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불 질러 계모 숨지게 한 50대…‘심신미약’ 주장했지만

입력 2022.01.2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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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로한 계모를 모신다며 함께 살기 시작한 50대 남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남성, 계모로부터 핀잔을 듣기 시작하자 돌연 살해할 마음을 품고 집에 불을 질렀는데요.

결국, 거동이 불편한 계모는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졌습니다. 재판에 넘겨진 이 남성은 술을 마셔 심신미약 상태에서 벌인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 술 많이 마신다는 계모 핀잔에 라이터로 집에 불 질러

지난해 7월 충남 부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50대 A 씨는 넉 달 전부터 80대의 계모를 모신다며 계모 소유의 단독주택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A 씨가 술을 많이 마시고 잠을 늦게 자는 일이 반복되자 계모가 핀잔을 했고 끝내는 말다툼을 하는 등 갈등을 빚어왔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7월 3일 밤 10시쯤 A 씨가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귀가한 뒤 혼자 막걸리를 마셨는데 계모에게서 "왜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잠을 자지 않느냐"는 꾸지람을 듣고 팔뚝을 꼬집히자 급기야 몸싸움까지 벌어졌습니다.

여기에 분이 풀리지 않은 A 씨, 3시간쯤 뒤인 다음날 새벽 식탁에 놓여 있던 라이터로 종이에 불을 붙이는 방법으로 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불이 난 단독주택 내부(사진제공: 충남 부여소방서)불이 난 단독주택 내부(사진제공: 충남 부여소방서)

■ 거동 불편한 계모 집 빠져나오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

당시 소방당국이 촬영한 집 내부 사진을 보면 얼마나 큰불이 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계모는 단독주택에서 슈퍼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는데 안에 있던 음료수병들까지 죄다 그을리거나 타버렸습니다. 유리창도 깨졌고 철문까지 녹아내렸습니다.

불은 집 내부를 모두 태우고 6,500만 원의 재산피해를 낸 뒤 1시간 30분 만에 꺼졌는데요. 치매와 당뇨 등의 질환으로 스스로 거동이 불편했던 계모는 안타깝게도 화장실에서 질식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 범행 잡아떼던 남성, 홀몸노인 보호 장비에 촬영...방화치사 혐의로 기소

불을 지른 뒤 A 씨는 홀로 집을 빠져나갔습니다. 경찰 조사에서는 불이 난 이유를 모르겠다고 잡아뗐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증거가 나왔습니다. 이 집에는 자치단체가 홀몸노인 보호를 위해서 불이 나면 자동으로 119에 신고를 하고 집 안을 촬영하게 하는 장비를 설치해뒀는데요.

여기에 A 씨가 화재 현장에 있던 모습이 찍혀 있었던 겁니다. 이를 근거로 경찰이 A 씨를 피의자로 전환하자 그제야 범행을 실토했습니다.

검찰은 A 씨를 현주건조물 방화치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 1심 법원, "인륜 저버린 행위"...징역 20년 선고

1심 법원은 숨진 계모가 친아들처럼 정성을 다해 A 씨를 양육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계모가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보고자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화장실까지 이동해 물을 튼 채 사망한 점을 봤을 때 인륜을 저버린 행위라고 판단했습니다.

여기에 방화에 며칠 앞서 면허취소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213%의 만취 상태로 승용차를 운전한 범죄사실도 더해졌는데요.

재판부는 죄책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습니다. A 씨는 당시 술에 취해 사물을 변별할 의사나 능력이 미약했고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장을 냈습니다.


■ 심신미약 주장했지만...항소심도 징역 20년 선고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A 씨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심신미약 주장에 대해서는 불을 지른 뒤 A 씨가 이웃집에 불이 났다고 알린 점, 수사기관에 당시 상황을 비교적 분명하게 진술한 점을 근거로 범행 당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양형부당 주장에 대해서는 순간적으로 홧김에 불을 질렀다면 계모를 구조하는 조치를 할 수 있었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현장을 빠져나온 점을 볼 때 살해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A 씨의 친척과 지인들이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는데 피고인의 범행을 제대로 인식하고 선처를 탄원하는지 의심스럽다며 A 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은 징역 20년을 선고했습니다.

A 씨는 최근 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는데요. 이 사건의 최종 판단은 대법원에서 내려지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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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에 불 질러 계모 숨지게 한 50대…‘심신미약’ 주장했지만
    • 입력 2022-01-27 07:01:01
    취재K

연로한 계모를 모신다며 함께 살기 시작한 50대 남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남성, 계모로부터 핀잔을 듣기 시작하자 돌연 살해할 마음을 품고 집에 불을 질렀는데요.

결국, 거동이 불편한 계모는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졌습니다. 재판에 넘겨진 이 남성은 술을 마셔 심신미약 상태에서 벌인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 술 많이 마신다는 계모 핀잔에 라이터로 집에 불 질러

지난해 7월 충남 부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50대 A 씨는 넉 달 전부터 80대의 계모를 모신다며 계모 소유의 단독주택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A 씨가 술을 많이 마시고 잠을 늦게 자는 일이 반복되자 계모가 핀잔을 했고 끝내는 말다툼을 하는 등 갈등을 빚어왔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7월 3일 밤 10시쯤 A 씨가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귀가한 뒤 혼자 막걸리를 마셨는데 계모에게서 "왜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잠을 자지 않느냐"는 꾸지람을 듣고 팔뚝을 꼬집히자 급기야 몸싸움까지 벌어졌습니다.

여기에 분이 풀리지 않은 A 씨, 3시간쯤 뒤인 다음날 새벽 식탁에 놓여 있던 라이터로 종이에 불을 붙이는 방법으로 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불이 난 단독주택 내부(사진제공: 충남 부여소방서)
■ 거동 불편한 계모 집 빠져나오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

당시 소방당국이 촬영한 집 내부 사진을 보면 얼마나 큰불이 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계모는 단독주택에서 슈퍼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는데 안에 있던 음료수병들까지 죄다 그을리거나 타버렸습니다. 유리창도 깨졌고 철문까지 녹아내렸습니다.

불은 집 내부를 모두 태우고 6,500만 원의 재산피해를 낸 뒤 1시간 30분 만에 꺼졌는데요. 치매와 당뇨 등의 질환으로 스스로 거동이 불편했던 계모는 안타깝게도 화장실에서 질식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 범행 잡아떼던 남성, 홀몸노인 보호 장비에 촬영...방화치사 혐의로 기소

불을 지른 뒤 A 씨는 홀로 집을 빠져나갔습니다. 경찰 조사에서는 불이 난 이유를 모르겠다고 잡아뗐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증거가 나왔습니다. 이 집에는 자치단체가 홀몸노인 보호를 위해서 불이 나면 자동으로 119에 신고를 하고 집 안을 촬영하게 하는 장비를 설치해뒀는데요.

여기에 A 씨가 화재 현장에 있던 모습이 찍혀 있었던 겁니다. 이를 근거로 경찰이 A 씨를 피의자로 전환하자 그제야 범행을 실토했습니다.

검찰은 A 씨를 현주건조물 방화치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 1심 법원, "인륜 저버린 행위"...징역 20년 선고

1심 법원은 숨진 계모가 친아들처럼 정성을 다해 A 씨를 양육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계모가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보고자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화장실까지 이동해 물을 튼 채 사망한 점을 봤을 때 인륜을 저버린 행위라고 판단했습니다.

여기에 방화에 며칠 앞서 면허취소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213%의 만취 상태로 승용차를 운전한 범죄사실도 더해졌는데요.

재판부는 죄책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습니다. A 씨는 당시 술에 취해 사물을 변별할 의사나 능력이 미약했고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장을 냈습니다.


■ 심신미약 주장했지만...항소심도 징역 20년 선고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A 씨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심신미약 주장에 대해서는 불을 지른 뒤 A 씨가 이웃집에 불이 났다고 알린 점, 수사기관에 당시 상황을 비교적 분명하게 진술한 점을 근거로 범행 당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양형부당 주장에 대해서는 순간적으로 홧김에 불을 질렀다면 계모를 구조하는 조치를 할 수 있었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현장을 빠져나온 점을 볼 때 살해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A 씨의 친척과 지인들이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는데 피고인의 범행을 제대로 인식하고 선처를 탄원하는지 의심스럽다며 A 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은 징역 20년을 선고했습니다.

A 씨는 최근 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는데요. 이 사건의 최종 판단은 대법원에서 내려지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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