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오바마 중간’이라던 바이든 대북정책, 결국 ‘전략적 인내’ 시즌2?

입력 2022.01.0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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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월 20일 워싱턴DC의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선서를 마치고 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월 20일 워싱턴DC의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선서를 마치고 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직후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북한 핵 억제는 미국의 사활적인 국익 사안'이라며 북한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어떤 내용일지 관심이 쏠렸던 바이든의 새 대북정책, 정부 출범 101일 만인 지난해 4월 30일에야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윤곽이 나왔는데 큰 틀은 이랬습니다.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② 트럼프 행정부의 '일괄 타결'이나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는 다를 것
③ 세밀하게 조율된 실용적 접근


도널드 트럼프식의 정상 간 '전부 또는 전무(all or nothing)' 담판이나 버락 오바마식 '전략적 인내' 정책은 절대 아니라는 게 뼈대였습니다. 앞선 정부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한 건데, 바이든표 정책은 비핵화와 제재 완화를 부분적으로 교환하는 단계적 접근 방식이 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이후 미국은 북한을 향해 줄곧 '외교적 기회'를 잡으라고 촉구해왔습니다. 다만, 큰 원칙은 북한이 먼저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의 행동 이전에 제재 완화 등 보상은 없다는 원칙 하에 북한에 '언제, 어디서든, 조건 없이' 일단 만나자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던져왔습니다.


■ 北은 '자력갱생 버티기'…바이든 첫해 '빈 손'

문제는 2019년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자력갱생'으로 버티기에 들어갔고, 먼저 미국에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어보인다는 점입니다.

이런 기조는 바이든 정부의 새 대북정책 공개 다음 날 북한에서 한꺼번에 나온 3건의 비난담화에 담겨있습니다. 당시 북한 외무성 권정근 미국 담당 국장은 "미국의 새로운 대조선정책의 근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선명해진 이상 우리는 부득불 그에 상응한 조치들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대화에 응하는 대신 이달 초까지 9번의 미사일 발사를 감행했습니다. 북미 양측의 팽팽한 기싸움이 이어지며 바이든 정부는 아무런 결실도 거두지 못한 채 비핵화 협상 교착 국면은 결국 해를 넘겨버렸습니다.



■ 미국도 북한도 결국 '전략적 인내'?

전임 행정부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했지만 결국 바이든표 대북정책도 '전략적 인내'와 같은 형국이 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전략적 인내'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으로, 일각에선 경제제재 일변도의 압박만 가한 채 사실상 북한 문제를 방치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지난 1년간 바이든 대북정책의 결과만을 놓고 봤을 때 이 또한 '무위 (無爲)' 가 아니었냐는 지적에 최근 트럼프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도 가세했습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언론 기고문을 통해 바이든 정부가 취임 첫해 북한 문제를 방관하는 바람에 평양 측이 핵·미사일 고도화에 더 근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 또한 '북한판 전략적 인내'에 돌입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최근 미국의 외교 전문지 디플로맷은 지난달 열린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북한이 대남·대미정책 논의 결과는 공개하지 않은 점에 주목하면서 "이는 북한이 2022년 협상장으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북한의 태도가 비핵화 협상에 대한 '북한식 전략적 인내'를 채택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일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美는 전략적 무관심·北은 전략적 상황관리"

통일연구원 홍민 연구위원은 현 상황을 분석하며 미국의 태도는 '전략적 무관심', 북한은 '전략적 상황관리'의 모습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홍 연구위원은 미국에 대해 "국내 현안이 켜켜이 쌓인 데다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 양쪽을 다 상대하는 방식으로 일을 벌려 북한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서 "미 국무부 내에서도 대북특별대표 같은 실무급에서는 대화의 문을 열어놓은 것처럼 표명하지만 그보다 윗선에서는 정책적인 관심이 없는, 즉 전략적으로 무관심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은 보다 전략적으로 이 시기를 관리하고 활용하는 국면에 있다고 봤습니다. 이달 5일 감행한 극초음속미사일 발사 등 지난해 당대회에서 밝힌 '국방발전 5개년 계획'에 따라 최대한 전략무기들을 완성하는 데 집중하는 시간으로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홍 연구위원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 추가가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 교묘하게 미국의 무관심과 미중 전략경쟁, 미러 사이 갈등 구도 등의 상황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한에는 현 상황을 전략무기를 최대한 빠른 속도로, 불가역적으로 완성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는 게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비난에 소극적인 것도 북한에는 유리한 상황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교착 국면이 길어질수록 북한 핵능력은 고도화 되고 있습니다. 홍 위원은 지난해 6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미 전략으로 '대화와 대결에 모두 준비돼있어야 한다'고 밝혔을 때 미국이 대화 테이블에 오를 의제들을 더 구체적으로 북한에 전달했어야 했다며, 타이밍을 놓친 만큼 보다 적극적으로 대북 관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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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오바마 중간’이라던 바이든 대북정책, 결국 ‘전략적 인내’ 시즌2?
    • 입력 2022-01-07 14:46:27
    취재K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월 20일 워싱턴DC의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선서를 마치고 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지난해 1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직후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북한 핵 억제는 미국의 사활적인 국익 사안'이라며 북한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어떤 내용일지 관심이 쏠렸던 바이든의 새 대북정책, 정부 출범 101일 만인 지난해 4월 30일에야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윤곽이 나왔는데 큰 틀은 이랬습니다.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② 트럼프 행정부의 '일괄 타결'이나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는 다를 것
③ 세밀하게 조율된 실용적 접근


도널드 트럼프식의 정상 간 '전부 또는 전무(all or nothing)' 담판이나 버락 오바마식 '전략적 인내' 정책은 절대 아니라는 게 뼈대였습니다. 앞선 정부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한 건데, 바이든표 정책은 비핵화와 제재 완화를 부분적으로 교환하는 단계적 접근 방식이 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이후 미국은 북한을 향해 줄곧 '외교적 기회'를 잡으라고 촉구해왔습니다. 다만, 큰 원칙은 북한이 먼저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의 행동 이전에 제재 완화 등 보상은 없다는 원칙 하에 북한에 '언제, 어디서든, 조건 없이' 일단 만나자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던져왔습니다.


■ 北은 '자력갱생 버티기'…바이든 첫해 '빈 손'

문제는 2019년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자력갱생'으로 버티기에 들어갔고, 먼저 미국에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어보인다는 점입니다.

이런 기조는 바이든 정부의 새 대북정책 공개 다음 날 북한에서 한꺼번에 나온 3건의 비난담화에 담겨있습니다. 당시 북한 외무성 권정근 미국 담당 국장은 "미국의 새로운 대조선정책의 근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선명해진 이상 우리는 부득불 그에 상응한 조치들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대화에 응하는 대신 이달 초까지 9번의 미사일 발사를 감행했습니다. 북미 양측의 팽팽한 기싸움이 이어지며 바이든 정부는 아무런 결실도 거두지 못한 채 비핵화 협상 교착 국면은 결국 해를 넘겨버렸습니다.



■ 미국도 북한도 결국 '전략적 인내'?

전임 행정부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했지만 결국 바이든표 대북정책도 '전략적 인내'와 같은 형국이 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전략적 인내'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으로, 일각에선 경제제재 일변도의 압박만 가한 채 사실상 북한 문제를 방치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지난 1년간 바이든 대북정책의 결과만을 놓고 봤을 때 이 또한 '무위 (無爲)' 가 아니었냐는 지적에 최근 트럼프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도 가세했습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언론 기고문을 통해 바이든 정부가 취임 첫해 북한 문제를 방관하는 바람에 평양 측이 핵·미사일 고도화에 더 근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 또한 '북한판 전략적 인내'에 돌입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최근 미국의 외교 전문지 디플로맷은 지난달 열린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북한이 대남·대미정책 논의 결과는 공개하지 않은 점에 주목하면서 "이는 북한이 2022년 협상장으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북한의 태도가 비핵화 협상에 대한 '북한식 전략적 인내'를 채택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일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美는 전략적 무관심·北은 전략적 상황관리"

통일연구원 홍민 연구위원은 현 상황을 분석하며 미국의 태도는 '전략적 무관심', 북한은 '전략적 상황관리'의 모습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홍 연구위원은 미국에 대해 "국내 현안이 켜켜이 쌓인 데다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 양쪽을 다 상대하는 방식으로 일을 벌려 북한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서 "미 국무부 내에서도 대북특별대표 같은 실무급에서는 대화의 문을 열어놓은 것처럼 표명하지만 그보다 윗선에서는 정책적인 관심이 없는, 즉 전략적으로 무관심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은 보다 전략적으로 이 시기를 관리하고 활용하는 국면에 있다고 봤습니다. 이달 5일 감행한 극초음속미사일 발사 등 지난해 당대회에서 밝힌 '국방발전 5개년 계획'에 따라 최대한 전략무기들을 완성하는 데 집중하는 시간으로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홍 연구위원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 추가가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 교묘하게 미국의 무관심과 미중 전략경쟁, 미러 사이 갈등 구도 등의 상황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한에는 현 상황을 전략무기를 최대한 빠른 속도로, 불가역적으로 완성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는 게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비난에 소극적인 것도 북한에는 유리한 상황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교착 국면이 길어질수록 북한 핵능력은 고도화 되고 있습니다. 홍 위원은 지난해 6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미 전략으로 '대화와 대결에 모두 준비돼있어야 한다'고 밝혔을 때 미국이 대화 테이블에 오를 의제들을 더 구체적으로 북한에 전달했어야 했다며, 타이밍을 놓친 만큼 보다 적극적으로 대북 관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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