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회장 사퇴는 중대재해처벌법 피하기 위한 꼼수?

입력 2022.01.1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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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정몽규 HDC회장, 현대산업개발 회장에서 사퇴하면서 지주회사와 HDC그룹 회장직은 유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되면 처벌받을 수 있는 직위만 내려놓아 논란




■현대산업개발 회장직'만'사퇴

"광주 사고 피해자와 가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이 사죄드립니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며 정몽규 회장이 머리를 숙였습니다.

정 회장은 지난해 6월의 광주 학동 재개발 구역 참사까지 거론하면서 두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했습니다. 책임지는 방법으로 제시된 것은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사퇴하는 것입니다.

처음 이 사실이 알려졌을 때는 그룹 경영에서 물러나 2선으로 후퇴하겠다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하지만 사과문 발표 직후 기자들과 이어진 질의 응답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기자) 회장직 사퇴하신다고 했는데, 계열회사 사내 이사직에서 모두 물러난다는 말씀인가요?

(정몽규 회장) 뭐. 경영자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현직에서는 물러나지만, 대주주로서 책무는 다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뭐 하여튼 지금 단계에서 고객과 이해관계자 신뢰회복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제가 향후 어떤 역할 할지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자) 대형사고 잇따라 터지는데 현산 시스템상 문제를 인정하는 것인지. 단지 도의적 책임만 인정해 물러나는 것인지요? 또 사퇴가 책임회피의 한 방법이라는 지적 나올 수 있는데,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인지 책임에 대해 어떻게 역할 하실 건지요?

(정몽규 회장) 그 뭐…. 지금 사고원인 조사를 정부 기관과 하고 있고, 아직 구조작업이 현재로선 진행 중. 우선적으로 되어야 될거 같고요. 그 후 원인 규명이 잇따라야 될 것 같습니다. 사퇴로서 책임을 벗어난다 생각지 않습니다. 대주주로서 하여튼 제가 할 수 있는 거 다 하고 책무를 회피한다 안한다가 중요한게 아니고 제일 먼저 고객분이랑 국민의 신뢰를 찾는 게 이 문제 해결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뭐 사퇴 뭐 책임 회피성 이런 사퇴라고는 생각 안 하고 뭐 하여튼 큰 사건이 벌어졌는데 원인 규명하는데 시간 상당히 걸리지 않을까 이렇게, 구조도 뭐 바로 될 것으로 생각하는데 워낙 사고 난 지점이 100m 이상이기 때문에 제 2차사고도 우려되고 구조도 지연되고 그래서 바로 말씀드려야 되는데 이렇게 좀 일주일가량 늦게 사죄하는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HDC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은 사퇴하지만, 지주회사인 HDC회장 직과 그룹 회장직은 유지한다"고 뜻을 설명했습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그룹 지주회사인 HDC가 지분 41.52%지배하고 있으며 HDC는 정몽규 회장 일가 측이 지분 39.12%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즉, 정 회장이 현산 회장직을 사퇴하더라도 정 회장일가가 현대산업개발을 지배하는 구조는 변화가 없습니다.

정몽규 회장 일가 측 →(39.12%) → HDC →(41.52%)→ HDC현대산업개발

■ 앞으로의 사고에 대한 처벌 피하기 위한 꼼수?

문제는 이러한 직책의 변동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의 사고에 대해서 처벌 대상 조항에서 벗어나게 되는 결과를 내게 된다는 점입니다.

1월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사고 발생 시에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한 처벌이 예정돼 있습니다. 처벌받는 대상은 경영책임자 등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2조 제9항
“경영책임자 등”이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

여기서 경영책임자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에 대해 변호사들도 해석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회사의 대표이사를 따진다면 총수 또는 오너는 이미 대표이사 명의를 다른 사람으로 해놓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처벌 대상에서 빠지기 때문입니다. 현대산업개발도 이미 대표이사 명의는 정 회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해설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경영책임자 등은...
형식상의 직위나 명칭과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이 안전 보건 확보의무 이행에 관한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을 가진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그가 경영책임자에 해당할 수 있음

즉, 회장이나 총수, 오너의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사업을 총괄하고 안전 보건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면 대표이사가 아니라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법무법인 바른의 박성근 변호사도 "정상적인 회사면 오너가 일상적 관리업무에 개입 안 할 거라고 보는데, 실질적으로 일상적 관리업무의 결정권을 오너가 가지고 있다면 수사기관은 대표이사가 아닌 오너까지 타겟을 삼아서 증거를 찾아낼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정 회장이 유지하는 지주사 회장직이나 그룹 회장직은 일반적으로 이런 처벌에서 제외됩니다. 박성근 변호사도 "법체계상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지주사 회장까지는 처벌이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일각에서 '앞으로 또 이런 사고가 나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현산 회장직만 물러나고 처벌받지 않는 지주사 회장만 유지하는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내 회사'라면서 '책임은 모르쇠' 확산

재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총수나 오너의 형사 책임을 회피할 목적으로 이른바 '바지사장'격의 대표이사나 최고안전관리 책임자를 임명하는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수년 전부터 재계 전반에서 실질적인 권한 행사자가 따로 있고 책임은 다른 사람이 지는 경우가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21개 재벌의 총수 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 비율은 2017년 17.3%에서 지난해 11%로 급감했습니다. 성경제 공정위 기업집단정책과장도 "총수 일가가 등기임원으로서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미등기임원으로 다수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책임 경영 측면에서 다소 우려스러운 대목"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실소유주, 실제 결정권자가 책임을 빠져나가는 상황은 열흘 앞으로 다가온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잇따를 수 있어 많은 논란이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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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몽규 회장 사퇴는 중대재해처벌법 피하기 위한 꼼수?
    • 입력 2022-01-17 17:56:35
    취재K
정몽규 HDC회장, 현대산업개발 회장에서 사퇴하면서 지주회사와 HDC그룹 회장직은 유지<br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되면 처벌받을 수 있는 직위만 내려놓아 논란



■현대산업개발 회장직'만'사퇴

"광주 사고 피해자와 가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이 사죄드립니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며 정몽규 회장이 머리를 숙였습니다.

정 회장은 지난해 6월의 광주 학동 재개발 구역 참사까지 거론하면서 두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했습니다. 책임지는 방법으로 제시된 것은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사퇴하는 것입니다.

처음 이 사실이 알려졌을 때는 그룹 경영에서 물러나 2선으로 후퇴하겠다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하지만 사과문 발표 직후 기자들과 이어진 질의 응답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기자) 회장직 사퇴하신다고 했는데, 계열회사 사내 이사직에서 모두 물러난다는 말씀인가요?

(정몽규 회장) 뭐. 경영자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현직에서는 물러나지만, 대주주로서 책무는 다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뭐 하여튼 지금 단계에서 고객과 이해관계자 신뢰회복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제가 향후 어떤 역할 할지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자) 대형사고 잇따라 터지는데 현산 시스템상 문제를 인정하는 것인지. 단지 도의적 책임만 인정해 물러나는 것인지요? 또 사퇴가 책임회피의 한 방법이라는 지적 나올 수 있는데,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인지 책임에 대해 어떻게 역할 하실 건지요?

(정몽규 회장) 그 뭐…. 지금 사고원인 조사를 정부 기관과 하고 있고, 아직 구조작업이 현재로선 진행 중. 우선적으로 되어야 될거 같고요. 그 후 원인 규명이 잇따라야 될 것 같습니다. 사퇴로서 책임을 벗어난다 생각지 않습니다. 대주주로서 하여튼 제가 할 수 있는 거 다 하고 책무를 회피한다 안한다가 중요한게 아니고 제일 먼저 고객분이랑 국민의 신뢰를 찾는 게 이 문제 해결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뭐 사퇴 뭐 책임 회피성 이런 사퇴라고는 생각 안 하고 뭐 하여튼 큰 사건이 벌어졌는데 원인 규명하는데 시간 상당히 걸리지 않을까 이렇게, 구조도 뭐 바로 될 것으로 생각하는데 워낙 사고 난 지점이 100m 이상이기 때문에 제 2차사고도 우려되고 구조도 지연되고 그래서 바로 말씀드려야 되는데 이렇게 좀 일주일가량 늦게 사죄하는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HDC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은 사퇴하지만, 지주회사인 HDC회장 직과 그룹 회장직은 유지한다"고 뜻을 설명했습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그룹 지주회사인 HDC가 지분 41.52%지배하고 있으며 HDC는 정몽규 회장 일가 측이 지분 39.12%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즉, 정 회장이 현산 회장직을 사퇴하더라도 정 회장일가가 현대산업개발을 지배하는 구조는 변화가 없습니다.

정몽규 회장 일가 측 →(39.12%) → HDC →(41.52%)→ HDC현대산업개발

■ 앞으로의 사고에 대한 처벌 피하기 위한 꼼수?

문제는 이러한 직책의 변동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의 사고에 대해서 처벌 대상 조항에서 벗어나게 되는 결과를 내게 된다는 점입니다.

1월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사고 발생 시에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한 처벌이 예정돼 있습니다. 처벌받는 대상은 경영책임자 등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2조 제9항
“경영책임자 등”이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

여기서 경영책임자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에 대해 변호사들도 해석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회사의 대표이사를 따진다면 총수 또는 오너는 이미 대표이사 명의를 다른 사람으로 해놓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처벌 대상에서 빠지기 때문입니다. 현대산업개발도 이미 대표이사 명의는 정 회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해설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경영책임자 등은...
형식상의 직위나 명칭과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이 안전 보건 확보의무 이행에 관한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을 가진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그가 경영책임자에 해당할 수 있음

즉, 회장이나 총수, 오너의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사업을 총괄하고 안전 보건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면 대표이사가 아니라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법무법인 바른의 박성근 변호사도 "정상적인 회사면 오너가 일상적 관리업무에 개입 안 할 거라고 보는데, 실질적으로 일상적 관리업무의 결정권을 오너가 가지고 있다면 수사기관은 대표이사가 아닌 오너까지 타겟을 삼아서 증거를 찾아낼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정 회장이 유지하는 지주사 회장직이나 그룹 회장직은 일반적으로 이런 처벌에서 제외됩니다. 박성근 변호사도 "법체계상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지주사 회장까지는 처벌이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일각에서 '앞으로 또 이런 사고가 나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현산 회장직만 물러나고 처벌받지 않는 지주사 회장만 유지하는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내 회사'라면서 '책임은 모르쇠' 확산

재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총수나 오너의 형사 책임을 회피할 목적으로 이른바 '바지사장'격의 대표이사나 최고안전관리 책임자를 임명하는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수년 전부터 재계 전반에서 실질적인 권한 행사자가 따로 있고 책임은 다른 사람이 지는 경우가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21개 재벌의 총수 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 비율은 2017년 17.3%에서 지난해 11%로 급감했습니다. 성경제 공정위 기업집단정책과장도 "총수 일가가 등기임원으로서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미등기임원으로 다수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책임 경영 측면에서 다소 우려스러운 대목"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실소유주, 실제 결정권자가 책임을 빠져나가는 상황은 열흘 앞으로 다가온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잇따를 수 있어 많은 논란이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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