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기 사려 모은 돈, 어려운 사람에게”…돼지저금통 놓고 간 어린 형제

입력 2022.01.04 (18:06) 수정 2022.01.0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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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 지구대 CCTV 카메라에 어린 남학생 둘이 종이가방을 힘겹게 들고 가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종이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었을까요?

지난 연말, 충남 공주의 한 경찰서 지구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들 초등학생 형제는 종이가방에 든 돼지저금통과 손편지를 지구대 앞에 놓고 홀연히 사라졌는데요.

손편지에는 게임기를 사려고 한 푼 두 푼 알뜰히 모아온 100여만 원, 그 소중한 돈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달라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 "용돈에서 조금씩 모았어요"…돼지저금통 세 개 놓고 간 형제

매서운 한파 속에 흰 눈이 수북이 내리던 지난달 30일 오후 4시쯤. 종이가방 손잡이를 사이좋게 한쪽씩 나눠 든 두 초등학생이 충남 공주시 금학지구대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출입문을 여는가 싶더니 누가 보기라도 할까봐 종이가방만 문 앞에 던져 두고는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는데요. 안에서 이를 본 경찰관들이 곧장 따라 나왔지만, 학생들은 자취를 감췄고 가방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종이가방 안에 든 건 색색의 돼지 저금통 세 개와 손편지 두 장.

익명의 편지에는 '저랑 동생이랑 아빠랑 용돈에서 조금씩 모았다'며 '많은 돈은 아니지만 좋은 곳에 써 달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또 '게임기를 사려고 모으고 있었다'며 '경찰 아저씨가 어려운 사람을 도와달라'는 내용과 함께 꼬깃꼬깃하게 접힌 지폐와 동전 100만 8,430원이 담겨 있었습니다.


■ 12살 형과 10살 동생…2년 동안 모은 용돈 선뜻 기부

당시 학생들을 발견한 윤여선 공주경찰서 금학지구대 순경은 "무거운 짐을 둘이서 들고 오는 것을 보고, 문을 열어주기 위해 밖으로 나가고 있었는데 학생들이 물건을 그냥 밖에다 두고 가버렸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경찰은 삐뚤빼뚤한 글씨로 저금통 겉면에 적힌 이름을 보고, 인근 초등학교에 수소문해 학생들의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 기부금은 12살 형과 10살 동생이 꼬박 2년 동안 모아온 돈이었습니다.

형제의 아버지인 오근국 씨는 취재진과의 전화 통화에서 "표시를 안 내려고 편지에도 이름을 안 썼는데 민망하다"며 놀라움을 전했습니다.

경찰서 지구대에 저금통을 갖다 주기로 한 것은 형제 중 올해 12살인 형의 생각이었다고 하는데요. 오 씨는 "어디에 갖다 주려고 하느냐 하고 아이들에게 물어봤더니 소방서나 경찰서를 갖다 주고 싶은데 그래도 경찰 아저씨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알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아버지인 자신은 동전만 모았을 뿐이라면서 "아이들이 그동안 고모나 삼촌 등 친척들로부터 받은 용돈을 열심히 모아온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경찰은 해당 기부금을 지구대에서 모아온 현금과 함께 충남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에 전달하고, 이들 형제의 선행을 표창하기로 했습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고 지쳐가는 요즘, 초등학생 형제의 고사리손 선행이 얼어붙은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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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임기 사려 모은 돈, 어려운 사람에게”…돼지저금통 놓고 간 어린 형제
    • 입력 2022-01-04 18:06:09
    • 수정2022-01-04 18:25:24
    취재K

경찰서 지구대 CCTV 카메라에 어린 남학생 둘이 종이가방을 힘겹게 들고 가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종이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었을까요?

지난 연말, 충남 공주의 한 경찰서 지구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들 초등학생 형제는 종이가방에 든 돼지저금통과 손편지를 지구대 앞에 놓고 홀연히 사라졌는데요.

손편지에는 게임기를 사려고 한 푼 두 푼 알뜰히 모아온 100여만 원, 그 소중한 돈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달라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 "용돈에서 조금씩 모았어요"…돼지저금통 세 개 놓고 간 형제

매서운 한파 속에 흰 눈이 수북이 내리던 지난달 30일 오후 4시쯤. 종이가방 손잡이를 사이좋게 한쪽씩 나눠 든 두 초등학생이 충남 공주시 금학지구대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출입문을 여는가 싶더니 누가 보기라도 할까봐 종이가방만 문 앞에 던져 두고는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는데요. 안에서 이를 본 경찰관들이 곧장 따라 나왔지만, 학생들은 자취를 감췄고 가방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종이가방 안에 든 건 색색의 돼지 저금통 세 개와 손편지 두 장.

익명의 편지에는 '저랑 동생이랑 아빠랑 용돈에서 조금씩 모았다'며 '많은 돈은 아니지만 좋은 곳에 써 달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또 '게임기를 사려고 모으고 있었다'며 '경찰 아저씨가 어려운 사람을 도와달라'는 내용과 함께 꼬깃꼬깃하게 접힌 지폐와 동전 100만 8,430원이 담겨 있었습니다.


■ 12살 형과 10살 동생…2년 동안 모은 용돈 선뜻 기부

당시 학생들을 발견한 윤여선 공주경찰서 금학지구대 순경은 "무거운 짐을 둘이서 들고 오는 것을 보고, 문을 열어주기 위해 밖으로 나가고 있었는데 학생들이 물건을 그냥 밖에다 두고 가버렸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경찰은 삐뚤빼뚤한 글씨로 저금통 겉면에 적힌 이름을 보고, 인근 초등학교에 수소문해 학생들의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 기부금은 12살 형과 10살 동생이 꼬박 2년 동안 모아온 돈이었습니다.

형제의 아버지인 오근국 씨는 취재진과의 전화 통화에서 "표시를 안 내려고 편지에도 이름을 안 썼는데 민망하다"며 놀라움을 전했습니다.

경찰서 지구대에 저금통을 갖다 주기로 한 것은 형제 중 올해 12살인 형의 생각이었다고 하는데요. 오 씨는 "어디에 갖다 주려고 하느냐 하고 아이들에게 물어봤더니 소방서나 경찰서를 갖다 주고 싶은데 그래도 경찰 아저씨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알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아버지인 자신은 동전만 모았을 뿐이라면서 "아이들이 그동안 고모나 삼촌 등 친척들로부터 받은 용돈을 열심히 모아온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경찰은 해당 기부금을 지구대에서 모아온 현금과 함께 충남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에 전달하고, 이들 형제의 선행을 표창하기로 했습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고 지쳐가는 요즘, 초등학생 형제의 고사리손 선행이 얼어붙은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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