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반납 별보며 퇴근…‘전쟁터’ 같은 가축 방역 현장 24시

입력 2022.01.07 (07: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요약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가축에게도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많습니다.

ASF(African Swine Fever, 아프리카돼지열병)와 AI(Avian Influenza, 조류독감)가 대표적입니다. ASF는 치사율이 100%에 이르고, AI도 치사율이 최고 80%(닭의 경우)에 이릅니다.

지금도 전국의 가축방역 담당자들은 밤잠을 설치며 방역전선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새해에도 계속되고 있는 가축질병과의 사투의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24시간 가동되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거점소독소 근무자가 트럭을 유도하고 있다.24시간 가동되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거점소독소 근무자가 트럭을 유도하고 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의 국도변에 설치된 ASF(아프리카돼지열병) 차단용 거점소독소.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 속에 방호복을 입은 근무자들이 경광봉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추위를 이겨보려 팔을 휘둘러 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발을 굴러 보기도 하지만, 냉기는 좀처럼 가시지 않습니다.

24시간 운영되는 거점소독소에선 겨울철 추위가 가장 큰 어려움이다. 몇 겹 옷을 껴입어 봐도, 추위기 몸 곳곳으로 파고든다.24시간 운영되는 거점소독소에선 겨울철 추위가 가장 큰 어려움이다. 몇 겹 옷을 껴입어 봐도, 추위기 몸 곳곳으로 파고든다.

거점소독소 근무자 홍석환 씨는 "아무래도 추우니까 옷도 더 챙겨입고, 장갑도 두툼하게 끼고 모자도 쓴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5분 정도면 추위가 느껴진다. 차들이 대기하고 있을 땐 차들을 보낸 다음에, 그제서야 몸을 추스를 수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말하는 동안 입김이 잠시 머리를 감쌌다가 빠르게 흩어졌습니다.

취재진이 현장에 도착하고 30분 정도 지나자, 트럭 한 대가 소독소로 진입했습니다. 경광봉을 들고 서 있던 근무자가 버튼을 누르자, 소독소 문이 열리고, 트럭이 소독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소독소는 25톤 트럭 한 대가 들어갈 수 있을 만 한 크기입니다.

곧 안개처럼 뿌연 소독액이 트럭 전체를 감쌌습니다. 외부 소독이 끝나자 근무자들이 분무기를 들고 차량 내부를 소독했습니다. 소독하는 사이, 운전자가 소독 필증까지 발급받으면, 차 한 대분 소독 작업이 끝납니다.

돼지를 운반하는 트럭은 근무자가 직접 차 하부까지 소독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손이 더 갈 수밖에 없습니다.

소독 중인 양돈농장 출입 트럭. 한 대당 소독 시간은 5분 정도면 되지만, 철원의 소독소를 지나는 차량은 하루에 200대에 이른다.소독 중인 양돈농장 출입 트럭. 한 대당 소독 시간은 5분 정도면 되지만, 철원의 소독소를 지나는 차량은 하루에 200대에 이른다.

소독에 걸리는 시간은 보통 5분 정도.

매일 이곳을 통과하는 차량은 평균 200대 정도입니다. 특히, 새벽 6시부터 오전 10시 사이엔 차들이 몰립니다. 이 시간대에 소독소를 지나는 차들만 30대에서 40대에 이릅니다. 실제로 첫차가 들어온 뒤로 취재진이 머문 1시간 반 동안, 분뇨차, 사료차, 돼지 운반차 등 10대가 들어왔습니다.

이렇다 보니, 거점소독소는 쉴 틈이 없습니다. 근무자 이성용 씨는 "장기적으로 일을 하다 보니까 안 피곤할 수는 없다"라면서, "차가 시도 때도 없이 오니까 겨울엔 추워도 사무실 안에 들어와 있기가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핫팩을 손에 감싸 쥔 이성용 씨는 잠시 몸을 녹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차량 진입로를 비추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잠시나마 몸을 녹이는 와중에도 차량이 들어오진 않을지, 눈을 떼기가 어렵다.잠시나마 몸을 녹이는 와중에도 차량이 들어오진 않을지, 눈을 떼기가 어렵다.

강원도는 2019년 9월 국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확인된 이후 소독시설 68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거점소독소와 통제초소로 나뉩니다. 이 가운데 거점소독소 15곳은 24시간 운영됩니다. 이런 곳에선 보통 2교대나 3교대 근무를 합니다. 근무자들은 피로가 쌓일대로 쌓였고, 개인 일상은 멀어진 지 오랩니다.

거점소독소 근무자들과 같이 교대 근무를 하는 철원군 가축방역담당 주무관 전재헌 씨는
"1년 된 아들도 있는데 집에 못 가는 날이 많다. 아내도 거점소독소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서 이해를 해 주긴 하지만,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어서 힘들 때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수도권센터. 야생멧돼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 검사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수도권센터. 야생멧돼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 검사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기약 없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곳은 또 있습니다.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입니다. ASF와 AI 바이러스 진단 검사를 전담하는 기관입니다.

ASF 검사를 담당하는 인력 6명은 인천에 상주하고, AI 검사를 담당하는 인력 10명은 광주광역시에서 근무합니다. 두 종류의 검체가 하루 평균 400여 건씩 밀려듭니다. 연구원 1명당 검사 물량은 보통 하루에 20개~30개 정도입니다.

정원화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질병관리팀장은 "AI의 경우 전국 100여 개 예찰지점을 다 조사를 해야 되고. 또 예찰물량도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에. 시간적인 또는 인력적인 부분에서 굉장히 부족한 여건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언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주말 근무를 서고 있는데, 주말 근무로 인한 피로감도 상당하다"라면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밤사이 밀려든 검체들을 가지고 이동하는 연구원들. 이른 아침 시작된 업무는 해가 지고 나서야 마무리된다.밤사이 밀려든 검체들을 가지고 이동하는 연구원들. 이른 아침 시작된 업무는 해가 지고 나서야 마무리된다.

연구원들의 하루는 밀려든 검체들을 받는 일로 시작됩니다. 각 지역에서 도착한 검체들을 안아 들고 검사실로 이동한 뒤, 일일이 지역별 현황을 파악합니다.

그런 뒤에 검사에 필요한 양만큼 검체를 뽑아내고 3번에 걸쳐 바이러스 검사를 합니다. 또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시험소 관리나 시약 발주 등 추가 업무를 처리합니다. 너무 바쁘다 보니, 온종일 검사소에선 대화 소리를 듣기 어려울 정돕니다.

검체 검사를 준비하는 연구원들. 수도권센터의 경우 연구 인력 6명이 하루 평균 30여개의 검체를 검사하고 있다.검체 검사를 준비하는 연구원들. 수도권센터의 경우 연구 인력 6명이 하루 평균 30여개의 검체를 검사하고 있다.

아침 9시에 시작한 검사는 오후 5시가 돼야 최종 결과가 나옵니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결과 자료를 바탕으로 통계 자료와 보고 자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전부 끝나면 밤 8시나 9시. 특히, 겨울이 되면서 AI 검사 물량까지 폭증해, 인천과 광주 두 시험소 모두 불이 꺼질 틈이 없습니다.

이들을 움직이는 건 나아질거라는 희망과 사명감뿐입니다. 김용관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연구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개인적인 약속은 거의 잡지도 않고, 집과 회사만 오가고 있긴 하거든요. 처음에 일을 시작했을 때처럼, 사명감을 느끼고 확산세를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서 노력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는 거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요."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주말 반납 별보며 퇴근…‘전쟁터’ 같은 가축 방역 현장 24시
    • 입력 2022-01-07 07:00:11
    취재K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가축에게도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많습니다.<br /><br />ASF(African Swine Fever, 아프리카돼지열병)와 AI(Avian Influenza, 조류독감)가 대표적입니다. ASF는 치사율이 100%에 이르고, AI도 치사율이 최고 80%(닭의 경우)에 이릅니다.<br /><br />지금도 전국의 가축방역 담당자들은 밤잠을 설치며 방역전선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새해에도 계속되고 있는 가축질병과의 사투의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24시간 가동되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거점소독소 근무자가 트럭을 유도하고 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의 국도변에 설치된 ASF(아프리카돼지열병) 차단용 거점소독소.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 속에 방호복을 입은 근무자들이 경광봉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추위를 이겨보려 팔을 휘둘러 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발을 굴러 보기도 하지만, 냉기는 좀처럼 가시지 않습니다.

24시간 운영되는 거점소독소에선 겨울철 추위가 가장 큰 어려움이다. 몇 겹 옷을 껴입어 봐도, 추위기 몸 곳곳으로 파고든다.
거점소독소 근무자 홍석환 씨는 "아무래도 추우니까 옷도 더 챙겨입고, 장갑도 두툼하게 끼고 모자도 쓴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5분 정도면 추위가 느껴진다. 차들이 대기하고 있을 땐 차들을 보낸 다음에, 그제서야 몸을 추스를 수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말하는 동안 입김이 잠시 머리를 감쌌다가 빠르게 흩어졌습니다.

취재진이 현장에 도착하고 30분 정도 지나자, 트럭 한 대가 소독소로 진입했습니다. 경광봉을 들고 서 있던 근무자가 버튼을 누르자, 소독소 문이 열리고, 트럭이 소독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소독소는 25톤 트럭 한 대가 들어갈 수 있을 만 한 크기입니다.

곧 안개처럼 뿌연 소독액이 트럭 전체를 감쌌습니다. 외부 소독이 끝나자 근무자들이 분무기를 들고 차량 내부를 소독했습니다. 소독하는 사이, 운전자가 소독 필증까지 발급받으면, 차 한 대분 소독 작업이 끝납니다.

돼지를 운반하는 트럭은 근무자가 직접 차 하부까지 소독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손이 더 갈 수밖에 없습니다.

소독 중인 양돈농장 출입 트럭. 한 대당 소독 시간은 5분 정도면 되지만, 철원의 소독소를 지나는 차량은 하루에 200대에 이른다.
소독에 걸리는 시간은 보통 5분 정도.

매일 이곳을 통과하는 차량은 평균 200대 정도입니다. 특히, 새벽 6시부터 오전 10시 사이엔 차들이 몰립니다. 이 시간대에 소독소를 지나는 차들만 30대에서 40대에 이릅니다. 실제로 첫차가 들어온 뒤로 취재진이 머문 1시간 반 동안, 분뇨차, 사료차, 돼지 운반차 등 10대가 들어왔습니다.

이렇다 보니, 거점소독소는 쉴 틈이 없습니다. 근무자 이성용 씨는 "장기적으로 일을 하다 보니까 안 피곤할 수는 없다"라면서, "차가 시도 때도 없이 오니까 겨울엔 추워도 사무실 안에 들어와 있기가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핫팩을 손에 감싸 쥔 이성용 씨는 잠시 몸을 녹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차량 진입로를 비추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잠시나마 몸을 녹이는 와중에도 차량이 들어오진 않을지, 눈을 떼기가 어렵다.
강원도는 2019년 9월 국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확인된 이후 소독시설 68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거점소독소와 통제초소로 나뉩니다. 이 가운데 거점소독소 15곳은 24시간 운영됩니다. 이런 곳에선 보통 2교대나 3교대 근무를 합니다. 근무자들은 피로가 쌓일대로 쌓였고, 개인 일상은 멀어진 지 오랩니다.

거점소독소 근무자들과 같이 교대 근무를 하는 철원군 가축방역담당 주무관 전재헌 씨는
"1년 된 아들도 있는데 집에 못 가는 날이 많다. 아내도 거점소독소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서 이해를 해 주긴 하지만,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어서 힘들 때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수도권센터. 야생멧돼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 검사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기약 없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곳은 또 있습니다.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입니다. ASF와 AI 바이러스 진단 검사를 전담하는 기관입니다.

ASF 검사를 담당하는 인력 6명은 인천에 상주하고, AI 검사를 담당하는 인력 10명은 광주광역시에서 근무합니다. 두 종류의 검체가 하루 평균 400여 건씩 밀려듭니다. 연구원 1명당 검사 물량은 보통 하루에 20개~30개 정도입니다.

정원화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질병관리팀장은 "AI의 경우 전국 100여 개 예찰지점을 다 조사를 해야 되고. 또 예찰물량도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에. 시간적인 또는 인력적인 부분에서 굉장히 부족한 여건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언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주말 근무를 서고 있는데, 주말 근무로 인한 피로감도 상당하다"라면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밤사이 밀려든 검체들을 가지고 이동하는 연구원들. 이른 아침 시작된 업무는 해가 지고 나서야 마무리된다.
연구원들의 하루는 밀려든 검체들을 받는 일로 시작됩니다. 각 지역에서 도착한 검체들을 안아 들고 검사실로 이동한 뒤, 일일이 지역별 현황을 파악합니다.

그런 뒤에 검사에 필요한 양만큼 검체를 뽑아내고 3번에 걸쳐 바이러스 검사를 합니다. 또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시험소 관리나 시약 발주 등 추가 업무를 처리합니다. 너무 바쁘다 보니, 온종일 검사소에선 대화 소리를 듣기 어려울 정돕니다.

검체 검사를 준비하는 연구원들. 수도권센터의 경우 연구 인력 6명이 하루 평균 30여개의 검체를 검사하고 있다.
아침 9시에 시작한 검사는 오후 5시가 돼야 최종 결과가 나옵니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결과 자료를 바탕으로 통계 자료와 보고 자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전부 끝나면 밤 8시나 9시. 특히, 겨울이 되면서 AI 검사 물량까지 폭증해, 인천과 광주 두 시험소 모두 불이 꺼질 틈이 없습니다.

이들을 움직이는 건 나아질거라는 희망과 사명감뿐입니다. 김용관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연구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개인적인 약속은 거의 잡지도 않고, 집과 회사만 오가고 있긴 하거든요. 처음에 일을 시작했을 때처럼, 사명감을 느끼고 확산세를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서 노력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는 거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요."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