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中 최대 사교육 기업 대표의 ‘깜짝 변신’…그는 왜 옥수수를 팔게됐나?

입력 2021.12.30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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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8일 오후 5시 40분쯤, 중국 최대 동영상 플랫폼 더우인에 영상 하나가 올라옵니다.

잠시 뒤 오후 8시부터 생방송 판매가 진행된다는 걸 알리는 예고 영상.

사람들은 판매 상품보다 쇼호스트를 보고 놀랐습니다.

“제가 곧 생방송을 진행합니다. #농민돕기라이브, 모두 구경하러 오세요!”라고 적은 예고 영상. (출처: 위민훙 더우인 계정)“제가 곧 생방송을 진행합니다. #농민돕기라이브, 모두 구경하러 오세요!”라고 적은 예고 영상. (출처: 위민훙 더우인 계정)

쇼호스트가 다름 아닌 대형 학원 기업 신둥팡자오위커지 그룹(新東方敎育科技集團)의 창업자 59살 위민훙(兪敏洪) 대표였기 때문입니다.

위민훙 대표는 귤을 까먹으며 말했습니다.

"(농산물이) 여러 가지 다 있어요. 제 눈앞에만 해도 한가득 있지요. ……참 맛있어요."

약속대로 그는 28일 밤 8시, 생방송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일일 농산품 쇼호스트로 말입니다.

위민훙 대표(오른쪽 남성)가 둥팡전쉬엔을 홍보하고 있다. (더우인 캡처)위민훙 대표(오른쪽 남성)가 둥팡전쉬엔을 홍보하고 있다. (더우인 캡처)

둥팡전쉬엔(东方甄选)이란 글씨가 씌여진 후드티를 입고 나타난 위 대표는 귤, 중국 자몽, 옥수수, 고구마, 사과 등 농산물 29종을 소개했는데요.

지난 12월 7일 만들어진 둥팡전쉬엔은 신둥팡 그룹 계열사이자 농산품 라이브 커머스 회사입니다.

자신이 일일이 시식해보고 판매를 결정했다는 농산물들은 3시간 동안 진행된 첫 생방송에서 약 500만 위안, 우리 돈 9억 3000만 원어치 이상이 팔렸습니다.

더우인 공식 자료에 따르면 이날 판매·인기 종합 평가 순위 16위를 기록했습니다. 누적 시청자 수도 180만 명을 넘었습니다.

둥팡전쉬엔에 올라온 농수산물. 위민훙 대표는 생방송에서 이 상품들 판매를 진행했다. (출처: 증권시보)둥팡전쉬엔에 올라온 농수산물. 위민훙 대표는 생방송에서 이 상품들 판매를 진행했다. (출처: 증권시보)

생방송 도중 에피소드도 쏟아졌습니다.

옛 제자가 생방송을 보며 "선생님, 지갑 들고 왔어요."라고 댓글을 단 경우도 있었고요.
위민훙이 직접 고기류 등을 추천하다가 가격을 보고 "너무 비싸다."며 스스로 놀라는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위민훙이 판매 농산물과 관련된 내용을 지도를 꺼내 설명하고 있는 모습 (위민훙 더우인 방송 캡처)위민훙이 판매 농산물과 관련된 내용을 지도를 꺼내 설명하고 있는 모습 (위민훙 더우인 방송 캡처)

또 사교육 기업 대표 답게 새로운 제품을 소개할 때마다 미리 준비한 A4 용지를 꺼낸 것도 화제가 됐습니다. 농산물과 관련된 지리적 지식, 인문학적 배경까지 설명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시청자들은 "진지했지만, 전체적인 방송 스타일이 너무 밋밋하다."는 평부터 "생방송이 시끄럽지 않아서 좋았다.", "물건을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리와 역사에 대한 지식도 배울 수 있었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위민훙이 농산물 판매에 나선 진짜 이유

지난 2014년 중국 선양에 들어선 신둥팡 빌딩을 축하하기 위해 위민훙 대표가 기념식에 참석했다. (출처:펑파이)지난 2014년 중국 선양에 들어선 신둥팡 빌딩을 축하하기 위해 위민훙 대표가 기념식에 참석했다. (출처:펑파이)

베이징 대학을 나와 허름한 한 칸 교실에서 과외로 시작해 기업을 일으킨 위민훙 대표.

그가 만든 신둥팡자오위커지 그룹은 중국에서 가장 큰 학원 기업입니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건 K9 사업입니다. 중국 본토 유치원에서 K9(우리로 하면 중학교 3 학년)까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사교육 서비스입니다. 신둥팡자오위커지 그룹 매출의 60%를 차지합니다.

2006년에는 회사를 뉴욕증시에도 상장시켰습니다.

하지만 신둥팡자오위커지 그룹은 9월 13일, 유치원에서 고등학교 전 과정에 이르는 온라인 교육 서비스를 포기합니다. 이어 10월에는 K9 관련 사업부를 폐지합니다. 신둥팡으로 불리는 학원들도 차례대로 문을 닫았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직원만 4만여 명입니다.

중국 매체 인민일보의 계열사 증권시보에 따르면 최근 기업의 시가총액은 259억 6,400만 홍콩달러로 한 해 동안 약 90% 감소했습니다.

신둥팡자오위커지 그룹이 하루아침에 타격을 입은 이유, 중국 당국의 '쌍감(雙減) 조치' 때문입니다.

유치원생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학교 교과와 관련된 사교육이 지난 7월부터 전면 금지됐습니다.

중국 당국은 기존 사교육 업체도 비영리기관으로 전환 시켰습니다. 한 마디로 이윤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중국 당국 발표에 따르면 사교육 규제 5개월 만에 '학과류'(체육, 문화예술, 과학기술을 제외한 다른 과목) 관련 사교육 업체 80% 이상이 사라졌습니다.

신둥팡자오위커지 그룹의 창업자 위민훙 대표 (출처:신화과학기술)신둥팡자오위커지 그룹의 창업자 위민훙 대표 (출처:신화과학기술)

'중국 사교육의 대부'였던 위민훙 대표는 이제 '농산물 전자 상거래'에서 답을 찾고 있습니다.

신둥팡 측은 그 이유를 "위 대표가 농촌에서 자란 농촌의 아들이고, 올바른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위민훙 대표는 18살까지 농촌에서 자랐고 고향에서 많은 농산물을 재배해 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더 많은 농민이 이익을 얻고 공동으로 부유해지도록 하겠다"는 목적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분히 중국 당국을 의식한 발언입니다. 중국 당국은 올해 들어 유난히 '공동 부유(골고루 부유하게 만들자)'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국이 사교육은 금지했으니 ' 입맛에 맞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신둥팡 그룹은 둥팡전쉬엔을 통해 앞으로 농산물 전자 상거래에 집중하면서 작물 종자 관리, 농산품 관련 라디오와 TV 프로그램 등도 만들겠다고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다만 교육 분야는 자신들의 초심이라며 대학생 영어교육, 대학원 시험, 유학 상담 등의 서비스는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위민훙과 신둥팡이 처한 위치는 입지전적인 기업인에서 일일 농산물 쇼호스트로의 변신이 과연 '선택'이었는지 곱씹어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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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中 최대 사교육 기업 대표의 ‘깜짝 변신’…그는 왜 옥수수를 팔게됐나?
    • 입력 2021-12-30 08:04:03
    특파원 리포트

12월 28일 오후 5시 40분쯤, 중국 최대 동영상 플랫폼 더우인에 영상 하나가 올라옵니다.

잠시 뒤 오후 8시부터 생방송 판매가 진행된다는 걸 알리는 예고 영상.

사람들은 판매 상품보다 쇼호스트를 보고 놀랐습니다.

“제가 곧 생방송을 진행합니다. #농민돕기라이브, 모두 구경하러 오세요!”라고 적은 예고 영상. (출처: 위민훙 더우인 계정)
쇼호스트가 다름 아닌 대형 학원 기업 신둥팡자오위커지 그룹(新東方敎育科技集團)의 창업자 59살 위민훙(兪敏洪) 대표였기 때문입니다.

위민훙 대표는 귤을 까먹으며 말했습니다.

"(농산물이) 여러 가지 다 있어요. 제 눈앞에만 해도 한가득 있지요. ……참 맛있어요."

약속대로 그는 28일 밤 8시, 생방송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일일 농산품 쇼호스트로 말입니다.

위민훙 대표(오른쪽 남성)가 둥팡전쉬엔을 홍보하고 있다. (더우인 캡처)
둥팡전쉬엔(东方甄选)이란 글씨가 씌여진 후드티를 입고 나타난 위 대표는 귤, 중국 자몽, 옥수수, 고구마, 사과 등 농산물 29종을 소개했는데요.

지난 12월 7일 만들어진 둥팡전쉬엔은 신둥팡 그룹 계열사이자 농산품 라이브 커머스 회사입니다.

자신이 일일이 시식해보고 판매를 결정했다는 농산물들은 3시간 동안 진행된 첫 생방송에서 약 500만 위안, 우리 돈 9억 3000만 원어치 이상이 팔렸습니다.

더우인 공식 자료에 따르면 이날 판매·인기 종합 평가 순위 16위를 기록했습니다. 누적 시청자 수도 180만 명을 넘었습니다.

둥팡전쉬엔에 올라온 농수산물. 위민훙 대표는 생방송에서 이 상품들 판매를 진행했다. (출처: 증권시보)
생방송 도중 에피소드도 쏟아졌습니다.

옛 제자가 생방송을 보며 "선생님, 지갑 들고 왔어요."라고 댓글을 단 경우도 있었고요.
위민훙이 직접 고기류 등을 추천하다가 가격을 보고 "너무 비싸다."며 스스로 놀라는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위민훙이 판매 농산물과 관련된 내용을 지도를 꺼내 설명하고 있는 모습 (위민훙 더우인 방송 캡처)
또 사교육 기업 대표 답게 새로운 제품을 소개할 때마다 미리 준비한 A4 용지를 꺼낸 것도 화제가 됐습니다. 농산물과 관련된 지리적 지식, 인문학적 배경까지 설명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시청자들은 "진지했지만, 전체적인 방송 스타일이 너무 밋밋하다."는 평부터 "생방송이 시끄럽지 않아서 좋았다.", "물건을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리와 역사에 대한 지식도 배울 수 있었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위민훙이 농산물 판매에 나선 진짜 이유

지난 2014년 중국 선양에 들어선 신둥팡 빌딩을 축하하기 위해 위민훙 대표가 기념식에 참석했다. (출처:펑파이)
베이징 대학을 나와 허름한 한 칸 교실에서 과외로 시작해 기업을 일으킨 위민훙 대표.

그가 만든 신둥팡자오위커지 그룹은 중국에서 가장 큰 학원 기업입니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건 K9 사업입니다. 중국 본토 유치원에서 K9(우리로 하면 중학교 3 학년)까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사교육 서비스입니다. 신둥팡자오위커지 그룹 매출의 60%를 차지합니다.

2006년에는 회사를 뉴욕증시에도 상장시켰습니다.

하지만 신둥팡자오위커지 그룹은 9월 13일, 유치원에서 고등학교 전 과정에 이르는 온라인 교육 서비스를 포기합니다. 이어 10월에는 K9 관련 사업부를 폐지합니다. 신둥팡으로 불리는 학원들도 차례대로 문을 닫았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직원만 4만여 명입니다.

중국 매체 인민일보의 계열사 증권시보에 따르면 최근 기업의 시가총액은 259억 6,400만 홍콩달러로 한 해 동안 약 90% 감소했습니다.

신둥팡자오위커지 그룹이 하루아침에 타격을 입은 이유, 중국 당국의 '쌍감(雙減) 조치' 때문입니다.

유치원생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학교 교과와 관련된 사교육이 지난 7월부터 전면 금지됐습니다.

중국 당국은 기존 사교육 업체도 비영리기관으로 전환 시켰습니다. 한 마디로 이윤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중국 당국 발표에 따르면 사교육 규제 5개월 만에 '학과류'(체육, 문화예술, 과학기술을 제외한 다른 과목) 관련 사교육 업체 80% 이상이 사라졌습니다.

신둥팡자오위커지 그룹의 창업자 위민훙 대표 (출처:신화과학기술)
'중국 사교육의 대부'였던 위민훙 대표는 이제 '농산물 전자 상거래'에서 답을 찾고 있습니다.

신둥팡 측은 그 이유를 "위 대표가 농촌에서 자란 농촌의 아들이고, 올바른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위민훙 대표는 18살까지 농촌에서 자랐고 고향에서 많은 농산물을 재배해 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더 많은 농민이 이익을 얻고 공동으로 부유해지도록 하겠다"는 목적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분히 중국 당국을 의식한 발언입니다. 중국 당국은 올해 들어 유난히 '공동 부유(골고루 부유하게 만들자)'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국이 사교육은 금지했으니 ' 입맛에 맞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신둥팡 그룹은 둥팡전쉬엔을 통해 앞으로 농산물 전자 상거래에 집중하면서 작물 종자 관리, 농산품 관련 라디오와 TV 프로그램 등도 만들겠다고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다만 교육 분야는 자신들의 초심이라며 대학생 영어교육, 대학원 시험, 유학 상담 등의 서비스는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위민훙과 신둥팡이 처한 위치는 입지전적인 기업인에서 일일 농산물 쇼호스트로의 변신이 과연 '선택'이었는지 곱씹어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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