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새해 첫 키워드 ‘여성’…현실은 ‘여아 매매혼’ ‘온라인 경매’

입력 2022.01.04 (07:00) 수정 2022.01.0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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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 집전한 2022년 새해 첫 미사의 키워드는? '여성'…"여성폭력은 신을 분노케 하는 것"

현지 시간으로 새해 첫날 오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신년 미사를 집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2022년 첫 강론의 키워드는 바로 '여성'이었습니다.

마침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기도 한 이 날, 교황은 "새해는 하느님의 거룩한 어머니의 징표로 시작한다"며 "어머니와 여성은 착취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얻기 위해 세상을 본다"고 말했습니다.

또 "교회 역시 어머니이자 여성"이라면서 "어머니가 생명을 주고 여성이 세계를 보호하기에 우리는 어머니의 지위를 격상하고 여성을 보호하고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여성 폭력과 관련해서는 "여성을 겨냥한 폭력을 이제 멈춰야 한다. 여성을 해치는 것은 여성에게서 인간을 취하신 신을 분노하게 하는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여성 존중을 강조한 교황의 발언이 의외 아닌가 싶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 이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중단하고 여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설파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최근엔 바티칸시국 행정을 행정부 사무총장 등 고위직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을 등용하는 등 남성 중심적인 가톨릭교회 내에서 여성의 지위 격상과 역할 확대에도 관심을 두고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물론 제55차 세계 평화의 날이기도 한 이 날 정오,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을 굽어보는 집무실 창을 열고 집례한 삼종기도에서 예년과 마찬가지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했습니다.

교황은 "평화는 주님의 선물이자 인류 모두가 헌신할 때 주어지는 과실"이라며 "그것은 가장 빈곤한 이들에게 관심을 가질 때, 정의를 증진할 때, 증오의 불을 끄는 용서의 용기를 가질 때 이룩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성모 마리아를 보면서 전쟁과 기아를 피해 고향을 등지거나 열악한 난민캠프에서 생활하는 여성과 그 자녀들을 생각한다며 깊은 위로를 건넸습니다.

교황의 이러한 인식과 발언이, 여성이 그동안 더 '낮은 데'서 더 크게 고통받아왔고 현재도 그렇다는 방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 역시나 그런 의심에 딱 들어맞는 세계 다른 곳에서의 소식들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아빠에 의해 강제 결혼의 위기에 처했지만, 엄마에 의해 구조된 아프간 소녀 가정 (사진제공 AP)아빠에 의해 강제 결혼의 위기에 처했지만, 엄마에 의해 구조된 아프간 소녀 가정 (사진제공 AP)

■ 탈레반, 강제 결혼 금지했지만…경제난에 여전히 '매매혼' 성행

역시 1월 1일 전해진 한 외신 기사는, 경제가 붕괴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부모가 어린 딸을 돈 받고 결혼시키는 '매매혼'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난해 8월 탈레반의 재집권 뒤 아프간의 경제난이 심각해지고 대다수 여성이 일자리에서 쫓겨나 집에만 머무르게 되면서 매매혼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는 낯설거나 놀랍지도 않은 소식이죠.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는 지난 11월 성명에서 "지참금을 받고 생후 20일 된 여아까지 매매혼 대상으로 삼았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극도로 끔찍한 경제난이 아프간 소녀들을 아주 어린 나이에 결혼하도록 내몰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아프간의 여아 강제 결혼에 대한 국제아동단체와 인권단체 등의 비판이 잇따르자, 탈레반 최고 지도자 아쿤드자다는 지난달 3일 "여성은 소유물이 아니다"며 매매혼 등 강제 결혼 금지령을 발령했지만, 여전히 아버지가 딸을 팔아넘기는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AP통신과 인터뷰를 한 아프간 여성은 "남편이 자신에게 알리지 않고 열 살 된 딸을 돈을 받고 결혼시키기로 했다"며 오빠와 마을 원로들의 도움을 받아 남편이 받은 10만 아프가니(115만 원)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딸의 결혼계약을 무효로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도 열다섯 살 때 남편에게 시집와 고통을 겪었다는 이 여성은 "딸을 구하지 못하면 차라리 죽겠다는 결심으로 덤볐다"고 말했는데, 반면 그녀의 남편은 "모두 굶을 상황이라 나머지를 구하기 위해 한 명을 희생해야 했다"고 주장했고 이후 비난받을 상황이 두려워 집을 나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이 여성에겐 이제 열두 살짜리 첫째부터 생후 2달 된 여섯째 막내가 남아 있습니다.

피해를 입은 여성 저널리스트 이스마트 아라의 트위터와 이 ‘무슬림 여성 온라인 경매’ 사건의 반응을 다룬 인도 NDTV 방송 캡처 화면피해를 입은 여성 저널리스트 이스마트 아라의 트위터와 이 ‘무슬림 여성 온라인 경매’ 사건의 반응을 다룬 인도 NDTV 방송 캡처 화면

■ 인도에서 무슬림 여성 '온라인 경매'?…본인 몰래 사진 올려졌다

곧이어 2일 오후엔 인도의 무슬림 여성들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 '온라인 경매'에 부쳐진 일이 발생했다는 외신 기사가 전해졌습니다.

NDTV 등 인도 언론에 따르면 공개 소스 공유 온라인 플랫폼 깃허브(GitHub)의 앱 '불리 바이'(Bulli Bai)에서 최근 무슬림 여성 수백 명의 사진 등 신상이 '경매 매물'로 올려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특히 여기엔 저널리스트를 포함해 트위터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슬람 여성들의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신상이 공개된 여성 저널리스트 이스마트 아라가 곧바로 경찰에 관련 내용을 신고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는데, 아라는 자신의 트위터에 "무슬림 여성으로서 두려움과 혐오감으로 새해를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슬프다"며 친구로부터 받았던 해당 앱의 스크린 캡처를 올렸습니다. (중간 사진 참고)

물론 실제 '거래'가 이뤄지지는 않았는데, 현지 언론은 이 앱이 해당 여성들을 비하하고 모욕하고 괴롭히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습니다.

소셜미디어(SNS)에는 범인들의 행동을 비난하는 글이 쏟아지면서, 해당 플랫폼은 문제 앱에 대한 접근을 차단했습니다. 또 인도의 전자·정보기술부 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불리 바이 차단 소식을 전하며 정부 비상 대응팀과 경찰 당국은 후속 조치를 위해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인도에서는 지난해 7월에도 깃허브에서 '설리 딜스'(Sulli Deals)라는 앱이 비슷한 일을 벌였는데, '설리'는 무슬림 여성을 비하하는 속어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당시 해당 지역 경찰은 ' Sulli Deals' 앱을 통해 2건의 FIR(First Information Reports)을 접수했지만 책임자에 대한 중요한 조치는 취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힌두교도가 13억 8천만 명의 전체 인구 가운데 80%가량을 차지하는 인도에서는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 국민당(BJP)이 지난 2014년 집권한 뒤로 보수 힌두교도의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무슬림 등 소수 집단에 대한 탄압이 커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위 두 사건의 배후에도 이슬람 혐오와 관련된 보수 힌두교도가 있다고 추정되고 있는데요.

종교를 근거로 한 공동체적 편 가르기와 증오가 배경일지라도 그 내부에서의 최약체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는 현실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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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황 새해 첫 키워드 ‘여성’…현실은 ‘여아 매매혼’ ‘온라인 경매’
    • 입력 2022-01-04 07:00:03
    • 수정2022-01-04 08:18:44
    세계는 지금

■ 교황 집전한 2022년 새해 첫 미사의 키워드는? '여성'…"여성폭력은 신을 분노케 하는 것"

현지 시간으로 새해 첫날 오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신년 미사를 집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2022년 첫 강론의 키워드는 바로 '여성'이었습니다.

마침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기도 한 이 날, 교황은 "새해는 하느님의 거룩한 어머니의 징표로 시작한다"며 "어머니와 여성은 착취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얻기 위해 세상을 본다"고 말했습니다.

또 "교회 역시 어머니이자 여성"이라면서 "어머니가 생명을 주고 여성이 세계를 보호하기에 우리는 어머니의 지위를 격상하고 여성을 보호하고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여성 폭력과 관련해서는 "여성을 겨냥한 폭력을 이제 멈춰야 한다. 여성을 해치는 것은 여성에게서 인간을 취하신 신을 분노하게 하는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여성 존중을 강조한 교황의 발언이 의외 아닌가 싶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 이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중단하고 여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설파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최근엔 바티칸시국 행정을 행정부 사무총장 등 고위직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을 등용하는 등 남성 중심적인 가톨릭교회 내에서 여성의 지위 격상과 역할 확대에도 관심을 두고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물론 제55차 세계 평화의 날이기도 한 이 날 정오,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을 굽어보는 집무실 창을 열고 집례한 삼종기도에서 예년과 마찬가지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했습니다.

교황은 "평화는 주님의 선물이자 인류 모두가 헌신할 때 주어지는 과실"이라며 "그것은 가장 빈곤한 이들에게 관심을 가질 때, 정의를 증진할 때, 증오의 불을 끄는 용서의 용기를 가질 때 이룩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성모 마리아를 보면서 전쟁과 기아를 피해 고향을 등지거나 열악한 난민캠프에서 생활하는 여성과 그 자녀들을 생각한다며 깊은 위로를 건넸습니다.

교황의 이러한 인식과 발언이, 여성이 그동안 더 '낮은 데'서 더 크게 고통받아왔고 현재도 그렇다는 방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 역시나 그런 의심에 딱 들어맞는 세계 다른 곳에서의 소식들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아빠에 의해 강제 결혼의 위기에 처했지만, 엄마에 의해 구조된 아프간 소녀 가정 (사진제공 AP)
■ 탈레반, 강제 결혼 금지했지만…경제난에 여전히 '매매혼' 성행

역시 1월 1일 전해진 한 외신 기사는, 경제가 붕괴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부모가 어린 딸을 돈 받고 결혼시키는 '매매혼'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난해 8월 탈레반의 재집권 뒤 아프간의 경제난이 심각해지고 대다수 여성이 일자리에서 쫓겨나 집에만 머무르게 되면서 매매혼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는 낯설거나 놀랍지도 않은 소식이죠.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는 지난 11월 성명에서 "지참금을 받고 생후 20일 된 여아까지 매매혼 대상으로 삼았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극도로 끔찍한 경제난이 아프간 소녀들을 아주 어린 나이에 결혼하도록 내몰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아프간의 여아 강제 결혼에 대한 국제아동단체와 인권단체 등의 비판이 잇따르자, 탈레반 최고 지도자 아쿤드자다는 지난달 3일 "여성은 소유물이 아니다"며 매매혼 등 강제 결혼 금지령을 발령했지만, 여전히 아버지가 딸을 팔아넘기는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AP통신과 인터뷰를 한 아프간 여성은 "남편이 자신에게 알리지 않고 열 살 된 딸을 돈을 받고 결혼시키기로 했다"며 오빠와 마을 원로들의 도움을 받아 남편이 받은 10만 아프가니(115만 원)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딸의 결혼계약을 무효로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도 열다섯 살 때 남편에게 시집와 고통을 겪었다는 이 여성은 "딸을 구하지 못하면 차라리 죽겠다는 결심으로 덤볐다"고 말했는데, 반면 그녀의 남편은 "모두 굶을 상황이라 나머지를 구하기 위해 한 명을 희생해야 했다"고 주장했고 이후 비난받을 상황이 두려워 집을 나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이 여성에겐 이제 열두 살짜리 첫째부터 생후 2달 된 여섯째 막내가 남아 있습니다.

피해를 입은 여성 저널리스트 이스마트 아라의 트위터와 이 ‘무슬림 여성 온라인 경매’ 사건의 반응을 다룬 인도 NDTV 방송 캡처 화면
■ 인도에서 무슬림 여성 '온라인 경매'?…본인 몰래 사진 올려졌다

곧이어 2일 오후엔 인도의 무슬림 여성들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 '온라인 경매'에 부쳐진 일이 발생했다는 외신 기사가 전해졌습니다.

NDTV 등 인도 언론에 따르면 공개 소스 공유 온라인 플랫폼 깃허브(GitHub)의 앱 '불리 바이'(Bulli Bai)에서 최근 무슬림 여성 수백 명의 사진 등 신상이 '경매 매물'로 올려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특히 여기엔 저널리스트를 포함해 트위터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슬람 여성들의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신상이 공개된 여성 저널리스트 이스마트 아라가 곧바로 경찰에 관련 내용을 신고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는데, 아라는 자신의 트위터에 "무슬림 여성으로서 두려움과 혐오감으로 새해를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슬프다"며 친구로부터 받았던 해당 앱의 스크린 캡처를 올렸습니다. (중간 사진 참고)

물론 실제 '거래'가 이뤄지지는 않았는데, 현지 언론은 이 앱이 해당 여성들을 비하하고 모욕하고 괴롭히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습니다.

소셜미디어(SNS)에는 범인들의 행동을 비난하는 글이 쏟아지면서, 해당 플랫폼은 문제 앱에 대한 접근을 차단했습니다. 또 인도의 전자·정보기술부 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불리 바이 차단 소식을 전하며 정부 비상 대응팀과 경찰 당국은 후속 조치를 위해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인도에서는 지난해 7월에도 깃허브에서 '설리 딜스'(Sulli Deals)라는 앱이 비슷한 일을 벌였는데, '설리'는 무슬림 여성을 비하하는 속어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당시 해당 지역 경찰은 ' Sulli Deals' 앱을 통해 2건의 FIR(First Information Reports)을 접수했지만 책임자에 대한 중요한 조치는 취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힌두교도가 13억 8천만 명의 전체 인구 가운데 80%가량을 차지하는 인도에서는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 국민당(BJP)이 지난 2014년 집권한 뒤로 보수 힌두교도의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무슬림 등 소수 집단에 대한 탄압이 커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위 두 사건의 배후에도 이슬람 혐오와 관련된 보수 힌두교도가 있다고 추정되고 있는데요.

종교를 근거로 한 공동체적 편 가르기와 증오가 배경일지라도 그 내부에서의 최약체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는 현실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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