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확대…‘주민보호체계’란?

입력 2022.01.1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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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모습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모습

'블랙 스완'

일어날 가능성이 극히 드물지만 한 번 일어날 경우 엄청난 충격과 파급을 미치는 사건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어나는 방사선 누출사고가 그렇습니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를 떠올린다면 이해가 잘 되실 겁니다.


■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계기…'방사선 비상계획구역' 확대 개편

우리나라도 원전 사고에 대비해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을 설정해두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원전에서 방사선 누출 사고가 났을 때를 가정해 미리 주민 보호 대책을 세우는 대상 지역을 말합니다.

원래 우리나라의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은 원전 반경 8~10km였습니다. 그러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죠. 당시 원전에서 30km 넘게 떨어진 지역에서도 방사선 누출 피해가 실제로 확인됐습니다.

인접 국가이자 세계 최대 원전 밀집 지역인 우리나라는 이 사고를 계기로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을 확대합니다. 이 구역을 예방적 보호조치구역과 긴급 보호조치 계획구역 2단계로 나누고, 범위도 넓혔습니다.

2022년 이전 방사선 비상게획구역을 나타낸 부산시 지도2022년 이전 방사선 비상게획구역을 나타낸 부산시 지도

예방적 보호조치구역은 원전 반경 3~5km로, 원전과 아주 가까워 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주민을 대피시킵니다. 긴급 보호조치 계획구역은 원전 반경 20~30km로, 방사능 영향평가와 환경 감시를 거쳐 주민 보호 조치를 합니다.

원전과 더 가까운 구역에 '예방'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더 먼 구역에 '긴급'이라는 표현이 쓰여 헷갈리실텐데요. 국제원자력기구의 용어를 그대로 가져온 탓입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수년 전부터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용어를 바꿀 계획이 있다고 밝혔지만 여태 그대로 쓰이고 있습니다.


■ 부산시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확대…"늦었지만 환영"

부산에는 고리1~4호기와 신고리 1~2호기 등 총 6기의 원전이 있습니다. 부산시는 그동안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을 이들 원전 반경 20~21km로 유지해왔습니다. 법이 정한 최소한의 범위입니다. 너무 많은 인구가 구역에 포함되면 실효성 있는 보호 대책을 세울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곧 원전 사고가 나면 보호해야 할 주민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겠죠. 부산시가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부산시민 10명 중 8명이 구역 확대에 찬성 뜻을 냈습니다. 결국 부산시는 지난해 7월 원자력안전위원회에 확대안을 제출했고, 지난달 28일 승인을 받았습니다.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확대 논의를 촉발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지 꼬박 10년 만인 데다, 원전이 있는 자치단체 중 가장 늦은 결정이었습니다. 이로써 부산 인구의 70%인 235만여 명이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에 포함됐습니다.


■ 분주해진 부산시…5년 간 148억 들여 후속 조치

부산시는 앞으로 5년 동안 148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구역을 확대하기 위한 후속 조치를 합니다. 당장 올해부터 방재 계획을 다시 세우고, 현장 행동 지침을 마련해야 합니다. 전담 인력과 장비, 물자도 확보해야 하고, 이걸 비축할 창고도 짓습니다. 주민 훈련과 교육도 시작합니다.

부산 기장군 주민들이 고리 원전 사고 발생을 가정해 대피 훈련을 하는 모습부산 기장군 주민들이 고리 원전 사고 발생을 가정해 대피 훈련을 하는 모습

가장 핵심은 주민 보호 체계를 구축하는 겁니다. 여기에 전체 예산의 절반 가량이 투입되는데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구호소가 있었지만, 주민들은 제대로 대피하지 못했습니다. 원전 사고는 일반 자연재난과 달라서 피해 지역이 넓고 대피할 인원도 훨씬 많기 때문인데요.

이 체계를 구축하면 바람 방향 같은 기상이나 교통 상황 등 여러 조건을 반영해 대피 경로와 구호소를 정할 수 있습니다. 또 인력과 물자도 상황에 맞게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습니다. 울산에서는 이미 지난해 비슷한 체계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는데요. 부산시도 이를 참고해 5년 안에 과학적인 대피 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입니다.


■ 국비 요청했지만 원안위 '묵묵부답'…부산시 적극 나서야

문제는 예산입니다. 부산시는 전체 예산 가운데 45%가량을 국비로 끌어쓴다는 계획입니다. 김갑용 부산시 원자력안전과장은 " 원전 사업은 국가 사업이기 때문에 거기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한 책임은 국가도 일정 부분 져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필요한 예산은 정부와 지자체가 분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부산시 원자력안전과부산시 원자력안전과

하지만 국비 확보 과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을 확대한 울산이나 경북 등에도 정부는 국비를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부산시가 행정안전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에 구역 확대에 필요한 예산 지원을 요청하는 공문을 전달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한 상황입니다. 부산시는 곧 실무진들을 직접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보내 협의에 나선다는 계획입니다.

박인영 부산시의원은 "박형준 부산시장이 직접 나서야 하는 부분이다. 시장이 지역 국회의원들과 협력해 중앙 정치권을 강하게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필요하다면 인근 자치단체와 공동 대응을 해서라도 국비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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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확대…‘주민보호체계’란?
    • 입력 2022-01-13 15:03:03
    취재K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모습
'블랙 스완'

일어날 가능성이 극히 드물지만 한 번 일어날 경우 엄청난 충격과 파급을 미치는 사건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어나는 방사선 누출사고가 그렇습니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를 떠올린다면 이해가 잘 되실 겁니다.


■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계기…'방사선 비상계획구역' 확대 개편

우리나라도 원전 사고에 대비해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을 설정해두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원전에서 방사선 누출 사고가 났을 때를 가정해 미리 주민 보호 대책을 세우는 대상 지역을 말합니다.

원래 우리나라의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은 원전 반경 8~10km였습니다. 그러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죠. 당시 원전에서 30km 넘게 떨어진 지역에서도 방사선 누출 피해가 실제로 확인됐습니다.

인접 국가이자 세계 최대 원전 밀집 지역인 우리나라는 이 사고를 계기로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을 확대합니다. 이 구역을 예방적 보호조치구역과 긴급 보호조치 계획구역 2단계로 나누고, 범위도 넓혔습니다.

2022년 이전 방사선 비상게획구역을 나타낸 부산시 지도
예방적 보호조치구역은 원전 반경 3~5km로, 원전과 아주 가까워 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주민을 대피시킵니다. 긴급 보호조치 계획구역은 원전 반경 20~30km로, 방사능 영향평가와 환경 감시를 거쳐 주민 보호 조치를 합니다.

원전과 더 가까운 구역에 '예방'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더 먼 구역에 '긴급'이라는 표현이 쓰여 헷갈리실텐데요. 국제원자력기구의 용어를 그대로 가져온 탓입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수년 전부터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용어를 바꿀 계획이 있다고 밝혔지만 여태 그대로 쓰이고 있습니다.


■ 부산시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확대…"늦었지만 환영"

부산에는 고리1~4호기와 신고리 1~2호기 등 총 6기의 원전이 있습니다. 부산시는 그동안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을 이들 원전 반경 20~21km로 유지해왔습니다. 법이 정한 최소한의 범위입니다. 너무 많은 인구가 구역에 포함되면 실효성 있는 보호 대책을 세울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곧 원전 사고가 나면 보호해야 할 주민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겠죠. 부산시가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부산시민 10명 중 8명이 구역 확대에 찬성 뜻을 냈습니다. 결국 부산시는 지난해 7월 원자력안전위원회에 확대안을 제출했고, 지난달 28일 승인을 받았습니다.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확대 논의를 촉발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지 꼬박 10년 만인 데다, 원전이 있는 자치단체 중 가장 늦은 결정이었습니다. 이로써 부산 인구의 70%인 235만여 명이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에 포함됐습니다.


■ 분주해진 부산시…5년 간 148억 들여 후속 조치

부산시는 앞으로 5년 동안 148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구역을 확대하기 위한 후속 조치를 합니다. 당장 올해부터 방재 계획을 다시 세우고, 현장 행동 지침을 마련해야 합니다. 전담 인력과 장비, 물자도 확보해야 하고, 이걸 비축할 창고도 짓습니다. 주민 훈련과 교육도 시작합니다.

부산 기장군 주민들이 고리 원전 사고 발생을 가정해 대피 훈련을 하는 모습
가장 핵심은 주민 보호 체계를 구축하는 겁니다. 여기에 전체 예산의 절반 가량이 투입되는데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구호소가 있었지만, 주민들은 제대로 대피하지 못했습니다. 원전 사고는 일반 자연재난과 달라서 피해 지역이 넓고 대피할 인원도 훨씬 많기 때문인데요.

이 체계를 구축하면 바람 방향 같은 기상이나 교통 상황 등 여러 조건을 반영해 대피 경로와 구호소를 정할 수 있습니다. 또 인력과 물자도 상황에 맞게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습니다. 울산에서는 이미 지난해 비슷한 체계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는데요. 부산시도 이를 참고해 5년 안에 과학적인 대피 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입니다.


■ 국비 요청했지만 원안위 '묵묵부답'…부산시 적극 나서야

문제는 예산입니다. 부산시는 전체 예산 가운데 45%가량을 국비로 끌어쓴다는 계획입니다. 김갑용 부산시 원자력안전과장은 " 원전 사업은 국가 사업이기 때문에 거기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한 책임은 국가도 일정 부분 져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필요한 예산은 정부와 지자체가 분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부산시 원자력안전과
하지만 국비 확보 과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을 확대한 울산이나 경북 등에도 정부는 국비를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부산시가 행정안전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에 구역 확대에 필요한 예산 지원을 요청하는 공문을 전달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한 상황입니다. 부산시는 곧 실무진들을 직접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보내 협의에 나선다는 계획입니다.

박인영 부산시의원은 "박형준 부산시장이 직접 나서야 하는 부분이다. 시장이 지역 국회의원들과 협력해 중앙 정치권을 강하게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필요하다면 인근 자치단체와 공동 대응을 해서라도 국비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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