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연수보고서 부실 실태① ‘오탈자까지 베끼고 붙여넣고’…표절률, 최고 80%

입력 2022.01.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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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강원도는 직원의 국제적인 역량을 높이겠다며 해마다 20명 안팎의 공무원을 뽑아 해외 연수를 보냅니다. 교육비는 물론 체재비까지 1명당 수천만 원 세금이 투입됩니다. 실효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해외연수자는 결과보고서를 의무적으로 내고 있는데, 사실상 남의 것을 그대로 베꼈던 공무원에게 개청 이후 첫 체재비 환수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이 공무원, 운이 없어서였을까요? KBS는 강원도 공무원들의 국외연수보고서 최근 3년치를 전수조사했습니다. 앞으로 3회에 걸쳐 공무원들의 국외연수 실태가 얼마나 부실한지, 관리 감독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항 입국장 자료화면공항 입국장 자료화면
설레는 공항, 외국 캠퍼스에서의 여유. 거기에 따박따박 입금되는 월급까지.

해외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 직장인은 흔하지 않습니다. 학업에 뜻을 두고 직장을 그만두거나 자비로 휴직하고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죠. 하지만, 해마다 해외연수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공공기관, 공무원들입니다.

인사혁신처 국외훈련 목적에 따르면 국제전문인력 양성, 행정발전을 위한 선진지식 연구 도입 등을 위해 짧게는 6개월, 길게 1년 해외연수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학자금과 항공료, 체재비까지 훈련비 명목으로 지원됩니다.

강원도 역시 공무원 한 명당 평균 약 7천만 원 예산을 투입해 해마다 20명 안팎 국외 훈련을 보내고 있습니다. 국제적 역량을 키우겠다는 당초의 성과, 과연 있었을까요? 그 결과물인 보고서를 들여다 봤습니다.

■ 보고서 표절률 80% 이상 … 그대로 베꼈다가 들통
A 공무원이 작성한 해외연수 보고서와 중앙부처 공무원 연수보고서의 일치 부분을 비교했더니 위와 같았습니다. 이 보고서는 표절률 81%로 드러났습니다A 공무원이 작성한 해외연수 보고서와 중앙부처 공무원 연수보고서의 일치 부분을 비교했더니 위와 같았습니다. 이 보고서는 표절률 81%로 드러났습니다
강원도 공무원 A씨의 연수보고서.

1년 동안 미국에 머물며 '강원도 관광 활성화 방안'을 연구했다고 적혀있습니다. KBS가 취재해보니 불과 2달 전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제출한 국외 훈련 보고서와 거의 똑같았습니다.

"21세기에 진입한 이래"로 시작하는 서론부터 '워크숍'을 '워크셥'으로 쓴 오자까지 10문단 이상 내리 3쪽을 그야말로 '복붙(복사해서 붙여넣기)'했습니다. 출처나 참고문헌은 아예 적지도 않았습니다. 본문에서 출처를 표기한 곳은 4곳밖에 되지 않습니다.

확인 결과, 이 보고서 표절률은 80% 이상. 보통 15%만 넘어도 표절 가능성을 의심하는데, 이 보고서는 표절이 '확실'한 겁니다. 해외 연수 경험에서 깨달은 다른 연수자의 성찰까지 오롯이 자신의 것인 양 '원산지'를 둔갑하듯 바꿨습니다. 결론의 맨 마지막 3문장 정도 본인 의견을 서술했습니다.

당사자는 논문을 써본 적이 없어서 표절이 되는지조차 몰랐다고 KBS에 밝혔습니다. 강원도는 뒤늦게 해당 공무원에게 두 달 치 체재비 500만 원을 환수하라고 조치했습니다. 강원도가 연수제도를 시행한 지 1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KBS는 강원도 공무원의 국외연수 보고서 최근 3년치를 전수조사해 표절률을 검증했습니다. 전체 보고서의 62%가 표절 의심기준인 표절률 15% 이상으로 드러났습니다KBS는 강원도 공무원의 국외연수 보고서 최근 3년치를 전수조사해 표절률을 검증했습니다. 전체 보고서의 62%가 표절 의심기준인 표절률 15% 이상으로 드러났습니다
■ 최근 3년 치 보고서의 62% 표절 의심

KBS는 2019년부터 최근 3년 치 강원도 장기국외연수자의 연수결과보고서 40편 전부에 대해 표절 여부를 조사했습니다.

표절률 15% 이상인 보고서가 전체의 62%, 25편이나 됐습니다. 사정은 앞선 표절 보고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참고 문헌 없이 베끼는 것은 예삿일입니다.

한 보고서의 경우, 미국에 가서 미 행정부의 기후변화정책을 다루면서 국내 한 민간연구소 보고서를 최소 3~4장 이상 통째로 정확한 출처 표기 없이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또 아래 첨부된 사진을 보면, 보고서에 느닷없이 16이라는 숫자가 나타납니다. 확인해 보니, 베껴 쓴 보고서의 원문으로 의심되는 보고서를 보면 같은 단어 옆에 각주 번호 16번이 붙어 있습니다. 보고서를 붙여넣기를 하다 실수로 각주 번호까지 붙여넣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도 맨 마지막 문장에서 딱 한 단어, '한국 정부'를 '강원도'로 대체하는 센스(?)는 발휘했습니다. 미국에 머물면서 미국 얘기를 하는데 참고 자료는 전부 국내 문헌뿐입니다.

이 보고서의 표절률이 66%로 나오자 당사자는 잘못 해석하면 오류가 생길 수 있어 원저자의 생각이 일치하면 그대로 인용했다고 취재진에 밝혀왔습니다.

참고 문헌의 각주 번호까지 옮겨 쓴 강원도 공무원 B의 연수보고서.  KBS는 이 공무원의 보고서에서 각주와 미주는 표기하지 않은 것을 확인했습니다참고 문헌의 각주 번호까지 옮겨 쓴 강원도 공무원 B의 연수보고서. KBS는 이 공무원의 보고서에서 각주와 미주는 표기하지 않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정부부처 자료의 2년 전 연구배경, 정책 흐름, 경제효과 예상 산술치를 그대로 옮긴 보고서를 국외 연수자료로 낸 공무원도 있습니다. 연구 배경부터 이에 대한 계산식, 그리고 그 결과값에 밑줄 친 부분까지 그대로입니다. 표절률 61%로 나오자 당사자는 코로나 때문에 해당 국가의 기관 방문 등이 여의치 않았고, 국내 자료에도 외국 문헌 등이 포함돼 있다는 말로 무분별한 2차 자료 인용을 시인했습니다.

신사업 관련 해외 연수 보고서를 작성한 강원도 공무원 C 씨는 이보다 2년 전 나온 정부 부처 보고서를 그대로 베꼈습니다. 경제효과 계산식까지 글자, 숫자, 밑줄 부분도 동일합니다.신사업 관련 해외 연수 보고서를 작성한 강원도 공무원 C 씨는 이보다 2년 전 나온 정부 부처 보고서를 그대로 베꼈습니다. 경제효과 계산식까지 글자, 숫자, 밑줄 부분도 동일합니다.
이인재 서울교육대학교 교수는 "실제 하지 않은 내용을 본인이 한 것처럼 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행위이고, 이는 남의 것을 빼앗아 속이는 행위인 표절의 의미와도 부합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럴 거면, 굳이 왜 외국까지 나갔을까요? 베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해외연수기간 공직자 윤리, 도덕적 해이는 공무원에게 치외법권 영역일까요?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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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연수보고서 부실 실태① ‘오탈자까지 베끼고 붙여넣고’…표절률, 최고 80%
    • 입력 2022-01-18 07:00:06
    취재K
강원도는 직원의 국제적인 역량을 높이겠다며 해마다 20명 안팎의 공무원을 뽑아 해외 연수를 보냅니다. 교육비는 물론 체재비까지 1명당 수천만 원 세금이 투입됩니다. 실효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해외연수자는 결과보고서를 의무적으로 내고 있는데, 사실상 남의 것을 그대로 베꼈던 공무원에게 개청 이후 첫 체재비 환수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이 공무원, 운이 없어서였을까요? KBS는 강원도 공무원들의 국외연수보고서 최근 3년치를 전수조사했습니다. 앞으로 3회에 걸쳐 공무원들의 국외연수 실태가 얼마나 부실한지, 관리 감독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항 입국장 자료화면설레는 공항, 외국 캠퍼스에서의 여유. 거기에 따박따박 입금되는 월급까지.

해외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 직장인은 흔하지 않습니다. 학업에 뜻을 두고 직장을 그만두거나 자비로 휴직하고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죠. 하지만, 해마다 해외연수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공공기관, 공무원들입니다.

인사혁신처 국외훈련 목적에 따르면 국제전문인력 양성, 행정발전을 위한 선진지식 연구 도입 등을 위해 짧게는 6개월, 길게 1년 해외연수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학자금과 항공료, 체재비까지 훈련비 명목으로 지원됩니다.

강원도 역시 공무원 한 명당 평균 약 7천만 원 예산을 투입해 해마다 20명 안팎 국외 훈련을 보내고 있습니다. 국제적 역량을 키우겠다는 당초의 성과, 과연 있었을까요? 그 결과물인 보고서를 들여다 봤습니다.

■ 보고서 표절률 80% 이상 … 그대로 베꼈다가 들통
A 공무원이 작성한 해외연수 보고서와 중앙부처 공무원 연수보고서의 일치 부분을 비교했더니 위와 같았습니다. 이 보고서는 표절률 81%로 드러났습니다강원도 공무원 A씨의 연수보고서.

1년 동안 미국에 머물며 '강원도 관광 활성화 방안'을 연구했다고 적혀있습니다. KBS가 취재해보니 불과 2달 전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제출한 국외 훈련 보고서와 거의 똑같았습니다.

"21세기에 진입한 이래"로 시작하는 서론부터 '워크숍'을 '워크셥'으로 쓴 오자까지 10문단 이상 내리 3쪽을 그야말로 '복붙(복사해서 붙여넣기)'했습니다. 출처나 참고문헌은 아예 적지도 않았습니다. 본문에서 출처를 표기한 곳은 4곳밖에 되지 않습니다.

확인 결과, 이 보고서 표절률은 80% 이상. 보통 15%만 넘어도 표절 가능성을 의심하는데, 이 보고서는 표절이 '확실'한 겁니다. 해외 연수 경험에서 깨달은 다른 연수자의 성찰까지 오롯이 자신의 것인 양 '원산지'를 둔갑하듯 바꿨습니다. 결론의 맨 마지막 3문장 정도 본인 의견을 서술했습니다.

당사자는 논문을 써본 적이 없어서 표절이 되는지조차 몰랐다고 KBS에 밝혔습니다. 강원도는 뒤늦게 해당 공무원에게 두 달 치 체재비 500만 원을 환수하라고 조치했습니다. 강원도가 연수제도를 시행한 지 1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KBS는 강원도 공무원의 국외연수 보고서 최근 3년치를 전수조사해 표절률을 검증했습니다. 전체 보고서의 62%가 표절 의심기준인 표절률 15% 이상으로 드러났습니다■ 최근 3년 치 보고서의 62% 표절 의심

KBS는 2019년부터 최근 3년 치 강원도 장기국외연수자의 연수결과보고서 40편 전부에 대해 표절 여부를 조사했습니다.

표절률 15% 이상인 보고서가 전체의 62%, 25편이나 됐습니다. 사정은 앞선 표절 보고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참고 문헌 없이 베끼는 것은 예삿일입니다.

한 보고서의 경우, 미국에 가서 미 행정부의 기후변화정책을 다루면서 국내 한 민간연구소 보고서를 최소 3~4장 이상 통째로 정확한 출처 표기 없이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또 아래 첨부된 사진을 보면, 보고서에 느닷없이 16이라는 숫자가 나타납니다. 확인해 보니, 베껴 쓴 보고서의 원문으로 의심되는 보고서를 보면 같은 단어 옆에 각주 번호 16번이 붙어 있습니다. 보고서를 붙여넣기를 하다 실수로 각주 번호까지 붙여넣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도 맨 마지막 문장에서 딱 한 단어, '한국 정부'를 '강원도'로 대체하는 센스(?)는 발휘했습니다. 미국에 머물면서 미국 얘기를 하는데 참고 자료는 전부 국내 문헌뿐입니다.

이 보고서의 표절률이 66%로 나오자 당사자는 잘못 해석하면 오류가 생길 수 있어 원저자의 생각이 일치하면 그대로 인용했다고 취재진에 밝혀왔습니다.

참고 문헌의 각주 번호까지 옮겨 쓴 강원도 공무원 B의 연수보고서.  KBS는 이 공무원의 보고서에서 각주와 미주는 표기하지 않은 것을 확인했습니다정부부처 자료의 2년 전 연구배경, 정책 흐름, 경제효과 예상 산술치를 그대로 옮긴 보고서를 국외 연수자료로 낸 공무원도 있습니다. 연구 배경부터 이에 대한 계산식, 그리고 그 결과값에 밑줄 친 부분까지 그대로입니다. 표절률 61%로 나오자 당사자는 코로나 때문에 해당 국가의 기관 방문 등이 여의치 않았고, 국내 자료에도 외국 문헌 등이 포함돼 있다는 말로 무분별한 2차 자료 인용을 시인했습니다.

신사업 관련 해외 연수 보고서를 작성한 강원도 공무원 C 씨는 이보다 2년 전 나온 정부 부처 보고서를 그대로 베꼈습니다. 경제효과 계산식까지 글자, 숫자, 밑줄 부분도 동일합니다.이인재 서울교육대학교 교수는 "실제 하지 않은 내용을 본인이 한 것처럼 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행위이고, 이는 남의 것을 빼앗아 속이는 행위인 표절의 의미와도 부합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럴 거면, 굳이 왜 외국까지 나갔을까요? 베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해외연수기간 공직자 윤리, 도덕적 해이는 공무원에게 치외법권 영역일까요?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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