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지방의원 칭송한 ‘공적비’를 공원 땅에…“말렸는데도 세웠다”

입력 2022.01.0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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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송 일색’ 현직 지방의원 공적비, 왜 공원에 있지?

전북 전주시 금암동의 한 공원. 성인 남성의 키를 넘기는 대리석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가까이 가서 살펴 보니 현재 전라북도 도의원인 A 씨의 이름이 적힌 ‘공적비’입니다.


공적비는 한 인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을 뜻하죠. 그동안 어떤 업적들을 내놓았기에 임기도 마치지 않은 지방의원을 위한 공적비가 등장하게 됐을까요?

공적비에 적힌 내용을 확인해 봤습니다.


“의원님은 전주시의회 6선 의원과 의장직을 훌륭하게 수행하셨고 전라북도의회 상임위원장을 맡아 일해오시면서 금암2동의 긍지와 자부심을 한껏 높여주었다.

의원님은 남다른 애향심과 탁월한 안목으로 우리동 관내의 고지대 급수난 해소를 비롯하여 소방도로 개설 하수관로 정비공사, 전 세대 도시가스 공급, 경로당 신축 등 각종 숙원 사업을 해결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하셨다 (중략) 그의 고결한 인품과 공로를 기리기 위해 공적비를 세우게 되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임기 동안 지역 숙원 사업을 잘 해결한 지역구 도의원의 인품과 공로를 칭송하기 위해 설치했다는 뜻입니다.


■ 시 소유 땅에 허가 받지 않고 세워…“자진 철거 조치하겠다”

한 달 전쯤에 등장한 공적비.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한 주민은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공적비가 흔한지 이해가 안 된다. 공적비를 세운다는 게 우리 정서하고는 조금 거리가 먼 것 같아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주민은 “사람이 좋고 일 잘한다고 평가한다. 나쁜 사람 아니잖아요. 보통 초선하고 다음 선거에서 떨어지는데 잘하니까 여러 번 당선되지 않았겠느냐”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확인해보니 이 공적비는 전주시 소유의 공원 땅에 무단으로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해당 지역 전·현직 주민자치위원장들이 평소 A 의원에 대해 ‘호의’를 가져왔다며 A의원의 공적을 널리 알릴 목적으로 자신들이 비용까지 대면서 비석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들은 전주시에 현직 도의원의 공적비를 세워도 되는지, 또는 ‘허가’를 얻을 수 있는지 문의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전주시는 기자의 전화를 받을 때까지 커다란 공적비가 공원 땅 일부를 ‘무단 점유’하고 있는지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전주시는 뒤늦게 공적비를 세운 사람들과 연락해 자진 철거해달라고 명령했고 문제를 깨달은 전·현직 주민자치위원장들도 따르기로 했습니다. 전주시는 공원 땅을 무단 점용한 이들에 대해 과태료를 내게 할 방침입니다.

해당 도의원은 “주민들의 계획을 듣고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자신도 여러 차례 연락해 말렸는데도 공적비가 세워졌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이 일을 알게 된 전북선거관리위원회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민들이 사전 선거운동 등 선거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있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해당 도의원은 오는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에 출마할지, 아니면 불출마할지 뜻을 밝히지 않았는데요, 만약 출마한다면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될 소지도 있기 때문입니다.


■ 시민단체 “요즘 시대에 상상할 수 없는 일, 매우 부적절”

현역 선출직 공무원을 위한 기념물 건립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9년여 전인 2013년, 전남 완도에서는 청산도 주민들이 당시 군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흉상을 놓아 빈축을 샀습니다.

허가 여부를 떠나 일부 주민 의견이 지역 전체의 의견으로 보일 수 있는 공적비 건립 행위가 적절했는지 먼저 따져봤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임기가 남았고 앞으로 선거에 더 나설 수 있는 정치인의 긍정적인 면모만 나열한 공적비가 공공장소에 놓여진 게 적절한지도 논란거리입니다.


이에 대해 이창엽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지역 환경 개선은 지자체 등 모든 공공조직이 한 일이기 때문에 도의원을 위한 공적비를 세울만한 이유가 없다”라고 지적하고 “공적비를 공공의 땅에 세운 행위는 일부 주민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동네 주민 전체에게 강요하고 있다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요즘 시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고 대상자가 현직 의원인 것을 감안해보면 공적비를 세운 행위는 매우 부적절하다고 의견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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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직 지방의원 칭송한 ‘공적비’를 공원 땅에…“말렸는데도 세웠다”
    • 입력 2022-01-05 15:55:22
    취재K

■ ‘칭송 일색’ 현직 지방의원 공적비, 왜 공원에 있지?

전북 전주시 금암동의 한 공원. 성인 남성의 키를 넘기는 대리석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가까이 가서 살펴 보니 현재 전라북도 도의원인 A 씨의 이름이 적힌 ‘공적비’입니다.


공적비는 한 인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을 뜻하죠. 그동안 어떤 업적들을 내놓았기에 임기도 마치지 않은 지방의원을 위한 공적비가 등장하게 됐을까요?

공적비에 적힌 내용을 확인해 봤습니다.


“의원님은 전주시의회 6선 의원과 의장직을 훌륭하게 수행하셨고 전라북도의회 상임위원장을 맡아 일해오시면서 금암2동의 긍지와 자부심을 한껏 높여주었다.

의원님은 남다른 애향심과 탁월한 안목으로 우리동 관내의 고지대 급수난 해소를 비롯하여 소방도로 개설 하수관로 정비공사, 전 세대 도시가스 공급, 경로당 신축 등 각종 숙원 사업을 해결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하셨다 (중략) 그의 고결한 인품과 공로를 기리기 위해 공적비를 세우게 되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임기 동안 지역 숙원 사업을 잘 해결한 지역구 도의원의 인품과 공로를 칭송하기 위해 설치했다는 뜻입니다.


■ 시 소유 땅에 허가 받지 않고 세워…“자진 철거 조치하겠다”

한 달 전쯤에 등장한 공적비.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한 주민은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공적비가 흔한지 이해가 안 된다. 공적비를 세운다는 게 우리 정서하고는 조금 거리가 먼 것 같아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주민은 “사람이 좋고 일 잘한다고 평가한다. 나쁜 사람 아니잖아요. 보통 초선하고 다음 선거에서 떨어지는데 잘하니까 여러 번 당선되지 않았겠느냐”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확인해보니 이 공적비는 전주시 소유의 공원 땅에 무단으로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해당 지역 전·현직 주민자치위원장들이 평소 A 의원에 대해 ‘호의’를 가져왔다며 A의원의 공적을 널리 알릴 목적으로 자신들이 비용까지 대면서 비석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들은 전주시에 현직 도의원의 공적비를 세워도 되는지, 또는 ‘허가’를 얻을 수 있는지 문의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전주시는 기자의 전화를 받을 때까지 커다란 공적비가 공원 땅 일부를 ‘무단 점유’하고 있는지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전주시는 뒤늦게 공적비를 세운 사람들과 연락해 자진 철거해달라고 명령했고 문제를 깨달은 전·현직 주민자치위원장들도 따르기로 했습니다. 전주시는 공원 땅을 무단 점용한 이들에 대해 과태료를 내게 할 방침입니다.

해당 도의원은 “주민들의 계획을 듣고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자신도 여러 차례 연락해 말렸는데도 공적비가 세워졌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이 일을 알게 된 전북선거관리위원회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민들이 사전 선거운동 등 선거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있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해당 도의원은 오는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에 출마할지, 아니면 불출마할지 뜻을 밝히지 않았는데요, 만약 출마한다면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될 소지도 있기 때문입니다.


■ 시민단체 “요즘 시대에 상상할 수 없는 일, 매우 부적절”

현역 선출직 공무원을 위한 기념물 건립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9년여 전인 2013년, 전남 완도에서는 청산도 주민들이 당시 군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흉상을 놓아 빈축을 샀습니다.

허가 여부를 떠나 일부 주민 의견이 지역 전체의 의견으로 보일 수 있는 공적비 건립 행위가 적절했는지 먼저 따져봤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임기가 남았고 앞으로 선거에 더 나설 수 있는 정치인의 긍정적인 면모만 나열한 공적비가 공공장소에 놓여진 게 적절한지도 논란거리입니다.


이에 대해 이창엽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지역 환경 개선은 지자체 등 모든 공공조직이 한 일이기 때문에 도의원을 위한 공적비를 세울만한 이유가 없다”라고 지적하고 “공적비를 공공의 땅에 세운 행위는 일부 주민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동네 주민 전체에게 강요하고 있다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요즘 시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고 대상자가 현직 의원인 것을 감안해보면 공적비를 세운 행위는 매우 부적절하다고 의견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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