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이름 팔면 얼마?”…‘1조 적자’ 서울 지하철이 살아남는 법

입력 2022.01.24 (14:22) 수정 2022.01.24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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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은 2020년 1조 1천억 원의 적자(당기순손실)를 기록했습니다. 무임수송 손실분 등으로 인한 만성적인 재정난에 더해, 코로나19 여파로 탑승객이 확 줄었기 때문인데요. 2021년엔 이를 웃도는 수준의 적자가 날 것으로 서울교통공사는 내다봤습니다. 지난해 부족자금은 이미 1조 8천억 원에 이르렀습니다.

이 때문에 서울교통공사는 승객 운송 외에도 다양한 '부업'에 나서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바로 '역명 병기 사업'입니다.

기존의 역 이름 밑에 괄호를 치고 인근의 기업이나 학교, 병원, 단체 등의 명칭을 함께 기재하는 식인데요. 한 마디로 돈을 받고 역 이름을 파는 겁니다.


■ 9억 원에 팔린 '신한카드 역'…심사 통과 기준은?

'두 번째 이름'을 가지고 있는 지하철역은 서울 시내 모두 33곳입니다. 1호선 종각역(SC제일은행), 2, 6호선 합정역(홀트아동복지회), 3호선 압구정역(현대백화점), 4호선 혜화역(서울대학교병원), 5호선 서대문역(강북삼성병원) 등 익숙한 이름들이 많습니다.

가장 최근에 팔린 역은 2, 3호선의 을지로3가역과 4호선의 신용산역입니다. 을지로3가역은 신한카드와, 신용산역은 아모레퍼시픽과 3년 계약을 맺었는데요. 각각 8억 7천4백만 원과 3억 8천만 원에 낙찰됐습니다.

특히 을지로3가역의 계약 금액은 역대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이 역들은 앞으로 두어 달 안에 새 간판을 올릴 예정입니다.

지난해엔 2, 5호선 을지로4가역이 'BC카드역', 2호선 역삼역이 '센터필드역', 7호선 내방역이 '유중아트센터역'으로 함께 불리게 됐습니다. 2호선 뚝섬역과 4, 7호선 노원역에도 도전장을 내민 기관들이 있었는데, 심의 과정에서 탈락했습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역명 병기'를 신청한 모든 기관에 이를 허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역에서 반경 1km 이내에 있으면서 인지도가 높아야 하고, 공사 이미지를 저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 응찰금액이 같을 경우엔 공익기관>학교>의료기관>기업체>다중이용시설 순으로 결정됩니다. 의료기관은 종합・전문・상급병원이면서 150병상 이상이어야 하고, 기업도 중견기업 이상이어야 합니다. 공공성을 최대한 살려보겠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서울교통공사는 이 사업이 재정난 극복을 위한 수익사업인 만큼, 거리나 병상 기준을 완화해달라고 서울시와 서울시의회 등에 요청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입찰을 위해선 현실에 맞지 않는 기준부터 바꿔야 한단 겁니다.

병원의 경우 기준에 맞는 건 이미 인지도가 있는 전문병원이나 대형병원뿐인데, 실질적으로 역명병기를 통한 홍보를 원하는 건 중소병원들이기 때문입니다. 거리 역시 최대 2km 이내까지 넓혀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 역명병기 수입은 연간 20억 원…"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그럼 이 같은 역명병기 사업으로 서울교통공사가 한 해 얻는 수입은 얼마나 될까요?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연간 20억 원 수준"이라며 "적자가 1조 원이 넘으니 그에 비하면 정말 적은 금액이지만,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만큼 서울교통공사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지난해엔 서울교통공사의 공식 캐릭터인 '또타'를 활용한 휴대폰 케이스와 티셔츠, 쿠션 등 소품을 처음으로 판매하며 수익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5호선 광화문역에 김상범 사장이 직접 나와 "재정적자 1조 1,000억, 또타 팔아서 극복하겠습니다"라는 구호 아래 또타 인형 수백 개를 팔기도 했죠.

서울교통공사의 공식 캐릭터 '또타'를 활용한 판매 상품들.서울교통공사의 공식 캐릭터 '또타'를 활용한 판매 상품들.

서울교통공사의 수익구조를 뜯어보면 운수사업과 비운수사업이 대략 8:2 정도 됩니다. 메인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승객 운송으로 버는 수입이 대부분이고, 나머지 상가 임대나 광고 사업, 해외 지하철 컨설팅 등으로 20%를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비운수사업으로 손실을 메우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원래 운수사업에 크게 의존하다가 코로나19 때문에 승객이 급감하면서 적자 규모가 크게 늘었다"며 "이 때문에 비운수사업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주문이 있어 역명 판매와 캐릭터 상품 판매, 상가 개발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연관기사] “지하철 역 이름도 팝니다”…서울지하철 만성적자 해법은 ‘무임승차 보전’ (KBS 뉴스7, 2021.10.04.)

서울교통공사가 이처럼 여러 수입원을 발굴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을 겁니다. 무임수송으로 매년 3천억 원에 달하는 손실이 누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코레일이 노인과 장애인 등에 대한 무임수송 비용을 지원받는 것과 달리, 서울교통공사는 정부로부터 무임수송에 대한 비용을 보전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낮은 기본요금과 환승할인 등으로 인한 손실도 상당합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예산안에서 '교통 복지제도 점검 및 제도개선 연구' 사업에 5억 원을 편성했습니다. 우선 용역을 통해 무임수송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따져보겠다는 건데, 3월 초쯤 착수해 8~10개월가량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당장 결론이 나오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도시철도법에 우선 정부 손실 보전의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도 문젭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해 말 기준 2조 8,380억 원의 공사채를 발행했습니다. 이는 2020년 말 1조 4,380억 원의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2017년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통합한 이후 가장 많습니다.

[연관기사] “지하철 역 이름도 팝니다”…서울지하철 만성적자 해법은 ‘무임승차 보전’ (KBS 뉴스7, 2021.10.04.)

(대문사진: 안수민 / 인포그래픽: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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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24 14:22:53
    • 수정2022-01-24 14:23:25
    취재K

서울 지하철은 2020년 1조 1천억 원의 적자(당기순손실)를 기록했습니다. 무임수송 손실분 등으로 인한 만성적인 재정난에 더해, 코로나19 여파로 탑승객이 확 줄었기 때문인데요. 2021년엔 이를 웃도는 수준의 적자가 날 것으로 서울교통공사는 내다봤습니다. 지난해 부족자금은 이미 1조 8천억 원에 이르렀습니다.

이 때문에 서울교통공사는 승객 운송 외에도 다양한 '부업'에 나서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바로 '역명 병기 사업'입니다.

기존의 역 이름 밑에 괄호를 치고 인근의 기업이나 학교, 병원, 단체 등의 명칭을 함께 기재하는 식인데요. 한 마디로 돈을 받고 역 이름을 파는 겁니다.


■ 9억 원에 팔린 '신한카드 역'…심사 통과 기준은?

'두 번째 이름'을 가지고 있는 지하철역은 서울 시내 모두 33곳입니다. 1호선 종각역(SC제일은행), 2, 6호선 합정역(홀트아동복지회), 3호선 압구정역(현대백화점), 4호선 혜화역(서울대학교병원), 5호선 서대문역(강북삼성병원) 등 익숙한 이름들이 많습니다.

가장 최근에 팔린 역은 2, 3호선의 을지로3가역과 4호선의 신용산역입니다. 을지로3가역은 신한카드와, 신용산역은 아모레퍼시픽과 3년 계약을 맺었는데요. 각각 8억 7천4백만 원과 3억 8천만 원에 낙찰됐습니다.

특히 을지로3가역의 계약 금액은 역대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이 역들은 앞으로 두어 달 안에 새 간판을 올릴 예정입니다.

지난해엔 2, 5호선 을지로4가역이 'BC카드역', 2호선 역삼역이 '센터필드역', 7호선 내방역이 '유중아트센터역'으로 함께 불리게 됐습니다. 2호선 뚝섬역과 4, 7호선 노원역에도 도전장을 내민 기관들이 있었는데, 심의 과정에서 탈락했습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역명 병기'를 신청한 모든 기관에 이를 허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역에서 반경 1km 이내에 있으면서 인지도가 높아야 하고, 공사 이미지를 저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 응찰금액이 같을 경우엔 공익기관>학교>의료기관>기업체>다중이용시설 순으로 결정됩니다. 의료기관은 종합・전문・상급병원이면서 150병상 이상이어야 하고, 기업도 중견기업 이상이어야 합니다. 공공성을 최대한 살려보겠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서울교통공사는 이 사업이 재정난 극복을 위한 수익사업인 만큼, 거리나 병상 기준을 완화해달라고 서울시와 서울시의회 등에 요청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입찰을 위해선 현실에 맞지 않는 기준부터 바꿔야 한단 겁니다.

병원의 경우 기준에 맞는 건 이미 인지도가 있는 전문병원이나 대형병원뿐인데, 실질적으로 역명병기를 통한 홍보를 원하는 건 중소병원들이기 때문입니다. 거리 역시 최대 2km 이내까지 넓혀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 역명병기 수입은 연간 20억 원…"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그럼 이 같은 역명병기 사업으로 서울교통공사가 한 해 얻는 수입은 얼마나 될까요?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연간 20억 원 수준"이라며 "적자가 1조 원이 넘으니 그에 비하면 정말 적은 금액이지만,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만큼 서울교통공사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지난해엔 서울교통공사의 공식 캐릭터인 '또타'를 활용한 휴대폰 케이스와 티셔츠, 쿠션 등 소품을 처음으로 판매하며 수익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5호선 광화문역에 김상범 사장이 직접 나와 "재정적자 1조 1,000억, 또타 팔아서 극복하겠습니다"라는 구호 아래 또타 인형 수백 개를 팔기도 했죠.

서울교통공사의 공식 캐릭터 '또타'를 활용한 판매 상품들.
서울교통공사의 수익구조를 뜯어보면 운수사업과 비운수사업이 대략 8:2 정도 됩니다. 메인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승객 운송으로 버는 수입이 대부분이고, 나머지 상가 임대나 광고 사업, 해외 지하철 컨설팅 등으로 20%를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비운수사업으로 손실을 메우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원래 운수사업에 크게 의존하다가 코로나19 때문에 승객이 급감하면서 적자 규모가 크게 늘었다"며 "이 때문에 비운수사업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주문이 있어 역명 판매와 캐릭터 상품 판매, 상가 개발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연관기사] “지하철 역 이름도 팝니다”…서울지하철 만성적자 해법은 ‘무임승차 보전’ (KBS 뉴스7, 2021.10.04.)

서울교통공사가 이처럼 여러 수입원을 발굴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을 겁니다. 무임수송으로 매년 3천억 원에 달하는 손실이 누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코레일이 노인과 장애인 등에 대한 무임수송 비용을 지원받는 것과 달리, 서울교통공사는 정부로부터 무임수송에 대한 비용을 보전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낮은 기본요금과 환승할인 등으로 인한 손실도 상당합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예산안에서 '교통 복지제도 점검 및 제도개선 연구' 사업에 5억 원을 편성했습니다. 우선 용역을 통해 무임수송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따져보겠다는 건데, 3월 초쯤 착수해 8~10개월가량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당장 결론이 나오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도시철도법에 우선 정부 손실 보전의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도 문젭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해 말 기준 2조 8,380억 원의 공사채를 발행했습니다. 이는 2020년 말 1조 4,380억 원의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2017년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통합한 이후 가장 많습니다.

[연관기사] “지하철 역 이름도 팝니다”…서울지하철 만성적자 해법은 ‘무임승차 보전’ (KBS 뉴스7, 2021.10.04.)

(대문사진: 안수민 / 인포그래픽: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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