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파더스’ 떠난 뒤 여가부 첫 명단공개…현장 반응은 싸늘?

입력 2021.12.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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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비 안 주는 부모들의 신상 정보를 게시한 사이트, '배드파더스'(Bad Fathers·나쁜 아빠들)를 기억하시나요? 2018년 7월 문을 열었던 이 사이트는, 운영 3년여 만인 지난 10월 폐쇄됐습니다.

사이트 운영자였던 구본창 씨는 취재진을 처음 만났던 2018년부터 말해왔습니다. "이 사이트 문을 닫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요. 양육비이행법이 개정돼 민간이 아닌 정부가 양육비 미지급자들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게 된다면, 망설임 없이 사이트 문을 닫을 거란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오늘(19일)은, 구 씨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그날입니다. 여성가족부가 양육비 미지급자 2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직업, 근무지, 양육비 채무 불이행 기간, 양육비 채무액을 처음으로 홈페이지에 공개했습니다. 지난 7월 시행된 양육비이행법 개정안에 따른 조치입니다.

그런데 현장의 반응, 어쩐지 싸늘하기만 합니다.

■ 얼굴 없는 명단공개…"실효성 걱정"

'배드파더스'의 효과는 뚜렷했습니다. 신상을 공개하겠다는 사전 통보로 양육비 미지급을 해결한 사례가 720여 건, 실제 신상을 공개해 해결한 사례가 220여 건입니다. 정부가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해주지 못한 미지급 사례 1,000건 가까이가 이 사이트를 통해 해소된 겁니다.

하지만 정부가 오늘부터 시작한 명단공개는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얼굴 사진'이 공개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구 씨는 "동명이인이 엄청나게 많은데 사진 없이 이름, 나이, 도로명 주소(근무지)만 공개되는 것에 미지급자들이 반응하겠느냐"고 지적했습니다.

아직 명단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대상자에 오른 이들 중에는, 이미 '배드파더스'에 얼굴 사진까지 공개됐는데도 양육비를 주지 않았던 이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심지어는 '배드파더스'가 닫힌 후, 힘들게 받아냈던 양육비가 끊긴 사례도 나왔습니다. 여가부 조치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게 되는 이유입니다.

정부가 직접 양육비 미지급자 명단공개를 할 수 있게 되자, ‘배드파더스’ 사이트는 지난 10월 20일 문을 닫았습니다.정부가 직접 양육비 미지급자 명단공개를 할 수 있게 되자, ‘배드파더스’ 사이트는 지난 10월 20일 문을 닫았습니다.

취재진은 이번에 명단이 공개된 남성의 전 배우자 A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A 씨는 "얼굴이 나오지 않으니 이건 명단공개가 아니다"라며 "기대가 전혀 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누가 여가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양육비를 안 준 사람을 찾아보겠느냐"고도 되물었습니다.

■ 출국금지 6개월·운전면허 정지 100일…"언제까지 반복해야"

양육비이행법이 바뀌면서 강화된 조치가 또 있습니다. '출국금지'와 '운전면허 정지'입니다. 그런데 이 조치들, 양육비를 모두 받아낼 때까지 유지되는 게 아닙니다. 출국금지는 한 번에 6개월, 운전면허 정지는 한 번에 100일에 불과합니다.


물론 양육비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면, 다시 제재 조치를 신청할 순 있습니다. 그 절차가 길고 어렵다는 게 문젭니다. 이행명령과 감치명령, 제재 조치 심의까지 똑같은 절차를 다시 한번 거쳐야 하는 건데, 이 기간이 평균 1~2년, 길게는 3년까지도 걸린다고 합니다.

A 씨 역시 출국금지와 운전면허 정지 조치를 신청해 이미 결정을 받아낸 상태인데요. 이 조치들이 내년 4월이면 잇따라 만료되는 상황이라 걱정이 많습니다. 특히 전 배우자가 중국에 생활 기반을 두고 있어, 중간에 제재 공백기가 생기면 바로 출국해버릴까봐 걱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여성가족부는 운전면허 정지의 경우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만, 출국금지의 경우 법무부에 기간 연장을 요청해보겠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이번이 첫 사례이다 보니 어느 정도 기간이 연장될 수 있을지, 몇 번이나 연장될 수 있을지 등은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는 "추가 제재 조치를 신청할 때 '감치명령'을 전제조건에서 빼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감치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양육비를 적시에 받도록 하는 법의 취지를 완전히 잃게 되므로,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 여가부 "출국금지 조건 완화될 듯…의견 기간 단축도 검토"

여성가족부도 양육비이행법의 허점으로 지적되는 부분들을 메우고자 여러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현재 출국금지 요청의 기준이 되는 채무 금액인 '5천만 원'이 너무 높다는 의견을 참작해, 이 금액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에서 자료를 받아 평균적인 양육비 채무액과 기간 등을 분석하고, 내년에 새로 나오는 3년 주기 한부모가족 실태조사 결과도 참고한다는 방침입니다. 이르면 내년 초에는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 예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밖에 명단공개 대상자를 심의할 때 채무자에게 부여하는 의견 진술 기간 '최소 3개월'이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이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다만 이 부분은 시행령이 아니라 법 자체를 개정해야 하는 부분이라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취재진이 만난 A 씨는 "조금이라도 양육비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언가라도 다 해보고 싶은 심정에 (각종 제재 조치를) 신청했지만, 실망이 크다"며 "법이 좀 완벽하게 만들어졌어야 하는데 너무 허술하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은 이제 곧 성인이 되지만, 지금도 어린아이를 키우는 힘든 양육자가 많다"며 "그런 사람들을 위해 법을 빨리 바꿔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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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드파더스’ 떠난 뒤 여가부 첫 명단공개…현장 반응은 싸늘?
    • 입력 2021-12-19 12:00:30
    취재K

양육비 안 주는 부모들의 신상 정보를 게시한 사이트, '배드파더스'(Bad Fathers·나쁜 아빠들)를 기억하시나요? 2018년 7월 문을 열었던 이 사이트는, 운영 3년여 만인 지난 10월 폐쇄됐습니다.

사이트 운영자였던 구본창 씨는 취재진을 처음 만났던 2018년부터 말해왔습니다. "이 사이트 문을 닫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요. 양육비이행법이 개정돼 민간이 아닌 정부가 양육비 미지급자들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게 된다면, 망설임 없이 사이트 문을 닫을 거란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오늘(19일)은, 구 씨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그날입니다. 여성가족부가 양육비 미지급자 2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직업, 근무지, 양육비 채무 불이행 기간, 양육비 채무액을 처음으로 홈페이지에 공개했습니다. 지난 7월 시행된 양육비이행법 개정안에 따른 조치입니다.

그런데 현장의 반응, 어쩐지 싸늘하기만 합니다.

■ 얼굴 없는 명단공개…"실효성 걱정"

'배드파더스'의 효과는 뚜렷했습니다. 신상을 공개하겠다는 사전 통보로 양육비 미지급을 해결한 사례가 720여 건, 실제 신상을 공개해 해결한 사례가 220여 건입니다. 정부가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해주지 못한 미지급 사례 1,000건 가까이가 이 사이트를 통해 해소된 겁니다.

하지만 정부가 오늘부터 시작한 명단공개는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얼굴 사진'이 공개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구 씨는 "동명이인이 엄청나게 많은데 사진 없이 이름, 나이, 도로명 주소(근무지)만 공개되는 것에 미지급자들이 반응하겠느냐"고 지적했습니다.

아직 명단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대상자에 오른 이들 중에는, 이미 '배드파더스'에 얼굴 사진까지 공개됐는데도 양육비를 주지 않았던 이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심지어는 '배드파더스'가 닫힌 후, 힘들게 받아냈던 양육비가 끊긴 사례도 나왔습니다. 여가부 조치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게 되는 이유입니다.

정부가 직접 양육비 미지급자 명단공개를 할 수 있게 되자, ‘배드파더스’ 사이트는 지난 10월 20일 문을 닫았습니다.
취재진은 이번에 명단이 공개된 남성의 전 배우자 A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A 씨는 "얼굴이 나오지 않으니 이건 명단공개가 아니다"라며 "기대가 전혀 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누가 여가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양육비를 안 준 사람을 찾아보겠느냐"고도 되물었습니다.

■ 출국금지 6개월·운전면허 정지 100일…"언제까지 반복해야"

양육비이행법이 바뀌면서 강화된 조치가 또 있습니다. '출국금지'와 '운전면허 정지'입니다. 그런데 이 조치들, 양육비를 모두 받아낼 때까지 유지되는 게 아닙니다. 출국금지는 한 번에 6개월, 운전면허 정지는 한 번에 100일에 불과합니다.


물론 양육비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면, 다시 제재 조치를 신청할 순 있습니다. 그 절차가 길고 어렵다는 게 문젭니다. 이행명령과 감치명령, 제재 조치 심의까지 똑같은 절차를 다시 한번 거쳐야 하는 건데, 이 기간이 평균 1~2년, 길게는 3년까지도 걸린다고 합니다.

A 씨 역시 출국금지와 운전면허 정지 조치를 신청해 이미 결정을 받아낸 상태인데요. 이 조치들이 내년 4월이면 잇따라 만료되는 상황이라 걱정이 많습니다. 특히 전 배우자가 중국에 생활 기반을 두고 있어, 중간에 제재 공백기가 생기면 바로 출국해버릴까봐 걱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여성가족부는 운전면허 정지의 경우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만, 출국금지의 경우 법무부에 기간 연장을 요청해보겠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이번이 첫 사례이다 보니 어느 정도 기간이 연장될 수 있을지, 몇 번이나 연장될 수 있을지 등은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는 "추가 제재 조치를 신청할 때 '감치명령'을 전제조건에서 빼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감치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양육비를 적시에 받도록 하는 법의 취지를 완전히 잃게 되므로,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 여가부 "출국금지 조건 완화될 듯…의견 기간 단축도 검토"

여성가족부도 양육비이행법의 허점으로 지적되는 부분들을 메우고자 여러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현재 출국금지 요청의 기준이 되는 채무 금액인 '5천만 원'이 너무 높다는 의견을 참작해, 이 금액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에서 자료를 받아 평균적인 양육비 채무액과 기간 등을 분석하고, 내년에 새로 나오는 3년 주기 한부모가족 실태조사 결과도 참고한다는 방침입니다. 이르면 내년 초에는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 예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밖에 명단공개 대상자를 심의할 때 채무자에게 부여하는 의견 진술 기간 '최소 3개월'이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이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다만 이 부분은 시행령이 아니라 법 자체를 개정해야 하는 부분이라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취재진이 만난 A 씨는 "조금이라도 양육비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언가라도 다 해보고 싶은 심정에 (각종 제재 조치를) 신청했지만, 실망이 크다"며 "법이 좀 완벽하게 만들어졌어야 하는데 너무 허술하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은 이제 곧 성인이 되지만, 지금도 어린아이를 키우는 힘든 양육자가 많다"며 "그런 사람들을 위해 법을 빨리 바꿔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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