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러시아가 전면전은 감행 못 할 경제적 이유

입력 2022.01.26 (08:25) 수정 2022.01.2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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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우크라이나 위기를 러시아 입장에서 살펴본다. 경제적 득실을 따져본다. 2014년 침공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다. 그러면 2022년 1월, 러시아가 전면전을 감행 하기 쉽지 않은 경제적 이유를 살펴볼 수 있다.



■ 우크라이나 도발의 원점 '2014년'으로 돌아가기

첫 단추는 2014년에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크림 반도를 병합한 그해다. 그해 러시아 경제를 봐야 한다.

사실 2014년 이후 러시아 경제는 계속 궤도 이탈 상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는 1인당 GDP다. 러시아 1인당 국민소득은 2014년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구소련 붕괴 뒤 조금씩 회복하던 러시아 경제가 급격한 전환을 맞았다. 추락했다.



■ 2014~15년, 러시아 덮친 경제위기 원인은 미 연준의 QE3(3차 양적 완화) 종료와 국제유가 폭락

경제추락 첫 번째 이유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아니다.

첫째는 미국의 양적 완화 종료다. 2014년 1월부터 미 연준은 3차 양적 완화 규모를 매월 850억 달러에서 750억 달러로, 또 650억 달러로 단계적으로 줄여나갔다. 10월부터는 추가 매입을 중단했다.

이 양적 완화 축소를 시사한 2013년부터 세계는 '긴축발작'을 앓았다. 2013년 5월, 당시 연준의장이던 벤 버냉키가 언급하자 출렁, 한 달 뒤에 '9월부터' 축소를 위한 표결에 들어가겠다고 하자 출렁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다. 지금 파월 의장의 연준이 벌이는 일이다.)


준비가 안 돼 있던 세계 경제는 타격을 받는다. 우선 주식시장 등 자산시장이 된서리를 맞는다. 동시에 신흥국이 타격받는다.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당시 터키의 지도자 에르도안은 (지금처럼) 분노했다. 선동적 연설로 국제 금융 시스템을 비난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해외 세력과 금융권, 그리고 국내외 언론사들이 만들어낸 음모", "모두 같은 목표를 향해 만들어진 똑같은 함정에 똑같은 수작이다."라고 했다.


둘째는 국제유가 폭락이다. 직접적으로는 OPEC의 증산 때문이다. 6월에 112달러 하던 국제유가는 12월에 60달러까지 떨어진다. 이게 자원 수출에 의존하던 러시아 경제, 나아가 정부 재정을 심각하게 압박한다.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 바로잡고 가야한다.

다들 러시아의 땅이 거대하고, 또 다들 러시아를 자원 부국이라고들 하니 러시아의 경제 규모도 거대할 줄 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지난해 GDP 총액 기준 경제 규모가 우리나라보다 한 계단 아래(11위)다. 덩치와 비교하면 무척 왜소하다. 자원 수출 의존형 신흥국에 가깝다.

즉, 러시아는 양적 완화 종료와 국제유가 폭락의 직격탄을 맞기 적절한 위치에 있는, 적절한 규모인 국가였다.


■ 환율은 2.5배 폭등, 기준금리는 한 번에 10.5%P 인상

신흥국 외환시장은 늘 경제위기에 반응한다. 11월 루블화 폭락이 시작된다. 달러당 33루블이던 환율이 급격히 치솟는다. 12월 1일 49루블, 12월 16일 순간적으로 80루블까지 뛴다.

그 사이(12월 15일) 기준금리를 6.5%에서 17%로 무려 10.5% 포인트나 인상했는데 소용이 없었다. (붕괴 Crashed, 아담 투즈, 2019)


이후 2015년 연말까지 지속적으로 악화된 환율이 상징하듯, 러시아 경제는 초토화된다. 집권 2기 푸틴은 이 위기를 역외 재산 도피 금지 조치와 은행 자본 재구성, 외환보유고 방출을 통해 가까스로 넘긴다. 해결했다기보다는, 국가 부도 위기만 넘겼을 뿐이다.


놀라운 건 푸틴은 너무나 건재했다는 점이다.


■ 경제위기에도 지지율 89%까지 치솟은 푸틴 위상… "단 20일 만에 크림반도 합병한 '지정학적 승리'의 서사"

오히려 2013년 40% 중반대이던 총리 지지율은 2014년 70%대까지 폭등했다. 푸틴 개인 지지율은 2015년 6월 89%까지 치솟았다. 경제위기가 벌어지는데 지도자는 절대 권력에 다가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그 아이러니 뒤에 '우크라이나 침공' 아이러니가 있다.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광석화'였다.

EU와 러시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마지막 순간 러시아를 택한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 야누코비치. 국민적 저항을 개헌으로 돌파하려다 더 큰 시위를 자초하고, 급기야 2월 22일 새벽 수도 키예프에서 도망친다.

러시아는 불과 닷새 뒤(27일) 행동에 나선다. 흑해함대가 주둔하던 크림반도 주요시설을 전격적으로 점령하는데, 이후 러시아 병합까지는 순식간이다.

이틀 뒤(3월 1일) 러시아 의회의 군사력 사용 승인, 닷새 뒤(6일) 크림의회의 러시아 합병 결의, 다시 닷새 뒤(11일) 독립 선포. 또 닷새 뒤(16일) 주민투표(96.6% 압도적 찬성)를 거치고, 이틀 뒤(18일) 러시아에 합병.


단 20일 만에, 서방이 손 쓸 새도 없이 푸틴은 크림반도를 손에 넣었다.

영토 확장이라는 '모험적 시도'에 성공한 푸틴은 '차르' 지위에 올라서며, 극심한 경제위기 속에서도 권좌를 공고히 하는 데 성공했다.


■ '지정학적 승리'라는 상징으로 경제 불만 잠재우다

사실 결론까지 해피엔딩인 건 아니다.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은 러시아의 무력, 자금, 무기 지원에도 불구하고 내전에서 이기지 못했다. 특히 반군은 2014년 7월 17일, 말레이시아 민항기를 격추하는 치명적 실책을 저지른다. 민간인 298명이 사망한 이 사건은 러시아 피를 말리는 전방위 군사, 경제 제재로 이어진다.


이 제재에는 천연가스 등 에너지 의존 때문에 소극적이던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모두 참여한다. 직접적 효과만 2015년 러시아 GDP의 5%에 해당할 것으로 추산됐다. 전례없는 이 제재는 러시아 경제 추락의 세 번째 원인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푸틴의 주가가 치솟았다. 그 정도로 '크림 합병'이라는 메시지의 힘이 컸다.

모두가 21세기에는 지도상 국경을 바꾸는 전쟁은 불가능하다고 여길 때, 푸틴의 '모험'적 군사행동이 단 20일 만에 전례 없는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렇다 할 군사-경제적 피해도 없었다. NATO의 동진에 눌려 힘을 잃어간다던 러시아가 극적인 반격에 성공했다. 동유럽 지정학은 일거에 뒤바뀌었다.

러시아 국민들에게 승리감을 선사한 이 '상징'과 함께 '민족주의 국가' 러시아가 확고하게 부활했다. 경제적 고통이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될 만큼 큰 변화였다.



■ 이번엔 다르다? ①도발의 경제 비용이 훨씬 크다

이 기억이 2022년 1월 세계를 불안하게 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푸틴은 전략적 목표를 손에 넣을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보면 상황은 다르다. 우선 러시아가 '무혈입성'할 땅이 지금 우크라이나엔 없다. 러시아가 거둔 승리는 2014년 '크림반도 합병'이라는 정치적 성과에 의존하는데, 감시의 눈이 집중된 지금 우크라이나 어디서도 '전광석화'와 같은 점령은 불가능하다.

대포 등 중화기를 앞세우고 항공기 등 공중 전력을 출격시키면서 '전면전' 형식으로 진군해야 한다. 게다가 나토는 지금 병력 파견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

이 대규모 군사 충돌을 감당할 경제력이 러시아엔 없다. 경제 규모는 이탈리아 수준에 불과하다. 프랑스, 독일과는 비교할 수 없다. 국방비 규모도 초라하다. 지출액에서 지난해 우리나라에 역전당했다. 절대 금액이 쪼그라들었다.

장기전, 지구전으로 가면 답이 없다. 즉, 이번 도발은 2014년과 달리 비용이 많이 들 것이다.

유로마이단 6주년 집회, 2019년 당시유로마이단 6주년 집회, 2019년 당시

초기작전에 성공해도 문제다. 크림이 아닌 우크라이나는 고분고분한 나라가 아니다. 러시아 합병 당시 크림 지역은 96%의 절대적 지지를 보였다. 점령 뒤 비용이 없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는 다르다. '서구화'를 열망하는 시민들 수십만 명이 나와 민주화 시위를 벌인 곳이다. 우크라이나 서부지역 대부분은 EU와 NATO 가입 여론이 훨씬 높다. 이들을 군사력으로 지배할 수 있을까? '억압적 통제'의 경제적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따라서 모험적 시도는 경제적으로 뒷받침하기 쉽지 않고, 지속하기도 쉽지 않다.

실패의 정치적 타격도 심대할 것이다. 성공했을 때 지도자로서 푸틴의 위상이 확고해졌던 그만큼, 실패의 대가는 클 것이다.


■ ②상황은 또다시 미국의 긴축 국면...국제유가가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글로벌 경제 흐름도 결단을 주저하게 만들 이유다. 앞서 살폈듯 2014년 러시아 경제 위기는 글로벌 긴축과 유가 폭락의 결합에서 비롯됐다. 폭등한 환율이 그 지표다.

그런데 당시 러시아 경제를 속수무책으로 만들었던 이 루블화 환율이 지금도 좋지 않다. 당시 달러당 80루블대 까지 치솟았는데, 지금도 78루블에 달한다.


게다가 또다시 긴축 국면이다. 공교롭게도 미 연준은 지금도 긴축을 준비한다. 2014년의 한파가 다시 시작되려 한다.

공급망 불안의 수혜도 언제까지 지속될지 불확실하다. 원자재 가격 고공행진은 러시아의 위상을 높였다. 대유럽 억지력의 한 축이었다. 문제는 미국이 긴축에 들어가는 만큼, 이후 공급망 불안이 잦아들고 에너지 가격이 안정세를 되찾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단 점이다.

이 과정에서 유가가 급락한다면 지정학적 모험은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즉, 크림 병합에 버금가는 성취를 거둘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게 없다면 글로벌 긴축의 불확실성이 가득한 지금, 위태로운 신흥국 러시아가 전차를 우크라이나 국경 안으로 들여놓기 쉽지 않다.

그래서 경제적으로만 보면, 러시아가 (소규모 국지전은 몰라도) 전면전을 감행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인포그래픽 :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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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도 러시아가 전면전은 감행 못 할 경제적 이유
    • 입력 2022-01-26 08:25:00
    • 수정2022-01-26 15: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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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위기를 러시아 입장에서 살펴본다. 경제적 득실을 따져본다. 2014년 침공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다. 그러면 2022년 1월, 러시아가 전면전을 감행 하기 쉽지 않은 경제적 이유를 살펴볼 수 있다. <br />


■ 우크라이나 도발의 원점 '2014년'으로 돌아가기

첫 단추는 2014년에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크림 반도를 병합한 그해다. 그해 러시아 경제를 봐야 한다.

사실 2014년 이후 러시아 경제는 계속 궤도 이탈 상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는 1인당 GDP다. 러시아 1인당 국민소득은 2014년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구소련 붕괴 뒤 조금씩 회복하던 러시아 경제가 급격한 전환을 맞았다. 추락했다.



■ 2014~15년, 러시아 덮친 경제위기 원인은 미 연준의 QE3(3차 양적 완화) 종료와 국제유가 폭락

경제추락 첫 번째 이유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아니다.

첫째는 미국의 양적 완화 종료다. 2014년 1월부터 미 연준은 3차 양적 완화 규모를 매월 850억 달러에서 750억 달러로, 또 650억 달러로 단계적으로 줄여나갔다. 10월부터는 추가 매입을 중단했다.

이 양적 완화 축소를 시사한 2013년부터 세계는 '긴축발작'을 앓았다. 2013년 5월, 당시 연준의장이던 벤 버냉키가 언급하자 출렁, 한 달 뒤에 '9월부터' 축소를 위한 표결에 들어가겠다고 하자 출렁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다. 지금 파월 의장의 연준이 벌이는 일이다.)


준비가 안 돼 있던 세계 경제는 타격을 받는다. 우선 주식시장 등 자산시장이 된서리를 맞는다. 동시에 신흥국이 타격받는다.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당시 터키의 지도자 에르도안은 (지금처럼) 분노했다. 선동적 연설로 국제 금융 시스템을 비난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해외 세력과 금융권, 그리고 국내외 언론사들이 만들어낸 음모", "모두 같은 목표를 향해 만들어진 똑같은 함정에 똑같은 수작이다."라고 했다.


둘째는 국제유가 폭락이다. 직접적으로는 OPEC의 증산 때문이다. 6월에 112달러 하던 국제유가는 12월에 60달러까지 떨어진다. 이게 자원 수출에 의존하던 러시아 경제, 나아가 정부 재정을 심각하게 압박한다.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 바로잡고 가야한다.

다들 러시아의 땅이 거대하고, 또 다들 러시아를 자원 부국이라고들 하니 러시아의 경제 규모도 거대할 줄 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지난해 GDP 총액 기준 경제 규모가 우리나라보다 한 계단 아래(11위)다. 덩치와 비교하면 무척 왜소하다. 자원 수출 의존형 신흥국에 가깝다.

즉, 러시아는 양적 완화 종료와 국제유가 폭락의 직격탄을 맞기 적절한 위치에 있는, 적절한 규모인 국가였다.


■ 환율은 2.5배 폭등, 기준금리는 한 번에 10.5%P 인상

신흥국 외환시장은 늘 경제위기에 반응한다. 11월 루블화 폭락이 시작된다. 달러당 33루블이던 환율이 급격히 치솟는다. 12월 1일 49루블, 12월 16일 순간적으로 80루블까지 뛴다.

그 사이(12월 15일) 기준금리를 6.5%에서 17%로 무려 10.5% 포인트나 인상했는데 소용이 없었다. (붕괴 Crashed, 아담 투즈, 2019)


이후 2015년 연말까지 지속적으로 악화된 환율이 상징하듯, 러시아 경제는 초토화된다. 집권 2기 푸틴은 이 위기를 역외 재산 도피 금지 조치와 은행 자본 재구성, 외환보유고 방출을 통해 가까스로 넘긴다. 해결했다기보다는, 국가 부도 위기만 넘겼을 뿐이다.


놀라운 건 푸틴은 너무나 건재했다는 점이다.


■ 경제위기에도 지지율 89%까지 치솟은 푸틴 위상… "단 20일 만에 크림반도 합병한 '지정학적 승리'의 서사"

오히려 2013년 40% 중반대이던 총리 지지율은 2014년 70%대까지 폭등했다. 푸틴 개인 지지율은 2015년 6월 89%까지 치솟았다. 경제위기가 벌어지는데 지도자는 절대 권력에 다가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그 아이러니 뒤에 '우크라이나 침공' 아이러니가 있다.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광석화'였다.

EU와 러시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마지막 순간 러시아를 택한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 야누코비치. 국민적 저항을 개헌으로 돌파하려다 더 큰 시위를 자초하고, 급기야 2월 22일 새벽 수도 키예프에서 도망친다.

러시아는 불과 닷새 뒤(27일) 행동에 나선다. 흑해함대가 주둔하던 크림반도 주요시설을 전격적으로 점령하는데, 이후 러시아 병합까지는 순식간이다.

이틀 뒤(3월 1일) 러시아 의회의 군사력 사용 승인, 닷새 뒤(6일) 크림의회의 러시아 합병 결의, 다시 닷새 뒤(11일) 독립 선포. 또 닷새 뒤(16일) 주민투표(96.6% 압도적 찬성)를 거치고, 이틀 뒤(18일) 러시아에 합병.


단 20일 만에, 서방이 손 쓸 새도 없이 푸틴은 크림반도를 손에 넣었다.

영토 확장이라는 '모험적 시도'에 성공한 푸틴은 '차르' 지위에 올라서며, 극심한 경제위기 속에서도 권좌를 공고히 하는 데 성공했다.


■ '지정학적 승리'라는 상징으로 경제 불만 잠재우다

사실 결론까지 해피엔딩인 건 아니다.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은 러시아의 무력, 자금, 무기 지원에도 불구하고 내전에서 이기지 못했다. 특히 반군은 2014년 7월 17일, 말레이시아 민항기를 격추하는 치명적 실책을 저지른다. 민간인 298명이 사망한 이 사건은 러시아 피를 말리는 전방위 군사, 경제 제재로 이어진다.


이 제재에는 천연가스 등 에너지 의존 때문에 소극적이던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모두 참여한다. 직접적 효과만 2015년 러시아 GDP의 5%에 해당할 것으로 추산됐다. 전례없는 이 제재는 러시아 경제 추락의 세 번째 원인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푸틴의 주가가 치솟았다. 그 정도로 '크림 합병'이라는 메시지의 힘이 컸다.

모두가 21세기에는 지도상 국경을 바꾸는 전쟁은 불가능하다고 여길 때, 푸틴의 '모험'적 군사행동이 단 20일 만에 전례 없는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렇다 할 군사-경제적 피해도 없었다. NATO의 동진에 눌려 힘을 잃어간다던 러시아가 극적인 반격에 성공했다. 동유럽 지정학은 일거에 뒤바뀌었다.

러시아 국민들에게 승리감을 선사한 이 '상징'과 함께 '민족주의 국가' 러시아가 확고하게 부활했다. 경제적 고통이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될 만큼 큰 변화였다.



■ 이번엔 다르다? ①도발의 경제 비용이 훨씬 크다

이 기억이 2022년 1월 세계를 불안하게 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푸틴은 전략적 목표를 손에 넣을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보면 상황은 다르다. 우선 러시아가 '무혈입성'할 땅이 지금 우크라이나엔 없다. 러시아가 거둔 승리는 2014년 '크림반도 합병'이라는 정치적 성과에 의존하는데, 감시의 눈이 집중된 지금 우크라이나 어디서도 '전광석화'와 같은 점령은 불가능하다.

대포 등 중화기를 앞세우고 항공기 등 공중 전력을 출격시키면서 '전면전' 형식으로 진군해야 한다. 게다가 나토는 지금 병력 파견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

이 대규모 군사 충돌을 감당할 경제력이 러시아엔 없다. 경제 규모는 이탈리아 수준에 불과하다. 프랑스, 독일과는 비교할 수 없다. 국방비 규모도 초라하다. 지출액에서 지난해 우리나라에 역전당했다. 절대 금액이 쪼그라들었다.

장기전, 지구전으로 가면 답이 없다. 즉, 이번 도발은 2014년과 달리 비용이 많이 들 것이다.

유로마이단 6주년 집회, 2019년 당시
초기작전에 성공해도 문제다. 크림이 아닌 우크라이나는 고분고분한 나라가 아니다. 러시아 합병 당시 크림 지역은 96%의 절대적 지지를 보였다. 점령 뒤 비용이 없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는 다르다. '서구화'를 열망하는 시민들 수십만 명이 나와 민주화 시위를 벌인 곳이다. 우크라이나 서부지역 대부분은 EU와 NATO 가입 여론이 훨씬 높다. 이들을 군사력으로 지배할 수 있을까? '억압적 통제'의 경제적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따라서 모험적 시도는 경제적으로 뒷받침하기 쉽지 않고, 지속하기도 쉽지 않다.

실패의 정치적 타격도 심대할 것이다. 성공했을 때 지도자로서 푸틴의 위상이 확고해졌던 그만큼, 실패의 대가는 클 것이다.


■ ②상황은 또다시 미국의 긴축 국면...국제유가가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글로벌 경제 흐름도 결단을 주저하게 만들 이유다. 앞서 살폈듯 2014년 러시아 경제 위기는 글로벌 긴축과 유가 폭락의 결합에서 비롯됐다. 폭등한 환율이 그 지표다.

그런데 당시 러시아 경제를 속수무책으로 만들었던 이 루블화 환율이 지금도 좋지 않다. 당시 달러당 80루블대 까지 치솟았는데, 지금도 78루블에 달한다.


게다가 또다시 긴축 국면이다. 공교롭게도 미 연준은 지금도 긴축을 준비한다. 2014년의 한파가 다시 시작되려 한다.

공급망 불안의 수혜도 언제까지 지속될지 불확실하다. 원자재 가격 고공행진은 러시아의 위상을 높였다. 대유럽 억지력의 한 축이었다. 문제는 미국이 긴축에 들어가는 만큼, 이후 공급망 불안이 잦아들고 에너지 가격이 안정세를 되찾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단 점이다.

이 과정에서 유가가 급락한다면 지정학적 모험은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즉, 크림 병합에 버금가는 성취를 거둘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게 없다면 글로벌 긴축의 불확실성이 가득한 지금, 위태로운 신흥국 러시아가 전차를 우크라이나 국경 안으로 들여놓기 쉽지 않다.

그래서 경제적으로만 보면, 러시아가 (소규모 국지전은 몰라도) 전면전을 감행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인포그래픽 :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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