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미 의사당 폭동 1년…“상대 당에 폭력 괜찮아” 미국인 늘었다

입력 2022.01.06 (14:00) 수정 2022.01.0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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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폭도로 돌변해 미 의사당을 습격한지 1년이 지났지만, 미국은 여전히 혼란에 빠져 있다. 땅에 떨어진 미국 민주주의는, 1년 간 회복은 커녕 점점 더 악화된 느낌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2020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거짓말은 미국의 반쪽에선 여전히 진실이다.

현실이 당신이 원하는 것과 다르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러나 생각을 바꿀 수 없는 이들은 현실을 바꿔버린다.

미 공화당 정치인들,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거짓 선동을 믿기 위해, 혹은 적극적으로 믿으며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는? 1500여 명이 의사당으로 몰려가 경찰 1명을 포함해 4명이 숨지고 150여 명이 다쳤다.

2020.1.6. 바이든 대통령 당선 인준을 위해 상하원 합동회의를 주재하던 당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사형시키라”며 만들어진 교수대2020.1.6. 바이든 대통령 당선 인준을 위해 상하원 합동회의를 주재하던 당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사형시키라”며 만들어진 교수대
그 후 1년 동안 바이든 행정부는 의사당으로 진격하게 만든 음모론을 추궁하며, 미국 민주주의를 다시금 재건하겠다고 만방에 알렸다. 미 의회에는 1.6. 사태 조사위원회가 대대적으로 꾸려졌고, 여전히 조사와 감사와 청문회는 계속되고 있다. (물론 결론이 날 지는 모르겠다. 책임자 처벌이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 책임자는 공화당의 실질적 총수니까.)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극명히 갈린 것은 당연하다(예측 가능하기도 하고). 사건이 일어났던 1년 전만 해도,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 모두 한 목소리로 짓밟힌 민주주의의 성지에 대해 한탄하고 부끄러워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간극은 대단히 넓어졌고, 깊어졌다.

특히 정부에 대해 공격해도 되는가, 정부에 대한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미국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우려스러운 답변을 내놓고 있다.

■ 의사당 폭동 이전부터 감지됐던 정치적 폭력 발생 징후

미 의사당 폭동 이전인 2017년과 2020년 사이 일련의 조사에서 메릴랜드 주립대학 정치학과 릴리아나 메이슨 교수와 루이지애나 주립대 네이선 칼모에 교수는 미국인의 약 15% 가 자신이 반대하는 정당 사람들에 대한 폭력이 최소한 조금은 정당하다고 믿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당시 이 조사 결과는 농담거리 정도로 치부됐다.

이후 정치적 폭력을 연구하는 프로젝트 '브라이트 라인 워치'가 2020년 미국 대선 전날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미국인의 40%가 상대방이 먼저 폭력을 행사한다면 자신이 행하는 폭력도 최소한 정당화될 것이라고 답변했지만, 이 조사는 어쩌면 정당방위에 대한 답변이라고 치부됐었다.

그리고 1년 뒤 미국에선 보란듯이 백주 대낮에 폭도들이 유리창을 깨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 일어났다.
왜? 내가 믿는 정치적 신념이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 놀라운 것은 미 의사당 난입 사태 1년 뒤, 미국인들의 생각이다.

칼모에와 메이슨 교수팀은 미 의사당 폭동 사태가 일어난 지 5달 뒤인 2021년 6월 다시 설문조사를 벌였다. 미국인들이 폭력에 대해 반성했을까?

놀랍게도(혹은 슬프게도) 공화당의 24%, 민주당의 19%가 상대 정당에 대한 폭력은 최소한 조금 정도는 괜찮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이 2020년 선거 때 부정행위를 했다는 트럼프의 거짓말을 믿는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폭력에 대한 지지가 10%포인트 높았다.

그리고 가장 최근인 12월 중순에 실시된 워싱턴 포스트/메릴랜드 대학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34%가 정부가 폭력 행위를 하는 것이 최소한 때때로 정당하다고 답했다 . 폭력사태를 부끄러워하거나 비판하기는 커녕 오히려 폭력에 대한 관용성이 크게 높아진 거다.

이 조사가 미국인들의 정치적 폭력을 과대 평가했다는 주장도 있다. 2015년 조사에서 정치적 폭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기술하지 않았다는 거다.(당시에는 의사당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상상 속의 정치적 폭력이 어느 수준이었는지는 주관적이다).

당시 응답자들이 스스로 빈칸을 채우도록 남겨뒀는데,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살인과 같은 중대한 정치적 폭력을 저지른 사람들이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답했다.

숀 웨스트우드 다트머스 대학 행정학과 교수는, 그래서 미국 유권자들이 정치적 폭력에 대해 관대하다는 것은 현실과는 다분히 괴리가 있을 수 있다고 항변한다.

■ 미적대는 정치권...정치적 폭력에 대한 관용성 키워

1년 전 1월 6일 발생한 폭동을 공화당이 미적대며 처리하는 것을 지켜보며 유권자들은 폭력에 대한 용인이 커진다고, 칼로에 교수는 진단했다. "모든 사람들이 폭력은 괜찮지 않다고 동의하는 규범에서 출발했지만, 이 선이 무너지면서 폭력이 용인되고 심지어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이런 의미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 지옥'은 어쩌면 현실과 가장 닮아있다.


1년 만에 사람이 쉽게 바뀌진 않는다. 정치적 성향, 뿌리 박힌 신념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현실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폭력으로 현실을 교정하는 것, 폭력에 대한 관용이 높아지는 것은 민주주의 종주국을 부르짖어 온 미국으로선 고개를 들기 어려운 일이다.

중요한 건 폭력적 행동으로 점화 스위치를 누르는 그 누군가, 무언가를 알아내야 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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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미 의사당 폭동 1년…“상대 당에 폭력 괜찮아” 미국인 늘었다
    • 입력 2022-01-06 14:00:50
    • 수정2022-01-06 14:51:06
    특파원 리포트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폭도로 돌변해 미 의사당을 습격한지 1년이 지났지만, 미국은 여전히 혼란에 빠져 있다. 땅에 떨어진 미국 민주주의는, 1년 간 회복은 커녕 점점 더 악화된 느낌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2020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거짓말은 미국의 반쪽에선 여전히 진실이다.

현실이 당신이 원하는 것과 다르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러나 생각을 바꿀 수 없는 이들은 현실을 바꿔버린다.

미 공화당 정치인들,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거짓 선동을 믿기 위해, 혹은 적극적으로 믿으며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는? 1500여 명이 의사당으로 몰려가 경찰 1명을 포함해 4명이 숨지고 150여 명이 다쳤다.

2020.1.6. 바이든 대통령 당선 인준을 위해 상하원 합동회의를 주재하던 당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사형시키라”며 만들어진 교수대그 후 1년 동안 바이든 행정부는 의사당으로 진격하게 만든 음모론을 추궁하며, 미국 민주주의를 다시금 재건하겠다고 만방에 알렸다. 미 의회에는 1.6. 사태 조사위원회가 대대적으로 꾸려졌고, 여전히 조사와 감사와 청문회는 계속되고 있다. (물론 결론이 날 지는 모르겠다. 책임자 처벌이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 책임자는 공화당의 실질적 총수니까.)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극명히 갈린 것은 당연하다(예측 가능하기도 하고). 사건이 일어났던 1년 전만 해도,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 모두 한 목소리로 짓밟힌 민주주의의 성지에 대해 한탄하고 부끄러워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간극은 대단히 넓어졌고, 깊어졌다.

특히 정부에 대해 공격해도 되는가, 정부에 대한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미국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우려스러운 답변을 내놓고 있다.

■ 의사당 폭동 이전부터 감지됐던 정치적 폭력 발생 징후

미 의사당 폭동 이전인 2017년과 2020년 사이 일련의 조사에서 메릴랜드 주립대학 정치학과 릴리아나 메이슨 교수와 루이지애나 주립대 네이선 칼모에 교수는 미국인의 약 15% 가 자신이 반대하는 정당 사람들에 대한 폭력이 최소한 조금은 정당하다고 믿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당시 이 조사 결과는 농담거리 정도로 치부됐다.

이후 정치적 폭력을 연구하는 프로젝트 '브라이트 라인 워치'가 2020년 미국 대선 전날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미국인의 40%가 상대방이 먼저 폭력을 행사한다면 자신이 행하는 폭력도 최소한 정당화될 것이라고 답변했지만, 이 조사는 어쩌면 정당방위에 대한 답변이라고 치부됐었다.

그리고 1년 뒤 미국에선 보란듯이 백주 대낮에 폭도들이 유리창을 깨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 일어났다.
왜? 내가 믿는 정치적 신념이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 놀라운 것은 미 의사당 난입 사태 1년 뒤, 미국인들의 생각이다.

칼모에와 메이슨 교수팀은 미 의사당 폭동 사태가 일어난 지 5달 뒤인 2021년 6월 다시 설문조사를 벌였다. 미국인들이 폭력에 대해 반성했을까?

놀랍게도(혹은 슬프게도) 공화당의 24%, 민주당의 19%가 상대 정당에 대한 폭력은 최소한 조금 정도는 괜찮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이 2020년 선거 때 부정행위를 했다는 트럼프의 거짓말을 믿는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폭력에 대한 지지가 10%포인트 높았다.

그리고 가장 최근인 12월 중순에 실시된 워싱턴 포스트/메릴랜드 대학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34%가 정부가 폭력 행위를 하는 것이 최소한 때때로 정당하다고 답했다 . 폭력사태를 부끄러워하거나 비판하기는 커녕 오히려 폭력에 대한 관용성이 크게 높아진 거다.

이 조사가 미국인들의 정치적 폭력을 과대 평가했다는 주장도 있다. 2015년 조사에서 정치적 폭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기술하지 않았다는 거다.(당시에는 의사당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상상 속의 정치적 폭력이 어느 수준이었는지는 주관적이다).

당시 응답자들이 스스로 빈칸을 채우도록 남겨뒀는데,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살인과 같은 중대한 정치적 폭력을 저지른 사람들이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답했다.

숀 웨스트우드 다트머스 대학 행정학과 교수는, 그래서 미국 유권자들이 정치적 폭력에 대해 관대하다는 것은 현실과는 다분히 괴리가 있을 수 있다고 항변한다.

■ 미적대는 정치권...정치적 폭력에 대한 관용성 키워

1년 전 1월 6일 발생한 폭동을 공화당이 미적대며 처리하는 것을 지켜보며 유권자들은 폭력에 대한 용인이 커진다고, 칼로에 교수는 진단했다. "모든 사람들이 폭력은 괜찮지 않다고 동의하는 규범에서 출발했지만, 이 선이 무너지면서 폭력이 용인되고 심지어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이런 의미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 지옥'은 어쩌면 현실과 가장 닮아있다.


1년 만에 사람이 쉽게 바뀌진 않는다. 정치적 성향, 뿌리 박힌 신념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현실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폭력으로 현실을 교정하는 것, 폭력에 대한 관용이 높아지는 것은 민주주의 종주국을 부르짖어 온 미국으로선 고개를 들기 어려운 일이다.

중요한 건 폭력적 행동으로 점화 스위치를 누르는 그 누군가, 무언가를 알아내야 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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