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내방가사’ 전시회…한글로 뽐낸 여성 주체성:서주연 국립한글박물관 학예사 인터뷰

입력 2022.01.08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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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서로 소통한 조선 시대 여성들의 기록유산 전시가 국립한글박물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직접 가보고 난 뒤, 기획 취지가 궁금해져서 ‘이내말삼 드러보소, 내방가사’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한 학예사를 만났습니다.

2015년 1월부터 한글박물관에서 일을 시작한 서주연 학예사 (위 사진)는 “ 조선 시대 여성들이 우리말, 한글로 주체적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깊은 정서를 담아낸 내방가사는 요즘 봐도 의미가 크다”며 “읽기만 해도 의미가 바로 느껴지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돌려 돌려 글로 속내를 표현한 작품도 있는데, 대부분 그 다양함에 놀라고 감동을 한다”고 밝혔습니다.

현존하는 내방가사는 주로 조선 시대 여성의 창작품이기 때문에 당시 그들의 삶과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 특징. 이 때문에 기록 역사물로 가치가 큰데, 내방가사는 주로 영남(嶺南) 지방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제공= 국립한글박물관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서 학예사는 “특히 한자로 주로 기록했던 남성들의 가사와는 다르게 한글만을 사용해 줄글 형태(전시품들은 대부분 세로 쓰기로 됨)로 가사를 적어낸 것도 특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내방가사(内房歌辭)란 개념이 생소한 분들이라도 ‘규방문학’(閨房文學)이나 ‘규중가사’(閨中歌辭)란 명칭은 예전 수업 시간에 들어본 적이 있을 텐데, 당시 생활공간이자 소재로서의 ‘내방’을 중시하면서 내방가사란 명칭도 함께 쓰이고 있다고.

이 전시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펼쳐지는 여성들의 희로애락을 담은 ‘1부 내방 안에서’, 근대와 식민지라는 격동의 시대에 직면한 여상들의 삶과 생각을 마주하는 ‘2부 세상 밖으로’ 등으로 이뤄져 있는데, 현대적인 웹툰 기법과 영상을 다양하게 활용해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이번 전시에 제일 처음 나오는 ‘쌍벽가’를 자세히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90% 이상이 작자 미상인 내방가사에서 작자가 연안 이씨로 명확하게 밝혀진 굉장히 귀한 자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쌍벽(雙璧)은 두 개의 구슬 즉, 우열을 가리기 힘든 둘을 가리킬 때 쓰는 말로 풍산 류씨 가문의 두 아들 류이좌와 조카 류 상조(柳相祖)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연안 이 씨가 류씨 가문의 두 남자가 벼슬에 급제하자, 그 기쁨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가사를 지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성경현전 배어 있고 제자백가 입에 있으니
평생 궁박했지만 의연하기도 의연했다
한양과 안동으로 오가며 삼천지교 행했구나 <쌍벽가> 중



서 학예사는 또 “쌍벽가의 작가인 ‘연안 이씨’가 자신을 성인의 경과 현인의 글을 꿰고 있고 제자백가를 술술 풀어낼 수 있는 학식을 가졌다고 묘사하는데, 엄청난 자존감이 엿보인다”며 “또 평생 가난했지만, 품위를 지키며 살았으며, 한양과 안동을 오가며 자식을 키운 자신을 맹모에 비교하며 자신 스스로 높이는 것도 주목할 만한 내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반인들은 조선 여성이 대부분 이름 없는 존재로 조용히 살다 간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이 전시를 통해서 여성 자신이 살아온 삶을 당당히 가사로 적어 세상에 알렸다는 점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조선 후기 여성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진취적이고 당차게 자신들의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보고 가신다면 10개월 넘는 기간 동안 힘들게 준비한 전시 내용과 의미를 다 이해하고 가시는 것입니다.”

물론 기구한 운명을 한탄하는 글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덴동어미화전가’ 는 4번이나 결혼을 했지만, 남편이 모두 죽고 불에 덴 장애 아이를 홀로 키워야 하는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덴동어미로 불리는 여성은 온갖 고난에 굴하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하는 강한 생명력을 글을 통해 드러내고 있습니다. 전시장에서는 이를 섬세한 색감의 ‘영상’으로 재해석해 매우 쉽게 풀어 놓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저자인 여성은 고난을 운명론적인 자세로 받아들이면서, 삶 자체가 아름다우니 잘살아 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마지막 부분에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염원까지 표현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서 학예사는 박사 학위를 수료하고, 다른 연구소를 다니다가 우연히 한글박물관에 입사해 이번에 첫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큰 예산이 투입된 전시인데다, 학계 고증을 거쳐야 하는 새로운 기획 전시인 만큼 어려운 부분도 많았고, 감사한 분들도 많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서 동료 김미미 학예연구사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데, ‘함께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로도 너무 든든하다’고 말해 주고 싶네요. 이번 전시준비로 아이들에게 신경을 못 쓴 부분도 있었는데, 늘 개인적으로 연락해주셔서 엄마 노릇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신 제 아이들의 어린이집 선생님에게도 감사합니다. 전시 기간 내내 ‘홀아비’처럼 아이들을 돌본 남편에게는 미안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내방가사 : 가사는 4음보의 운율로 시조와 다르게 무한히 길어질 수 있다. 4음보 이외에는 별다른 형식적 규칙이 없기 때문에, 한글을 아는 여성들은 쉽게 가사 창작을 할 수 있었다. 여성들이 창작한 가사를 내방가사 또는 규방가사라고 부른다.
[출처=국립한글박물관]

코로나19로 인한 재택 근무 권장, 자가 격리 때문에 가정에서 여성들의 일과 책임이 더 늘어난 연초에, 전시장을 찾아 편안한 4음보의 운율에 귀 기울이면서 ‘내방가사’ 매력에 빠져 볼 것을 서 학예사는 강력하게 추천했습니다. 참고로 전시 기간은 4월 10일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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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내방가사’ 전시회…한글로 뽐낸 여성 주체성:서주연 국립한글박물관 학예사 인터뷰
    • 입력 2022-01-08 08:02:08
    취재K

한글로 서로 소통한 조선 시대 여성들의 기록유산 전시가 국립한글박물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직접 가보고 난 뒤, 기획 취지가 궁금해져서 ‘이내말삼 드러보소, 내방가사’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한 학예사를 만났습니다.

2015년 1월부터 한글박물관에서 일을 시작한 서주연 학예사 (위 사진)는 “ 조선 시대 여성들이 우리말, 한글로 주체적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깊은 정서를 담아낸 내방가사는 요즘 봐도 의미가 크다”며 “읽기만 해도 의미가 바로 느껴지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돌려 돌려 글로 속내를 표현한 작품도 있는데, 대부분 그 다양함에 놀라고 감동을 한다”고 밝혔습니다.

현존하는 내방가사는 주로 조선 시대 여성의 창작품이기 때문에 당시 그들의 삶과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 특징. 이 때문에 기록 역사물로 가치가 큰데, 내방가사는 주로 영남(嶺南) 지방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서 학예사는 “특히 한자로 주로 기록했던 남성들의 가사와는 다르게 한글만을 사용해 줄글 형태(전시품들은 대부분 세로 쓰기로 됨)로 가사를 적어낸 것도 특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내방가사(内房歌辭)란 개념이 생소한 분들이라도 ‘규방문학’(閨房文學)이나 ‘규중가사’(閨中歌辭)란 명칭은 예전 수업 시간에 들어본 적이 있을 텐데, 당시 생활공간이자 소재로서의 ‘내방’을 중시하면서 내방가사란 명칭도 함께 쓰이고 있다고.

이 전시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펼쳐지는 여성들의 희로애락을 담은 ‘1부 내방 안에서’, 근대와 식민지라는 격동의 시대에 직면한 여상들의 삶과 생각을 마주하는 ‘2부 세상 밖으로’ 등으로 이뤄져 있는데, 현대적인 웹툰 기법과 영상을 다양하게 활용해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이번 전시에 제일 처음 나오는 ‘쌍벽가’를 자세히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90% 이상이 작자 미상인 내방가사에서 작자가 연안 이씨로 명확하게 밝혀진 굉장히 귀한 자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쌍벽(雙璧)은 두 개의 구슬 즉, 우열을 가리기 힘든 둘을 가리킬 때 쓰는 말로 풍산 류씨 가문의 두 아들 류이좌와 조카 류 상조(柳相祖)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연안 이 씨가 류씨 가문의 두 남자가 벼슬에 급제하자, 그 기쁨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가사를 지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성경현전 배어 있고 제자백가 입에 있으니
평생 궁박했지만 의연하기도 의연했다
한양과 안동으로 오가며 삼천지교 행했구나 <쌍벽가> 중



서 학예사는 또 “쌍벽가의 작가인 ‘연안 이씨’가 자신을 성인의 경과 현인의 글을 꿰고 있고 제자백가를 술술 풀어낼 수 있는 학식을 가졌다고 묘사하는데, 엄청난 자존감이 엿보인다”며 “또 평생 가난했지만, 품위를 지키며 살았으며, 한양과 안동을 오가며 자식을 키운 자신을 맹모에 비교하며 자신 스스로 높이는 것도 주목할 만한 내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반인들은 조선 여성이 대부분 이름 없는 존재로 조용히 살다 간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이 전시를 통해서 여성 자신이 살아온 삶을 당당히 가사로 적어 세상에 알렸다는 점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조선 후기 여성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진취적이고 당차게 자신들의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보고 가신다면 10개월 넘는 기간 동안 힘들게 준비한 전시 내용과 의미를 다 이해하고 가시는 것입니다.”

물론 기구한 운명을 한탄하는 글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덴동어미화전가’ 는 4번이나 결혼을 했지만, 남편이 모두 죽고 불에 덴 장애 아이를 홀로 키워야 하는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덴동어미로 불리는 여성은 온갖 고난에 굴하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하는 강한 생명력을 글을 통해 드러내고 있습니다. 전시장에서는 이를 섬세한 색감의 ‘영상’으로 재해석해 매우 쉽게 풀어 놓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저자인 여성은 고난을 운명론적인 자세로 받아들이면서, 삶 자체가 아름다우니 잘살아 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마지막 부분에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염원까지 표현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서 학예사는 박사 학위를 수료하고, 다른 연구소를 다니다가 우연히 한글박물관에 입사해 이번에 첫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큰 예산이 투입된 전시인데다, 학계 고증을 거쳐야 하는 새로운 기획 전시인 만큼 어려운 부분도 많았고, 감사한 분들도 많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서 동료 김미미 학예연구사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데, ‘함께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로도 너무 든든하다’고 말해 주고 싶네요. 이번 전시준비로 아이들에게 신경을 못 쓴 부분도 있었는데, 늘 개인적으로 연락해주셔서 엄마 노릇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신 제 아이들의 어린이집 선생님에게도 감사합니다. 전시 기간 내내 ‘홀아비’처럼 아이들을 돌본 남편에게는 미안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내방가사 : 가사는 4음보의 운율로 시조와 다르게 무한히 길어질 수 있다. 4음보 이외에는 별다른 형식적 규칙이 없기 때문에, 한글을 아는 여성들은 쉽게 가사 창작을 할 수 있었다. 여성들이 창작한 가사를 내방가사 또는 규방가사라고 부른다.
[출처=국립한글박물관]

코로나19로 인한 재택 근무 권장, 자가 격리 때문에 가정에서 여성들의 일과 책임이 더 늘어난 연초에, 전시장을 찾아 편안한 4음보의 운율에 귀 기울이면서 ‘내방가사’ 매력에 빠져 볼 것을 서 학예사는 강력하게 추천했습니다. 참고로 전시 기간은 4월 10일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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