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돌아올까’ 한평생 남편 기다리다 눈감은 아내…신원확인 빨랐더라면

입력 2021.12.23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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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동지 이등상사가 6.25 참전 당시 착용했던 전투화 밑창과 버클, M1탄 등 유품

故 박동지 이등상사가 6.25 참전 당시 착용했던 전투화 밑창과 버클, M1탄 등 유품

오늘(23일) 경기도 파주시 동패동에서 국방부가 조출한 기념식을 열었습니다. 행사 이름은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 6·25 전쟁에 참전했다 숨진 고(故) 박동지 이등상사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행사입니다.

박동지 이등상사는 1928년 4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박 이등상사는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가정을 이루자마자 전쟁이 터졌고 박 이등상사는 곧바로 아내를 남겨둔 채 전쟁에 참전합니다.

박 이등상사는 국군 제1사단 12연대에 배속됐습니다. 그리고 1950년 7월3일과 4일 이틀간 벌어졌던 경기도 수원 북방전투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여느 무명용사들의 죽음이 그렇듯 박 이등상사의 주검도 난리통에 제대로 수습되지 못했습니다.

신혼 생활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했던 아내에게 남편의 갑작스런 전사 소식은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슬픔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이 주검으로라도 집에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혹여나 남편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내는 남편 박 이등상사의 군복 입은 사진을 걸어놓고 매일 바라보고, 또 기도하면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2년 전 92살의 나이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평생을 손꼽아 기다리던 남편의 유해를 찾지도 못한 채였습니다.

故 박동지 이등상사 유해 최초 식별 현장故 박동지 이등상사 유해 최초 식별 현장

박 이등상사의 유해는 뜻밖에도 9년 전인 2012년 이미 한 시민의 제보로 발견됐습니다.

발견 현장에서는 60㎜ 박격포탄과 수류탄이 함께 발굴됐고, 박 이등상사의 좌측 대퇴골 부위의 일부 유해와 전투화 밑창, 버클, M1탄 등 유품이 함께 발견됐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유해가 박 이등상사의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유전자 분석 기술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올해 다시 실시된 유전자 검사에서 비로소 박 이등상사의 유해임이 확인됐습니다.

고인의 동생과 조카 등 가족들은 2006년과 2013년, 올해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했는데, 유해 발굴 10년이 다 돼서야 최종 신원이 확인된 것입니다. 남편의 귀환을 그토록 염원했던 아내는 이 소식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故 박동지 이등상사 생전 사진故 박동지 이등상사 생전 사진

박 이등상사의 남동생 박희만(69) 씨는 "형님의 유해를 조금 더 빨리 찾았더라면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렸던 형수님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슬프고 목이 멘다"고 말했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오늘 행사에서 유가족에게 신원확인통지서와 호국영웅 귀환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을 가족에게 전달했습니다.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는 "유해를 발굴해도 누구의 유해인지 알 수 있는 전사자 위치 정보나 단서(인식표 등)가 대부분 없기 때문에, 유가족 시료를 확보해야만 유해와 유가족 유전자 검사를 통해 신원 확인이 가능하다"며 유가족들의 적극적인 시료 채취 동참을 호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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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나 돌아올까’ 한평생 남편 기다리다 눈감은 아내…신원확인 빨랐더라면
    • 입력 2021-12-23 13:23:12
    취재K

故 박동지 이등상사가 6.25 참전 당시 착용했던 전투화 밑창과 버클, M1탄 등 유품

오늘(23일) 경기도 파주시 동패동에서 국방부가 조출한 기념식을 열었습니다. 행사 이름은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 6·25 전쟁에 참전했다 숨진 고(故) 박동지 이등상사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행사입니다.

박동지 이등상사는 1928년 4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박 이등상사는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가정을 이루자마자 전쟁이 터졌고 박 이등상사는 곧바로 아내를 남겨둔 채 전쟁에 참전합니다.

박 이등상사는 국군 제1사단 12연대에 배속됐습니다. 그리고 1950년 7월3일과 4일 이틀간 벌어졌던 경기도 수원 북방전투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여느 무명용사들의 죽음이 그렇듯 박 이등상사의 주검도 난리통에 제대로 수습되지 못했습니다.

신혼 생활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했던 아내에게 남편의 갑작스런 전사 소식은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슬픔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이 주검으로라도 집에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혹여나 남편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내는 남편 박 이등상사의 군복 입은 사진을 걸어놓고 매일 바라보고, 또 기도하면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2년 전 92살의 나이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평생을 손꼽아 기다리던 남편의 유해를 찾지도 못한 채였습니다.

故 박동지 이등상사 유해 최초 식별 현장
박 이등상사의 유해는 뜻밖에도 9년 전인 2012년 이미 한 시민의 제보로 발견됐습니다.

발견 현장에서는 60㎜ 박격포탄과 수류탄이 함께 발굴됐고, 박 이등상사의 좌측 대퇴골 부위의 일부 유해와 전투화 밑창, 버클, M1탄 등 유품이 함께 발견됐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유해가 박 이등상사의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유전자 분석 기술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올해 다시 실시된 유전자 검사에서 비로소 박 이등상사의 유해임이 확인됐습니다.

고인의 동생과 조카 등 가족들은 2006년과 2013년, 올해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했는데, 유해 발굴 10년이 다 돼서야 최종 신원이 확인된 것입니다. 남편의 귀환을 그토록 염원했던 아내는 이 소식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故 박동지 이등상사 생전 사진
박 이등상사의 남동생 박희만(69) 씨는 "형님의 유해를 조금 더 빨리 찾았더라면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렸던 형수님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슬프고 목이 멘다"고 말했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오늘 행사에서 유가족에게 신원확인통지서와 호국영웅 귀환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을 가족에게 전달했습니다.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는 "유해를 발굴해도 누구의 유해인지 알 수 있는 전사자 위치 정보나 단서(인식표 등)가 대부분 없기 때문에, 유가족 시료를 확보해야만 유해와 유가족 유전자 검사를 통해 신원 확인이 가능하다"며 유가족들의 적극적인 시료 채취 동참을 호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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