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류·대면·구출·제안·품귀…2021 한국외교 5가지 장면

입력 2021.12.3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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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미국 바이든 대통령 등 각 나라 정상들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UN)문재인 대통령과 미국 바이든 대통령 등 각 나라 정상들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UN)

팬데믹 2년차인 올해, 외교 현장도 일상을 회복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전년도에 비해 대면 교류가 눈에 띄게 늘었고 국가 간 코로나19 백신 협력도 활발히 진행됐습니다.

새롭게 들어선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재편된 대외 전략에 따라 광폭 행보를 보였고, 한국 등 주변국은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 해 동안 한국 외교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다섯 가지 장면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봤습니다.

① 이란, 한국 선박 억류


올해 1월 4일 호르무즈 해협 오만 인근 해상에서, 이란군(이란 혁명수비대)이 한국 민간 선박인 '한국 케미'호를 나포했습니다. 선장 등 한국인 5명을 포함한 선원 20명이 이란 남부 반다르아바스 항에 억류됐습니다.

이란 당국은 해당 선박이 해양을 오염시켰다는 고소가 이란 해양청에 접수돼 사법 절차를 밟는 것이라며 억류는 "완전히 기술적인 사안"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억류의 진짜 원인은 따로 있다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이란중앙은행 명의로 한국의 은행들에 예치된 원유 수출대금 70억 달러 동결을 풀어달라는 것입니다. 미국이 2018년 5월 이란핵합의(JCPOA)를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 이란중앙은행도 제재 명단에 올렸고 한국도 2차 제재를 피하기 위해 여기에 동참한 상황이었습니다.

억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대표단이 같은달 6일 이란으로 향했고, 10일부터는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이란을 찾아 2박 3일 동안 교섭을 이끌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란 측은 거친 태도를 보이면서 한국 내 동결 자금을 풀어달라고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교섭을 통해 양측 모두 원하는 것을 얻진 못했지만 외교당국간 소통은 이어졌고, 이란은 2월 초 일단 선장을 제외한 선원 19명을 억류 해제했습니다. 또 억류 95일 만인 4월 9일에는 선장과 선박을 모두 풀어줬습니다.

이란 당국은 "조사 결과 선박과 선장이 과거 지역 내에서 위반 사항이 없었기 때문에 사법부가 석방을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실제 이유는 따로 있었다는 평가입니다.

이란이 동결 자금 해결을 위한 한국의 노력을 충분히 보았고, 이 문제에 있어 한국이 미국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점을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또 JCPOA 복원 협상을 앞두고 대미 협상력을 제고한다는 소기의 목표를 어느 정도는 달성했다는 이란 측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사건 해결 이후에도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이란을 2차례 방문하는 등, 한국과 이란 외교당국은 한국 내 동결 자금과 JCPOA 복원 협상을 주제로 계속 접촉을 이어갔습니다.


② 한·미 정상, 마스크 없이 대면 회담


5월 21일 미국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1월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 스가 총리에 이어 두 번째 대면 정상회담 상대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났습니다. 문 대통령 역시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외국을 방문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두 대통령은 3시간 가까이 이어진 정상회담과 공동 기자회견 내내 마스크를 쓰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지 않은 당시로서는 상당한 파격이었습니다.

양국이 회담 결과 발표한 공동성명은 상당한 화제였습니다. 발표 막판까지 문구가 조율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성명 내용을 보면 우선 한미동맹의 의미와 가치와 함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추진과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정 체결, 개정 미사일지침 종료 결정이 언급됐습니다.

한반도 문제에서는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를 추구하겠다는 점이 명시됐습니다. 이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양국 협력을 강조하면서, 특히 "타이완 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두 대통령이 강조했다는 문장이 나옵니다.

과거의 한미 공동성명에선 볼 수 없었던 내용으로, 중국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어 한국 입장에선 가장 주의깊게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위 조절이 있었다곤 하지만 미중 패권 경쟁 구도에서 한국이 미측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는 평가를 가능하게 한 대목입니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협력 분야에서는 기후 위기와 보건, 반도체 등 신흥기술, 공급망 회복력 등에서의 새로운 협력의 장을 열어가자고 했습니다. 한·미 동맹이 포괄적인 글로벌 동맹으로 확장됐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공동성명 전문 https://www1.president.go.kr/articles/10346)
(▶영문본 https://www.whitehouse.gov/briefing-room/statements-releases/2021/05/21/u-s-rok-leaders-joint-statement/)

공동기자회견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과 SK, LG, 현대자동차 등 한국 기업들이 4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한 데 대해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했고, 미국이 한국군 55만 명분의 코로나19 백신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또 성 김 당시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업무를 맡게 됐다고 깜짝 발표했습니다.

양국은 정상회담 이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한·미 외교차관, 외교장관 회담을 잇따라 여는 등 꾸준한 고위급 고류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③ 작전명 ‘미라클’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이 다시 이슬람 급진 무장조직 탈레반에 넘어갔습니다. 탈레반 군이 수도 카불에 진입하자 아프간 정부가 "평화롭게 정권을 넘기겠다"며 곧바로 항복을 선언한 것입니다.

4월 14일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간 주둔 미군을 완전 철수하겠다고 발표한 지 넉 달여 만이었습니다. 2001년부터 20년 동안 아프간 재건 비용으로 약 1,400억 달러(약 170조 원)를 쏟아부은 미국으로서는 허망한 패배였습니다.

카불 함락은 한국에도 큰 사건이었습니다. 주아프간 한국대사관은 8월 15일 카불이 완전히 함락되기 전 카타르로 긴급 철수했습니다.

이후 대사관 차석인 김일응 공사참사관을 비롯한 4명(1명은 주UAE 한국대사관 소속)은 일주일 뒤인 8월 22일 다시 카불 공항으로 돌아왔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재건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함께 일한 아프간인 협력자들을 한국으로 이송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초 한국 정부는 미군의 철수 이후 탈레반의 보복을 우려하는 아프간인 협력자들의 뜻에 따라, 외국 민간 전세기를 이용해 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방안을 준비해 왔습니다. 협력자와 그 가족 등 대상자 427명의 신원 확인을 거쳐 여행증명서 발급까지 마쳤지만, 8월 15일 카불이 탈레반에 함락되면서 민간 공항이 폐쇄되고 말았습니다.

이에 정부는 군 수송기를 카불에 보내 아프간인 협력자들을 데려오기로 결정했습니다. 여기엔 '미라클(기적)'이라는 작전명이 붙었습니다. 8월 23일 새벽 한국을 출발한 군 수송기는 8월 24~25일 이틀에 걸쳐, 마지막까지 한국행을 선택한 아프간인 390명을 카불에서 구출했습니다.

9월 초 인도를 거쳐 한국에 입국한 아프간인 협력자 1명까지 포함하면, 한국 정부의 도움으로 탈레반을 피해 한국에 온 아프간인은 모두 391명입니다. 전체의 60%가 미성년자이고, 5살 이하 어린이도 90여 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들은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6주 동안 생활한 뒤 10월 27일부터 전남 여수 해양경찰교육원으로 거처를 옮겨 정착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김일응 공사참사관은 미라클 작전이 끝난 8월 말 기자들과 화상으로 만나 "이게 된다 안된다는 생각을 안 해본 것 같다. 되든 안되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면서 "(한국도) 국격에 맞는 책임을 져야하는 건데 그걸 보여준 것 같아서 제일 기쁘다"라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④ 6·25전쟁 종전선언 제안


9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 일반토의에 직접 참석해 기조연설을 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연설 마지막 부분에 임기 내내 역점을 뒀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언급합니다.

특히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며 국제 무대에 종전선언을 다시 화두로 던졌습니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 의미는 남달랐습니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문 대통령의 마지막 승부수로 해석됐기 때문입니다.

당장 외교 당국자들의 움직임이 빨라졌습니다. 2주 뒤 정의용 외교장관은 프랑스 파리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약식 회담을 갖고 "대북 신뢰구축 조치"로서의 종전선언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서훈 국가안보실장도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미국 워싱턴에서 만나 종전선언 구상을 설명했습니다. 양국 북핵수석대표도 9월 3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10월 18일 미국 워싱턴, 10월 24일 서울에서 만나 북한에 제안할 종전선언 문안을 조율했습니다.

이후 설리번 보좌관이 10월 26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질문을 받고 "각각의 조치를 위한 정확한 순서와 시기, 혹은 조건 등에서 (한·미가) 다소 다른 관점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해 양국간 이견이 노출됐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에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속도감 있고 지속적이고 진지하게" 종전선언에 대한 한·미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일축했습니다.

11월부터 한미 간 종전선언 문안 협의가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소식이 잇따랐고,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12월 29일 기자간담회에서 한·미 간에는 "종전선언 문안에 관해 이미 사실상 합의가 돼 있는 상태"라고 확인했습니다. 그 내용은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지만, 일부 외교소식통은 종전선언이 현 정전 체제를 흔들지 않는다는 취지의 안전 장치를 문안에 포함시키는 안을 한·미가 논의했다고 전했습니다.

한·미가 합의에 도달해도 북한의 호응이 없다면 종전선언은 불가능합니다. 북한의 반응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닙니다. 북한은 문 대통령 제안 이틀 만에 외무성 부상 담화를 내고 종전선언의 상징적 의미는 인정하면서도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도 같은 날 담화에서 종전선언은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면서도, 적대시정책·이중 기준 철회가 먼저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김여정 부부장은 다음날 또 담화를 내고 공정성과 상호 존중의 자세가 유지돼야 남북이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고 적기에 종전이 선언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9월이 가기 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반응을 내놨습니다. 김 위원장은 9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시정 연설에서, "종전을 선언하기에 앞서 적대시정책과 이중 기준이 먼저 철회돼야 한다는 것이 변하지 않는 우리의 요구"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두고 정의용 장관은 북한이 "일련의 신속한,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9월 말 김 위원장의 연설을 끝으로 북한 당국은 종전선언에 대해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대선이 불과 석 달 앞으로 다가와 종전선언 추진은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부정적 전망도 적지 않습니다.

당국자들은 일단 이번 주말 발표될 것으로 보이는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서나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 관련 메시지가 있을지 주목하는 분위기입니다.


⑤ ‘요소수’ 외교


10월 11일, 중국 해관총서(세관)는 비료 품목에 대한 수출 검역 관리방식을 변경한다고 공고했습니다. 이 조치로 인해 당초 별도의 검역, 검사 없이 수출이 가능했던 요소와 칼륨비료, 인산비료 등 비료 품목 29종은 10월 15일부터 반드시 출입국검험검역기관의 검역을 거쳐 통관단을 발급받아야 수출이 가능해졌습니다.

중국 시장에 이 비료들을 우선 공급하기 위한 사실상의 수출 제한 조치로, 중국발 요소수 품귀 사태의 시발점이었습니다.

대외 창구인 외교부는 열흘 뒤인 10월 21일에야 중국의 한 총영사관을 통해 중국의 수출 검사 강화에 따른 업계의 요소 공급 부족 우려 사항을 접수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런 우려 사항을 즉각 중국 정부 측에 전달하고 관련 부처에도 전달했다"고 기자들에게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12일이 지난 11월 2일에야 국내 요소 수급 대응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관계부처 회의를 국무조정실 주재로 열고 공식 대응에 착수했습니다.

요소 수급 차질에 대한 여러 대책이 세워졌지만, 가장 중요한 건 중국의 협조를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장하성 주중대사는 물론 정의용 외교부 장관까지 각급 채널로 중국 측에 상황을 설명하고 신속한 조치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방위적인 '요소수 외교'가 펼쳐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중국 당국은 수출 검역 강화가 특정국을 겨냥한 건 절대 아니라며, 한국 측에서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또 11월 9일 오후에는, 한국 기업들이 이미 계약한 요소 물량 18,700톤에 대한 수출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고 한국 측에 확인했습니다. 이후 중국산 요소 18,700톤은 수출 검사를 거쳐 11월 23일부터 한국에 순차적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급한 불을 끈 외교부는 재발 방지를 위해 경제외교, 즉 '경제안보' 이슈에 대한 전문적 대응 역량을 키우겠다고 밝혔습니다. 일단 외교부 내 '경제안보외교센터' 설립 계획이 포함된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요소수 대란을 겪으면서, 심사를 맡은 많은 국회의원들이 경제안보 역량의 중요성에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외교부는 내년 2~3월 중 연구원 10여 명 규모의 센터를 출범시켜, 11월 1일부터 활동을 시작한 외교부 경제안보TF의 전문적 정책 결정을 보좌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다만 다른 나라 사례에서 보듯 경제안보 이슈는 외교부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내년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관련 전략 수립과 구체적인 정부 조직·법제 개편이 논의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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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억류·대면·구출·제안·품귀…2021 한국외교 5가지 장면
    • 입력 2021-12-31 16:49:28
    취재K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 바이든 대통령 등 각 나라 정상들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UN)
팬데믹 2년차인 올해, 외교 현장도 일상을 회복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전년도에 비해 대면 교류가 눈에 띄게 늘었고 국가 간 코로나19 백신 협력도 활발히 진행됐습니다.

새롭게 들어선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재편된 대외 전략에 따라 광폭 행보를 보였고, 한국 등 주변국은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 해 동안 한국 외교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다섯 가지 장면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봤습니다.

① 이란, 한국 선박 억류


올해 1월 4일 호르무즈 해협 오만 인근 해상에서, 이란군(이란 혁명수비대)이 한국 민간 선박인 '한국 케미'호를 나포했습니다. 선장 등 한국인 5명을 포함한 선원 20명이 이란 남부 반다르아바스 항에 억류됐습니다.

이란 당국은 해당 선박이 해양을 오염시켰다는 고소가 이란 해양청에 접수돼 사법 절차를 밟는 것이라며 억류는 "완전히 기술적인 사안"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억류의 진짜 원인은 따로 있다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이란중앙은행 명의로 한국의 은행들에 예치된 원유 수출대금 70억 달러 동결을 풀어달라는 것입니다. 미국이 2018년 5월 이란핵합의(JCPOA)를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 이란중앙은행도 제재 명단에 올렸고 한국도 2차 제재를 피하기 위해 여기에 동참한 상황이었습니다.

억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대표단이 같은달 6일 이란으로 향했고, 10일부터는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이란을 찾아 2박 3일 동안 교섭을 이끌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란 측은 거친 태도를 보이면서 한국 내 동결 자금을 풀어달라고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교섭을 통해 양측 모두 원하는 것을 얻진 못했지만 외교당국간 소통은 이어졌고, 이란은 2월 초 일단 선장을 제외한 선원 19명을 억류 해제했습니다. 또 억류 95일 만인 4월 9일에는 선장과 선박을 모두 풀어줬습니다.

이란 당국은 "조사 결과 선박과 선장이 과거 지역 내에서 위반 사항이 없었기 때문에 사법부가 석방을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실제 이유는 따로 있었다는 평가입니다.

이란이 동결 자금 해결을 위한 한국의 노력을 충분히 보았고, 이 문제에 있어 한국이 미국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점을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또 JCPOA 복원 협상을 앞두고 대미 협상력을 제고한다는 소기의 목표를 어느 정도는 달성했다는 이란 측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사건 해결 이후에도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이란을 2차례 방문하는 등, 한국과 이란 외교당국은 한국 내 동결 자금과 JCPOA 복원 협상을 주제로 계속 접촉을 이어갔습니다.


② 한·미 정상, 마스크 없이 대면 회담


5월 21일 미국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1월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 스가 총리에 이어 두 번째 대면 정상회담 상대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났습니다. 문 대통령 역시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외국을 방문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두 대통령은 3시간 가까이 이어진 정상회담과 공동 기자회견 내내 마스크를 쓰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지 않은 당시로서는 상당한 파격이었습니다.

양국이 회담 결과 발표한 공동성명은 상당한 화제였습니다. 발표 막판까지 문구가 조율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성명 내용을 보면 우선 한미동맹의 의미와 가치와 함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추진과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정 체결, 개정 미사일지침 종료 결정이 언급됐습니다.

한반도 문제에서는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를 추구하겠다는 점이 명시됐습니다. 이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양국 협력을 강조하면서, 특히 "타이완 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두 대통령이 강조했다는 문장이 나옵니다.

과거의 한미 공동성명에선 볼 수 없었던 내용으로, 중국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어 한국 입장에선 가장 주의깊게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위 조절이 있었다곤 하지만 미중 패권 경쟁 구도에서 한국이 미측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는 평가를 가능하게 한 대목입니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협력 분야에서는 기후 위기와 보건, 반도체 등 신흥기술, 공급망 회복력 등에서의 새로운 협력의 장을 열어가자고 했습니다. 한·미 동맹이 포괄적인 글로벌 동맹으로 확장됐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공동성명 전문 https://www1.president.go.kr/articles/10346)
(▶영문본 https://www.whitehouse.gov/briefing-room/statements-releases/2021/05/21/u-s-rok-leaders-joint-statement/)

공동기자회견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과 SK, LG, 현대자동차 등 한국 기업들이 4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한 데 대해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했고, 미국이 한국군 55만 명분의 코로나19 백신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또 성 김 당시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업무를 맡게 됐다고 깜짝 발표했습니다.

양국은 정상회담 이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한·미 외교차관, 외교장관 회담을 잇따라 여는 등 꾸준한 고위급 고류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③ 작전명 ‘미라클’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이 다시 이슬람 급진 무장조직 탈레반에 넘어갔습니다. 탈레반 군이 수도 카불에 진입하자 아프간 정부가 "평화롭게 정권을 넘기겠다"며 곧바로 항복을 선언한 것입니다.

4월 14일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간 주둔 미군을 완전 철수하겠다고 발표한 지 넉 달여 만이었습니다. 2001년부터 20년 동안 아프간 재건 비용으로 약 1,400억 달러(약 170조 원)를 쏟아부은 미국으로서는 허망한 패배였습니다.

카불 함락은 한국에도 큰 사건이었습니다. 주아프간 한국대사관은 8월 15일 카불이 완전히 함락되기 전 카타르로 긴급 철수했습니다.

이후 대사관 차석인 김일응 공사참사관을 비롯한 4명(1명은 주UAE 한국대사관 소속)은 일주일 뒤인 8월 22일 다시 카불 공항으로 돌아왔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재건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함께 일한 아프간인 협력자들을 한국으로 이송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초 한국 정부는 미군의 철수 이후 탈레반의 보복을 우려하는 아프간인 협력자들의 뜻에 따라, 외국 민간 전세기를 이용해 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방안을 준비해 왔습니다. 협력자와 그 가족 등 대상자 427명의 신원 확인을 거쳐 여행증명서 발급까지 마쳤지만, 8월 15일 카불이 탈레반에 함락되면서 민간 공항이 폐쇄되고 말았습니다.

이에 정부는 군 수송기를 카불에 보내 아프간인 협력자들을 데려오기로 결정했습니다. 여기엔 '미라클(기적)'이라는 작전명이 붙었습니다. 8월 23일 새벽 한국을 출발한 군 수송기는 8월 24~25일 이틀에 걸쳐, 마지막까지 한국행을 선택한 아프간인 390명을 카불에서 구출했습니다.

9월 초 인도를 거쳐 한국에 입국한 아프간인 협력자 1명까지 포함하면, 한국 정부의 도움으로 탈레반을 피해 한국에 온 아프간인은 모두 391명입니다. 전체의 60%가 미성년자이고, 5살 이하 어린이도 90여 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들은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6주 동안 생활한 뒤 10월 27일부터 전남 여수 해양경찰교육원으로 거처를 옮겨 정착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김일응 공사참사관은 미라클 작전이 끝난 8월 말 기자들과 화상으로 만나 "이게 된다 안된다는 생각을 안 해본 것 같다. 되든 안되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면서 "(한국도) 국격에 맞는 책임을 져야하는 건데 그걸 보여준 것 같아서 제일 기쁘다"라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④ 6·25전쟁 종전선언 제안


9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 일반토의에 직접 참석해 기조연설을 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연설 마지막 부분에 임기 내내 역점을 뒀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언급합니다.

특히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며 국제 무대에 종전선언을 다시 화두로 던졌습니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 의미는 남달랐습니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문 대통령의 마지막 승부수로 해석됐기 때문입니다.

당장 외교 당국자들의 움직임이 빨라졌습니다. 2주 뒤 정의용 외교장관은 프랑스 파리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약식 회담을 갖고 "대북 신뢰구축 조치"로서의 종전선언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서훈 국가안보실장도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미국 워싱턴에서 만나 종전선언 구상을 설명했습니다. 양국 북핵수석대표도 9월 3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10월 18일 미국 워싱턴, 10월 24일 서울에서 만나 북한에 제안할 종전선언 문안을 조율했습니다.

이후 설리번 보좌관이 10월 26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질문을 받고 "각각의 조치를 위한 정확한 순서와 시기, 혹은 조건 등에서 (한·미가) 다소 다른 관점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해 양국간 이견이 노출됐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에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속도감 있고 지속적이고 진지하게" 종전선언에 대한 한·미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일축했습니다.

11월부터 한미 간 종전선언 문안 협의가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소식이 잇따랐고,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12월 29일 기자간담회에서 한·미 간에는 "종전선언 문안에 관해 이미 사실상 합의가 돼 있는 상태"라고 확인했습니다. 그 내용은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지만, 일부 외교소식통은 종전선언이 현 정전 체제를 흔들지 않는다는 취지의 안전 장치를 문안에 포함시키는 안을 한·미가 논의했다고 전했습니다.

한·미가 합의에 도달해도 북한의 호응이 없다면 종전선언은 불가능합니다. 북한의 반응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닙니다. 북한은 문 대통령 제안 이틀 만에 외무성 부상 담화를 내고 종전선언의 상징적 의미는 인정하면서도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도 같은 날 담화에서 종전선언은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면서도, 적대시정책·이중 기준 철회가 먼저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김여정 부부장은 다음날 또 담화를 내고 공정성과 상호 존중의 자세가 유지돼야 남북이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고 적기에 종전이 선언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9월이 가기 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반응을 내놨습니다. 김 위원장은 9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시정 연설에서, "종전을 선언하기에 앞서 적대시정책과 이중 기준이 먼저 철회돼야 한다는 것이 변하지 않는 우리의 요구"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두고 정의용 장관은 북한이 "일련의 신속한,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9월 말 김 위원장의 연설을 끝으로 북한 당국은 종전선언에 대해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대선이 불과 석 달 앞으로 다가와 종전선언 추진은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부정적 전망도 적지 않습니다.

당국자들은 일단 이번 주말 발표될 것으로 보이는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서나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 관련 메시지가 있을지 주목하는 분위기입니다.


⑤ ‘요소수’ 외교


10월 11일, 중국 해관총서(세관)는 비료 품목에 대한 수출 검역 관리방식을 변경한다고 공고했습니다. 이 조치로 인해 당초 별도의 검역, 검사 없이 수출이 가능했던 요소와 칼륨비료, 인산비료 등 비료 품목 29종은 10월 15일부터 반드시 출입국검험검역기관의 검역을 거쳐 통관단을 발급받아야 수출이 가능해졌습니다.

중국 시장에 이 비료들을 우선 공급하기 위한 사실상의 수출 제한 조치로, 중국발 요소수 품귀 사태의 시발점이었습니다.

대외 창구인 외교부는 열흘 뒤인 10월 21일에야 중국의 한 총영사관을 통해 중국의 수출 검사 강화에 따른 업계의 요소 공급 부족 우려 사항을 접수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런 우려 사항을 즉각 중국 정부 측에 전달하고 관련 부처에도 전달했다"고 기자들에게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12일이 지난 11월 2일에야 국내 요소 수급 대응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관계부처 회의를 국무조정실 주재로 열고 공식 대응에 착수했습니다.

요소 수급 차질에 대한 여러 대책이 세워졌지만, 가장 중요한 건 중국의 협조를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장하성 주중대사는 물론 정의용 외교부 장관까지 각급 채널로 중국 측에 상황을 설명하고 신속한 조치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방위적인 '요소수 외교'가 펼쳐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중국 당국은 수출 검역 강화가 특정국을 겨냥한 건 절대 아니라며, 한국 측에서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또 11월 9일 오후에는, 한국 기업들이 이미 계약한 요소 물량 18,700톤에 대한 수출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고 한국 측에 확인했습니다. 이후 중국산 요소 18,700톤은 수출 검사를 거쳐 11월 23일부터 한국에 순차적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급한 불을 끈 외교부는 재발 방지를 위해 경제외교, 즉 '경제안보' 이슈에 대한 전문적 대응 역량을 키우겠다고 밝혔습니다. 일단 외교부 내 '경제안보외교센터' 설립 계획이 포함된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요소수 대란을 겪으면서, 심사를 맡은 많은 국회의원들이 경제안보 역량의 중요성에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외교부는 내년 2~3월 중 연구원 10여 명 규모의 센터를 출범시켜, 11월 1일부터 활동을 시작한 외교부 경제안보TF의 전문적 정책 결정을 보좌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다만 다른 나라 사례에서 보듯 경제안보 이슈는 외교부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내년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관련 전략 수립과 구체적인 정부 조직·법제 개편이 논의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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