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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묘해진 범죄수법…만나서 돈 받으면 ‘보이스피싱’ 아니다?
입력 2022.01.22 (07:02) 취재K

지난해 8월 부산 동래구의 한 은행 현금 인출기 앞에서 한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이 남성은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 수거책'이었습니다. 피해자를 만나 2천만 원을 받아낸 뒤 특정 은행 계좌에 막 돈을 입금한 상황이었습니다.

경찰은 해당 계좌에 피해금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곧장 은행 측에 '지급 정지'를 신청했습니다. 돈을 빼가지 못하게 막으려고 했던 겁니다. 그러나 지급 정지는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피해자는 2천만 원을 고스란히 잃게 됐습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부산 동래 지구대는 지난해 8월부터 두 달 동안 현금 수거책 11명을 검거했습니다. 피해액은 총 2억 천만 원이었습니다. 이 중 8천만 원은 현장에서 압수했습니다. 하지만 계좌에 이미 입금된 나머지 금액은 지급 정지를 하지 못해 보이스피싱 조직이 모두 가져갔습니다.

■ 범죄 수법 교묘히 변화…'대면 편취'는 보이스피싱 아니다?

보이스피싱이 '계좌이체형'에서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가로채는 '대면 편취형'으로 교묘히 변화하고 있지만, 제도가 이를 뒤따라가지 못해 피해금 회수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계좌 이체형이 범죄 조직이 피해자를 조종해 특정 계좌로 돈을 이체하게 하는 것이라면, 대면 편취형은 수거책이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받아 현금인출기에서 입금하는 방식입니다.

경찰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1~10월 사이 계좌이체형 피해는 3,078건으로 전년 대비 69% 줄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대면 편취형은 19,630건으로 전년 대비 77% 증가했습니다. 계좌 지급 정지와 30분 지연 인출제도 등 보이스피싱 대응책이 강화되자, 계좌 이체에서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가로채는 방식으로 범행 수법이 교묘하게 변화된 겁니다.

대면편취형의 경우, 피해자로부터 돈을 받은 수거책은 지령에 따라 여러 은행을 돌며 피해금을 나눠 입금 시킵니다. 경찰은 이들을 '살아있는 대포통장'으로 부릅니다. 문제는 현재 법령상 대면편취형 보이스피싱은 '전기통신금융사기'로 분류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통신사기피해 환급법'을 통해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것으로 의심되는 계좌를 발견하면 은행에 지급 정지를 요청하는 제도를 운영 중입니다.

그런데 이 법은 보이스피싱, 즉 전기통신금융사기에 대해 전기통신을 이용해 타인을 속여 재산상 이익을 취하는 행위로서 "자금을 송금·이체하도록 하는 행위"와 "개인정보를 알아내 자금을 송금·이체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같은 수법으로 피해자를 속여도, 수거책이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받으면 보이스피싱에 해당되지 않는 겁니다.

■ 경찰 "대면편취형 99%는 지급 정지 못해"

이렇다 보니, 대면편취형은 통신사기피해 환급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법의 '지급 정지' 규정도 적용할 수 없습니다. 은행들이 대면편취형의 경우, 경찰이 지급정지를 요청해도 거절하는 이유입니다.

경찰 관계자는 " 경찰이 수거책을 잡으면 절반은 현금 인출기에서 돈을 보내고 있다"며 "방금 돈을 보낸 계좌를 지급 정지시키고, 돈을 돌려주려고 하지만 대면편취는 99% 지급 정지를 시키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이 수거책으로부터 범행을 시인 받고, 계좌가 특정되더라도 현행 법 규정상 지급 정지를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 법 개정안 제출됐지만 진전 없어

국회에는 이런 문제점을 반영해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인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보면,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위에 자금을 송금·이체하도록 하는 행위뿐 아니라, '직접 교부하도록 하는 행위', '개인정보를 알아내 자금을 이체하거나 인출하는 행위'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정무위 전문위원은 이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에서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위에 대면편취형·배송형 보이스피싱 을 포함할 경우, 이 법의 구제 절차를 적용하여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를 보다 폭넓게 구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상임위에서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소관 부처인 금융위원회는 당초 법 개정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개인의 자금 인출 목적을 사전에 파악하기 어렵고, 돈을 계좌이체가 아닌 현금으로 전달하는 것은 금융서비스 밖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금융위는 최근 입장을 바꿔 대면편취형을 전기통신금융사기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KBS에 은행권, 관계부처와 구체적인 내용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 교묘해진 범죄수법…만나서 돈 받으면 ‘보이스피싱’ 아니다?
    • 입력 2022-01-22 07:01:59
    취재K

지난해 8월 부산 동래구의 한 은행 현금 인출기 앞에서 한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이 남성은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 수거책'이었습니다. 피해자를 만나 2천만 원을 받아낸 뒤 특정 은행 계좌에 막 돈을 입금한 상황이었습니다.

경찰은 해당 계좌에 피해금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곧장 은행 측에 '지급 정지'를 신청했습니다. 돈을 빼가지 못하게 막으려고 했던 겁니다. 그러나 지급 정지는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피해자는 2천만 원을 고스란히 잃게 됐습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부산 동래 지구대는 지난해 8월부터 두 달 동안 현금 수거책 11명을 검거했습니다. 피해액은 총 2억 천만 원이었습니다. 이 중 8천만 원은 현장에서 압수했습니다. 하지만 계좌에 이미 입금된 나머지 금액은 지급 정지를 하지 못해 보이스피싱 조직이 모두 가져갔습니다.

■ 범죄 수법 교묘히 변화…'대면 편취'는 보이스피싱 아니다?

보이스피싱이 '계좌이체형'에서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가로채는 '대면 편취형'으로 교묘히 변화하고 있지만, 제도가 이를 뒤따라가지 못해 피해금 회수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계좌 이체형이 범죄 조직이 피해자를 조종해 특정 계좌로 돈을 이체하게 하는 것이라면, 대면 편취형은 수거책이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받아 현금인출기에서 입금하는 방식입니다.

경찰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1~10월 사이 계좌이체형 피해는 3,078건으로 전년 대비 69% 줄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대면 편취형은 19,630건으로 전년 대비 77% 증가했습니다. 계좌 지급 정지와 30분 지연 인출제도 등 보이스피싱 대응책이 강화되자, 계좌 이체에서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가로채는 방식으로 범행 수법이 교묘하게 변화된 겁니다.

대면편취형의 경우, 피해자로부터 돈을 받은 수거책은 지령에 따라 여러 은행을 돌며 피해금을 나눠 입금 시킵니다. 경찰은 이들을 '살아있는 대포통장'으로 부릅니다. 문제는 현재 법령상 대면편취형 보이스피싱은 '전기통신금융사기'로 분류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통신사기피해 환급법'을 통해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것으로 의심되는 계좌를 발견하면 은행에 지급 정지를 요청하는 제도를 운영 중입니다.

그런데 이 법은 보이스피싱, 즉 전기통신금융사기에 대해 전기통신을 이용해 타인을 속여 재산상 이익을 취하는 행위로서 "자금을 송금·이체하도록 하는 행위"와 "개인정보를 알아내 자금을 송금·이체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같은 수법으로 피해자를 속여도, 수거책이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받으면 보이스피싱에 해당되지 않는 겁니다.

■ 경찰 "대면편취형 99%는 지급 정지 못해"

이렇다 보니, 대면편취형은 통신사기피해 환급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법의 '지급 정지' 규정도 적용할 수 없습니다. 은행들이 대면편취형의 경우, 경찰이 지급정지를 요청해도 거절하는 이유입니다.

경찰 관계자는 " 경찰이 수거책을 잡으면 절반은 현금 인출기에서 돈을 보내고 있다"며 "방금 돈을 보낸 계좌를 지급 정지시키고, 돈을 돌려주려고 하지만 대면편취는 99% 지급 정지를 시키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이 수거책으로부터 범행을 시인 받고, 계좌가 특정되더라도 현행 법 규정상 지급 정지를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 법 개정안 제출됐지만 진전 없어

국회에는 이런 문제점을 반영해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인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보면,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위에 자금을 송금·이체하도록 하는 행위뿐 아니라, '직접 교부하도록 하는 행위', '개인정보를 알아내 자금을 이체하거나 인출하는 행위'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정무위 전문위원은 이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에서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위에 대면편취형·배송형 보이스피싱 을 포함할 경우, 이 법의 구제 절차를 적용하여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를 보다 폭넓게 구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상임위에서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소관 부처인 금융위원회는 당초 법 개정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개인의 자금 인출 목적을 사전에 파악하기 어렵고, 돈을 계좌이체가 아닌 현금으로 전달하는 것은 금융서비스 밖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금융위는 최근 입장을 바꿔 대면편취형을 전기통신금융사기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KBS에 은행권, 관계부처와 구체적인 내용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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