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어서와, 이런 인플레는 처음이지?”

입력 2022.01.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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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이야 이런 인플레!

2차 석유파동이 터지고 1979년 무렵입니다. 미국의 물가는 14%나 폭등했습니다. 구원투수로 연준(미국 연방준비제도, Fed) 의장에 오른 폴 볼커(paul Adolph Volcker)는 79년 10월 6일 기준금리를 15.5%(오타 아님)까지 올렸습니다. 언론은 '토요일밤의 학살'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저기서 곡소리가 났죠. 고금리로 망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볼커가 권총을 차고 출근했단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물가가 잡혔습니다. 볼커는 그렇게 '버블파이터'가 됐습니다(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칸막이를 분명히 만든 '볼커룰(Volcker rule)'의 볼커가 이 볼커 입니다).

그리고 또 미국의 물가가 오릅니다. 40년 만에 최고치입니다. 이렇게까지 차마 계속 오를 줄은 몰랐습니다. 연준은 '일시적(transitory)'이라고 자신했습니다. 아님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거지요. (제롬 파월에게 연임된다고 미리 말좀 해주지...). 이젠 두손 두발 다 들었습니다. 재빨리 태세전환입니다.

이제 금리를 '더 빨리 더 자주' 올려야 합니다. 연준은 말을 아끼는데, 며칠전 월가의 한 투자은행 회장님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올해 기준금리를 6~7번 올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투자자들의 몰매를 맞고 있습니다. 진짜 7번 내리 올려도 기준금리는 2% 정도인데...불안한 증시는 떨어지는 낙엽도 무섭습니다. ( 연준은 2004년부터 2년간 기준금리를 무려 4.5%를 올린 적도 있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됐는지는 다 아시죠? )

사필귀정입니다. 버블 파이터들이 버블을 만든 대가입니다. 돈을 썼으니 고지서가 날아올 시간입니다. 수퍼 비둘기들은 모두 꼬리를 내리고...이제 세상 모든 것의 가격이 오릅니다. 다시 찾아온 인플레이션의 시대. 젊은 세대는 특히 낯선 풍경입니다. '어서와, 이런 인플레는 처음이지?'


■ 바이든플레이션(Bidenflation)

돈은 연준이 풀었는데, 욕은 바이든이 먹습니다. 당연합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한 패가 된 건 꽤 오래전입니다. 지난 10월 미국의 인플레는 30년 만에 최고치였습니다. 그런데 한달뒤 11월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7%가 올랐습니다. 이번엔 40년 만에 최고치입니다.

얼마나 올랐을까. 미국의 중고차 가격은 37%나 올랐습니다. 중고차는 미국 물가지수(CPI)에 4%나 차지합니다. 휘발유는 45%, 호텔 요금은 27.6%나 급등했습니다.

'집에서 꼼짝마라'입니다. 그런데 소고기 가격은 18.6%, 달걀 가격은 12% 정도 올랐습니다. 로메인 상추값이 너무 올라서 시저샐러드에서 상추를 빼고 먹는답니다(응??). 집에만 있어도 물가 폭탄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결정적으로 월 주택임대료는 17%나 올랐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동네 마트, 생필품 코너가 텅 비었다. 출처 트위터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동네 마트, 생필품 코너가 텅 비었다. 출처 트위터

바이든 지지율이 자꾸 내려갑니다. 바이든의 새해 첫번째 업무는 유통업계와 고깃값 협의였습니다.(미국은 4개 유통기업이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유통의 70%를 차지한다.)

10여 년 전, 우리 이 모 대통령도 그랬습니다.(물가가 너무 치솟자 생필품 52개의 가격을 대통령이 직접 챙겼습니다. 이른바 'MB 물가지수'. 정작 2008년 3월~ 2011년 8월의 소비자물가는 13% 올랐는데, 우리의 MB물가지수는 '20%'가 올랐습니다...)


■ 인플레이션은 지구적 현상이다


며칠 전 이곳 태국 정부는 콜라 등 탄산 가격의 인상을 불허했습니다. 최근엔 유통업체들과 달걀 출하 가격을 협상했습니다. 사실은 정부가 달걀 1개당 2.9바트(100원 정도)로 정해줬습니다. 시장에서 이 가격보다 비싸게 달걀을 팔던 할머니가 정부 단속반에 적발됐습니다. 급기야 서럽게 웁니다(달걀도 내 맘대로 못 파는 세상...ㅠㅠㅠ). 뉴스에 나왔습니다.


유럽도 비슷합니다. 치즈와 바게트에서, 설탕, 해바라기유, 우유, 밀가루, 돼지다리와 닭가슴살 죄다 오릅니다. 지난해 12월 유로화를 쓰는 19개 나라의 평균 물가인상률이 5%를 기록했습니다. 24년 만에 최고치입니다.(미국은 40년 만에, 영국은 30년 만에 최고치인데, EU통계청/Eurostat이 97년에 출범해서...)

이 와중에 러시아는 대 유럽 가스 공급을 줄였습니다. 한겨울 유럽의 가스요금이 30% 가까이 치솟았습니다.


■ 왜 이렇게 오르나?


돈을 풀어도 너무 풀었습니다(정확하게는 돈이 풀린만큼 신용이 창출돼 그 신용만큼 유동성이 늘어난 겁니다). 참았던 소비가 폭발합니다. 소비 수요가 늘면 가격이 오르죠. 이렇게 수요가 급등하면 공장을 더 돌리면 됩니다. 이런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demand-full inflation)'은 비교적 쉽게 잡힙니다.

그런데 지금은 공급도 잘 안됩니다. 여기 저기서 공장이 꽉 막혔습니다. 일단 공장이 생산량을 늘리기 쉽지 않습니다. 나이키 운동화의 절반을 생산하는 베트남. 노동자들이 코로나 봉쇄로 고향으로 돌아간 뒤 복귀를 잘 안합니다. 코로나가 무섭고 공장 내 격리도 지겹습니다. 라인이 툭하면 멈춰 섭니다.

중국은요? 확진자 몇 명만 나와도 수백만 도시를 봉쇄합니다. 게다가 원자재 구하기도 쉽지않습니다.

그러니 현대차 GV60은 지금 주문하면 1년이 걸립니다. 반도체 등 부품이 없습니다. 이른바 '공급망 대란'입니다. 공장도 잘 안돌아가는데 게다가 운송도 어렵습니다. 트럭도 부족하고 상선도 부족한데, 그걸 운전할 기사도 부족하고 컨테이너도 부족합니다.


그러니 중국산 일회용컵도, 뚜껑도, 빨대도 태평양을 못 건너옵니다. 캘리포니아 커피숍의 테이크아웃 음료값이 2~3달러씩 치솟습니다(아니면 '테이크아웃 안돼요' 라고 써붙이거나~).

어렵게 바다를 건너온 컨테이너를 하적해야 하는데, 근로자 몇 명은 또 밀접접촉으로 격리중입니다. 몇 명은 시급 20달러(2만 4천원)를 주는 이탈리안 식당으로 직장을 옮겼답니다. 신차 생산이 늦어지니 다들 중고차로 눈을 돌립니다. 중고차 가격이 급등하고 있습니다(미국 언론은 이걸 또 carflation이라고 부른다).

그럼 비행기로 운송해 볼까? 기장부터 승무원, 발권 직원까지 상당수가 격리중이거나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공항 하역근로자 상당수가 이민자거나 불법체류자입니다. 고향에 갔던 로드리게스는 아직도 재입국을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하루에도 수천 여 대의 여객기 운항이 취소됩니다. 사람의 발이 묶입니다. 또다른 생산 차질로 이어집니다.

운송비가 치솟는데 사료값도 오릅니다. 전기요금도 오릅니다. 양계농장이 생산을 줄입니다. 생닭 출하가격이 급등합니다. 당장 중국에서 수입도 어렵습니다. 강아지와 고양이 사료값이 치솟습니다. 인플레는 인류 뿐만 아니라 고양이 생태계까지 위협합니다.

인도의 한 네티즌이 올린 트윗, DOVE사의 바디워시가 5개월만에 360루피(5700원)에서 395루피(6330원)로 올랐다.  인도의 한 네티즌이 올린 트윗, DOVE사의 바디워시가 5개월만에 360루피(5700원)에서 395루피(6330원)로 올랐다.

■ 그런데 소득은요?


물가인상이 다 나쁜 건 아닙니다. 물가가 적당히(2% 정도) 올라주면 경제에도 좋습니다. 경제성장(GDP)은 '거래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 값의 합계'인데, 샴푸 하나가 1천 원 더 비싸게 거래되면 당연히 GDP가 1천원 만큼 올라갑니다 (그래서 한국은행도 요즘은 해마다 '2% 물가 인상'이 목표다).

문제는 소득입니다.

원래 다 올라도 유독 안오르는게 '남편 월급'인지라. 17세기에도 런던의 목수 임금 상승률보다 곡물가격 상승률이 훨씬 더 높았습니다(이후 인클로저 운동으로 번졌다). 지난달 물가가 7%나 오른 미국에서 같은 기간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4.7% 오르는데 그쳤습니다(29.91달러-->31.31달러).

실질임금이 깎인 겁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2월 물가를 반영한 노동자들의 임금은 되려 -2.4%로 뒷걸음쳤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럼 노동자들의 구매력이 떨어집니다. 그럼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이 어려워집니다. 경기가 가라앉습니다.

인플레이션은 그래서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겁니다. 해법은 하나, 기업들이 임금을 올려주면 됩니다. 하지만 테슬라처럼 잘나가는 일부 기업들만 매출이 폭발합니다.

우리도 이른바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 같은 기업들만 뜨겁습니다. 다수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힘듭니다. 임금을 못 올려줍니다. 소비자들의 지갑이 가벼워지고 경기는 자칫 무거워집니다. 1929년 대공황때 그랬고, 지난 20여 년간 일본이 그랬습니다.

"where skills and talent will determine companies’ futures, far-sighted executives should seek practices that fairly compensate good workers. If not, weak wages will drag us all down.-

기술과 인재가 기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시장에서, 멀리 내다보는 경영진이라면 좋은 근로자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야합니다. 그렇게 못한다면, 우리 모두를 끌어내릴 거예요"

-블룸버그 기사중에서

태국의 전년1월  대비 물가상승률. 돼지고기가격은 44% 닭가슴살은 39%, 올리브유 가격은 57%올랐다. 방콕과 푸껫의 최저임금만 오르지 않았다.태국의 전년1월 대비 물가상승률. 돼지고기가격은 44% 닭가슴살은 39%, 올리브유 가격은 57%올랐다. 방콕과 푸껫의 최저임금만 오르지 않았다.

■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


선진국(우리도 마찬가지지만)의 인플레이션은 사실 20세기의 문제였습니다. 앉아서 내 지갑을 털어갑니다.(미국의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7%라면, 1년전 미국인들의 1,000만 원이 지금은 930만 원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이후 저성장이 자리잡았습니다.

21세기는 인플레보다 디플레이션이 걱정입니다. 그래서 중앙은행들은 모두 '물가를 올리는 기관'이 됐습니다. 소방서가 불을 붙이는 곳이 된겁니다. 지난 40년 동안 금리는 그렇게 계속 떨어졌습니다. 그러다 잊고 지냈던 인플레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모든 것의 가격이 오릅니다. 물가 인상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가혹합니다 (부자들은 샴푸가격 인상이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부동산 같은 자산을 쥐고 있어 인플레 피해를 보전받는다). 서민들을 쥐어 짭니다.(스크루플레이션 Screwflation). 인플레가 서민들을 쥐어 짜고, 서민들은 지갑을 쥐어 짭니다.

수천년 동안 시장경제는 화폐가 남발될 때마다 늘 '인플레이션'이라는 형벌을 내려왔습니다. 로마의 왕들이 금화와 은화의 순도를 속였을 때도, 16세기 아메리카 대륙에서 채굴한 금과 은이 유럽대륙에 밀려올 때도, 대원군이 엉터리 당백전을 마구 발행할 때도 그랬습니다. 그때마다 돈의 가치가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잠깐 잊고 있었습니다. 화폐를 자꾸 찍어내면 다같이 망한다는 것을...

흔히들 경제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하죠. 잔뜩 돈을 찍어낸 시간이 지나고, 이제 금리가 올라갑니다. 만조가 지나고 썰물 시간입니다. 버핏의 말처럼, 이제 누가 옷을 벗고 있는지 드러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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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25 08:00:05
    특파원 리포트

■ 오랜만이야 이런 인플레!

2차 석유파동이 터지고 1979년 무렵입니다. 미국의 물가는 14%나 폭등했습니다. 구원투수로 연준(미국 연방준비제도, Fed) 의장에 오른 폴 볼커(paul Adolph Volcker)는 79년 10월 6일 기준금리를 15.5%(오타 아님)까지 올렸습니다. 언론은 '토요일밤의 학살'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저기서 곡소리가 났죠. 고금리로 망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볼커가 권총을 차고 출근했단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물가가 잡혔습니다. 볼커는 그렇게 '버블파이터'가 됐습니다(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칸막이를 분명히 만든 '볼커룰(Volcker rule)'의 볼커가 이 볼커 입니다).

그리고 또 미국의 물가가 오릅니다. 40년 만에 최고치입니다. 이렇게까지 차마 계속 오를 줄은 몰랐습니다. 연준은 '일시적(transitory)'이라고 자신했습니다. 아님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거지요. (제롬 파월에게 연임된다고 미리 말좀 해주지...). 이젠 두손 두발 다 들었습니다. 재빨리 태세전환입니다.

이제 금리를 '더 빨리 더 자주' 올려야 합니다. 연준은 말을 아끼는데, 며칠전 월가의 한 투자은행 회장님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올해 기준금리를 6~7번 올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투자자들의 몰매를 맞고 있습니다. 진짜 7번 내리 올려도 기준금리는 2% 정도인데...불안한 증시는 떨어지는 낙엽도 무섭습니다. ( 연준은 2004년부터 2년간 기준금리를 무려 4.5%를 올린 적도 있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됐는지는 다 아시죠? )

사필귀정입니다. 버블 파이터들이 버블을 만든 대가입니다. 돈을 썼으니 고지서가 날아올 시간입니다. 수퍼 비둘기들은 모두 꼬리를 내리고...이제 세상 모든 것의 가격이 오릅니다. 다시 찾아온 인플레이션의 시대. 젊은 세대는 특히 낯선 풍경입니다. '어서와, 이런 인플레는 처음이지?'


■ 바이든플레이션(Bidenflation)

돈은 연준이 풀었는데, 욕은 바이든이 먹습니다. 당연합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한 패가 된 건 꽤 오래전입니다. 지난 10월 미국의 인플레는 30년 만에 최고치였습니다. 그런데 한달뒤 11월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7%가 올랐습니다. 이번엔 40년 만에 최고치입니다.

얼마나 올랐을까. 미국의 중고차 가격은 37%나 올랐습니다. 중고차는 미국 물가지수(CPI)에 4%나 차지합니다. 휘발유는 45%, 호텔 요금은 27.6%나 급등했습니다.

'집에서 꼼짝마라'입니다. 그런데 소고기 가격은 18.6%, 달걀 가격은 12% 정도 올랐습니다. 로메인 상추값이 너무 올라서 시저샐러드에서 상추를 빼고 먹는답니다(응??). 집에만 있어도 물가 폭탄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결정적으로 월 주택임대료는 17%나 올랐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동네 마트, 생필품 코너가 텅 비었다. 출처 트위터
바이든 지지율이 자꾸 내려갑니다. 바이든의 새해 첫번째 업무는 유통업계와 고깃값 협의였습니다.(미국은 4개 유통기업이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유통의 70%를 차지한다.)

10여 년 전, 우리 이 모 대통령도 그랬습니다.(물가가 너무 치솟자 생필품 52개의 가격을 대통령이 직접 챙겼습니다. 이른바 'MB 물가지수'. 정작 2008년 3월~ 2011년 8월의 소비자물가는 13% 올랐는데, 우리의 MB물가지수는 '20%'가 올랐습니다...)


■ 인플레이션은 지구적 현상이다


며칠 전 이곳 태국 정부는 콜라 등 탄산 가격의 인상을 불허했습니다. 최근엔 유통업체들과 달걀 출하 가격을 협상했습니다. 사실은 정부가 달걀 1개당 2.9바트(100원 정도)로 정해줬습니다. 시장에서 이 가격보다 비싸게 달걀을 팔던 할머니가 정부 단속반에 적발됐습니다. 급기야 서럽게 웁니다(달걀도 내 맘대로 못 파는 세상...ㅠㅠㅠ). 뉴스에 나왔습니다.


유럽도 비슷합니다. 치즈와 바게트에서, 설탕, 해바라기유, 우유, 밀가루, 돼지다리와 닭가슴살 죄다 오릅니다. 지난해 12월 유로화를 쓰는 19개 나라의 평균 물가인상률이 5%를 기록했습니다. 24년 만에 최고치입니다.(미국은 40년 만에, 영국은 30년 만에 최고치인데, EU통계청/Eurostat이 97년에 출범해서...)

이 와중에 러시아는 대 유럽 가스 공급을 줄였습니다. 한겨울 유럽의 가스요금이 30% 가까이 치솟았습니다.


■ 왜 이렇게 오르나?


돈을 풀어도 너무 풀었습니다(정확하게는 돈이 풀린만큼 신용이 창출돼 그 신용만큼 유동성이 늘어난 겁니다). 참았던 소비가 폭발합니다. 소비 수요가 늘면 가격이 오르죠. 이렇게 수요가 급등하면 공장을 더 돌리면 됩니다. 이런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demand-full inflation)'은 비교적 쉽게 잡힙니다.

그런데 지금은 공급도 잘 안됩니다. 여기 저기서 공장이 꽉 막혔습니다. 일단 공장이 생산량을 늘리기 쉽지 않습니다. 나이키 운동화의 절반을 생산하는 베트남. 노동자들이 코로나 봉쇄로 고향으로 돌아간 뒤 복귀를 잘 안합니다. 코로나가 무섭고 공장 내 격리도 지겹습니다. 라인이 툭하면 멈춰 섭니다.

중국은요? 확진자 몇 명만 나와도 수백만 도시를 봉쇄합니다. 게다가 원자재 구하기도 쉽지않습니다.

그러니 현대차 GV60은 지금 주문하면 1년이 걸립니다. 반도체 등 부품이 없습니다. 이른바 '공급망 대란'입니다. 공장도 잘 안돌아가는데 게다가 운송도 어렵습니다. 트럭도 부족하고 상선도 부족한데, 그걸 운전할 기사도 부족하고 컨테이너도 부족합니다.


그러니 중국산 일회용컵도, 뚜껑도, 빨대도 태평양을 못 건너옵니다. 캘리포니아 커피숍의 테이크아웃 음료값이 2~3달러씩 치솟습니다(아니면 '테이크아웃 안돼요' 라고 써붙이거나~).

어렵게 바다를 건너온 컨테이너를 하적해야 하는데, 근로자 몇 명은 또 밀접접촉으로 격리중입니다. 몇 명은 시급 20달러(2만 4천원)를 주는 이탈리안 식당으로 직장을 옮겼답니다. 신차 생산이 늦어지니 다들 중고차로 눈을 돌립니다. 중고차 가격이 급등하고 있습니다(미국 언론은 이걸 또 carflation이라고 부른다).

그럼 비행기로 운송해 볼까? 기장부터 승무원, 발권 직원까지 상당수가 격리중이거나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공항 하역근로자 상당수가 이민자거나 불법체류자입니다. 고향에 갔던 로드리게스는 아직도 재입국을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하루에도 수천 여 대의 여객기 운항이 취소됩니다. 사람의 발이 묶입니다. 또다른 생산 차질로 이어집니다.

운송비가 치솟는데 사료값도 오릅니다. 전기요금도 오릅니다. 양계농장이 생산을 줄입니다. 생닭 출하가격이 급등합니다. 당장 중국에서 수입도 어렵습니다. 강아지와 고양이 사료값이 치솟습니다. 인플레는 인류 뿐만 아니라 고양이 생태계까지 위협합니다.

인도의 한 네티즌이 올린 트윗, DOVE사의 바디워시가 5개월만에 360루피(5700원)에서 395루피(6330원)로 올랐다.
■ 그런데 소득은요?


물가인상이 다 나쁜 건 아닙니다. 물가가 적당히(2% 정도) 올라주면 경제에도 좋습니다. 경제성장(GDP)은 '거래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 값의 합계'인데, 샴푸 하나가 1천 원 더 비싸게 거래되면 당연히 GDP가 1천원 만큼 올라갑니다 (그래서 한국은행도 요즘은 해마다 '2% 물가 인상'이 목표다).

문제는 소득입니다.

원래 다 올라도 유독 안오르는게 '남편 월급'인지라. 17세기에도 런던의 목수 임금 상승률보다 곡물가격 상승률이 훨씬 더 높았습니다(이후 인클로저 운동으로 번졌다). 지난달 물가가 7%나 오른 미국에서 같은 기간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4.7% 오르는데 그쳤습니다(29.91달러-->31.31달러).

실질임금이 깎인 겁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2월 물가를 반영한 노동자들의 임금은 되려 -2.4%로 뒷걸음쳤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럼 노동자들의 구매력이 떨어집니다. 그럼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이 어려워집니다. 경기가 가라앉습니다.

인플레이션은 그래서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겁니다. 해법은 하나, 기업들이 임금을 올려주면 됩니다. 하지만 테슬라처럼 잘나가는 일부 기업들만 매출이 폭발합니다.

우리도 이른바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 같은 기업들만 뜨겁습니다. 다수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힘듭니다. 임금을 못 올려줍니다. 소비자들의 지갑이 가벼워지고 경기는 자칫 무거워집니다. 1929년 대공황때 그랬고, 지난 20여 년간 일본이 그랬습니다.

"where skills and talent will determine companies’ futures, far-sighted executives should seek practices that fairly compensate good workers. If not, weak wages will drag us all down.-

기술과 인재가 기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시장에서, 멀리 내다보는 경영진이라면 좋은 근로자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야합니다. 그렇게 못한다면, 우리 모두를 끌어내릴 거예요"

-블룸버그 기사중에서

태국의 전년1월  대비 물가상승률. 돼지고기가격은 44% 닭가슴살은 39%, 올리브유 가격은 57%올랐다. 방콕과 푸껫의 최저임금만 오르지 않았다.
■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


선진국(우리도 마찬가지지만)의 인플레이션은 사실 20세기의 문제였습니다. 앉아서 내 지갑을 털어갑니다.(미국의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7%라면, 1년전 미국인들의 1,000만 원이 지금은 930만 원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이후 저성장이 자리잡았습니다.

21세기는 인플레보다 디플레이션이 걱정입니다. 그래서 중앙은행들은 모두 '물가를 올리는 기관'이 됐습니다. 소방서가 불을 붙이는 곳이 된겁니다. 지난 40년 동안 금리는 그렇게 계속 떨어졌습니다. 그러다 잊고 지냈던 인플레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모든 것의 가격이 오릅니다. 물가 인상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가혹합니다 (부자들은 샴푸가격 인상이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부동산 같은 자산을 쥐고 있어 인플레 피해를 보전받는다). 서민들을 쥐어 짭니다.(스크루플레이션 Screwflation). 인플레가 서민들을 쥐어 짜고, 서민들은 지갑을 쥐어 짭니다.

수천년 동안 시장경제는 화폐가 남발될 때마다 늘 '인플레이션'이라는 형벌을 내려왔습니다. 로마의 왕들이 금화와 은화의 순도를 속였을 때도, 16세기 아메리카 대륙에서 채굴한 금과 은이 유럽대륙에 밀려올 때도, 대원군이 엉터리 당백전을 마구 발행할 때도 그랬습니다. 그때마다 돈의 가치가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잠깐 잊고 있었습니다. 화폐를 자꾸 찍어내면 다같이 망한다는 것을...

흔히들 경제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하죠. 잔뜩 돈을 찍어낸 시간이 지나고, 이제 금리가 올라갑니다. 만조가 지나고 썰물 시간입니다. 버핏의 말처럼, 이제 누가 옷을 벗고 있는지 드러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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