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행 사고 잇따라 2명 숨져…“한낮에도 역주행, 구조적 문제”

입력 2022.01.11 (07: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 7일 새벽 1시쯤 경남 창원시 진해구 2번 국도 부산 방향을 달리는 차량 옆으로 역주행 차량이 지나가는 장면. (경남경찰청 제공)지난 7일 새벽 1시쯤 경남 창원시 진해구 2번 국도 부산 방향을 달리는 차량 옆으로 역주행 차량이 지나가는 장면. (경남경찰청 제공)

지난 7일 새벽 1시쯤, 경남 창원시 진해구 2번 국도에서 부산 방향으로 달리던 승용차 앞으로 역주행 차량이 다가왔습니다.

놀란 운전자는 속도를 늦추고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려 역주행 차량과 충돌을 피한 뒤 곧장 112에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1분여 뒤, 역주행 차량은 결국 마주 오던 다른 차량과 충돌했습니다.

사고 충격으로 두 차량에 불이 붙었습니다.

이 사고로 역주행 차량 운전자 30대 여성과 맞은편에서 정상 주행하던 승용차 운전자 50대 여성이 숨졌습니다.

지난 7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서 역주행 차량과 부딪친 승용차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창원소방본부 제공)지난 7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서 역주행 차량과 부딪친 승용차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창원소방본부 제공)

경찰의 CCTV 분석 결과 역주행 차량은 사고 지점으로부터 6㎞ 정도 떨어진 교차로에서 반대 방향으로 진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경찰은 음주운전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 사고 구간 주변 도로 가보니…'한낮에도 역주행'

도로를 관리하는 창원시 진해구청 측은 사고가 난 2번 국도의 모든 진입 구간에 역주행을 막을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도로 구조나 시설 때문에 발생한 역주행 사고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취재진이 현장에 나가봤습니다.

사고가 난 도로의 주요 진출입로에 역주행 위험은 없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고가 난 지점으로부터 약 10㎞ 구간에 있는 진출입로를 모두 살펴봤습니다.

먼저 진해구 두동지구로 내려가는 출구로 차를 몰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정상 주행하던 취재진의 차 앞으로 SUV 대가 역주행으로 도로에 진입하고 있었습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2번 국도에서 두동지구로 내려가는 교차로에서 SUV가 역주행하고 있다.경남 창원시 진해구 2번 국도에서 두동지구로 내려가는 교차로에서 SUV가 역주행하고 있다.

취재진의 차와 맞닥뜨린 SUV 운전자는 비상등을 켠 채 후진으로 황급히 진입로를 빠져나갔습니다.

취재진의 차량과 만나지 않았다면 곧장 큰 도로로 진입했을 위험성도 있었습니다.

잠시 뒤, 같은 진입로에 또 한 대의 승용차가 역주행을 시도했습니다.

역주행 차량 운전자는 "큰길로 나가려고 길이 있지 않겠나 해서 여기로 돌아가려 했는데 일방통행이었다. 한 번씩 오는데도 헷갈린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승용차는 정상 주행하는 차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차를 돌려 나갔습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2번 국도에서 두동지구로 내려가는 교차로에서 승용차가 역주행하고 있다.경남 창원시 진해구 2번 국도에서 두동지구로 내려가는 교차로에서 승용차가 역주행하고 있다.

이처럼 한낮에도 역주행 차량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도, 교차로에는 임시로 세워둔 '진입 금지' 표지판 외에 다른 시설은 따로 설치돼 있지 않았습니다.

이마저도 글씨가 다 지워져 있어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한 교차로에 훼손된 ‘진입금지’ 팻말이 세워져 있다.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한 교차로에 훼손된 ‘진입금지’ 팻말이 세워져 있다.

다음으로 지난 7일 사고 차량이 진입했던 진해구 남양동 교차로로 가봤습니다.

정면에서 봤을 때 우회전하면 2번 국도와 만나는 정주행, 핸들을 조금만 더 틀어 좌회전하면 역주행이 되는 복잡한 구조였습니다.

지난 7일 역주행 차량이 진입한 창원시 진해구 남양동의 한 교차로.지난 7일 역주행 차량이 진입한 창원시 진해구 남양동의 한 교차로.

하지만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도, 주행 유도선도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좌회전과 우회전이 만나는 구간에 '진입 금지' 표지판이 설치돼 있었지만, 어느 방향으로 진입하지 말라는 내용인지 알기 힘든 구조였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운전자는 "왼쪽과 오른쪽 모두 이정표가 없고 길이 많이 휘어져 있어 초행길이나 야간에는 반대 방향으로 올라갈 위험성이 크다"라고 말했습니다.

■ "도로 구조·시설 개선해 역주행 사고 막아야"

역주행 교통사고 사망률은 전체 교통사고 사망률보다 3배 이상 높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4~2018년 역주행이 반복적으로 발생한 전국 105곳을 조사했습니다.

이 가운데 88곳을 개선 대상으로 선정했는데 '노면 표시가 제대로 안 된 곳'이 35.2%, '안전표지가 미흡한 곳'이 21.6%를 차지했습니다.

역주행 사고가 잦은 곳에는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최근 역주행 음주 사고가 난 경남 거제시 양정터널 앞에 거제시 등 관계기관이 역주행 방지 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거제시 제공)최근 역주행 음주 사고가 난 경남 거제시 양정터널 앞에 거제시 등 관계기관이 역주행 방지 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거제시 제공)

앞서 지난달 음주 역주행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경남 거제 양정터널에는 사고 이후 거제시와 관계 기관이 도로 시설물을 보강하는 작업에 나섰습니다.

관계 기관은 양정터널 부근 차량 유도선 도색을 새로 하고, 시선 유도봉을 추가로 설치했습니다.

또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역주행 방지 경보시설 설치, 통행체계 변경 등도 검토할 계획입니다.

전문가들은 사고가 나기 전에 미리 도로의 사정을 잘 아는 경찰과 자치단체,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 역주행 위험 구간을 선정하고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어디가 위험한지 이용자들이 직접 경험을 통해 제시하고, 그곳을 우선 개선해도 상당히 큰 역주행 사고 감소 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취재가 시작되자 진해구청은 사고가 난 2번 국도와 연결된 모든 교차로에 역주행 위험은 없는지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연관 기사] 역주행 사고 2명 숨져…“한낮에도 역주행, 구조적 문제”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역주행 사고 잇따라 2명 숨져…“한낮에도 역주행, 구조적 문제”
    • 입력 2022-01-11 07:00:05
    취재K
지난 7일 새벽 1시쯤 경남 창원시 진해구 2번 국도 부산 방향을 달리는 차량 옆으로 역주행 차량이 지나가는 장면. (경남경찰청 제공)
지난 7일 새벽 1시쯤, 경남 창원시 진해구 2번 국도에서 부산 방향으로 달리던 승용차 앞으로 역주행 차량이 다가왔습니다.

놀란 운전자는 속도를 늦추고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려 역주행 차량과 충돌을 피한 뒤 곧장 112에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1분여 뒤, 역주행 차량은 결국 마주 오던 다른 차량과 충돌했습니다.

사고 충격으로 두 차량에 불이 붙었습니다.

이 사고로 역주행 차량 운전자 30대 여성과 맞은편에서 정상 주행하던 승용차 운전자 50대 여성이 숨졌습니다.

지난 7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서 역주행 차량과 부딪친 승용차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창원소방본부 제공)
경찰의 CCTV 분석 결과 역주행 차량은 사고 지점으로부터 6㎞ 정도 떨어진 교차로에서 반대 방향으로 진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경찰은 음주운전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 사고 구간 주변 도로 가보니…'한낮에도 역주행'

도로를 관리하는 창원시 진해구청 측은 사고가 난 2번 국도의 모든 진입 구간에 역주행을 막을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도로 구조나 시설 때문에 발생한 역주행 사고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취재진이 현장에 나가봤습니다.

사고가 난 도로의 주요 진출입로에 역주행 위험은 없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고가 난 지점으로부터 약 10㎞ 구간에 있는 진출입로를 모두 살펴봤습니다.

먼저 진해구 두동지구로 내려가는 출구로 차를 몰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정상 주행하던 취재진의 차 앞으로 SUV 대가 역주행으로 도로에 진입하고 있었습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2번 국도에서 두동지구로 내려가는 교차로에서 SUV가 역주행하고 있다.
취재진의 차와 맞닥뜨린 SUV 운전자는 비상등을 켠 채 후진으로 황급히 진입로를 빠져나갔습니다.

취재진의 차량과 만나지 않았다면 곧장 큰 도로로 진입했을 위험성도 있었습니다.

잠시 뒤, 같은 진입로에 또 한 대의 승용차가 역주행을 시도했습니다.

역주행 차량 운전자는 "큰길로 나가려고 길이 있지 않겠나 해서 여기로 돌아가려 했는데 일방통행이었다. 한 번씩 오는데도 헷갈린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승용차는 정상 주행하는 차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차를 돌려 나갔습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2번 국도에서 두동지구로 내려가는 교차로에서 승용차가 역주행하고 있다.
이처럼 한낮에도 역주행 차량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도, 교차로에는 임시로 세워둔 '진입 금지' 표지판 외에 다른 시설은 따로 설치돼 있지 않았습니다.

이마저도 글씨가 다 지워져 있어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한 교차로에 훼손된 ‘진입금지’ 팻말이 세워져 있다.
다음으로 지난 7일 사고 차량이 진입했던 진해구 남양동 교차로로 가봤습니다.

정면에서 봤을 때 우회전하면 2번 국도와 만나는 정주행, 핸들을 조금만 더 틀어 좌회전하면 역주행이 되는 복잡한 구조였습니다.

지난 7일 역주행 차량이 진입한 창원시 진해구 남양동의 한 교차로.
하지만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도, 주행 유도선도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좌회전과 우회전이 만나는 구간에 '진입 금지' 표지판이 설치돼 있었지만, 어느 방향으로 진입하지 말라는 내용인지 알기 힘든 구조였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운전자는 "왼쪽과 오른쪽 모두 이정표가 없고 길이 많이 휘어져 있어 초행길이나 야간에는 반대 방향으로 올라갈 위험성이 크다"라고 말했습니다.

■ "도로 구조·시설 개선해 역주행 사고 막아야"

역주행 교통사고 사망률은 전체 교통사고 사망률보다 3배 이상 높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4~2018년 역주행이 반복적으로 발생한 전국 105곳을 조사했습니다.

이 가운데 88곳을 개선 대상으로 선정했는데 '노면 표시가 제대로 안 된 곳'이 35.2%, '안전표지가 미흡한 곳'이 21.6%를 차지했습니다.

역주행 사고가 잦은 곳에는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최근 역주행 음주 사고가 난 경남 거제시 양정터널 앞에 거제시 등 관계기관이 역주행 방지 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거제시 제공)
앞서 지난달 음주 역주행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경남 거제 양정터널에는 사고 이후 거제시와 관계 기관이 도로 시설물을 보강하는 작업에 나섰습니다.

관계 기관은 양정터널 부근 차량 유도선 도색을 새로 하고, 시선 유도봉을 추가로 설치했습니다.

또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역주행 방지 경보시설 설치, 통행체계 변경 등도 검토할 계획입니다.

전문가들은 사고가 나기 전에 미리 도로의 사정을 잘 아는 경찰과 자치단체,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 역주행 위험 구간을 선정하고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어디가 위험한지 이용자들이 직접 경험을 통해 제시하고, 그곳을 우선 개선해도 상당히 큰 역주행 사고 감소 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취재가 시작되자 진해구청은 사고가 난 2번 국도와 연결된 모든 교차로에 역주행 위험은 없는지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연관 기사] 역주행 사고 2명 숨져…“한낮에도 역주행, 구조적 문제”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