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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에게 강요된 위문편지, 언제부터 왜 썼나
입력 2022.01.13 (16:39) 수정 2022.01.13 (18:18) 취재K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보낸 군부대 위문편지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일부 학생이 군인을 조롱하는 듯한 표현을 담은 편지가 인터넷에서 공개되면서, 부적절하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습니다.

이와 함께 학생들의 위문편지 작성 경위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여자 고등학교에서 강요하는 위문편지를 금지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미성년자인 여학생들에게 성인 남성을 위로하는 편지를 억지로 쓰게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겁니다.

어제(12일) 시작된 이 청원에는 하루 만에 10만 명이 서명했습니다.


이 학교의 감독기관인 서울교육청 시민 청원에도 "위문편지 강요 문화는 구태"라면서 즉각 폐지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하루 만에 약 2만 명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 일제강점기 조선인에게 강요된 '황군' 위문편지

학교에서 집단적으로 군대에 보내는 공식적인 위문편지는 일본에서 처음 등장해, 중·일 전쟁을 계기로 조선인에게 본격 강제된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을 연구한 김영순 박사는 '한국과 일본 어린이의 전쟁 인식'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1937년 중·일 전쟁 직후 군국주의 전시 체계가 가속화되면서 어린이의 자발적인 글쓰기가 편지 형식의 작문으로 바뀌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1937년 9월 21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황군 위문 작문 가작’. 학생이 중·일 전쟁에 나간 일본군에게 보낸 위문 편지 형식의 글이다.  이미지 출처 국립중앙도서관.1937년 9월 21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황군 위문 작문 가작’. 학생이 중·일 전쟁에 나간 일본군에게 보낸 위문 편지 형식의 글이다. 이미지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동화와 소년소설, 어린이 미담 기사 등을 담은 어린이란을 운영했는데, 중·일 전쟁 직후부터 어린이란은 전쟁과 군사에 관한 내용으로 방향이 바뀝니다.

그러면서 '전국 조선 보통학교 생도'를 대상으로 '황군 위문 작문'을 모집했습니다. '국가를 위해 잘 싸우고 있는 전사들을 격려하고 위문하는 글과 편지를 모집'한 겁니다. 매일신보는 공모에 응한 편지들을 전선의 군인들에 보내고, 그 가운데 뛰어난 글은 신문지상에 발표하고 상품을 주기도 했습니다.

김 박사는 이 시기 어린이들의 위문 편지에 '전쟁을 위한 미래의 용사로서 소년들 스스로가 인정하는 모습'이 처음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합니다.

조선총독부는 1937년 말에는 전국의 아동과 학생 100만 명을 대상으로 위문 글짓기 대회를 열고 이 가운데 30만 통을 선발해 전선으로 보내겠다고 발표해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위문 편지 쓰기는 일본어를 교육하고 "황군에 대한 감사의 관념과 애국심을 향상"시키기 위해 전시 내내 총독부 차원에서 전국에서 장려됐습니다.

일제강점기 위문 문화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미술사학자 서유리 박사는 조선인이 일본인에 징병되기 시작한 것이 1944년 말임을 고려하면, 대부분의 위문 편지는 일본인 '황군'을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또 위문 편지의 천편일률적인 내용과 형식을 볼 때, 실제 군인을 위로하기보다는 조선인 학생들에게 '황군'에 대한 '감사'와 '충성'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려는 황민화 교육, 규율 기제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분석합니다.


■ 위문그림, 위문공연 등 해방 후에도 지속

일제강점기 '황군'을 위로하는 활동은 위문 편지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군인들을 위로하는 물건을 만들어 보내거나 헌금, 그림을 보내기도 했고 공연 형식으로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서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1914년 애국부인회 조선지부는 전선의 군인에게 위로하는 글과 물건, 그림 등을 넣은 주머니인 '위문대(慰問袋)'를 만들어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일본인 이주 여성과 여학생, 간호사가 만들었지만, 조선인 여성들과 여학교도 차차 동원됐습니다.

총독부는 보통학교 미술 교육 시간에 '황군'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그림, '위문화'를 그리도록 학생들에게 강제하기도 했습니다. 위문 그림은 욱일승천기를 들고 있는 군인과 비행기, 전함 등이 주요 소재였고 '일본황군만세', '천황폐하만세'등의 구호가 더해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위문 문화는 해방 이후에는 그 대상은 달라졌지만 계속됐습니다. 1963년 베트남전 기간에는 한국과 베트남 현지에서 파월 장병을 위로하는 위문공연이 열렸는데, 공보부가 이를 지원했습니다. 교육당국은 교육청별로 위문 편지 할당량을 정해 학생들에게 편지를 쓰도록 했습니다.

강요된 위문편지가 부적절하다는 의견은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1965년 6월 5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육군 소위 윤창구 씨의 제안은, 지금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형식에 그친 위문편지>

이곳의 장병들은 금년초를 기해 많은 위문편지를 받고 감사해마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문편지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몇가지 같이 생각해보고 싶은 점이 있어 펜을 들었습니다.

첫째, 지금의 위문편지들은 각급 학교, 특히 국민학교에서 단체로 쓴 것이 대부분인데, 아주 성의 있게 써서 감동을 주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것은 편지로써 갖출 것도 다 갖추지 못한 것입니다. (하략)

둘째, 편지마다의 뻔한 문귀에서 느끼는 진심으로 위문하려는 이들의 뜻을 무색케하는 실정입니다. (중략) 근본적으로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참된 글이 써질 수 있겠는가가 의문입니다. 공통의 화제가 없는 사람끼리 무슨 반가운 소식이라도 전할 일이 있겠습니까?

본인이 제안하는 것은 시민 여러분이 각자의 친구, 친척들 중에 군에 나가있는 이들에게 편지를 자주 보내라고 서로 강조하자는 것입니다. '군인 친구에게 편지쓰기 운동'으로 '위문문 쓰기'를 대치하자는 것이지요.


■ 군 민주화와 함께 사라진 위문편지

이 같은 동원된 위문 편지가 사라진 것은 민주화 이후입니다. 5.16 군사쿠데타와 12.12. 쿠데타, 광주민주화 운동 등 군의 정치개입으로 군대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고조되자, 군대가 군사문화 청산에 나섰습니다.

1992년 12월 1일자 조선일보는 '위문편지 사라지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정부가 일선 부대에 '협조' 금지를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습니다. 일선부대가 교육기관이나 민간단체에 내무반 비품이나 식재료 등의 협조를 요청해왔는데, 6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이를 금지한 지시가 내려왔고 위문편지도 동시에 사라졌다는 겁니다.

이후 학교 단위의 위문편지는 각 부대와 직접 결연을 맺은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쓰였습니다. 이번에 논란이 된 해당 학교 역시 자매결연을 맺은 부대에 위문편지를 보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 학교는 입장문에서 "1961년부터 시작해 해마다 이어온 교육행사"였다면서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국군 장병 위문의 다양한 방안을 계속 강구하고, 본래의 취지와 목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라고 밝혔습니다.

# 참고문헌
김영순, 2010, 한국과 일본 어린이의 전쟁인식: 중일 전쟁 직후 매일신보와 소년 구락부에 게재된 소년소녀 작문을 중심으로, 아동청소년문학연구 6, 한국아동청소년문학학회
서유리, 2016, ‘위문화(慰問畵)’를 통한 전시 (戰時) 아동 규율: 영광공립보통학교 학생 위문화의 사례를 중심으로, 2016 하반기, 한국근현대미술사학
이진아, 2020, 베트남전 위문공연에 관한 젠더론적 연구, 사회와역사 125호, 한국사회사학회
  • 학생에게 강요된 위문편지, 언제부터 왜 썼나
    • 입력 2022-01-13 16:39:18
    • 수정2022-01-13 18:18:36
    취재K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보낸 군부대 위문편지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일부 학생이 군인을 조롱하는 듯한 표현을 담은 편지가 인터넷에서 공개되면서, 부적절하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습니다.

이와 함께 학생들의 위문편지 작성 경위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여자 고등학교에서 강요하는 위문편지를 금지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미성년자인 여학생들에게 성인 남성을 위로하는 편지를 억지로 쓰게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겁니다.

어제(12일) 시작된 이 청원에는 하루 만에 10만 명이 서명했습니다.


이 학교의 감독기관인 서울교육청 시민 청원에도 "위문편지 강요 문화는 구태"라면서 즉각 폐지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하루 만에 약 2만 명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 일제강점기 조선인에게 강요된 '황군' 위문편지

학교에서 집단적으로 군대에 보내는 공식적인 위문편지는 일본에서 처음 등장해, 중·일 전쟁을 계기로 조선인에게 본격 강제된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아동문학을 연구한 김영순 박사는 '한국과 일본 어린이의 전쟁 인식'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1937년 중·일 전쟁 직후 군국주의 전시 체계가 가속화되면서 어린이의 자발적인 글쓰기가 편지 형식의 작문으로 바뀌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1937년 9월 21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황군 위문 작문 가작’. 학생이 중·일 전쟁에 나간 일본군에게 보낸 위문 편지 형식의 글이다.  이미지 출처 국립중앙도서관.1937년 9월 21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황군 위문 작문 가작’. 학생이 중·일 전쟁에 나간 일본군에게 보낸 위문 편지 형식의 글이다. 이미지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동화와 소년소설, 어린이 미담 기사 등을 담은 어린이란을 운영했는데, 중·일 전쟁 직후부터 어린이란은 전쟁과 군사에 관한 내용으로 방향이 바뀝니다.

그러면서 '전국 조선 보통학교 생도'를 대상으로 '황군 위문 작문'을 모집했습니다. '국가를 위해 잘 싸우고 있는 전사들을 격려하고 위문하는 글과 편지를 모집'한 겁니다. 매일신보는 공모에 응한 편지들을 전선의 군인들에 보내고, 그 가운데 뛰어난 글은 신문지상에 발표하고 상품을 주기도 했습니다.

김 박사는 이 시기 어린이들의 위문 편지에 '전쟁을 위한 미래의 용사로서 소년들 스스로가 인정하는 모습'이 처음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합니다.

조선총독부는 1937년 말에는 전국의 아동과 학생 100만 명을 대상으로 위문 글짓기 대회를 열고 이 가운데 30만 통을 선발해 전선으로 보내겠다고 발표해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위문 편지 쓰기는 일본어를 교육하고 "황군에 대한 감사의 관념과 애국심을 향상"시키기 위해 전시 내내 총독부 차원에서 전국에서 장려됐습니다.

일제강점기 위문 문화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미술사학자 서유리 박사는 조선인이 일본인에 징병되기 시작한 것이 1944년 말임을 고려하면, 대부분의 위문 편지는 일본인 '황군'을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또 위문 편지의 천편일률적인 내용과 형식을 볼 때, 실제 군인을 위로하기보다는 조선인 학생들에게 '황군'에 대한 '감사'와 '충성'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려는 황민화 교육, 규율 기제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분석합니다.


■ 위문그림, 위문공연 등 해방 후에도 지속

일제강점기 '황군'을 위로하는 활동은 위문 편지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군인들을 위로하는 물건을 만들어 보내거나 헌금, 그림을 보내기도 했고 공연 형식으로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서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1914년 애국부인회 조선지부는 전선의 군인에게 위로하는 글과 물건, 그림 등을 넣은 주머니인 '위문대(慰問袋)'를 만들어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일본인 이주 여성과 여학생, 간호사가 만들었지만, 조선인 여성들과 여학교도 차차 동원됐습니다.

총독부는 보통학교 미술 교육 시간에 '황군'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그림, '위문화'를 그리도록 학생들에게 강제하기도 했습니다. 위문 그림은 욱일승천기를 들고 있는 군인과 비행기, 전함 등이 주요 소재였고 '일본황군만세', '천황폐하만세'등의 구호가 더해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위문 문화는 해방 이후에는 그 대상은 달라졌지만 계속됐습니다. 1963년 베트남전 기간에는 한국과 베트남 현지에서 파월 장병을 위로하는 위문공연이 열렸는데, 공보부가 이를 지원했습니다. 교육당국은 교육청별로 위문 편지 할당량을 정해 학생들에게 편지를 쓰도록 했습니다.

강요된 위문편지가 부적절하다는 의견은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1965년 6월 5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육군 소위 윤창구 씨의 제안은, 지금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형식에 그친 위문편지>

이곳의 장병들은 금년초를 기해 많은 위문편지를 받고 감사해마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문편지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몇가지 같이 생각해보고 싶은 점이 있어 펜을 들었습니다.

첫째, 지금의 위문편지들은 각급 학교, 특히 국민학교에서 단체로 쓴 것이 대부분인데, 아주 성의 있게 써서 감동을 주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것은 편지로써 갖출 것도 다 갖추지 못한 것입니다. (하략)

둘째, 편지마다의 뻔한 문귀에서 느끼는 진심으로 위문하려는 이들의 뜻을 무색케하는 실정입니다. (중략) 근본적으로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참된 글이 써질 수 있겠는가가 의문입니다. 공통의 화제가 없는 사람끼리 무슨 반가운 소식이라도 전할 일이 있겠습니까?

본인이 제안하는 것은 시민 여러분이 각자의 친구, 친척들 중에 군에 나가있는 이들에게 편지를 자주 보내라고 서로 강조하자는 것입니다. '군인 친구에게 편지쓰기 운동'으로 '위문문 쓰기'를 대치하자는 것이지요.


■ 군 민주화와 함께 사라진 위문편지

이 같은 동원된 위문 편지가 사라진 것은 민주화 이후입니다. 5.16 군사쿠데타와 12.12. 쿠데타, 광주민주화 운동 등 군의 정치개입으로 군대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고조되자, 군대가 군사문화 청산에 나섰습니다.

1992년 12월 1일자 조선일보는 '위문편지 사라지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정부가 일선 부대에 '협조' 금지를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습니다. 일선부대가 교육기관이나 민간단체에 내무반 비품이나 식재료 등의 협조를 요청해왔는데, 6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이를 금지한 지시가 내려왔고 위문편지도 동시에 사라졌다는 겁니다.

이후 학교 단위의 위문편지는 각 부대와 직접 결연을 맺은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쓰였습니다. 이번에 논란이 된 해당 학교 역시 자매결연을 맺은 부대에 위문편지를 보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 학교는 입장문에서 "1961년부터 시작해 해마다 이어온 교육행사"였다면서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국군 장병 위문의 다양한 방안을 계속 강구하고, 본래의 취지와 목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라고 밝혔습니다.

# 참고문헌
김영순, 2010, 한국과 일본 어린이의 전쟁인식: 중일 전쟁 직후 매일신보와 소년 구락부에 게재된 소년소녀 작문을 중심으로, 아동청소년문학연구 6, 한국아동청소년문학학회
서유리, 2016, ‘위문화(慰問畵)’를 통한 전시 (戰時) 아동 규율: 영광공립보통학교 학생 위문화의 사례를 중심으로, 2016 하반기, 한국근현대미술사학
이진아, 2020, 베트남전 위문공연에 관한 젠더론적 연구, 사회와역사 125호, 한국사회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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