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할까봐…” 이사비 신청해도 지급까지 ‘17.8일’

입력 2021.12.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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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 여성 A 씨는 지난해 3월, 헤어진 연인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A 씨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피의자가 다시 찾아올 거란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이사를 결심했고, 검찰에 '주거 이전비'를 신청했습니다. A 씨는 5월 10일 필요한 서류를 모두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이전비는 두 달이 더 지나 7월 27일 지급됐습니다. 78일이 걸렸습니다.

B 씨는 지난 2019년 4월 집단 폭행을 당했습니다. 눈 주변이 골절되는 등 전치 6주의 상해를 입었습니다. 생활 형편이 어려웠던 B 씨는 수술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검찰에 '치료비'를 신청했습니다.

같은 달 24일 신청했지만, 치료비가 지급된 건 두 달 가까이 지난 6월 19일이었습니다. B 씨는 지인에게 빌린 돈으로 우선 응급치료만 받아야 했습니다.

주거 이전비와 치료비, 생계비는 대표적인 범죄 피해자 지원 제도입니다. 그러나 그 지원이 필요한 시기에 신속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전비는 신청 완료부터 지급까지 평균 17.8일이 걸렸고, 치료비와 생계비는 사건 송치 이후에 지원 절차가 개시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 사업은 현재 검찰이 수행하고 있는데, 신속성과 편의성을 높이려면 경찰이 맡거나 검경이 함께 수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경찰이 초동수사를 하고, 피해자를 가장 먼저 대면하는 것도 경찰이기 때문에 지원할 필요성이 있는지 더 빨리 판단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일반 시민들에겐 경찰서가 검찰청보다 접근하기 편하다는 점도 하나의 근거로 꼽힙니다.

국회에서도 행정안전위원회를 중심으로 피해자 지원 사업을 경찰로 이관해야 한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검경 간에 제도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 주거 이전비 지급에 17.8일 소요…신청자는 대부분 '여성'

KBS 취재 결과, 경찰은 최근 범죄 피해자 지원 제도 개선방안을 검토하면서 지난해 이뤄진 ' 이전비' 지원 사례 116건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신청 완료부터 지급까지 평균 17.8일이 소요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분석 대상은 피해자가 경찰을 통해서 검찰에 이전비를 신청했던 사례들이었습니다.

신청자 116명 가운데 111명은 '여성'이었습니다. 이 중에는 이웃 주민에게 강도와 성폭행 범죄를 당한 피해자가 서류 제출을 마친 뒤 지급까지 115일이 걸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범죄 피해자에 대한 치료비와 생계비 지원도 더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경찰이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관내 10개 경찰서 사건 중 실제 지원한 사례 74건을 분석했더니, 88%인 65건이 사건을 검찰로 송치한 이후에 지원 절차가 시작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러니까 경찰이 수사를 다 마치고 사건을 검찰로 넘긴 뒤에야, 지원 절차가 개시됐다는 뜻입니다.

적기에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은 국회에서도 꾸준히 나왔습니다.

2017년 11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2018년 예산안 검토보고서는 '검찰청이 집행하는 치료비·생계비 지원은 복잡한 신청구조 때문에 신속한 대응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2018년 11월 법제사법위원회 기금운용계획안 심사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있었습니다.

이전비·치료비·생계비는 범죄 피해자 중 특히 취약계층에게 주로 지원됩니다. 무엇보다 신속성이 중요합니다.


■ "한 달에 한 번 심의"…지원이 더딘 이유는?

치료비 등의 지원이 더딘 이유 중 하나는, 지원 여부와 금액을 결정하는 심의위원회가 자주 열리지 않는 탓이 큽니다.

각 검찰청은 '경제적 지원 심의위원회'를 운영하는데, 의료분야 전문가와 민간 범죄피해자지원센터 관계자를 포함해 7명 이하로 구성됩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2018년 예산안 검토보고에서, 경제적 지원 심의위원회가 1~2개월에 한 번씩 개최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만약 심의위가 열린 직후에 지원을 신청한 피해자는, 한 달을 기다려야 하는 셈입니다. 범죄피해자지원센터 관계자도 심의위가 보통 한 달에 한 번 열린다고 KBS에 밝혔습니다.

검찰 지침에 심의회 개최 주기에 대한 규정은 없습니다. 다만, "심의회 개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제적 지원 절차가 개시된 날로부터 30일을 초과하여서는 안 된다"고 돼 있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청마다 개최 주기가 다르다고 했습니다. 다만 강력사건 등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사건은, 심의위 위원장이 먼저 지원 결정을 하고, 사후 심의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찰이 사건을 송치하기 전에는, 검찰이 자세한 사실관계를 알기 어렵다는 점도 지원이 늦어지는 한 원인입니다. 누가 피해자인지 명백하지 않은 사건은, 경찰에서 보낸 사건 기록을 검찰이 봐야 지원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건데요. 심의위는 이런 경우 송치 전까지 '지원 보류' 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 이전비 집행률 52% 불과…"경찰에서도 신청 가능해야"

범죄 피해자들이 제도를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편의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이전비의 경우, 2019년 3억 원이던 예산이 지난해 2억 원, 올해는 1억 6천만 원으로 줄었습니다. 예산 집행률이 낮다 보니 예산이 깎인 겁니다. 집행률은 2017년 65%, 2018년 44.3%, 2019년 52%에 불과했습니다.

편의성을 높이려면 피해자가 사건 초기 경찰 조사를 받을 때, 이전비도 바로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현재 신변보호는 경찰이, 이전비 지원은 검찰이 분리해서 맡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경찰에서 진술한 뒤 다시 검찰청을 찾아가야 하는 구조입니다. 검찰청은 경찰서보다 숫자가 적어,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습니다.

경찰은 피해자 신변보호 여부를 심사할 때, 이전비 지원도 함께 심사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경찰 신변보호심사위는, 보통 신청 당일에 열리기 때문에 이전비 지원이 빨라질 수 있습니다. 과거 스마트워치도 검찰에서 경찰로 지급 주체가 바뀌면서 이용률이 높아진 적이 있습니다. 2015년 검찰 담당일 때는 지급 사례가 한 해 105건이었지만, 2016년 경찰이 맡으면서 3,356건으로 급증했습니다.

2018년 11월 7일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서 김오수 당시 법무차관은 주거 이전비 사업을 경찰로 이관하라는 의원들의 지적에 "이전비 부분은 상당 부분 넘겨주는 거로 협의가 진행되어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바로 금액을 넘겨주는 문제는 경찰과 검찰 다 아직 완전 동의는 이루지 못했다"고 답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나도록 이 문제는 검찰과 경찰 간에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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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복할까봐…” 이사비 신청해도 지급까지 ‘17.8일’
    • 입력 2021-12-29 07:00:45
    취재K

24살 여성 A 씨는 지난해 3월, 헤어진 연인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A 씨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피의자가 다시 찾아올 거란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이사를 결심했고, 검찰에 '주거 이전비'를 신청했습니다. A 씨는 5월 10일 필요한 서류를 모두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이전비는 두 달이 더 지나 7월 27일 지급됐습니다. 78일이 걸렸습니다.

B 씨는 지난 2019년 4월 집단 폭행을 당했습니다. 눈 주변이 골절되는 등 전치 6주의 상해를 입었습니다. 생활 형편이 어려웠던 B 씨는 수술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검찰에 '치료비'를 신청했습니다.

같은 달 24일 신청했지만, 치료비가 지급된 건 두 달 가까이 지난 6월 19일이었습니다. B 씨는 지인에게 빌린 돈으로 우선 응급치료만 받아야 했습니다.

주거 이전비와 치료비, 생계비는 대표적인 범죄 피해자 지원 제도입니다. 그러나 그 지원이 필요한 시기에 신속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전비는 신청 완료부터 지급까지 평균 17.8일이 걸렸고, 치료비와 생계비는 사건 송치 이후에 지원 절차가 개시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 사업은 현재 검찰이 수행하고 있는데, 신속성과 편의성을 높이려면 경찰이 맡거나 검경이 함께 수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경찰이 초동수사를 하고, 피해자를 가장 먼저 대면하는 것도 경찰이기 때문에 지원할 필요성이 있는지 더 빨리 판단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일반 시민들에겐 경찰서가 검찰청보다 접근하기 편하다는 점도 하나의 근거로 꼽힙니다.

국회에서도 행정안전위원회를 중심으로 피해자 지원 사업을 경찰로 이관해야 한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검경 간에 제도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 주거 이전비 지급에 17.8일 소요…신청자는 대부분 '여성'

KBS 취재 결과, 경찰은 최근 범죄 피해자 지원 제도 개선방안을 검토하면서 지난해 이뤄진 ' 이전비' 지원 사례 116건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신청 완료부터 지급까지 평균 17.8일이 소요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분석 대상은 피해자가 경찰을 통해서 검찰에 이전비를 신청했던 사례들이었습니다.

신청자 116명 가운데 111명은 '여성'이었습니다. 이 중에는 이웃 주민에게 강도와 성폭행 범죄를 당한 피해자가 서류 제출을 마친 뒤 지급까지 115일이 걸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범죄 피해자에 대한 치료비와 생계비 지원도 더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경찰이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관내 10개 경찰서 사건 중 실제 지원한 사례 74건을 분석했더니, 88%인 65건이 사건을 검찰로 송치한 이후에 지원 절차가 시작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러니까 경찰이 수사를 다 마치고 사건을 검찰로 넘긴 뒤에야, 지원 절차가 개시됐다는 뜻입니다.

적기에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은 국회에서도 꾸준히 나왔습니다.

2017년 11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2018년 예산안 검토보고서는 '검찰청이 집행하는 치료비·생계비 지원은 복잡한 신청구조 때문에 신속한 대응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2018년 11월 법제사법위원회 기금운용계획안 심사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있었습니다.

이전비·치료비·생계비는 범죄 피해자 중 특히 취약계층에게 주로 지원됩니다. 무엇보다 신속성이 중요합니다.


■ "한 달에 한 번 심의"…지원이 더딘 이유는?

치료비 등의 지원이 더딘 이유 중 하나는, 지원 여부와 금액을 결정하는 심의위원회가 자주 열리지 않는 탓이 큽니다.

각 검찰청은 '경제적 지원 심의위원회'를 운영하는데, 의료분야 전문가와 민간 범죄피해자지원센터 관계자를 포함해 7명 이하로 구성됩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2018년 예산안 검토보고에서, 경제적 지원 심의위원회가 1~2개월에 한 번씩 개최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만약 심의위가 열린 직후에 지원을 신청한 피해자는, 한 달을 기다려야 하는 셈입니다. 범죄피해자지원센터 관계자도 심의위가 보통 한 달에 한 번 열린다고 KBS에 밝혔습니다.

검찰 지침에 심의회 개최 주기에 대한 규정은 없습니다. 다만, "심의회 개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제적 지원 절차가 개시된 날로부터 30일을 초과하여서는 안 된다"고 돼 있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청마다 개최 주기가 다르다고 했습니다. 다만 강력사건 등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사건은, 심의위 위원장이 먼저 지원 결정을 하고, 사후 심의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찰이 사건을 송치하기 전에는, 검찰이 자세한 사실관계를 알기 어렵다는 점도 지원이 늦어지는 한 원인입니다. 누가 피해자인지 명백하지 않은 사건은, 경찰에서 보낸 사건 기록을 검찰이 봐야 지원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건데요. 심의위는 이런 경우 송치 전까지 '지원 보류' 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 이전비 집행률 52% 불과…"경찰에서도 신청 가능해야"

범죄 피해자들이 제도를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편의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이전비의 경우, 2019년 3억 원이던 예산이 지난해 2억 원, 올해는 1억 6천만 원으로 줄었습니다. 예산 집행률이 낮다 보니 예산이 깎인 겁니다. 집행률은 2017년 65%, 2018년 44.3%, 2019년 52%에 불과했습니다.

편의성을 높이려면 피해자가 사건 초기 경찰 조사를 받을 때, 이전비도 바로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현재 신변보호는 경찰이, 이전비 지원은 검찰이 분리해서 맡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경찰에서 진술한 뒤 다시 검찰청을 찾아가야 하는 구조입니다. 검찰청은 경찰서보다 숫자가 적어,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습니다.

경찰은 피해자 신변보호 여부를 심사할 때, 이전비 지원도 함께 심사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경찰 신변보호심사위는, 보통 신청 당일에 열리기 때문에 이전비 지원이 빨라질 수 있습니다. 과거 스마트워치도 검찰에서 경찰로 지급 주체가 바뀌면서 이용률이 높아진 적이 있습니다. 2015년 검찰 담당일 때는 지급 사례가 한 해 105건이었지만, 2016년 경찰이 맡으면서 3,356건으로 급증했습니다.

2018년 11월 7일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서 김오수 당시 법무차관은 주거 이전비 사업을 경찰로 이관하라는 의원들의 지적에 "이전비 부분은 상당 부분 넘겨주는 거로 협의가 진행되어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바로 금액을 넘겨주는 문제는 경찰과 검찰 다 아직 완전 동의는 이루지 못했다"고 답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나도록 이 문제는 검찰과 경찰 간에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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