀 모두 21세로 같아지는데, 지금까지는 남자만 21세였습니다.

이번 조치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정부는 딸과 여동생의 건강을 염려하고 있다"며 혼인 최저 연령 수정 필요성을 제기한 후 탄력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런 나이 상향 조정으로 인해 주부들의 삶이 바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력이 있고 사회 경험을 많이 한 여성들이 늘어나면 인도 가정 내 여성의 지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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