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의 불’ 된 경제안보…갈 길 먼데 어디서부터?

입력 2022.01.22 (07:01) 수정 2022.01.24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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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의 전략은 사상 처음으로 '경제안보가 국가안보'라는 점을 인정한다."

2017년 12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한 연설의 일부입니다.

당시 '민주적 가치들'을 공유하는 자유 세계의 시민들을 방어하기 위한 공급망 다변화가 미국이 추진하는 글로벌 경제안보 전략의 핵심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대외정책 면에서 전임 행정부와 차별화된다는 바이든 행정부 역시, 경제안보에 있어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이어받아 추진을 더 가속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11월 중국발 요소수 사태는 경제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세계화의 쇠퇴'로 요약되는 국제 질서의 변환기에서 국가의 주요 과제로 떠오른 경제안보를 놓고, 지난 21일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가 공동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 알쏭달쏭 '경제안보'…의미는?

세미나에서는 먼저 '경제안보'라는 개념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오갔습니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는 외부의 유무형 경제적 충격에 대한 방어"라고 경제안보의 개념을 압축적으로 정의했습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TF 위원장 역시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외부의) 경제적 공세로부터 국가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경제안보라며, 첨단기술과 공급망, 디지털이 가장 중요한 영역이라고 말했습니다.

연 위원장은 한발 더 나아가 "경제안보는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거나 발전시키고, 미국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국제적 이익을 형성하고, 비경제적 도전을 물리칠 수 있는 물질적 자원을 소유하는 능력"이라는 미국 국방부의 정의를 소개했습니다.

김현철 서울대 일본연구소장(국제대학원 교수)은 이같은 경제안보 개념을 방어적, 적극적 차원의 대응으로 풀어 설명했습니다.

방어적 측면에서는 요소수 사태와 같은 공급망의 '단절', 일본의 수출규제와 같은 공급망의 '무기화'에 대비해 전략적 안정성과 회복탄력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고, 적극적 측면에서는 반도체, 배터리 등 공급망의 주요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전략적 우월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외교부에서 경제외교를 담당하는 이미연 외교부 양자경제외교국장은 "경제안보에 대한 여러 개념이 아직 형성 중이고 관점이 다를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 "외교 측면에서는 지금까지 진행돼 온 상호의존적 세계화 과정에서 상호의존의 무기화, 경제의 외교적 수단화"라고 이해하고 외교 정책 수립에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진=대외경제정책연구원 유튜브 캡처)(사진=대외경제정책연구원 유튜브 캡처)

■ 경제안보 선두주자 미국·일본은 어떻게?

경제안보에 역량을 쏟고 있는 다른 나라 사례도 소개됐습니다. 미국은 경제안보 전략의 주요 대상을 중국으로 설정하고, 2019년 국방수권법에 기술 보호를 목적으로 중국에 대한 무역·투자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시켰습니다.

또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는 대중국 견제 패키지법안이라고 불리는 '미국혁신경쟁법'(USICA)을 추진 중입니다.

미국 반도체 산업 발전과 10대 첨단기술 분야에 향후 5년 동안 국가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또 중국의 영향을 받기 쉬운 신흥 국가를 지원하고 중국에 대한 추가 제재를 장려하며, 인권 문제 관련 수출 통제 검토를 요구하는 등 대중국 견제 조항들을 담은 법 역시 패키지 안에 포함됐습니다.

일본의 경우 2020년 4월 내각관방 국가안전보장국(한국의 NSC 개념)에 경제안보를 담당하는 경제반을 만들었습니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기시다 내각 출범과 함께 내각에 경제안보담당대신(한국의 장관 개념)직을 신설했습니다.

지난해 10월 일본 최초의 경제안보담당상으로 임명된 고바야시 다카유키지난해 10월 일본 최초의 경제안보담당상으로 임명된 고바야시 다카유키

곧 관련 법제도 마련될 전망입니다. 일본 정부는 올해 정기국회에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상정할 예정입니다. 특허의 공개 제한과 중요물자·원자재 공급망 강화, 첨단기술의 연구개발 지원, 기간 인프라의 안전 확보 등 4개 분야가 핵심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국가의 안전보장에 관한 특허는 일정 기간 비공개로 하겠다거나, 반도체와 첨단 배터리·희토류·의약품 등 4개 품목을 주요 전략물자로 지정하고 법안에 지원조치를 명시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걸음마 뗀 한국 경제안보

우리 정부도 최근 경제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지난해 10월 신설했습니다.

여기에는 국가안보실 차장과 경제수석 등 청와대 고위관계자들과 외교부·산업부 장관, 국정원 차장, 통상교섭본부장 등 관련 부처 관료들이 참석합니다. 현재까지 3차례 회의가 열렸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경제안보 정책을 이끄는 정부 조직이나 정책을 뒷받침하는 법제는 마련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세미나 발표를 맡은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은 "경제안보가 중요해진 시점에서 통상전략과 산업전략을 융합하는 정책이 필요한데, 지금처럼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컨트롤 타워로는 부족하다"면서 "특히 국가정보원의 기능이 중요한데 지금처럼 내각에만 둬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컨트롤 타워 역할을 청와대로 집약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급소' 고민해야…핵심 품목 큰 그림 나와야"

경제안보 정책 수립 과정에서 참고할 만한 제언들도 나왔습니다.

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책적으로 봤을 때 경제안보는 모든 제품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중요한 첨단 사업과 공급망에 필수적인 사업에 한정되는 것"이라며 "국가안보·핵심산업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제품이나 서비스까지 수입을 대체하려는 시도는 시간과 비용의 낭비로 귀결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교수는 "언론 보도에서 무역의존도나 무역수지 같은 총량 지표를 보여주며 상황을 과장을 하고 있는데, 경제안보에서 총량 지표는 다른 나라에서도 전체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면서 "정책의 초점은 실제 우리나라의 급소가 뭔지를 고민하고, 제재와 재난 등 공급망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둘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김양희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이 이미 (공급망 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4대 핵심 품목을 발표했고 예정대로라면 오는 2월 최종 보고서에서 6대 품목을 이야기할 텐데, 이 10대 품목에 대해 '스트레스 테스트'가 필요하다"면서 "전체적으로 우리나라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한 그림이 좀 나와야 하고, 이 작업을 산업부가 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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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등의 불’ 된 경제안보…갈 길 먼데 어디서부터?
    • 입력 2022-01-22 07:01:59
    • 수정2022-01-24 19:06:51
    취재K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의 전략은 사상 처음으로 '경제안보가 국가안보'라는 점을 인정한다."

2017년 12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한 연설의 일부입니다.

당시 '민주적 가치들'을 공유하는 자유 세계의 시민들을 방어하기 위한 공급망 다변화가 미국이 추진하는 글로벌 경제안보 전략의 핵심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대외정책 면에서 전임 행정부와 차별화된다는 바이든 행정부 역시, 경제안보에 있어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이어받아 추진을 더 가속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11월 중국발 요소수 사태는 경제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세계화의 쇠퇴'로 요약되는 국제 질서의 변환기에서 국가의 주요 과제로 떠오른 경제안보를 놓고, 지난 21일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가 공동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 알쏭달쏭 '경제안보'…의미는?

세미나에서는 먼저 '경제안보'라는 개념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오갔습니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는 외부의 유무형 경제적 충격에 대한 방어"라고 경제안보의 개념을 압축적으로 정의했습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TF 위원장 역시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외부의) 경제적 공세로부터 국가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경제안보라며, 첨단기술과 공급망, 디지털이 가장 중요한 영역이라고 말했습니다.

연 위원장은 한발 더 나아가 "경제안보는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거나 발전시키고, 미국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국제적 이익을 형성하고, 비경제적 도전을 물리칠 수 있는 물질적 자원을 소유하는 능력"이라는 미국 국방부의 정의를 소개했습니다.

김현철 서울대 일본연구소장(국제대학원 교수)은 이같은 경제안보 개념을 방어적, 적극적 차원의 대응으로 풀어 설명했습니다.

방어적 측면에서는 요소수 사태와 같은 공급망의 '단절', 일본의 수출규제와 같은 공급망의 '무기화'에 대비해 전략적 안정성과 회복탄력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고, 적극적 측면에서는 반도체, 배터리 등 공급망의 주요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전략적 우월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외교부에서 경제외교를 담당하는 이미연 외교부 양자경제외교국장은 "경제안보에 대한 여러 개념이 아직 형성 중이고 관점이 다를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 "외교 측면에서는 지금까지 진행돼 온 상호의존적 세계화 과정에서 상호의존의 무기화, 경제의 외교적 수단화"라고 이해하고 외교 정책 수립에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진=대외경제정책연구원 유튜브 캡처)
■ 경제안보 선두주자 미국·일본은 어떻게?

경제안보에 역량을 쏟고 있는 다른 나라 사례도 소개됐습니다. 미국은 경제안보 전략의 주요 대상을 중국으로 설정하고, 2019년 국방수권법에 기술 보호를 목적으로 중국에 대한 무역·투자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시켰습니다.

또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는 대중국 견제 패키지법안이라고 불리는 '미국혁신경쟁법'(USICA)을 추진 중입니다.

미국 반도체 산업 발전과 10대 첨단기술 분야에 향후 5년 동안 국가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또 중국의 영향을 받기 쉬운 신흥 국가를 지원하고 중국에 대한 추가 제재를 장려하며, 인권 문제 관련 수출 통제 검토를 요구하는 등 대중국 견제 조항들을 담은 법 역시 패키지 안에 포함됐습니다.

일본의 경우 2020년 4월 내각관방 국가안전보장국(한국의 NSC 개념)에 경제안보를 담당하는 경제반을 만들었습니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기시다 내각 출범과 함께 내각에 경제안보담당대신(한국의 장관 개념)직을 신설했습니다.

지난해 10월 일본 최초의 경제안보담당상으로 임명된 고바야시 다카유키
곧 관련 법제도 마련될 전망입니다. 일본 정부는 올해 정기국회에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상정할 예정입니다. 특허의 공개 제한과 중요물자·원자재 공급망 강화, 첨단기술의 연구개발 지원, 기간 인프라의 안전 확보 등 4개 분야가 핵심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국가의 안전보장에 관한 특허는 일정 기간 비공개로 하겠다거나, 반도체와 첨단 배터리·희토류·의약품 등 4개 품목을 주요 전략물자로 지정하고 법안에 지원조치를 명시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걸음마 뗀 한국 경제안보

우리 정부도 최근 경제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지난해 10월 신설했습니다.

여기에는 국가안보실 차장과 경제수석 등 청와대 고위관계자들과 외교부·산업부 장관, 국정원 차장, 통상교섭본부장 등 관련 부처 관료들이 참석합니다. 현재까지 3차례 회의가 열렸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경제안보 정책을 이끄는 정부 조직이나 정책을 뒷받침하는 법제는 마련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세미나 발표를 맡은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은 "경제안보가 중요해진 시점에서 통상전략과 산업전략을 융합하는 정책이 필요한데, 지금처럼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컨트롤 타워로는 부족하다"면서 "특히 국가정보원의 기능이 중요한데 지금처럼 내각에만 둬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컨트롤 타워 역할을 청와대로 집약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급소' 고민해야…핵심 품목 큰 그림 나와야"

경제안보 정책 수립 과정에서 참고할 만한 제언들도 나왔습니다.

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책적으로 봤을 때 경제안보는 모든 제품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중요한 첨단 사업과 공급망에 필수적인 사업에 한정되는 것"이라며 "국가안보·핵심산업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제품이나 서비스까지 수입을 대체하려는 시도는 시간과 비용의 낭비로 귀결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교수는 "언론 보도에서 무역의존도나 무역수지 같은 총량 지표를 보여주며 상황을 과장을 하고 있는데, 경제안보에서 총량 지표는 다른 나라에서도 전체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면서 "정책의 초점은 실제 우리나라의 급소가 뭔지를 고민하고, 제재와 재난 등 공급망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둘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김양희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이 이미 (공급망 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4대 핵심 품목을 발표했고 예정대로라면 오는 2월 최종 보고서에서 6대 품목을 이야기할 텐데, 이 10대 품목에 대해 '스트레스 테스트'가 필요하다"면서 "전체적으로 우리나라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한 그림이 좀 나와야 하고, 이 작업을 산업부가 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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