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급발진 판결…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입력 2022.01.1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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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부산 남구의 한 아파트 앞 교차로에서 현대자동차의 SUV 싼타페가 3차로에 주차되어 있던 트레일러의 후미에 추돌했다. 이 사고로 싼타페에 탑승해 있던 일가족 5명 중 운전자를 제외한 4명 사망했다.2016년 8월 부산 남구의 한 아파트 앞 교차로에서 현대자동차의 SUV 싼타페가 3차로에 주차되어 있던 트레일러의 후미에 추돌했다. 이 사고로 싼타페에 탑승해 있던 일가족 5명 중 운전자를 제외한 4명 사망했다.

SUV를 타고 있던 일가족 4명이 숨진 사고와 관련해 법원이 운전자의 급발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급발진이라고 여길 만큼의 증거가 없다며 운전자가 차량 제조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 소송을 기각했습니다.

같은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은 당시 운전자 과실이 입증되지 않는다며 운전자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린 바 있습니다. 즉 운전자의 과실보다 차량 결함에 무게가 실렸던 것입니다. 이 형사적 판단과 이번 민사소송의 판결이 배치된 셈입니다. 게다가 유사한 사고에 대해 다른 법원은 급발진을 인정한 판례도 있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문제의 사건은 2016년 8월 2일에 발생했습니다. 60대 남성은 부인과 딸, 어린 손자 2명을 태우고 바닷가로 물놀이를 가던 중이었죠. 이들이 탄 싼타페가 부산 남구 감만동을 지날 때 갑자기 차가 속도를 높이더니 트레일러와 추돌했습니다.

이 사고로 운전자는 크게 다쳤고 가족 4명은 숨졌죠. 사고 차량의 블랙박스가 공개되며 이른바 '싼타페 사고'는 인터넷을 달궜습니다.

운전자는 약 27년의 운전 경력을 갖고 있었고, 택시기사 등 운전 업무를 장기간 맡아왔습니다. 그동안 사고를 낸 적도 없었죠. 어린 손자들을 태우고 있었다는 점에서 딱히 위험 운전을 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민사 "착오로 가속페달 밟았을 가능성"-형사 "단정하기 어렵다"

2016년 8월 부산 남구의 한 아파트 앞 교차로에서 현대자동차의 싼타페가 3차로에 주차되어 있던 트레일러의 후미에 추돌했다. 이 사고로 싼타페에 탑승해 있던 일가족 5명 중 운전자를 제외한 4명 사망했다.2016년 8월 부산 남구의 한 아파트 앞 교차로에서 현대자동차의 싼타페가 3차로에 주차되어 있던 트레일러의 후미에 추돌했다. 이 사고로 싼타페에 탑승해 있던 일가족 5명 중 운전자를 제외한 4명 사망했다.

유족은 자동차의 고압연료펌프 이상으로 연료가 새며 급발진이 발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책임을 물어 차량 제조사인 현대자동차와 고압연료펌프를 만든 보쉬를 상대로 100억 원 규모의 소송에 나섰습니다.

6년 만에 내려진 판결은 현대차와 보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부산지법 민사 6부는 사고 당시 싼타페의 브레이크 등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목격 차량 블랙박스 감정 결과를 들어 “(운전자가) 사고 당시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거나 착오로 가속페달을 밟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검찰은 브레이크등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해서 가속페달을 밟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운전자에게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이는 당시 현장검증에서 가속페달을 밟았다면 사고 당시 추정속도보다 훨씬 빠를 것으로 나왔기 때문인데요. 현장검증으로 입증해 인정까지 한 내용을 법원이 뒤집은 셈입니다.

■비슷한 사건에 '운전자 책임'-'제조사 책임' 엇갈린 판결

재판부는 유족들이 제시한 모의실험 결과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고압연료펌프에 문제가 생겨 정상보다 많은 연료가 연소실에 유입되면 급발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실험의 결론이었죠.

법원은 실험이 사고 발생 3개월가량이 지난 뒤에 진행된 것이란 점에 주목했습니다. 재판부는 “원고 측의 관리 소홀 등으로 손해배상책임 성립에 필요한 객관적인 증거가 상당 부분 훼손·상실되었다”며 “신뢰성을 인정할 수 없는 사감정 결과와 증언만으로 제조상 결함이 존재하거나 사고가 제조업자의 배타적인 지배하에 있는 영역에서 발생했다는 점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2020년 서울중앙지법 민사12부는 고속도로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사망한 60대 부부의 유족이 제기한 소송에서 급발진을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정상적으로 자동차를 운행하고 있던 상태”였다며 “자동차의 결함으로 인한 사고라고 판단”했습니다. 소비자에게 과실이 없다면 제조업자가 자신들의 결함이 아닌 다른 원인을 입증해야 한다는 법리를 적용한 판결이었습니다.

이 사건 역시 사고가 난 차의 브레이크등이 들어오지 않았는데요. 재판부는 “브레이크 등의 미작동만으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려고 시도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이 점을 들어 ‘싼타페 사고’의 법률 대리인인 변영철 변호사는 “소비자가 모든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건 가습기 살균제 사고 이후 개정된 제조물 책임법에도 맞지 않는다”며 “피해자가 맡긴 감정은 사감정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현대차가 참여하는 국과수 감정은 신뢰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싼타페 사고 유족 측은 항소해 상급심의 판단을 다시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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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엇갈린 급발진 판결…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 입력 2022-01-17 15:34:39
    취재K
2016년 8월 부산 남구의 한 아파트 앞 교차로에서 현대자동차의 SUV 싼타페가 3차로에 주차되어 있던 트레일러의 후미에 추돌했다. 이 사고로 싼타페에 탑승해 있던 일가족 5명 중 운전자를 제외한 4명 사망했다.
SUV를 타고 있던 일가족 4명이 숨진 사고와 관련해 법원이 운전자의 급발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급발진이라고 여길 만큼의 증거가 없다며 운전자가 차량 제조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 소송을 기각했습니다.

같은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은 당시 운전자 과실이 입증되지 않는다며 운전자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린 바 있습니다. 즉 운전자의 과실보다 차량 결함에 무게가 실렸던 것입니다. 이 형사적 판단과 이번 민사소송의 판결이 배치된 셈입니다. 게다가 유사한 사고에 대해 다른 법원은 급발진을 인정한 판례도 있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문제의 사건은 2016년 8월 2일에 발생했습니다. 60대 남성은 부인과 딸, 어린 손자 2명을 태우고 바닷가로 물놀이를 가던 중이었죠. 이들이 탄 싼타페가 부산 남구 감만동을 지날 때 갑자기 차가 속도를 높이더니 트레일러와 추돌했습니다.

이 사고로 운전자는 크게 다쳤고 가족 4명은 숨졌죠. 사고 차량의 블랙박스가 공개되며 이른바 '싼타페 사고'는 인터넷을 달궜습니다.

운전자는 약 27년의 운전 경력을 갖고 있었고, 택시기사 등 운전 업무를 장기간 맡아왔습니다. 그동안 사고를 낸 적도 없었죠. 어린 손자들을 태우고 있었다는 점에서 딱히 위험 운전을 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민사 "착오로 가속페달 밟았을 가능성"-형사 "단정하기 어렵다"

2016년 8월 부산 남구의 한 아파트 앞 교차로에서 현대자동차의 싼타페가 3차로에 주차되어 있던 트레일러의 후미에 추돌했다. 이 사고로 싼타페에 탑승해 있던 일가족 5명 중 운전자를 제외한 4명 사망했다.
유족은 자동차의 고압연료펌프 이상으로 연료가 새며 급발진이 발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책임을 물어 차량 제조사인 현대자동차와 고압연료펌프를 만든 보쉬를 상대로 100억 원 규모의 소송에 나섰습니다.

6년 만에 내려진 판결은 현대차와 보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부산지법 민사 6부는 사고 당시 싼타페의 브레이크 등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목격 차량 블랙박스 감정 결과를 들어 “(운전자가) 사고 당시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거나 착오로 가속페달을 밟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검찰은 브레이크등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해서 가속페달을 밟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운전자에게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이는 당시 현장검증에서 가속페달을 밟았다면 사고 당시 추정속도보다 훨씬 빠를 것으로 나왔기 때문인데요. 현장검증으로 입증해 인정까지 한 내용을 법원이 뒤집은 셈입니다.

■비슷한 사건에 '운전자 책임'-'제조사 책임' 엇갈린 판결

재판부는 유족들이 제시한 모의실험 결과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고압연료펌프에 문제가 생겨 정상보다 많은 연료가 연소실에 유입되면 급발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실험의 결론이었죠.

법원은 실험이 사고 발생 3개월가량이 지난 뒤에 진행된 것이란 점에 주목했습니다. 재판부는 “원고 측의 관리 소홀 등으로 손해배상책임 성립에 필요한 객관적인 증거가 상당 부분 훼손·상실되었다”며 “신뢰성을 인정할 수 없는 사감정 결과와 증언만으로 제조상 결함이 존재하거나 사고가 제조업자의 배타적인 지배하에 있는 영역에서 발생했다는 점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2020년 서울중앙지법 민사12부는 고속도로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사망한 60대 부부의 유족이 제기한 소송에서 급발진을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정상적으로 자동차를 운행하고 있던 상태”였다며 “자동차의 결함으로 인한 사고라고 판단”했습니다. 소비자에게 과실이 없다면 제조업자가 자신들의 결함이 아닌 다른 원인을 입증해야 한다는 법리를 적용한 판결이었습니다.

이 사건 역시 사고가 난 차의 브레이크등이 들어오지 않았는데요. 재판부는 “브레이크 등의 미작동만으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려고 시도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이 점을 들어 ‘싼타페 사고’의 법률 대리인인 변영철 변호사는 “소비자가 모든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건 가습기 살균제 사고 이후 개정된 제조물 책임법에도 맞지 않는다”며 “피해자가 맡긴 감정은 사감정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현대차가 참여하는 국과수 감정은 신뢰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싼타페 사고 유족 측은 항소해 상급심의 판단을 다시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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