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 김정은 상대 손해배상금 받을 수 있나?

입력 2022.01.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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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 결정 관철을 위한 평양시 궐기대회가 열렸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지난 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 결정 관철을 위한 평양시 궐기대회가 열렸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 북한은 '국가'인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할 건지의 문제는 아직도 우리 사회와 법조계에서 하나로 떨어지는 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돼 있으니, 헌법상으로 북한은 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영토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는 집단일 뿐입니다.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남한과 함께 1991년 유엔(UN)에 동시 가입했습니다. 국제사회는 북한을 남한과 동등한 '국가'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1991년 체결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는 남북 관계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말입니다.


■ 국군포로, 북한·김정은 상대 손해배상 소송 제기

한국전쟁 때 북한에 억류됐다 2000년대 초 탈북한 국군포로 2명이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탄광 노동자 등으로 강제노역을 당했으니, 손해배상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2020년 7월에 우리 법원에서 판결 선고가 이뤄졌습니다.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이 국군포로 2명에게 각각 2,100만 원과 지연금을 위자료로 지급하라며, 국군포로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있습니다. 국제법에서 '국가'는 다른 국가에서 재판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법원이 일본이라는 국가를 상대로 재판을 열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북한을 국제법의 적용을 받는 '국가'로 인정할 것인가? 이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가 당시 재판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피고인 북한과 김정은이 이 재판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재판부가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이는 판결을 내린 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기도 했습니다.

조선중앙TV의 간판 아나운서 리춘희조선중앙TV의 간판 아나운서 리춘희

■ 조선중앙TV 저작권료는 누구 것?

국군포로들은 재판에서 이겼지만, 북한과 김정은이 배상금을 지급할 리 없습니다. 이들은 다시 국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번엔 피고가 남한의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라는 단체입니다.

경문협은 조선중앙TV를 운영하는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조선영화수출입사,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등 3개의 기관, 북한 소설가 등 17명의 개인과 남한 내 판권 계약을 맺은 곳입니다. 북한의 3개 기관, 17명 개인의 저작권을 남한에서 독점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계약입니다.

KBS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들은 취재와 뉴스 제작을 위해 조선중앙TV 영상을 활용하면서 저작권료를 경문협에 지급하고, 경문협은 국내 매체들이 지불한 돈을 모아 다시 북측에 지급합니다.

국군포로들은 이 저작권료로 손해배상금을 내라고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조선중앙TV라는 국영기업, 북한의 소설가 등의 개별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고, 모두 '북한'이라는 국가의 소유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 셈입니다.

우리나라에선 국영기업도 독립된 인격체로 보기 때문에 국가의 '빚'을 대신 갚으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북한도 '저작권법'을 만들어 개인의 저작권은 그 개인에게 귀속되고, 저작권을 상속하거나 양도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 놓고 있습니다. 북한의 '저작권법'을 국내 법원에서 인정할 건지의 문제도 중요한 쟁점 중 하나입니다.


■ 남북 간 투자보장 가능할까?

남북 간 체결된 투자보장 협약과의 관계도 재판의 주요 쟁점 중 하나입니다.

남북은 1991년 체결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토대로 2000년 '남북 사이의 투자보장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했습니다. 상대방에 투자한 투자자산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입니다. 이때부터 남북 저작권 교류도 시작됐습니다.

남북 간 합의한 투자보장 협약이 먼저냐, 국내법상의 손해배상 책임이 우선이냐? 재판 결과는 이후 남북 간 교류 협력의 근간을 바꿀 만큼 파장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 교류 협력 관련 단체는 물론 법조계의 이목이 쏠려 있는 이 사건은, 오늘(14일) 서울동부지법에서 판결 선고가 내려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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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군포로, 김정은 상대 손해배상금 받을 수 있나?
    • 입력 2022-01-14 07:00:21
    취재K
지난 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 결정 관철을 위한 평양시 궐기대회가 열렸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 북한은 '국가'인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할 건지의 문제는 아직도 우리 사회와 법조계에서 하나로 떨어지는 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돼 있으니, 헌법상으로 북한은 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영토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는 집단일 뿐입니다.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남한과 함께 1991년 유엔(UN)에 동시 가입했습니다. 국제사회는 북한을 남한과 동등한 '국가'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1991년 체결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는 남북 관계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말입니다.


■ 국군포로, 북한·김정은 상대 손해배상 소송 제기

한국전쟁 때 북한에 억류됐다 2000년대 초 탈북한 국군포로 2명이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탄광 노동자 등으로 강제노역을 당했으니, 손해배상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2020년 7월에 우리 법원에서 판결 선고가 이뤄졌습니다.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이 국군포로 2명에게 각각 2,100만 원과 지연금을 위자료로 지급하라며, 국군포로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있습니다. 국제법에서 '국가'는 다른 국가에서 재판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법원이 일본이라는 국가를 상대로 재판을 열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북한을 국제법의 적용을 받는 '국가'로 인정할 것인가? 이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가 당시 재판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피고인 북한과 김정은이 이 재판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재판부가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이는 판결을 내린 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기도 했습니다.

조선중앙TV의 간판 아나운서 리춘희
■ 조선중앙TV 저작권료는 누구 것?

국군포로들은 재판에서 이겼지만, 북한과 김정은이 배상금을 지급할 리 없습니다. 이들은 다시 국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번엔 피고가 남한의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라는 단체입니다.

경문협은 조선중앙TV를 운영하는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조선영화수출입사,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등 3개의 기관, 북한 소설가 등 17명의 개인과 남한 내 판권 계약을 맺은 곳입니다. 북한의 3개 기관, 17명 개인의 저작권을 남한에서 독점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계약입니다.

KBS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들은 취재와 뉴스 제작을 위해 조선중앙TV 영상을 활용하면서 저작권료를 경문협에 지급하고, 경문협은 국내 매체들이 지불한 돈을 모아 다시 북측에 지급합니다.

국군포로들은 이 저작권료로 손해배상금을 내라고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조선중앙TV라는 국영기업, 북한의 소설가 등의 개별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고, 모두 '북한'이라는 국가의 소유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 셈입니다.

우리나라에선 국영기업도 독립된 인격체로 보기 때문에 국가의 '빚'을 대신 갚으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북한도 '저작권법'을 만들어 개인의 저작권은 그 개인에게 귀속되고, 저작권을 상속하거나 양도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 놓고 있습니다. 북한의 '저작권법'을 국내 법원에서 인정할 건지의 문제도 중요한 쟁점 중 하나입니다.


■ 남북 간 투자보장 가능할까?

남북 간 체결된 투자보장 협약과의 관계도 재판의 주요 쟁점 중 하나입니다.

남북은 1991년 체결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토대로 2000년 '남북 사이의 투자보장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했습니다. 상대방에 투자한 투자자산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입니다. 이때부터 남북 저작권 교류도 시작됐습니다.

남북 간 합의한 투자보장 협약이 먼저냐, 국내법상의 손해배상 책임이 우선이냐? 재판 결과는 이후 남북 간 교류 협력의 근간을 바꿀 만큼 파장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 교류 협력 관련 단체는 물론 법조계의 이목이 쏠려 있는 이 사건은, 오늘(14일) 서울동부지법에서 판결 선고가 내려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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