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의 진심 “올림픽 계기 관계개선 기대 어려워…위안부 원죄 어디있냐”
입력 2021.12.2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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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9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내신기자들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올해 한국 외교는 숨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연초 미국의 바이든 정부 출범 직후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과는 굳건한 한미 동맹을 재확인하는 성과를 거둔 반면에, 일본과는 과거사 문제로 인한 갈등이 지속되면서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찾지 못했습니다.
또 중국의 요소 수출 규제로 우리 경제가 일대 홍역을 치르면서 중국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 반면에,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 해제와 같은 한중 관계의 해빙 국면은 아직 조성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과는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한미간 공동 노력이 올해 내내 이어졌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오늘(29일) 내신기자들을 상대로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해 한국 외교의 수장으로서 진솔한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 " 종전선언, 한미 간 문안 사실상 합의"
기자들의 질문이 가장 많이 쏟아진 주제는 '종전선언'이었습니다. 종전선언은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에서 제안한 이후 외교부가 가장 역점을 둔 분야였습니다.
정의용 장관은 "종전선언 문안에 관해 (한미 간에) 이미 사실상 합의가 돼 있는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이달 11~12일 영국 리버풀에서 열린 G7 외교개발장관 확대회의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만나서도 이런 사실을 재확인했다는 설명도 내놓았습니다.
정 장관은 " 현재와 같이 대화가 중단된 상태에서는 (종전선언이) 대화 재개를 위한 아주 유용한 계기도 마련한다고 보고 있다"며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종전선언 제안을 '흥미롭다'고 짧게 논평하고 '적대시 정책 철회'가 먼저라는 입장을 내놓은 이후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정 장관은 "종전선언과 관련해 중국 측을 통해서 북한의 입장을 전달받은 것은 없다"고도 말했습니다. 북중 관계의 특수성상 종전선언과 관련해 북중 간에 교감이 있었을 법도 하지만, 이같은 경로로 전해진 북한의 입장도 없다는 것입니다.
정 장관은 "북한과의 협의는 어떻게 진전시켜야 할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종전선언이 북핵협상 대화 재개의 '마중물'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이런 마중물에 입질도 없는 답답한 국면이 지속되면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상황임을 드러낸 것입니다.
■ " 올림픽 계기 남북관계 개선 기대 어려워"
그동안 국내외 언론들은 내년 2월 예정된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남·북·미, 혹은 남·북·미·중이 한자리에서 손을 맞잡는 이상적인 장면을 기대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화해와 대화의 물꼬가 일시에 분출했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정 장관은 "베이징 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의 한 계기로 삼기를 희망했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기대가 사실상 어려워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한국과 미국의 대화 제안에 귀를 닫으면서 우리 정부의 눈높이도 점차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정 장관은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해온 책임자로서 임기 말까지 북한과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정 장관은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모든 계기를 이용해서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조기 재가동을 위해서 정부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 김정은 비핵화 의지 믿는다…한반도에서 현상유지는 불가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여러 차례 만나 곁에서 지켜봤던 정 장관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보는가에 대한 질문에 정 장관은 "상대방의 의지를 믿어주는 방향으로,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협상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상대방이 의지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협상에 임하면 상대방이 우리 측의 협상에 대한 진정성에 의문을 갖게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다만 정 장관은 북한이 핵개발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는 데 대해선 "정부도 깊은 우려와 관심을 가지고 계속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실제로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고 있다는 징후는 올해 해외언론과 정보기관 등에서 여러 차례 포착됐습니다. 북미 대화가 교착국면에 들어간 동안에도 북한은 핵능력 고도화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 장관도 이를 의식한 듯 '현상 유지'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정 장관은 "한반도에서는 사실 현상 유지라는 상황이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더 악화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라도 북한을 하루 빨리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인권문제… 북한과는 특수한 관계, 직접 동참은 안 해"
해외 언론과 국내 보수 진영에서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할 때 단골 소재가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왜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에 침묵하는가'라는 것입니다. 이는 중국의 신장위구르족 인권탄압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에 대해 정의용 장관은 남북관계·한중관계의 특수성을 설명했습니다. 정 장관은 " 북한과 중국과는 특수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또 여러 가지 우리나라의 안보와 직결돼 협력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러한 국제적 노력에 직접적인 동참을 하고 있지는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유엔에서의 북한 인권결의안에도 컨센서스에는 계속 참여해 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 장관은 특히 북한 인권문제의 경우 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상황 개선과 병행해서 개선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면서, 이와 관련해 주변국들과 계속 협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한미 정상회담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한미관계는 역대 최상…한중관계는 지속적 문제제기"
정 장관은 미국과 중국, 일본과의 관계도 짚었습니다.
먼저 한미 관계에 대해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이후 한미동맹 관계는 최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한미 양국 정부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동맹관계가 안보 분야를 넘어 우주, 과학·기술 분야까지 아우르는 포괄적·호혜적 동맹으로 한 차원 더 높게 발전했다"고 밝혔습니다.
한미가 '완전히 조율된 전략'을 통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조기 재가동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며 대북정책 공조의 견고함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한중관계와 관련해서는 현실적 어려움을 설명했습니다. 주한미군 사드(THAAD) 배치로 중국이 취한 이른바 '한한령'이 아직 해제되지 않은 데 대해 "중국 측에 계속 집요하게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며 정부의 노력을 설명했습니다.
2017년 말 문재인 대통령의 국빈 방문 때 원칙적인 선에서는 한중 간에 경색된 관계를 완화시키기 위한 노력에 합의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정 장관은 "중국도 최근에는 매우 적극적인 자세로 문제 해결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불행히도 코로나19 상황이 이러한 노력을 좀 더 빠르게 진전시키는 데 장애물로 작용을 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 "위안부 문제, 원죄 어디에 있나…日 전향적으로 나와야"
정 장관은 기자회견의 상당 부분을 한일관계에 할애했습니다. 그만큼 올해 내내 한일관계 개선이 우리 외교당국의 크나큰 숙제였음을 부인하지 않은 셈입니다.
정 장관은 과거사 문제는 피해자 중심 원칙에 따라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꾸준히 모색해 나가자는 것이 우리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사와 관련된 현안은 그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의 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주문했습니다. 정 장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좀 더 진정성 있는 그러한 자세로 나가야 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기대"라고 말했습니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일방적으로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귀를 닫고 있는 일본 정부를 에둘러 비판한 것입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원죄가 어디 있는지는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시지 않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정 장관은 "위안부 문제는 사상 유례없는 전시 여성인권 유린이고, 여성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한 사례"라고 강조하면서, "현실적으로 유연한 입장을 갖고 일본을 계속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은 끝까지 2015년 (위안부) 합의를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완강하게 고수하고 있어 전혀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 경색 관계의 원인을 짚었습니다. 정 장관은 "많은 피해자 할머니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라며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도 강조했습니다.
정 장관은 이와 별도로 "우리 정부가 피해자들과 대화를 계속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현실적인 방안들을 계속 일본 측에 제시하고 있다"며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우리 정부의 진정성 있는 노력을 설명했습니다.
■ " 사도광산 세계유산 추진 깊은 유감"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역이 있었던 사도(佐渡) 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기로 한 데 대해서도 직접 입장을 밝혔습니다.
정 장관은 "일본이 2015년 근대산업시설 등재 이후 (강제징용 설명)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강제노역 피해 발생 시설을 또 등재하려는 것은 우리 정부도 이러한 일본 내 움직임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습니다.
어제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을 비판한 데 이어, 외교수장으로서 다시 한번 이에 대한 유감과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정 장관은 "우선 우리가 기대하기는 일본이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을 이행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습니다. 일본이 앞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군함도' 설명에서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누락한 데 대해 지난 7월 유네스코가 강한 유감의 뜻과 함께 즉각 시정을 요구한 사실을 재차 강조한 것입니다.
■ " 후쿠시마 오염수, 아직 日이 우리 요구에 부응 못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과 관련해서는 국민 건강 보호를 언급하며 양자 차원에서도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했습니다.
정 장관은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은 국민의 건강,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고 일본 측에 '우리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정도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며 "아직 일본이 우리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절차뿐만 아니라 한일 양자적으로, 주변국과의 공조를 통해서 문제 해결을 해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9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내신기자들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한미-한중관계, 충분히 조화롭게 발전 가능"
정 장관은 격화하는 미중 갈등 상황과 관련해서도 입장을 밝혔습니다.
미중 갈등 속에서 우리 정부가 취하고 있는 기본 입장이 "모호하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굉장히 분명하게 우리 입장을 계속 미국과 중국 양측에 다 얘기를 하고 있고,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중 관계도 계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판단"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충분히 양 관계를 조화롭게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며 "그 외에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정 장관은 "미중 양국 간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서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우리 국익에 부합한다고 믿고 있다"며 "정부도 그러한 면에서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기여해 나갈 생각"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베이징 올림픽의 외교적 보이콧과 관련해서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올림픽에 참석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부 내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검토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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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용의 진심 “올림픽 계기 관계개선 기대 어려워…위안부 원죄 어디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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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12-29 18:20:56
올해 한국 외교는 숨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연초 미국의 바이든 정부 출범 직후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과는 굳건한 한미 동맹을 재확인하는 성과를 거둔 반면에, 일본과는 과거사 문제로 인한 갈등이 지속되면서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찾지 못했습니다.
또 중국의 요소 수출 규제로 우리 경제가 일대 홍역을 치르면서 중국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 반면에,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 해제와 같은 한중 관계의 해빙 국면은 아직 조성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과는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한미간 공동 노력이 올해 내내 이어졌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오늘(29일) 내신기자들을 상대로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해 한국 외교의 수장으로서 진솔한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 " 종전선언, 한미 간 문안 사실상 합의"
기자들의 질문이 가장 많이 쏟아진 주제는 '종전선언'이었습니다. 종전선언은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에서 제안한 이후 외교부가 가장 역점을 둔 분야였습니다.
정의용 장관은 "종전선언 문안에 관해 (한미 간에) 이미 사실상 합의가 돼 있는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이달 11~12일 영국 리버풀에서 열린 G7 외교개발장관 확대회의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만나서도 이런 사실을 재확인했다는 설명도 내놓았습니다.
정 장관은 " 현재와 같이 대화가 중단된 상태에서는 (종전선언이) 대화 재개를 위한 아주 유용한 계기도 마련한다고 보고 있다"며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종전선언 제안을 '흥미롭다'고 짧게 논평하고 '적대시 정책 철회'가 먼저라는 입장을 내놓은 이후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정 장관은 "종전선언과 관련해 중국 측을 통해서 북한의 입장을 전달받은 것은 없다"고도 말했습니다. 북중 관계의 특수성상 종전선언과 관련해 북중 간에 교감이 있었을 법도 하지만, 이같은 경로로 전해진 북한의 입장도 없다는 것입니다.
정 장관은 "북한과의 협의는 어떻게 진전시켜야 할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종전선언이 북핵협상 대화 재개의 '마중물'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이런 마중물에 입질도 없는 답답한 국면이 지속되면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상황임을 드러낸 것입니다.
■ " 올림픽 계기 남북관계 개선 기대 어려워"
그동안 국내외 언론들은 내년 2월 예정된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남·북·미, 혹은 남·북·미·중이 한자리에서 손을 맞잡는 이상적인 장면을 기대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화해와 대화의 물꼬가 일시에 분출했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정 장관은 "베이징 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의 한 계기로 삼기를 희망했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기대가 사실상 어려워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한국과 미국의 대화 제안에 귀를 닫으면서 우리 정부의 눈높이도 점차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정 장관은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해온 책임자로서 임기 말까지 북한과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정 장관은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모든 계기를 이용해서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조기 재가동을 위해서 정부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 김정은 비핵화 의지 믿는다…한반도에서 현상유지는 불가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여러 차례 만나 곁에서 지켜봤던 정 장관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보는가에 대한 질문에 정 장관은 "상대방의 의지를 믿어주는 방향으로,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협상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상대방이 의지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협상에 임하면 상대방이 우리 측의 협상에 대한 진정성에 의문을 갖게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다만 정 장관은 북한이 핵개발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는 데 대해선 "정부도 깊은 우려와 관심을 가지고 계속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실제로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고 있다는 징후는 올해 해외언론과 정보기관 등에서 여러 차례 포착됐습니다. 북미 대화가 교착국면에 들어간 동안에도 북한은 핵능력 고도화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 장관도 이를 의식한 듯 '현상 유지'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정 장관은 "한반도에서는 사실 현상 유지라는 상황이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더 악화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라도 북한을 하루 빨리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인권문제… 북한과는 특수한 관계, 직접 동참은 안 해"
해외 언론과 국내 보수 진영에서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할 때 단골 소재가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왜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에 침묵하는가'라는 것입니다. 이는 중국의 신장위구르족 인권탄압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에 대해 정의용 장관은 남북관계·한중관계의 특수성을 설명했습니다. 정 장관은 " 북한과 중국과는 특수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또 여러 가지 우리나라의 안보와 직결돼 협력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러한 국제적 노력에 직접적인 동참을 하고 있지는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유엔에서의 북한 인권결의안에도 컨센서스에는 계속 참여해 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 장관은 특히 북한 인권문제의 경우 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상황 개선과 병행해서 개선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면서, 이와 관련해 주변국들과 계속 협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한미관계는 역대 최상…한중관계는 지속적 문제제기"
정 장관은 미국과 중국, 일본과의 관계도 짚었습니다.
먼저 한미 관계에 대해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이후 한미동맹 관계는 최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한미 양국 정부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동맹관계가 안보 분야를 넘어 우주, 과학·기술 분야까지 아우르는 포괄적·호혜적 동맹으로 한 차원 더 높게 발전했다"고 밝혔습니다.
한미가 '완전히 조율된 전략'을 통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조기 재가동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며 대북정책 공조의 견고함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한중관계와 관련해서는 현실적 어려움을 설명했습니다. 주한미군 사드(THAAD) 배치로 중국이 취한 이른바 '한한령'이 아직 해제되지 않은 데 대해 "중국 측에 계속 집요하게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며 정부의 노력을 설명했습니다.
2017년 말 문재인 대통령의 국빈 방문 때 원칙적인 선에서는 한중 간에 경색된 관계를 완화시키기 위한 노력에 합의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정 장관은 "중국도 최근에는 매우 적극적인 자세로 문제 해결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불행히도 코로나19 상황이 이러한 노력을 좀 더 빠르게 진전시키는 데 장애물로 작용을 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 "위안부 문제, 원죄 어디에 있나…日 전향적으로 나와야"
정 장관은 기자회견의 상당 부분을 한일관계에 할애했습니다. 그만큼 올해 내내 한일관계 개선이 우리 외교당국의 크나큰 숙제였음을 부인하지 않은 셈입니다.
정 장관은 과거사 문제는 피해자 중심 원칙에 따라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꾸준히 모색해 나가자는 것이 우리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사와 관련된 현안은 그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의 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주문했습니다. 정 장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좀 더 진정성 있는 그러한 자세로 나가야 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기대"라고 말했습니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일방적으로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귀를 닫고 있는 일본 정부를 에둘러 비판한 것입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원죄가 어디 있는지는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시지 않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정 장관은 "위안부 문제는 사상 유례없는 전시 여성인권 유린이고, 여성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한 사례"라고 강조하면서, "현실적으로 유연한 입장을 갖고 일본을 계속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은 끝까지 2015년 (위안부) 합의를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완강하게 고수하고 있어 전혀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 경색 관계의 원인을 짚었습니다. 정 장관은 "많은 피해자 할머니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라며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도 강조했습니다.
정 장관은 이와 별도로 "우리 정부가 피해자들과 대화를 계속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현실적인 방안들을 계속 일본 측에 제시하고 있다"며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우리 정부의 진정성 있는 노력을 설명했습니다.
■ " 사도광산 세계유산 추진 깊은 유감"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역이 있었던 사도(佐渡) 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기로 한 데 대해서도 직접 입장을 밝혔습니다.
정 장관은 "일본이 2015년 근대산업시설 등재 이후 (강제징용 설명)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강제노역 피해 발생 시설을 또 등재하려는 것은 우리 정부도 이러한 일본 내 움직임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습니다.
어제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을 비판한 데 이어, 외교수장으로서 다시 한번 이에 대한 유감과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정 장관은 "우선 우리가 기대하기는 일본이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을 이행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습니다. 일본이 앞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군함도' 설명에서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누락한 데 대해 지난 7월 유네스코가 강한 유감의 뜻과 함께 즉각 시정을 요구한 사실을 재차 강조한 것입니다.
■ " 후쿠시마 오염수, 아직 日이 우리 요구에 부응 못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과 관련해서는 국민 건강 보호를 언급하며 양자 차원에서도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했습니다.
정 장관은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은 국민의 건강,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고 일본 측에 '우리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정도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며 "아직 일본이 우리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절차뿐만 아니라 한일 양자적으로, 주변국과의 공조를 통해서 문제 해결을 해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 "한미-한중관계, 충분히 조화롭게 발전 가능"
정 장관은 격화하는 미중 갈등 상황과 관련해서도 입장을 밝혔습니다.
미중 갈등 속에서 우리 정부가 취하고 있는 기본 입장이 "모호하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굉장히 분명하게 우리 입장을 계속 미국과 중국 양측에 다 얘기를 하고 있고,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중 관계도 계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판단"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충분히 양 관계를 조화롭게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며 "그 외에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정 장관은 "미중 양국 간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서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우리 국익에 부합한다고 믿고 있다"며 "정부도 그러한 면에서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기여해 나갈 생각"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베이징 올림픽의 외교적 보이콧과 관련해서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올림픽에 참석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부 내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검토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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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민 기자 freshmi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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