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건강을 다짐한다면 “다정함을 처방합니다”

입력 2022.01.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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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다정함의 과학
켈리 하딩, 더 퀘스트


"새해엔 건강하시기를"

이맘때면 주고 받는 새해 인사입니다. 새해 선물세트 판매대엔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이 놓이고 각자 다짐하는 새해 소망에도 건강 관리는 빠지지 않습니다. 새해에는 운동을 시작하고, 식단을 관리하고, 아침을 챙겨 먹자고, 건강검진도 미루지 말자고 결심합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충분할까요? 컬럼비아대 메디컬센터의 켈리 하딩 교수는 '같은 병을 진단받은 환자들에게 같은 치료법이나 치료제를 처방해도 서로 진행 상태가 달라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연구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정신과 병동이 있는 병원에서 진료하는 정신과 전문의인 하딩 교수는 자신의 임상 경험과 사이언스, 네이처, 랜싯 등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 성과들을 분석합니다. 인용한 연구들은 질병의 원인을 사회적 환경에서 찾는 사회역학이나 직업환경의학 연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연구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은 건강의 결정 요인을 환자의 몸 밖에서 발견합니다.

결국 하딩 박사는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만드는 본질적 요소는 병원 진료실 밖에 있다고 결론 내립니다. 바로 다정함입니다.

■ 사람과의 관계가 건강 상태를 결정한다 : 토끼 효과

'다정함의 과학'으로 번역 출간된 하딩 박사의 저서 원제목은 '토끼 효과'입니다. 저자는 연구의 실마리를 1978년 사이언스에 등재된 토끼 실험에서 찾았습니다. 조지아대 생명공학과 네렘 교수팀은 고지방 식단이 심장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토끼들에게 몇달간 고지방 사료를 먹이고 콜레스테롤 수치와 심장박동수, 혈압을 측정했습니다. 예상대로 토끼들의 콜레스테롤 수치는 모두 동일하게 높았습니다.

그런데 동맥 혈관을 측정해보니 한 무리의 토끼들은 유독 지방 성분이 60% 낮게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통제한 요인들을 점검했습니다. 유일한 차이는 지방이 덜 쌓인 토끼들은 유달리 상냥한 연구원이 먹이를 줬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무리나 레베스끄라는 이 연구원은 토끼들에게 먹이를 줄 때 말을 걸거나 쓰다듬으며 애정을 줬습니다.

사회적 행동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당초 이 연구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연구팀은 실험조건을 더욱 엄격하게 통제해 같은 실험을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처음과 동일한 결과가 다시 반복됐습니다. 병에 걸리는 토끼와 건강을 유지하는 토끼를 나눈 것은 식단이나 유전자가 아니라 사람과 맺은 관계, 애정이었습니다.


건강과 장수, 행복의 결정 요인은 인간 관계

저자는 토끼 효과가 사람에게도 해당한다고 설명합니다. 사람과 교감하지 못할 때 사람은 심리적으로 위축될뿐만 아니라 신체에 고통을 느낍니다. 뇌 영상 연구에 따르면, 누군가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되면 뇌는 실제로 칼에 찔린 것과 비슷한 고통으로 인식합니다. 원치 않는 이별을 당하면, 실제로 뇌는 물리적인 아픔을 느낀다고 합니다.

관계 결핍이 지속되면 질병으로 이어집니다. 400만 명을 대상으로 한 메타분석에 따르면, 비만이 조기 사망 위험을 30% 높일 때 외로움은 조기 사망 위험을 50% 증가시켰습니다. 만성적으로 외로움을 느끼면 심장 질환과 뇌졸중 발병률은 약 30% 커집니다.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거나 과음을 하는 것과 같은 수준입니다.

저자는 친밀한 관계와 사회적 유대감이 건강과 장수, 행복의 결정요인이라고 강조합니다. "가장 유의미한 방식으로 우리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것은 진료실에서 일어나는 일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대하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인간으로서의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더 관련이 있다. "라고 말입니다.

■ 피할 수 없는 업무 스트레스, 직위와 연관

하지만 우리는 일상 생활을 친밀한 관계 속에서 지낼 수만은 없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냅니다. 특히 직장에서 존엄성, 자율성, 존중감이 있는지가 건강의 결정요인이 됩니다. 토끼 실험과 마찬가지로, 생리학적 위험 요인을 찾으려던 연구에서 도출된 결과입니다.

1960년대 영국 런던의 공무원 1만 7천여 명의 건강상태를 10년간 살핀 연구에 따르면, 심장마비와 같은 급사의 위험이 가장 큰 요인은 고용 등급으로 나타났습니다. 통념과 달리, 가장 낮은 직급에 있는 사람들은 높은 직급에 있는 사람들보다 심장마비로 사망할 확률이 3~6배 높았습니다. 과체중이나 흡연, 혈압 등 다른 요인들을 통제한 뒤에도 직위에 따른 결과는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같은 연구진이 1980년대 또다른 공무원 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관리자로부터 사회적인 지지를 받는다고 느끼는지, 업무 중 작업 통제권을 가지고 일에 대한 노력을 보상받는다고 느끼는지가 정신과 신체 건강에 주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직장만이 아닙니다. 일상 속에서 은밀하게 위협을 느끼고 괴롭힘을 당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차별을 경험한 소수자 집단은 질병 발병률이 더 높은 것으로 보고됩니다.


"건강 상태는 사회적 맥락의 결과"

저자는 다정함의 치유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방대한 데이터와 연구 결과를 제시합니다. 사회적, 환경적 요인으로 형성된 건강 상태가 대물림되는 후성유전, 스트레스가 염증과 질병을 유발하는 과정 같은 전문적인 내용도 포함되지만, 사례를 중심으로 전개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의사 교육을 받으면서 신체적 요소들로만 인간의 건강을 설명하는 생체의학에 몰입했던 저자가 실제 환자 진료 경험을 쌓으면서 관점을 바꾸게 되는 과정은 일종의 성장기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저자는 한 사람의 건강 상태는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맥락의 결과라며, 건강 상태의 80~90% 는 임상치료 이외의 요소에 달려있다고 주장합니다.

신체 특정 부위에 집중해 치료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현재 의료 모델에 한계를 느낀 저자는 장마다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언들을 덧붙였습니다. 코로나가 불러온 비대면 시대에 불가능해진 것들도 있지만,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조언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휴대폰을 내려놓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눈을 더 마주치고 대화하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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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해 건강을 다짐한다면 “다정함을 처방합니다”
    • 입력 2022-01-31 10:00:26
    세계는 지금
<strong>다정함의 과학</strong><br />켈리 하딩, 더 퀘스트

"새해엔 건강하시기를"

이맘때면 주고 받는 새해 인사입니다. 새해 선물세트 판매대엔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이 놓이고 각자 다짐하는 새해 소망에도 건강 관리는 빠지지 않습니다. 새해에는 운동을 시작하고, 식단을 관리하고, 아침을 챙겨 먹자고, 건강검진도 미루지 말자고 결심합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충분할까요? 컬럼비아대 메디컬센터의 켈리 하딩 교수는 '같은 병을 진단받은 환자들에게 같은 치료법이나 치료제를 처방해도 서로 진행 상태가 달라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연구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정신과 병동이 있는 병원에서 진료하는 정신과 전문의인 하딩 교수는 자신의 임상 경험과 사이언스, 네이처, 랜싯 등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 성과들을 분석합니다. 인용한 연구들은 질병의 원인을 사회적 환경에서 찾는 사회역학이나 직업환경의학 연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연구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은 건강의 결정 요인을 환자의 몸 밖에서 발견합니다.

결국 하딩 박사는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만드는 본질적 요소는 병원 진료실 밖에 있다고 결론 내립니다. 바로 다정함입니다.

■ 사람과의 관계가 건강 상태를 결정한다 : 토끼 효과

'다정함의 과학'으로 번역 출간된 하딩 박사의 저서 원제목은 '토끼 효과'입니다. 저자는 연구의 실마리를 1978년 사이언스에 등재된 토끼 실험에서 찾았습니다. 조지아대 생명공학과 네렘 교수팀은 고지방 식단이 심장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토끼들에게 몇달간 고지방 사료를 먹이고 콜레스테롤 수치와 심장박동수, 혈압을 측정했습니다. 예상대로 토끼들의 콜레스테롤 수치는 모두 동일하게 높았습니다.

그런데 동맥 혈관을 측정해보니 한 무리의 토끼들은 유독 지방 성분이 60% 낮게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통제한 요인들을 점검했습니다. 유일한 차이는 지방이 덜 쌓인 토끼들은 유달리 상냥한 연구원이 먹이를 줬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무리나 레베스끄라는 이 연구원은 토끼들에게 먹이를 줄 때 말을 걸거나 쓰다듬으며 애정을 줬습니다.

사회적 행동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당초 이 연구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연구팀은 실험조건을 더욱 엄격하게 통제해 같은 실험을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처음과 동일한 결과가 다시 반복됐습니다. 병에 걸리는 토끼와 건강을 유지하는 토끼를 나눈 것은 식단이나 유전자가 아니라 사람과 맺은 관계, 애정이었습니다.


건강과 장수, 행복의 결정 요인은 인간 관계

저자는 토끼 효과가 사람에게도 해당한다고 설명합니다. 사람과 교감하지 못할 때 사람은 심리적으로 위축될뿐만 아니라 신체에 고통을 느낍니다. 뇌 영상 연구에 따르면, 누군가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되면 뇌는 실제로 칼에 찔린 것과 비슷한 고통으로 인식합니다. 원치 않는 이별을 당하면, 실제로 뇌는 물리적인 아픔을 느낀다고 합니다.

관계 결핍이 지속되면 질병으로 이어집니다. 400만 명을 대상으로 한 메타분석에 따르면, 비만이 조기 사망 위험을 30% 높일 때 외로움은 조기 사망 위험을 50% 증가시켰습니다. 만성적으로 외로움을 느끼면 심장 질환과 뇌졸중 발병률은 약 30% 커집니다.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거나 과음을 하는 것과 같은 수준입니다.

저자는 친밀한 관계와 사회적 유대감이 건강과 장수, 행복의 결정요인이라고 강조합니다. "가장 유의미한 방식으로 우리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것은 진료실에서 일어나는 일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대하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인간으로서의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더 관련이 있다. "라고 말입니다.

■ 피할 수 없는 업무 스트레스, 직위와 연관

하지만 우리는 일상 생활을 친밀한 관계 속에서 지낼 수만은 없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냅니다. 특히 직장에서 존엄성, 자율성, 존중감이 있는지가 건강의 결정요인이 됩니다. 토끼 실험과 마찬가지로, 생리학적 위험 요인을 찾으려던 연구에서 도출된 결과입니다.

1960년대 영국 런던의 공무원 1만 7천여 명의 건강상태를 10년간 살핀 연구에 따르면, 심장마비와 같은 급사의 위험이 가장 큰 요인은 고용 등급으로 나타났습니다. 통념과 달리, 가장 낮은 직급에 있는 사람들은 높은 직급에 있는 사람들보다 심장마비로 사망할 확률이 3~6배 높았습니다. 과체중이나 흡연, 혈압 등 다른 요인들을 통제한 뒤에도 직위에 따른 결과는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같은 연구진이 1980년대 또다른 공무원 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관리자로부터 사회적인 지지를 받는다고 느끼는지, 업무 중 작업 통제권을 가지고 일에 대한 노력을 보상받는다고 느끼는지가 정신과 신체 건강에 주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직장만이 아닙니다. 일상 속에서 은밀하게 위협을 느끼고 괴롭힘을 당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차별을 경험한 소수자 집단은 질병 발병률이 더 높은 것으로 보고됩니다.


"건강 상태는 사회적 맥락의 결과"

저자는 다정함의 치유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방대한 데이터와 연구 결과를 제시합니다. 사회적, 환경적 요인으로 형성된 건강 상태가 대물림되는 후성유전, 스트레스가 염증과 질병을 유발하는 과정 같은 전문적인 내용도 포함되지만, 사례를 중심으로 전개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의사 교육을 받으면서 신체적 요소들로만 인간의 건강을 설명하는 생체의학에 몰입했던 저자가 실제 환자 진료 경험을 쌓으면서 관점을 바꾸게 되는 과정은 일종의 성장기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저자는 한 사람의 건강 상태는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맥락의 결과라며, 건강 상태의 80~90% 는 임상치료 이외의 요소에 달려있다고 주장합니다.

신체 특정 부위에 집중해 치료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현재 의료 모델에 한계를 느낀 저자는 장마다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언들을 덧붙였습니다. 코로나가 불러온 비대면 시대에 불가능해진 것들도 있지만,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조언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휴대폰을 내려놓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눈을 더 마주치고 대화하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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