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책가도’의 매력에 푹 빠져보세요”…고주원 서울예대 교수 인터뷰

입력 2021.12.19 (12:00) 수정 2021.12.1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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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매혹적인 전시품은 서울예술대학교 영상학부 고주원 교수(45세, 아래 사진)의 작품입니다. 이름은 '모바일 책가도'인데,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인 책가도(冊架圖, 문방구류를 기본으로 한 정물화의 일종)에서 착안했습니다.

과거 조선 시대 책장의 이미지를 병풍화(屛風畫)처럼 탈바꿈해 표현한 영상을 우선 기획하고, 이것을 다시 최신 디스플레이의 움직임에 연결해 새롭게 창조한 것이라고 고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올해 상반기부터 인천국제공항에 설치된 이 작품이, 2021년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전시 디자인’ 분야 본상을 수상했습니다.

고 교수는 이번 작품에 대해 " 한국의 전통문화를 주제로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 300여 미터 구간에 설치했는데 지난해 4월 총 연출을 맡은 뒤 설치까지 1년이 걸렸다"며 길었던 제작 과정을 회상했습니다. 고 교수는 " 코로나19로 인해 공항 이용객이 줄면서 아직은 본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고 아쉬워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처럼 그의 작품은 현장에서 고화질로 봐야 제 맛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공항에서 작품을 감상할 날이 오길 바라면서, 고 교수가 제공한 영상들을 여기에 일부 공개합니다.

"이번 수상에 대해서 말하자면 '디자인' 관련이라고만 국한 지을 게 아니라 저희 작품을 예술로 높게 평가한 것으로 봅니다. 특히 316개의 스마트폰이 움직이며 '디지털 책가도'에 이야기를 불어 넣은 모바일 키네틱 작품이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중 한곳의 본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것인데, 우리 전통문화를 가장 적확하게 디지털 매체로 승화시킨 점에서 수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 교수가 요즘 들어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실감 콘텐츠', 그의 작품들은 첨단 기술을 활용한 예술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기존의 순수예술이 지향하는 바가 ‘감동’에 있었다면 첨단기술은 우리에게 ‘감탄’을 선사합니다. 최근 보는 것 혹은 듣는 것의 개념을 넘어 오감(五感)으로 확장하는 콘텐츠들의 지향점이 ‘감동과 감탄이 함께 하는 더 공감각적인 예술’로 발전하고 있지요. 예술가 개인의 역량으로는 쉽게 달성할 수 없는 첨단 산업과 연구개발의 결과물이 창조에 활용되는 양상이 바로 실감 콘텐츠라고 설명할수 있습니다."

고 교수는 모든 디지털 세상에서는 모든 이가 예술가가 되는 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전까지 예술은 미술이나 음악을 배운 사람, 전문 식견을 가진 사람들만의 전유물이었다면 이젠 직관적이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대중적인 창조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란 게 그의 설명.


고 교수의 이력서에는 국내 최초 '미디어파사드' 구현 (서울시청)이란 내용도 들어가 있습니다. 2007년 전후만 해도 국내 미디어업계에서 '미디어 파사드'란 개념이 매우 생소했던 시기, 고 교수는 "최초는 언제나 어렵다"면서 "당시에 참고자료가 국내에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구현 가능성 유무조차 알 수 없었다"고 막연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오랜 시간 영상을 공부하다 보면 ‘프레임의 미학’이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되는데, '미디어파사드'란 개념은, 제가 국내에서 처음 시작한 2008년에는 너무 생소한 것이었어요. 건물의 형태에 맞춰 빛을 투사해 프레임의 존재가 해체된 개념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쉬운 개념인데, ‘기계장치로 빛을 쏴서 건물을 디지털 그림으로 덧씌워 표현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설명하곤 했습니다. 어떤 분야건 초기에 그것을 보편적으로 만들고 하나의 '사조'로 태동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개폐회식 영상연출을 맡기도 했습니다. '미디어 파사드'로 시작된 연출, 창조 작업이 본격적으로 무대 연출과 전시로 확대되는 시기였다고 밝혔습니다.

"무대는 입체적 공간인데, 그곳에서 봐야 하는 영상은 항상 평면적이라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어떤 새로운 것을 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왔습니다. 마치 눈앞에 영상이 존재하는 듯한 '입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했고 그 결과가 2018년 평창 영상 연출에 담겨있습니다. '영상이 출연진들의 배경영상으로 기능하던 수준을 넘었다, 영상이 그 자체로 장면의 핵심으로 기능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의 대학 당시 전공은 영문학. 중고교 시절은 입시로 인해 학창 생활은 비교적 각박했고, 남들이 다 본 TV에 나온 영화조차 보지 못하고 지내야 했다고. 고 교수는 20대 군 입대를 전후해서 뒤늦게 접한 외국 영화에 깊게 몰입하게 됐고, 군 제대 후 작심하고 영상예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제가 원하던 인문, 예술, 공학이 결합 된 영상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대학의 전공이 필연적으로 인생을 좌우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예술적 소양은 학습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축적된 감각의 발현이라고 봅니다. 평소 인문학적 사고력을 키운 것은 예술가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오히려 이른 나이에 예술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경계를 벗어나 다방면으로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예대에서 방송학 개론을 맡고 있는 고 교수가 보는 방송의 미래는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그는 "현재 서울예술대 방송영상 전공교수로 있다 보니 주목하게 되는 것이 많다"면서 "현재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채널 고정’, ‘본방사수’가 이뤄지고 있지만 젊은 세대들은 자기 삶의 방식에 맞춘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주제의 콘텐츠만 골라보고 싶은 습성이 있어 전반적으로 전통 미디어의 위기로 본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젊은 이용자들의 요청에 발맞춰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소품목, 대형기획 중심의 콘텐츠에서 다품목 대량생산의 관점으로 기획 방향을 바꿔야 할 것 같아요. 그렇다고 방송사들이 SNS 창작자들과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있다고 보진 않습니다. 법으로 규정된 공영의 이미지와 공신력은 개인이 흉내를 낼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심도 있는 정보력을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또 오랜 시간 축적해온 국가 통계 등을 활용한 질이 높은 방송 프로그램이야말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치를 유지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는 결국 미디어 수용자도 이제는 이용자, 소비자에만 머물지 않고 적극적인 개입하는 양상이 더 가속화될 것이라면서, "기존의 방송과 미디어 콘텐츠는 이제는 개인 맞춤형 콘텐츠 서비스로 진화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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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2-19 12:00:30
    • 수정2021-12-19 15:43:41
    취재K

이 매혹적인 전시품은 서울예술대학교 영상학부 고주원 교수(45세, 아래 사진)의 작품입니다. 이름은 '모바일 책가도'인데,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인 책가도(冊架圖, 문방구류를 기본으로 한 정물화의 일종)에서 착안했습니다.

과거 조선 시대 책장의 이미지를 병풍화(屛風畫)처럼 탈바꿈해 표현한 영상을 우선 기획하고, 이것을 다시 최신 디스플레이의 움직임에 연결해 새롭게 창조한 것이라고 고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올해 상반기부터 인천국제공항에 설치된 이 작품이, 2021년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전시 디자인’ 분야 본상을 수상했습니다.

고 교수는 이번 작품에 대해 " 한국의 전통문화를 주제로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 300여 미터 구간에 설치했는데 지난해 4월 총 연출을 맡은 뒤 설치까지 1년이 걸렸다"며 길었던 제작 과정을 회상했습니다. 고 교수는 " 코로나19로 인해 공항 이용객이 줄면서 아직은 본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고 아쉬워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처럼 그의 작품은 현장에서 고화질로 봐야 제 맛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공항에서 작품을 감상할 날이 오길 바라면서, 고 교수가 제공한 영상들을 여기에 일부 공개합니다.

"이번 수상에 대해서 말하자면 '디자인' 관련이라고만 국한 지을 게 아니라 저희 작품을 예술로 높게 평가한 것으로 봅니다. 특히 316개의 스마트폰이 움직이며 '디지털 책가도'에 이야기를 불어 넣은 모바일 키네틱 작품이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중 한곳의 본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것인데, 우리 전통문화를 가장 적확하게 디지털 매체로 승화시킨 점에서 수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 교수가 요즘 들어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실감 콘텐츠', 그의 작품들은 첨단 기술을 활용한 예술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기존의 순수예술이 지향하는 바가 ‘감동’에 있었다면 첨단기술은 우리에게 ‘감탄’을 선사합니다. 최근 보는 것 혹은 듣는 것의 개념을 넘어 오감(五感)으로 확장하는 콘텐츠들의 지향점이 ‘감동과 감탄이 함께 하는 더 공감각적인 예술’로 발전하고 있지요. 예술가 개인의 역량으로는 쉽게 달성할 수 없는 첨단 산업과 연구개발의 결과물이 창조에 활용되는 양상이 바로 실감 콘텐츠라고 설명할수 있습니다."

고 교수는 모든 디지털 세상에서는 모든 이가 예술가가 되는 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전까지 예술은 미술이나 음악을 배운 사람, 전문 식견을 가진 사람들만의 전유물이었다면 이젠 직관적이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대중적인 창조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란 게 그의 설명.


고 교수의 이력서에는 국내 최초 '미디어파사드' 구현 (서울시청)이란 내용도 들어가 있습니다. 2007년 전후만 해도 국내 미디어업계에서 '미디어 파사드'란 개념이 매우 생소했던 시기, 고 교수는 "최초는 언제나 어렵다"면서 "당시에 참고자료가 국내에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구현 가능성 유무조차 알 수 없었다"고 막연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오랜 시간 영상을 공부하다 보면 ‘프레임의 미학’이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되는데, '미디어파사드'란 개념은, 제가 국내에서 처음 시작한 2008년에는 너무 생소한 것이었어요. 건물의 형태에 맞춰 빛을 투사해 프레임의 존재가 해체된 개념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쉬운 개념인데, ‘기계장치로 빛을 쏴서 건물을 디지털 그림으로 덧씌워 표현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설명하곤 했습니다. 어떤 분야건 초기에 그것을 보편적으로 만들고 하나의 '사조'로 태동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개폐회식 영상연출을 맡기도 했습니다. '미디어 파사드'로 시작된 연출, 창조 작업이 본격적으로 무대 연출과 전시로 확대되는 시기였다고 밝혔습니다.

"무대는 입체적 공간인데, 그곳에서 봐야 하는 영상은 항상 평면적이라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어떤 새로운 것을 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왔습니다. 마치 눈앞에 영상이 존재하는 듯한 '입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했고 그 결과가 2018년 평창 영상 연출에 담겨있습니다. '영상이 출연진들의 배경영상으로 기능하던 수준을 넘었다, 영상이 그 자체로 장면의 핵심으로 기능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의 대학 당시 전공은 영문학. 중고교 시절은 입시로 인해 학창 생활은 비교적 각박했고, 남들이 다 본 TV에 나온 영화조차 보지 못하고 지내야 했다고. 고 교수는 20대 군 입대를 전후해서 뒤늦게 접한 외국 영화에 깊게 몰입하게 됐고, 군 제대 후 작심하고 영상예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제가 원하던 인문, 예술, 공학이 결합 된 영상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대학의 전공이 필연적으로 인생을 좌우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예술적 소양은 학습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축적된 감각의 발현이라고 봅니다. 평소 인문학적 사고력을 키운 것은 예술가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오히려 이른 나이에 예술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경계를 벗어나 다방면으로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예대에서 방송학 개론을 맡고 있는 고 교수가 보는 방송의 미래는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그는 "현재 서울예술대 방송영상 전공교수로 있다 보니 주목하게 되는 것이 많다"면서 "현재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채널 고정’, ‘본방사수’가 이뤄지고 있지만 젊은 세대들은 자기 삶의 방식에 맞춘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주제의 콘텐츠만 골라보고 싶은 습성이 있어 전반적으로 전통 미디어의 위기로 본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젊은 이용자들의 요청에 발맞춰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소품목, 대형기획 중심의 콘텐츠에서 다품목 대량생산의 관점으로 기획 방향을 바꿔야 할 것 같아요. 그렇다고 방송사들이 SNS 창작자들과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있다고 보진 않습니다. 법으로 규정된 공영의 이미지와 공신력은 개인이 흉내를 낼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심도 있는 정보력을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또 오랜 시간 축적해온 국가 통계 등을 활용한 질이 높은 방송 프로그램이야말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치를 유지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는 결국 미디어 수용자도 이제는 이용자, 소비자에만 머물지 않고 적극적인 개입하는 양상이 더 가속화될 것이라면서, "기존의 방송과 미디어 콘텐츠는 이제는 개인 맞춤형 콘텐츠 서비스로 진화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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