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보스에서 ‘조 페라리’, 그리고 ‘두카티 캅’

입력 2022.01.26 (17:27) 수정 2022.01.2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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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카티 캅'

지난 1월 21일 낮, 태국 방콕 파야타이의 한 횡단보도.

무서운 속도로 달려온 오토바이에 길을 건너던 한 여성이 치였습니다. 여성은 충격으로 10여 미터를 튕겨나갔습니다. 놀란 행인들이 다가와 옷을 벗어 덮어주고(죽은 줄 알았나 봅니다). 여성은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얼마후 숨졌습니다.

그녀는 우리나라의 서울대학교병원격인 쭐라룽콘대학병원의 안과전문의 33살 '와랄락 수파와차리야쿨'입니다.


가해 오토바이 운전자는 '노라윗 부아독'이라는 젊은 경찰간부입니다. 방콕의 시위진압 부대에서 근무합니다. 사고 직후 병원에 입원한 그는 긴급체포됐지만 몇시간 뒤 풀려났습니다.

경찰은 그가 자백했고 도주 우려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가 몰던 이탈리아산 고급 경주용 두카티 오토바이가 논란이 됐습니다. 몇년 치 그의 월급만큼 비쌉니다. 태국 언론은 그를 '두카티 캅'이라고 부릅니다(태국은 이름이 어려워 일상에서도 이름보다 별칭을 부른다). 해당 오토바이는 세금이 체납됐고, 번호판도 없었습니다.

사고 직후 숨진 여성의 가족과 친구들이 현장의 CCTV나 블랙박스를 제공해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했습니다. 이후 여러개의 블랙박스 제보가 이어졌습니다. 노라윗의 무서운 질주와 와랄락이 10여 미터를 튕겨나가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제대로 처벌하라'는 목소리가 커집니다.

풀려난 노라윗은 지난 25일 유명 사찰을 찾아 머리를 깎고 단기 출가했습니다. 피해자의 명복을 비는 법회도 열었습니다. 그럴수록 그가 처벌을 피하려한다는 의심이 커졌습니다.

"네가 찾아 갈 곳은 부처님이 아니라 감옥"이라는 비난이 빗발쳤습니다. 26일 해당 사찰은 '피의자는 승려가 될 수 없다'며 그의 출가를 취소한다고 밝혔습니다.

가해 경찰관 ‘노라윗’은 풀려난 직후 단기 출가했다. 숨진 피해자의 영혼을 위한 법회도 열었다. 사진 SNS가해 경찰관 ‘노라윗’은 풀려난 직후 단기 출가했다. 숨진 피해자의 영혼을 위한 법회도 열었다. 사진 SNS

사고 사흘째인 24일은 오토바이 사고로 숨진 안과 의사 와랄락의 생일이였습니다. 그녀의 장례식장에서 친구들이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영상이 sns에 올라왔습니다. 태국 왕립경찰은 가해 경찰 '노라윗'이 휴가중이며, 곧 사법처리를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이 사건이 혹시 반정부 시위로 이어질까 걱정입니다. 방콕시청은 관내 횡단보도에 대한 일제 점검에 들어갔습니다 . 태국 왕립 경찰은 횡단보도에서 일단 멈춤을 지키지 않는 차량에 대한 벌금을 1천 바트에서 4천 바트(15만원 정도)로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 '조 페라리'

지난해 8월에는 태국 나콘사완의 현직 경찰서장이 경찰서에서 마약상을 살해한 혐의로 붙잡혔습니다.

마약상이 풀어주는 조건으로 100만 바트(3,600만원)를 제시했는데, 서장은 오히려 200만 바트를 요구했습니다. 마약상은 결국 서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찰들이 고문 중 씌운 비닐봉투에 질식해 숨졌습니다.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경찰사관학교를 졸업한 태국 최고의 엘리트 경찰이였습니다.

한 경찰의 용기있는 제보로 고문 장면이 담긴 CCTV가 공개됐습니다. 경찰서장 등 관련자들이 무더기로 검거됐습니다. 경찰서장의 집에서 람보르기니와 페라리 등 13대의 슈퍼카가 나왔습니다. 경찰 서장 월급 300년 치입니다. 재판에 넘겨진 경찰서장은 요즘 '조 페라리'라고 불립니다.


2021년 8월, 태국 나콘사완의 경찰서장 ‘티티산 우타나폰’이 부하직원과 함께 마약 피의자의 머리에 비닐을 씌워 고문하고 있다(왼쪽 사진). 마약상은 결국 질식사했다. 티티산의 집에서 나온 ‘페라리 승용차’. 태국 언론은 그를 ‘조 페라리’라고 부른다.2021년 8월, 태국 나콘사완의 경찰서장 ‘티티산 우타나폰’이 부하직원과 함께 마약 피의자의 머리에 비닐을 씌워 고문하고 있다(왼쪽 사진). 마약상은 결국 질식사했다. 티티산의 집에서 나온 ‘페라리 승용차’. 태국 언론은 그를 ‘조 페라리’라고 부른다.

'보스'

2012년 경찰을 치어 숨지게 한 스포츠 음료 기업 '레드불'의 손자 '오라윳 유위티야'는 아직도 검거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술에 취해 페라리를 몰다 경찰 오토바이를 들이 받은 뒤, 200미터를 끌고갔습니다. 경찰은 현장에서 숨졌지만, 그는 얼마뒤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술냄새가 진동했지만, 방콕 경찰은 '사고 후 무서워서 술을 마셨다'는 오라윳의 진술을 믿어줬습니다. 최고 권력기관 경찰이 재벌 앞에 서자 경찰의 죽음도 외면했습니다. 오라윳 가족의 재산은 5조 원 정도로 추정됩니다. 풀려난 오라윳은 가족의 전용 여객기를 이용해 해외로 잠적했습니다. 태국에서 그의 별명은 그래서 '보스(Boss)'입니다.


보스 ‘오라윳’이 몰던 페라리. 재벌 손자인 오라윳은 2012년 근무중이던 경찰을 치어 숨지게 한 뒤 검거됐지만 이후 풀려나 해외로 잠적했다.   사진 방콕 경찰보스 ‘오라윳’이 몰던 페라리. 재벌 손자인 오라윳은 2012년 근무중이던 경찰을 치어 숨지게 한 뒤 검거됐지만 이후 풀려나 해외로 잠적했다. 사진 방콕 경찰

■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먼저 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여기저기서 부를 독점합니다. 힘의 격차는 계속 커지고 그 격차는 또 부의 격차로 이어집니다.

태국은 아시아에서 빈부 격차가 가장 큰 나라중 하나입니다. 지난해 은퇴한 위라차이 송메타(Wirachai Songmetta) 경찰청장은 태국의 36번째 부자입니다(포브스 2021년)

보스가 해외로 잠적한 이후 세계 명소를 여행하는 모습이 그의 친구들 페이스북에 자주 올라왔습니다. 유독 태국 경찰만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보스는 지금도 인터폴 적색수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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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보스에서 ‘조 페라리’, 그리고 ‘두카티 캅’
    • 입력 2022-01-26 17:27:25
    • 수정2022-01-26 17:28:24
    특파원 리포트

■ '두카티 캅'

지난 1월 21일 낮, 태국 방콕 파야타이의 한 횡단보도.

무서운 속도로 달려온 오토바이에 길을 건너던 한 여성이 치였습니다. 여성은 충격으로 10여 미터를 튕겨나갔습니다. 놀란 행인들이 다가와 옷을 벗어 덮어주고(죽은 줄 알았나 봅니다). 여성은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얼마후 숨졌습니다.

그녀는 우리나라의 서울대학교병원격인 쭐라룽콘대학병원의 안과전문의 33살 '와랄락 수파와차리야쿨'입니다.


가해 오토바이 운전자는 '노라윗 부아독'이라는 젊은 경찰간부입니다. 방콕의 시위진압 부대에서 근무합니다. 사고 직후 병원에 입원한 그는 긴급체포됐지만 몇시간 뒤 풀려났습니다.

경찰은 그가 자백했고 도주 우려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가 몰던 이탈리아산 고급 경주용 두카티 오토바이가 논란이 됐습니다. 몇년 치 그의 월급만큼 비쌉니다. 태국 언론은 그를 '두카티 캅'이라고 부릅니다(태국은 이름이 어려워 일상에서도 이름보다 별칭을 부른다). 해당 오토바이는 세금이 체납됐고, 번호판도 없었습니다.

사고 직후 숨진 여성의 가족과 친구들이 현장의 CCTV나 블랙박스를 제공해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했습니다. 이후 여러개의 블랙박스 제보가 이어졌습니다. 노라윗의 무서운 질주와 와랄락이 10여 미터를 튕겨나가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제대로 처벌하라'는 목소리가 커집니다.

풀려난 노라윗은 지난 25일 유명 사찰을 찾아 머리를 깎고 단기 출가했습니다. 피해자의 명복을 비는 법회도 열었습니다. 그럴수록 그가 처벌을 피하려한다는 의심이 커졌습니다.

"네가 찾아 갈 곳은 부처님이 아니라 감옥"이라는 비난이 빗발쳤습니다. 26일 해당 사찰은 '피의자는 승려가 될 수 없다'며 그의 출가를 취소한다고 밝혔습니다.

가해 경찰관 ‘노라윗’은 풀려난 직후 단기 출가했다. 숨진 피해자의 영혼을 위한 법회도 열었다. 사진 SNS
사고 사흘째인 24일은 오토바이 사고로 숨진 안과 의사 와랄락의 생일이였습니다. 그녀의 장례식장에서 친구들이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영상이 sns에 올라왔습니다. 태국 왕립경찰은 가해 경찰 '노라윗'이 휴가중이며, 곧 사법처리를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이 사건이 혹시 반정부 시위로 이어질까 걱정입니다. 방콕시청은 관내 횡단보도에 대한 일제 점검에 들어갔습니다 . 태국 왕립 경찰은 횡단보도에서 일단 멈춤을 지키지 않는 차량에 대한 벌금을 1천 바트에서 4천 바트(15만원 정도)로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 '조 페라리'

지난해 8월에는 태국 나콘사완의 현직 경찰서장이 경찰서에서 마약상을 살해한 혐의로 붙잡혔습니다.

마약상이 풀어주는 조건으로 100만 바트(3,600만원)를 제시했는데, 서장은 오히려 200만 바트를 요구했습니다. 마약상은 결국 서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찰들이 고문 중 씌운 비닐봉투에 질식해 숨졌습니다.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경찰사관학교를 졸업한 태국 최고의 엘리트 경찰이였습니다.

한 경찰의 용기있는 제보로 고문 장면이 담긴 CCTV가 공개됐습니다. 경찰서장 등 관련자들이 무더기로 검거됐습니다. 경찰서장의 집에서 람보르기니와 페라리 등 13대의 슈퍼카가 나왔습니다. 경찰 서장 월급 300년 치입니다. 재판에 넘겨진 경찰서장은 요즘 '조 페라리'라고 불립니다.


2021년 8월, 태국 나콘사완의 경찰서장 ‘티티산 우타나폰’이 부하직원과 함께 마약 피의자의 머리에 비닐을 씌워 고문하고 있다(왼쪽 사진). 마약상은 결국 질식사했다. 티티산의 집에서 나온 ‘페라리 승용차’. 태국 언론은 그를 ‘조 페라리’라고 부른다.
'보스'

2012년 경찰을 치어 숨지게 한 스포츠 음료 기업 '레드불'의 손자 '오라윳 유위티야'는 아직도 검거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술에 취해 페라리를 몰다 경찰 오토바이를 들이 받은 뒤, 200미터를 끌고갔습니다. 경찰은 현장에서 숨졌지만, 그는 얼마뒤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술냄새가 진동했지만, 방콕 경찰은 '사고 후 무서워서 술을 마셨다'는 오라윳의 진술을 믿어줬습니다. 최고 권력기관 경찰이 재벌 앞에 서자 경찰의 죽음도 외면했습니다. 오라윳 가족의 재산은 5조 원 정도로 추정됩니다. 풀려난 오라윳은 가족의 전용 여객기를 이용해 해외로 잠적했습니다. 태국에서 그의 별명은 그래서 '보스(Boss)'입니다.


보스 ‘오라윳’이 몰던 페라리. 재벌 손자인 오라윳은 2012년 근무중이던 경찰을 치어 숨지게 한 뒤 검거됐지만 이후 풀려나 해외로 잠적했다.   사진 방콕 경찰
■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먼저 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여기저기서 부를 독점합니다. 힘의 격차는 계속 커지고 그 격차는 또 부의 격차로 이어집니다.

태국은 아시아에서 빈부 격차가 가장 큰 나라중 하나입니다. 지난해 은퇴한 위라차이 송메타(Wirachai Songmetta) 경찰청장은 태국의 36번째 부자입니다(포브스 2021년)

보스가 해외로 잠적한 이후 세계 명소를 여행하는 모습이 그의 친구들 페이스북에 자주 올라왔습니다. 유독 태국 경찰만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보스는 지금도 인터폴 적색수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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