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찾아온 쌀 트럭…12년째 얼굴 숨긴 월곡동 천사는?

입력 2022.01.0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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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7일) 오전 7시. 영하 5도의 매서운 날씨에도 서울 성북구 월곡2동 주민센터 앞은 북적였습니다. 주민 30여 명과 구청 직원 등은 기대감이 섞인 표정으로 저마다 장갑과 핫팩을 나눠 가졌습니다.

그리고 조금 뒤 오전 7시 반, 트럭 두 대가 주민센터 앞으로 들어섰습니다.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20kg짜리 쌀 포대를 나르고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정리는 10분 정도 만에 마무리됐습니다.

쌀을 나르러 이른 새벽부터 주민센터를 찾은 주민들은, 추운 날씨에 핫팩과 장갑을 나눠 가지며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쌀을 나르러 이른 새벽부터 주민센터를 찾은 주민들은, 추운 날씨에 핫팩과 장갑을 나눠 가지며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성북구 주민들이 이렇게 새벽 공기를 마시며 쌀 트럭을 기다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11년부터 시작해 올해가 벌써 열두 번째입니다.

지금까지 받은 쌀은 매년 300포씩 모두 3,600포, 시가 2억 원에 이릅니다.

■ 12년째 얼굴 숨긴 천사…"매년 전화 한 통이 전부"

시작은 늘 짧은 전화 한 통입니다. 지난해 12월 30일 오후에도 익명의 기부자로부터 어김없이 전화가 왔습니다. "그전처럼 1월 7일 새벽에 동 주민센터로 쌀을 갖다 드릴 테니, 춥고 어려운 분들을 위해 잘 부탁한다"는 말이 전부였습니다. 이름도, 직업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박미순 월곡2동장은 "우리도 누군지 알고 싶어 여쭤봤는데, 자신이 누군지 절대 알리고 싶지 않다는 답변만 돌아왔다"며 "그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승로 성북구청장 역시 "천사가 누구인지 모두가 궁금해하고 구청장이 좀 알아봐 달라는 요청도 많이 하신다"며 "그래도 얼굴 없는 선행을 원하는 기부자의 뜻에 따라 그저 천사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오전 7시 반이 되자, 어김없이 쌀을 가득 실은 트럭 두 대가 주민센터 앞에 도착했습니다.오전 7시 반이 되자, 어김없이 쌀을 가득 실은 트럭 두 대가 주민센터 앞에 도착했습니다.

■ "20kg이 아닌 200kg 받은 기분"…감사 표한 주민들

이렇게 모인 쌀은 매년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 주민들에게 곧바로 전달됩니다. 이날 주민센터에도 직접 쌀을 받으러 온 이들이 있었는데요.

83살 유원선 씨는 2011년부터 매년 쌀을 받아왔다며 특별한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유 씨는 "주신 분의 성함도 모르지만, 너무 감사하다"며 "한때 정말 힘들었던 고비가 있었는데 쌀 20kg이 아니라 200kg을 받은 기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기부자를 만나면 어떤 말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감사하단 말을 가장 먼저 드리고 싶고, 염치가 없어 계속 해달라는 말은 못 하겠다"며 웃었습니다. 유 씨 역시 기부자의 정체가 정말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쌀을 받으러 온 86살 김선임 씨도 "감사하단 말을 어떻게 다 할 수 있겠느냐"며 "추운 겨울에 생각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대문사진: 안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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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도 찾아온 쌀 트럭…12년째 얼굴 숨긴 월곡동 천사는?
    • 입력 2022-01-07 10:35:53
    취재K

오늘(7일) 오전 7시. 영하 5도의 매서운 날씨에도 서울 성북구 월곡2동 주민센터 앞은 북적였습니다. 주민 30여 명과 구청 직원 등은 기대감이 섞인 표정으로 저마다 장갑과 핫팩을 나눠 가졌습니다.

그리고 조금 뒤 오전 7시 반, 트럭 두 대가 주민센터 앞으로 들어섰습니다.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20kg짜리 쌀 포대를 나르고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정리는 10분 정도 만에 마무리됐습니다.

쌀을 나르러 이른 새벽부터 주민센터를 찾은 주민들은, 추운 날씨에 핫팩과 장갑을 나눠 가지며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성북구 주민들이 이렇게 새벽 공기를 마시며 쌀 트럭을 기다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11년부터 시작해 올해가 벌써 열두 번째입니다.

지금까지 받은 쌀은 매년 300포씩 모두 3,600포, 시가 2억 원에 이릅니다.

■ 12년째 얼굴 숨긴 천사…"매년 전화 한 통이 전부"

시작은 늘 짧은 전화 한 통입니다. 지난해 12월 30일 오후에도 익명의 기부자로부터 어김없이 전화가 왔습니다. "그전처럼 1월 7일 새벽에 동 주민센터로 쌀을 갖다 드릴 테니, 춥고 어려운 분들을 위해 잘 부탁한다"는 말이 전부였습니다. 이름도, 직업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박미순 월곡2동장은 "우리도 누군지 알고 싶어 여쭤봤는데, 자신이 누군지 절대 알리고 싶지 않다는 답변만 돌아왔다"며 "그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승로 성북구청장 역시 "천사가 누구인지 모두가 궁금해하고 구청장이 좀 알아봐 달라는 요청도 많이 하신다"며 "그래도 얼굴 없는 선행을 원하는 기부자의 뜻에 따라 그저 천사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오전 7시 반이 되자, 어김없이 쌀을 가득 실은 트럭 두 대가 주민센터 앞에 도착했습니다.
■ "20kg이 아닌 200kg 받은 기분"…감사 표한 주민들

이렇게 모인 쌀은 매년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 주민들에게 곧바로 전달됩니다. 이날 주민센터에도 직접 쌀을 받으러 온 이들이 있었는데요.

83살 유원선 씨는 2011년부터 매년 쌀을 받아왔다며 특별한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유 씨는 "주신 분의 성함도 모르지만, 너무 감사하다"며 "한때 정말 힘들었던 고비가 있었는데 쌀 20kg이 아니라 200kg을 받은 기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기부자를 만나면 어떤 말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감사하단 말을 가장 먼저 드리고 싶고, 염치가 없어 계속 해달라는 말은 못 하겠다"며 웃었습니다. 유 씨 역시 기부자의 정체가 정말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쌀을 받으러 온 86살 김선임 씨도 "감사하단 말을 어떻게 다 할 수 있겠느냐"며 "추운 겨울에 생각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대문사진: 안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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