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전부터 ‘학대 살해’ 경고음, 아무도 듣지 못했다

입력 2022.01.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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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구 천호동에서 3살 오 모 군이 숨진 건 지난해 11월 20일입니다. 직접적인 사인은 장기파열 등입니다. 부검 결과, 오 군의 몸에는 여러 차례에 걸쳐 생긴 멍이 10개 있었습니다.

오 군을 숨지게 한 건 의붓어머니 이 모 씨입니다. 이 씨는 오 군의 배를 여러 차례 강하게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정인이 사건 이후 신설된 '아동학대살해죄'가 적용됐습니다.

오늘(26일) 이 씨의 첫 재판이 열립니다. 검찰이 작성한 이 씨의 공소장을 미리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 반년 전부터 예고됐던 '학대살인'

공소장을 보면, 사건이 일어나기 반년 전부터 아동 학대 살인의 '경고등'은 켜져 있었습니다.

이 씨는 속칭 '독박육아'를 하기 시작한 지난해 5월부터 의붓아들인 오 군에 대한 스트레스를 표출했습니다. 남편에게 수차례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흉기를 언급하는 등 극도의 분노가 드러나 있습니다.

5월 이후 오 군에게는 그 전에 없던 외상도 생겼습니다. 취재진이 입수한 피해 유아의 의무기록을 보면, 그 전까지는 기관지 관련 질병으로 병원에 내원했습니다. 그러다가 6월 이후에는 '두피열상'이나 '발목골절' 등으로 병원에 갔습니다.

6월 13일 오 군이 입은 두피 열상(머리 피부가 찢어진 상처)의 경우, 오 군을 진료한 의사가 '중증' 상처로 진단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오 군이 진료를 받은 것은 이 상처를 입은 뒤 하룻밤이 지난 이튿날 오후였습니다. 이 씨가 그때 병원에 데려갔기 때문입니다.

이 씨가 임신 중이었던 10월 말에는 '오 군을 회초리로 때렸다'고 메시지를 보내 남편에게 학대 사실을 알리기까지 했습니다. 실제 이 시기, 이 씨는 효자손으로 3살 오 군의 종아리를 수차례 때린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학대 정도는 점점 심해졌습니다. 오 군이 숨지기 사흘 전 이 씨는 자신의 발과 무릎 등으로 아이를 때렸고, 그 결과 오 군의 등에는 멍이 들었습니다.

사망 당일에도 이 씨는 남편이 출근한 뒤부터 아이의 머리와 배 등을 수차례 때렸고, 결국 의식을 잃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바로 병원에 데려가지 않다가, 3시간쯤 지나서야 "아이가 숨을 안 쉰다"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오 군은 그제서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6시간 만에 숨졌습니다.

■ 학대 살인 경고음, 아무도 듣지 못했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이 씨가 '독박육아' 등에 대한 스트레스로 남편에게 끊임없이 학대 신호를 보냈지만 구청, 주민센터, 경찰서 등 관계기관에 들어온 학대 신고는 없었습니다.

이 경고음을 아무도 듣지 못한 이유는 뭘까.

이 씨는 지난해 9월 23일부터 오 군을 집 인근의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 어린이집이 코로나로 폐쇄돼 등원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27일 이 씨는 오 군이 다리를 다쳐 깁스를 했다며 어린이집에서 퇴소시켰습니다. 실제 어린이집에 다닌 날은 하루 이틀에 불과합니다. 이후 이 씨는 오 군에 대한 양육수당을 주민센터에서 수령해 집에서 양육했습니다.

가정에서 양육하는 아동의 안전을 확인하는 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정부는 2019년부터 '만 3살 가정양육 아동 소재·안전 전수조사'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조사했는데, 조사 대상이 2017년 1월 1일부터 그해 말 사이 출생한 어린이들이었습니다. 오 군은 여기 들지 못했습니다. 2018년생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유일하게 '학대 경고음'을 들을 수 있었던 건 남편이었습니다. 이 씨의 남편이자 오 군의 친부는 학대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숨진 오 군의 친모 측 법률대리인인 김환섭 변호사(법무법인 이현)는 "친모 측은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 정도로 여전히 괴로움 속에서 살고 있다"라며 "이들에 대한 엄벌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아이의 보호를 담당하고 있던 계모의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고, 폭행·학대했다는 신호를 친부에게 주기도 했다"라며 친부는 최악의 경우 아이가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예측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도 했습니다.

검찰은 이 씨의 남편인 오 씨도 아동 유기와 방임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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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년 전부터 ‘학대 살해’ 경고음, 아무도 듣지 못했다
    • 입력 2022-01-26 07:00:02
    취재K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서 3살 오 모 군이 숨진 건 지난해 11월 20일입니다. 직접적인 사인은 장기파열 등입니다. 부검 결과, 오 군의 몸에는 여러 차례에 걸쳐 생긴 멍이 10개 있었습니다.

오 군을 숨지게 한 건 의붓어머니 이 모 씨입니다. 이 씨는 오 군의 배를 여러 차례 강하게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정인이 사건 이후 신설된 '아동학대살해죄'가 적용됐습니다.

오늘(26일) 이 씨의 첫 재판이 열립니다. 검찰이 작성한 이 씨의 공소장을 미리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 반년 전부터 예고됐던 '학대살인'

공소장을 보면, 사건이 일어나기 반년 전부터 아동 학대 살인의 '경고등'은 켜져 있었습니다.

이 씨는 속칭 '독박육아'를 하기 시작한 지난해 5월부터 의붓아들인 오 군에 대한 스트레스를 표출했습니다. 남편에게 수차례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흉기를 언급하는 등 극도의 분노가 드러나 있습니다.

5월 이후 오 군에게는 그 전에 없던 외상도 생겼습니다. 취재진이 입수한 피해 유아의 의무기록을 보면, 그 전까지는 기관지 관련 질병으로 병원에 내원했습니다. 그러다가 6월 이후에는 '두피열상'이나 '발목골절' 등으로 병원에 갔습니다.

6월 13일 오 군이 입은 두피 열상(머리 피부가 찢어진 상처)의 경우, 오 군을 진료한 의사가 '중증' 상처로 진단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오 군이 진료를 받은 것은 이 상처를 입은 뒤 하룻밤이 지난 이튿날 오후였습니다. 이 씨가 그때 병원에 데려갔기 때문입니다.

이 씨가 임신 중이었던 10월 말에는 '오 군을 회초리로 때렸다'고 메시지를 보내 남편에게 학대 사실을 알리기까지 했습니다. 실제 이 시기, 이 씨는 효자손으로 3살 오 군의 종아리를 수차례 때린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학대 정도는 점점 심해졌습니다. 오 군이 숨지기 사흘 전 이 씨는 자신의 발과 무릎 등으로 아이를 때렸고, 그 결과 오 군의 등에는 멍이 들었습니다.

사망 당일에도 이 씨는 남편이 출근한 뒤부터 아이의 머리와 배 등을 수차례 때렸고, 결국 의식을 잃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바로 병원에 데려가지 않다가, 3시간쯤 지나서야 "아이가 숨을 안 쉰다"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오 군은 그제서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6시간 만에 숨졌습니다.

■ 학대 살인 경고음, 아무도 듣지 못했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이 씨가 '독박육아' 등에 대한 스트레스로 남편에게 끊임없이 학대 신호를 보냈지만 구청, 주민센터, 경찰서 등 관계기관에 들어온 학대 신고는 없었습니다.

이 경고음을 아무도 듣지 못한 이유는 뭘까.

이 씨는 지난해 9월 23일부터 오 군을 집 인근의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 어린이집이 코로나로 폐쇄돼 등원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27일 이 씨는 오 군이 다리를 다쳐 깁스를 했다며 어린이집에서 퇴소시켰습니다. 실제 어린이집에 다닌 날은 하루 이틀에 불과합니다. 이후 이 씨는 오 군에 대한 양육수당을 주민센터에서 수령해 집에서 양육했습니다.

가정에서 양육하는 아동의 안전을 확인하는 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정부는 2019년부터 '만 3살 가정양육 아동 소재·안전 전수조사'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조사했는데, 조사 대상이 2017년 1월 1일부터 그해 말 사이 출생한 어린이들이었습니다. 오 군은 여기 들지 못했습니다. 2018년생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유일하게 '학대 경고음'을 들을 수 있었던 건 남편이었습니다. 이 씨의 남편이자 오 군의 친부는 학대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숨진 오 군의 친모 측 법률대리인인 김환섭 변호사(법무법인 이현)는 "친모 측은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 정도로 여전히 괴로움 속에서 살고 있다"라며 "이들에 대한 엄벌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아이의 보호를 담당하고 있던 계모의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고, 폭행·학대했다는 신호를 친부에게 주기도 했다"라며 친부는 최악의 경우 아이가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예측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도 했습니다.

검찰은 이 씨의 남편인 오 씨도 아동 유기와 방임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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