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예감] 경험을 돈으로 바꾸는 법 - 최영일 시사평론가

입력 2022.02.03 (16:3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 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KBS 라디오에 있습니다.
인용보도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프로그램명 :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
■ 방송시간 : 2월 3일(목) 09:05-10:53 KBS1R FM 97.3 MHz
■ 진행 : 김방희 소장 (생활경제연구소)
■ 출연 : 최영일 시사평론가 (『부를 만드는 경험의 힘』, 《시사본부》)

- 경험을 콘텐츠화하는 대표적 미디어 유튜브, 평범한 일상 경험이라도 공유해 볼 것
- 경력은 없어도 경험은 있다... 경험을 반추해 숨은 능력 끌어내는 것 필요
- 개개인의 불안감 커지는 사회, 과거 역경을 이겨낸 경험의 힘 되짚어 보라
- 경험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캐릭터 만들고, 스토리텔링 훈련하면 콘텐츠 만들 수 있어
- 경험을 기록하고 저장하는 ‘일기’ 쓰기 추천... 이후 일기를 통해 지금 이 시간을 되돌아봐야
-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실패 경험을 털어놓는 문화가 확산되어야



◇김방희> 제가 늘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부족한 경륜과 지혜가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참모학이라는 겁니다. 좋은 리더가 되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좋은 참모가 되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당장 1인자가 되기 어려운 게 우리 현실인데 기업에 가도 오너가 있는데 어떻게 1인자가 되겠습니까? 또 하나는 실패하기입니다. 실패. 성공보다 많은 게 실패인데 실패를 개인적인 경험으로 끝낼 게 아니라 사회적 자산으로 만들어야 되는데 그러자면 개인적으로도 그런 실패의 힘이 콘텐츠도 되고 돈도 돼야 될 텐데요.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성공한 경험뿐만 아니라 실패한 경험 그리고 평범한 일상까지 잘 정리하고 가공하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훌륭한 콘텐츠이자 돈도 벌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건데요. 최근에 『부를 만드는 경험의 힘』이라는 책을 내신 《시사본부》 진행자 최영일 시사평론가 모시고 내 경험, 실패의 경험을 포함해서 말이죠. 이걸 부를 일구는 도구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얘기 나누겠습니다. 연초니까 여러분들 각오 다지시라는 의미에서 이분 특히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최영일> 안녕하세요.

◇김방희> 저희 1라디오 동료 진행자인데요. 굉장히 바쁘실 텐데 우리 시사평론가로서 꼭 진행하시는 방송이 아니더라도 나와서 뉴스에 대한 코멘트하시는 거 보면 따라잡기도 힘드실 텐데 책은 언제 쓰셨어요?

◆최영일> 아니, 너무 좋습니다. 《성공예감》 은, 특히 김방희 소장님은 저의 롤모델이세요.

◇김방희> 왜 이러십니까?

◆최영일> 배우가 아니시지만 이렇게 뵈면 이게 한국의 조지 클루니가 아닌가. 혼자 이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김방희> 왜 이러십니까? 이거 남들이 오해합니다.

◆최영일> 제가 직장인일 때, 비즈니스 할 때도 출근하는 차 안에서 김방희 소장님의 성공예감을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거든요. 그런데 어언 저도 방송인이 돼서 동료 진행자라고 해 주시니까 대대선배님 앞에서.

◇김방희> 무슨 말씀이세요.

◆최영일> 부끄럽기도 한데 또 뿌듯하기도 하고요. 지금 제가 책에 보면 띠지가 있는데 출판사에서 광고로 12개의 직업, 20개의 명함, 연평균 2400회의 방송. 지난해까지는 방송이 너무 많아서 바쁘다가 이렇게 살다가는 뉴스라는 게 남의 얘기인데 남의 얘기만 하고 내 얘기는 못하고 죽겠구나 싶어서 여름부터 일을 한 4분의 1로 줄였어요. 그 와중에 또 KBS 1라디오에서 진행자 자리도 주셨고 시간이 좀 남는 김에 여름에 한 두어 달 동안 조각글들을 써서 모은 게 부를 만드는 경험의 힘, 이렇게 됐는데 경험의 중요성은 늘 절감하고 있는 건데 그걸 좀 주변 사람들과 많이 나누고 싶었고 이 책에는 제 얘기를 주로 담고 있지만 이 책을 많이 읽으시면 계속 권고하고 있어요. 여러분의 경험을 정리해 보시라고. 그걸 좀 콘텐츠로 만들어보시라고. 그런 또 방향이 있으면 좋겠다. 여러 사람들의 경험을 저도 좀 수집하고 듣고 뒷부분에는 경험 비즈니스 얘기를 좀 했어요. 경험 은행이 좀 만들어지면 좋겠다.

◇김방희> 경험 은행.

◆최영일>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김방희> 그렇군요. 저는 최 선생님 보면서 느끼는 게 방송에서도 늘 드리는 말씀인데 성공하든 실패하든 계속 자주 시도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게 벌써 그렇게 많은 직업, 다 성공한 건 아니시잖아요.

◆최영일> 그럼요. 실패가 더 많죠.

◇김방희> 방송 진행자로서 성공하고 계시지만 그런 것들을 다 자신의 개인적인 부로만 만든 게 아니라 사회적 자산으로 만들겠다고 또 책을 내신 거니까 저는 굉장히 반갑고요. 그래서 이것저것 여쭤볼 텐데 그 전에 방송 내용을 하나 정정하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조지 클루니라는 말은 선배에 대해서 없는 말을 갖다 붙인 거고요. 굳이 비슷한 별명 하나가 있기는 한데요. 이 방송에서 써도 될지 모르겠네요. 친구들은 그렇게 부릅니다. ‘조진 클루니’라고. 될 뻔하다 잘못됐다고. 어쨌든요.

◆최영일> 빵 터지네요.

◇김방희> 시사평론가시니까 지금 아마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은 대선에 대한 판세 분석이겠죠.

◆최영일> 맞습니다.

◇김방희> 어떻게 보세요?

◆최영일> 매일 그거 하고 있고요. 여기저기 저도 진행을 하면서 대선 뉴스가 가장 많은데 제가 방송 평론가를 전업으로 시작하고 세 번째 대선이에요. 그 와중에 총선도 있고 지방선거도 있고 그 전에는 또 일반 시민으로 유권자로 선거를 쭉 봐왔고 요즘에 86그룹 용퇴론, 이런 게 나오는데 제가 딱 586그룹의 중간 세대거든요. 60년대 중반생, 80년대 중반 학번. 그러다 보니까 저희는 젊을 때부터 정치에 민감했지 않습니까?

◇김방희> 그렇죠.

◆최영일> 그러니까 수많은 대선을 봐오면서 보다보다 처음 보는 대선이다. 그러니까 시대정신, 국정철학, 미래 비전은 실종돼 있고 연일 공약은 쏟아지는데 이런 비아냥도 있어요. 이장 선거냐, 구청장 선거냐. 무슨 아주 이렇게 자잘한 공약들은 많이 나와요. 이름은 소확행, 심쿵. 좋기는 한데 그것도 다 좋습니다. 이걸 묶어낼 수 있는 굵은 ‘대한민국호를 5년간 어떻게 이끌겠습니다’ 하는 방향이 실종돼 있다 보니까.

◇김방희> 기준이나 철학이 잘 안 보인다.

◆최영일> 네거티브와 의혹이 너무 난무한다. 그래서 이것이 언론 책임도 좀 있다고 봐요. 그러면 우리 시민들이 잘 걸러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시민의식이 많이 고도화돼서 그래도 올바른 선택을 만들어낼 것이다. 시민과 국민을 믿어야겠죠.

◇김방희> 저도 가끔 외국에 있는 친구들이 한국 정치나 대선과 관련해서 궁금증이 있을 거 아닙니까? 외국은 시장이 또 어떻게 변할지를 봐야 되기 때문에 물어보면 분명히 민주주의의 중추기구 중에 하나인 언론은 우리가 약하다.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그러나 유권자는 우리가 교육도 많이 받았고 훨씬 현명하다. 그래서 그간 많은 걸 성취해 왔기 때문에 너무 비관적으로 보지 말아 달라, 이런 정도로 코멘트를 하는데.

◆최영일> 어제 저녁에 타 방송에서 이재명 후보와 김동연 후보의 토론이 있었죠. 양자토론. 어제 굉장히 모범적이고 좋았어요. 모처럼. 경제만 놓고 한 95분 동안 두 분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고성 한 번 오가지 않고 서로의 이견도 짚으면서 또 공통점을 많이 찾아내는 생산적인 토론이었어요. 오늘 저녁에 드디어 4자 토론을 보게 되는데 고성 많이 오가고 치열하겠습니다마는 어쩔 수 없지만 네 분 다 캐릭터가 다르고 완주할 의지니까 하지만 그런 치열한 와중에도 생산적인 토론을 만들어낸다면 국민들에게는 올바른 선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조금은 기대해 봅니다.

◇김방희> 좋습니다. 평상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을 드렸고 지금 저희들이 드리고 싶은 질문은 결이 다릅니다. 13개의 직업을 거치셨는데 몇 가지만 제가 책을 보고 소개해 드리자면 엔지니어, 대학 강사, 벤처기업 CEO 그리고 신용불량자까지. 지금 시사평론가라는 현재의 직업 올 때까지 많은 경험을 하셨는데 지금의 직업 혹은 지금의 상태에 만족하십니까?

◆최영일> 만족하죠.

◇김방희> 그래요?

◆최영일> 네, 굉장히 평론가를 하면서 예전에 비즈니스 동료들이나 또 동창들 만나면 평론가가 좋은 이유가 하나가 있어. 말을 하면 돈을 줘. 제가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왜냐하면 제가 수많은 직업을 거치면서 소통은 기본의 기본이죠. 비즈니스와 영업에. 회의도 엄청나게 하고 또 영업활동도 하고 제가 지금 방송을 하는 근간은 어디냐 보면 프레젠테이션이에요. 그러니까 타 회사 거래처의 CEO들 앞에서 한 시간을 주면 1시간, 5분을 주면 5분 안에 이 프로젝트의 핵심을 짚어서 ‘우리는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하고 계약을 따내야 되잖아요.

◇김방희> 그렇죠.

◆최영일> 그러니까 그게 중요한 영업활동인데 방송도 5분 동안 3개의 뉴스를 정리하시오. 이런 미션도 있고 1시간 동안 대선에 대한 토론을 하시오. 이런 미션도 있는데 그 주어진 시간 동안에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하는 스킬은 보통 평론가가 언론인 출신이거나 정치인 출신이거나 변호사 등 전문가 출신인데 저는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거든요. 그래도 만 10년 동안 평론을 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비즈니스 현장에서의 소통 경험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지금 말씀하신 질문처럼 저 같은 경우에도 평론가는 말을 하면 돈을 준다. 다른 지금 듣고 계신 청취자분들은 영업을 하는 분이다. 말은 기본인데 말하면 돈 안 주죠. 한 시간 영업해도 안 사요 그러면 빈손으로 돌아오는 거고 그리고 저처럼 컨설팅을 했던 분들은 말은 기본이고 페이퍼워크. 엄청난 자료들을 바인더 여러 개로 만들어서 제공해도 그다음에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계약이 되면 그때부터 업무가 시작되는 겁니다. 돈은 몇 달 후에 수금을 하는 거고요. 그래서 그런 비즈니스의 애로사항을 경험한 분들은 저는 말하면 돈을 줘, 이거 너무 좋은 직업이야. 이렇게 자랑하고 다니죠.

◇김방희> 그래서 만족하신다. 다만 평론가들끼리는 그런 얘기도 하는데 평론가와 거지의 공통점. 즉, 수입이 일정치 않지 않습니까?

◆최영일> 그렇죠.

◇김방희> 그건 본인이 감당해야 될 몫이고.

◆최영일> 부지런하게 많이 하면 된다. 하지만 이게 육체노동이더라고요.

◇김방희> 육체노동이죠.

◆최영일> 제가 젊을 때는 이륜차, 오토바이는 저렇게 위험한 걸 왜 타지 그랬는데 50이 돼서 평론을 하다 보니까 시사평론은 다 생방송이잖아요.

◇김방희> 그럼요.

◆최영일> 생방송의 시간을 맞추는 게 기본의 기본이더라고요. 그래서 늦지 않기 위해서 이륜차를 처음 사고 면허를 따고 새로운 경험에 도전을 해서 지금은 출퇴근할 때 주로 이륜차로 다니다 보니까 뉴스 퀵 서비스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김방희> 뉴스 퀵 서비스.

◆최영일> 퀵 서비스가 많이 다니시잖아요. 서류나 물건을 전달하는데 저는 뉴스를 전달하러 방송사에서 방송사로 이 중형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죠.

◇김방희>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사고 없이 안전하게 실제로 다니기도 해야 되지만 시사평론을 한다는 게 상당히 많은 이해집단이 있기 때문에.

◆최영일> 맞습니다.

◇김방희> 균형을 잡는 게 쉽지 않잖아요.

◆최영일>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할수록 양 진영에서, 우리나라에는 진영 논리가 있는데 욕을 먹어요. 한쪽 진영에서만 욕을 먹으면 편향이에요. 그런데 저처럼 양 진영에서 다 욕을 먹으면.

◇김방희> 그건 괜찮은 거죠.

◆최영일> 균형이에요. 그래서 저는 욕이 골고루 들어오면 잘하고 있구나. 욕이 한쪽에서만 오면 좀 치우쳤나, 이렇게 자신을 바로잡는 하나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김방희> 경험을 상품화한다. 자신의 경험을 특히 자산으로 만든다. 이 얘기에서 한 가지 조금 전과 다른 기류를 읽을 수 있는 건 예전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면 한 직장에서 평생직장이라고 그래서 아주 한정된 경험을 하게 되죠. 조직도 하나고 경험의 내용도 지금 최 선생님처럼 다양할 수가 없는데 그러다 보니까 이걸 콘텐츠화한다든가 상품화하기가 어려웠는데 지금 경험을 상품화해야 된다는 얘기를 하시는 이유는 뭡니까?

◆최영일> 좋은 시절이 왔죠. 대표적으로 많은 유튜버들이 있는데 유튜버들이 이런 얘기를 해요. 일상의 경험이 정말 돈이 돼? 그런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구독하고 또 트래픽을 올려주는 방송을 보면 대체로 의외로 시시껄렁해요. 예를 들면 먹방. 아니, 우리는 삼시 세끼를 매일 먹으면서 점심 뭐 먹을까, 저녁 뭐 해 먹을까, 이런 걱정하고 또 맛있게 먹고 이 식당은 맛없어. 평가도 하고 그런데 그 먹는 방송을 왜 볼까요? 우리가. 우리는 늘 하는 일상적인 행위인데.

◇김방희> 그러게요.

◆최영일> 그런데 다른 사람이 먹는 걸 보면서 와, 맛있겠다. 나도 저거 먹어봐야지. 어쩌면 저렇게 많이 먹을까. 이런 걸 하면서 본단 말이죠. 일상에 우리가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타인의 경험에 대해서 또 궁금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좀 이래요 아주 평범하건 아니면 독특하건 그러한 경험들을 공유하면 누군가는 관심을 가져주고 그 관심의 폭을 넓혀 가면 나의 경험이라는 게 의외로 가치 있는 콘텐츠구나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3개인데 하나는 젊은이들에 대한 걱정이에요. 경험을 다른 말로 하면 행정적인 표현으로 쓰면 경력인데 젊은이들은 경력이 없어요. 그런데 나는 비경력자예요. 그런데 경력자만 뽑아요. 영어로는 이게 experienced인데 경력이라는 말과 유경험이라는 말이 똑같거든요. experienced, 나는 경험해 본 사람이다. 그런데 경력자라고 하면 사람들이 흠칫, 나 경력 없는데, 이력서에 한 줄 쓸 뭐가 없는데 그런데 당신의 경험을 얘기해 보세요. 경력이 없는데 경험은 있더란 말이죠. 그러면 그걸 좀 끄집어내 보자. 사회생활을 1년을 했든 10년을 했든. 그래서 우리가 경력, 경력 중심의 사회를 경험 중심의 사회로 바꾸면 없는 줄 알았는데 있는 1인치가 숨어 있더라. ‘젊은이들이여 그걸 좀 끌어내 봅시다’이고요. 첫 번째는 그리고 너무 정보와 지식이 난무하는 세상이잖아요. 가장 고도화된 문명에 우리가 살고 있고 폰에서 검색하면 모든 정보가 튀어나오는데 지금 이 고도화된 문명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너무 불안이 커졌어요. 불안하고 불행하고 불확실하고 불안정하고 그래요. 그런데 결국 이것은 미래만 바라보니까 변화가 닥쳐오는데 걱정이 많죠. 그런데 과거를 돌아보고 지금까지 우리가 어떻게 수많은 난관을 거쳐 왔는지를 생각해 보면 나의 내면에 숨어 있는 힘이 있다. 그런데 그걸 자꾸 잊어버리고 성공한 사람들만 바라보면 제가 불행하게 느껴지지만 나의 과거를 돌아보면 잘 버텨왔네. 난 지금 서바이벌 하고 있어.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 모두에게 내면의 힘이 있다. 그런데 그것을 굳이 하나의 키워드를 붙인다면 경험의 힘이다. 그걸 한번 다시 복기해 보고 찾아보자. 그런 자신감을 드리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실패를 참 많이 했는데 그래도 지금 이렇게 열심히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저보다 나은 여러분들은 아까 직업은 아니지만 소개란에 신용불량자. 이거 제가 8년 겪었거든요.

◇김방희> 아이고야. 그렇게 오래요?

◆최영일>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제가 여의도 국회에 연구원으로도 있다가 정치를 가까이서 보는데 90년대 정치가 너무 썩은 거예요. 여기 있다가 내가 청춘 시절에 타락하겠구나. 도망간 곳이 요즘은 좀 유명해진 최일도 목사님의 공동체인데 노숙자들에게 밥 주고 거기 성매매 집결지가 있었어요. 그 여성들 탈출도 시키고 험난한 시기였는데 거기서 제가 급여를 받고 일하다 보니까 아니, 사지 멀쩡한 청년인 내가 여기서 왜 후원금으로 또 급여를 받아야 되나. 오히려 돈을 많이 벌어서 후원하고 싶다. 이런 욕심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벤처를 창업했습니다. 그런데 최일도 목사님에게 제가 여기서 연구소 일을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회사를 만들어서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도 크게 기부한다는 한국의 워런 버핏 사례를 만들어보겠습니다. 호기롭게. 그게 32살이었어요. 그런데 IMF가 와서 고생을 하다가 그걸 넘어가니까 벤처 열풍이 왔죠. 그래서 서른다섯쯤에는 제가 한 500억 마켓 캡 시총을 가지고 있는 회사 CEO가 됐는데 그 잘 되는 다음 단계에 또 망하는 거예요. 격변이 오면서 벤처버블이 꺼졌다. 줄도산을 했어요. 그때 저희 관련 회사들이. 그러고 나서 한 2~3억쯤 남겠고 공부를 더해서 또 사업을 해야지 결산해 보니까 남는 게 웬걸 마이너스 10억. 그런데 이게 기업을 경영할 때는 10억이 큰돈이 아니었는데 그냥 홀랑 개인으로 돌아와 보니까 10억은.

◇김방희> 엄청나게 큰돈이죠.

◆최영일> 내가 1년에 1억씩 벌어서 한 푼도 안 쓰고 갚아도 10년 동안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1년에 1억 원이 뭡니까? 2000~3000만 원을 어떻게 벌겠어요. 그래서 그때 기업체 강사를 뛰기 시작했어요. 기업체에 가서 경영을 했던 경험들. 특히 IT와 관련된 변화들, 이런 것으로 대기업의 직원들에게 조직 변화 관리도 강의하고 또 팀 빌딩, 팀워크도 강의하고 그랬는데 제일 큰 건 실패학 강의였죠.

◇김방희> 그런데 지금 말씀 듣는 많은 청취자분들이 위안을 받으실 대목은 나도 그런 실패 경험 정도는 있어. 실패 경험이 있고. 그렇지, 그것도 하나의 내 자산이 될 수 있지, 이렇게 생각하실 텐데 구체적으로 그걸 어떻게 내 상품으로 만드느냐,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에 들어가면 좀 난감해요. 예전에는 그래, 내가 자서전을 써볼까. 어디 받아주는 출판사. 지금은 내가 유튜브를 좀 해볼까. 그러나 지금 구독자 수는 모으기 힘들고.

◆최영일> 맞습니다.

◇김방희> 어떻게 활용해야 됩니까?

◆최영일> 그러니까 그게 한 두 가지인데요. 최영일이라는 시사평론가는 제가 10년 동안 시사도 많이 평론을 했지만 미디어를 통해서 보는 분들에게 하나의 캐릭터가 형성이 됐어요. 저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다. 이런 점에서는 신뢰할 만하고 또 이런 점에서는 좀 부족하다 그건 제가 메워야 할 과제인데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드셔야 되는데 경험을 중심으로 해서는 경험은 쌓여 있어요. 그런데 그 경험을 주물러야 돼요. 그러니까 나의 과거, 10년, 20년의 경험을. 이 책을 쓰게 된 저는 92년에 제가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엔지니어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는데 만 30년이 지나서 보니까 내가 미디어에서 방송 평론을 하고 있네. 정치, 경제, 사회를 논하고 있네. 그러면 이 30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인가 하고 저 자신을 돌아보니까 오만 가지 일이 있었는데 평론과는 1도 관계가 없는 거예요. 언론 종사자도 아니고 제가 정치인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데 평론을 그럭저럭 하고 있단 말이죠.

◇김방희> 잘하시죠.

◆최영일> 그러면 그 20년 동안의 나의 경험은 지금 나의 평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런데 경제 평론을 할 때 이론으로 ‘경제학 석사입니다. 박사입니다.’ 보다는 제가 CEO로 한 10년 가까이 기업을 경영해 봤고 한 100명 정도 직원과 일을 해 봤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중견기업체 임원으로 경영에 참여를 해 보니까 실물경제는 이렇더라 하는 얘기를 교수님보다 좀 더 해 드릴 수 있잖아요.

◇김방희> 그럼요.

◆최영일> 경험에서 나오는 실무적인 이야기.

◇김방희> 경제 현장 얘기니까 훨씬 더 도움이 됐죠.

◆최영일> 그리고 정치에 대해서는 우리 유권자들은 다 정치 유경험자들이세요. 대통령을 이런 사람을 뽑았더니 이런 일이 벌어지더라, 저런 사람을 뽑았더니 저런 일이 벌어지더라, 이걸 경험해 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걸 말로 풀면, 스토리텔링을 하면 제가 킹메이커라는 영화를 어제 봤거든요. 그런데 이게 고 김대중 대통령 이야기더라고요. 저희 젊었을 시절에 다 겪었던 선거 이야기예요. 그런데 그 이면에는 저런 보좌관이 있고 저런 책사가 있었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데 저런 이야기는 우리도 풀어낼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스토리텔링을 조금 잘하시고 이야기의 기법만 우리가 훈련을 하면 아주 평범한 나의 일상경험도 반짝반짝 빛나는 콘텐츠가 될 수 있습니다.

◇김방희> 그런데 이게 사실은 경력이 아니라 경험 중심의 사회로 가자, 이런 말씀을 해 주셨는데 경력은 어떻게 보면 기술하기가 쉬워요. 스토리가. 어느 대학 나왔고 어디 있었다.

◆최영일> 규격화돼 있고.

◇김방희> 그런데 경험을 스토리텔링으로 자기 자신의 캐릭터에 맞게 구술한다는 게 참 버겁게 느껴지거든요. 보통 사람들한테.

◆최영일> 그래서 예를 제가 드리는데.

◇김방희> 좋죠.

◆최영일> 성공한 작가들의 예를 책 안에서 들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해리포터 시리즈를 쓴 조앤 롤링 여사. 이 롤링 여사는 인해서 이혼하고 아이들을 끌어안고 생계에 아주 궁핍한 현상에 있다가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좋아했다는 거죠. 전설, 신화, 민담. 그런데 영국에 가보면 정말 그런 이야기 클럽이 많아요. 그러니까 동화책도 읽고 또는 내가 들었던 이야기를 구술하고 거기에 대해서 토론하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처럼 또 전설, 민담. 이러한 설화. 이런 게 많은 민족도 별로 없고,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이야기를 좋아하죠.

◇김방희> 좋아하죠.

◆최영일> 드라마 좋아하고, 영화 좋아하고, 그러니까 우리 K-콘텐츠가 드디어 이제 막 폭발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 기반은 우리의 이야기들인데 그 이야기가 영국하고 비교해 보면 잘 공유되지 않아요. 그런데 공유가 되기는 해요. 왜냐하면 전화를 붙들고 카페에서 친구 만나면 그 끊임없이 쏟아지는 수다. 우리가 수다 그러면 좀 편해하죠. 그냥 작가한 이야기. 흘려듣고 마는 이야기. 그런데 그것 정리하면 그게 다 단편 드라마고 단편 영화 작품들이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정말 안타까운 게 저희 나이대가 되면 이제 부모님들이 돌아가시잖아요?

◇김방희> 네.

◆최영일> 저도 이제 엊그제 설날, 아버님이 돌아가신 날이 1월 30일이어서 18주기를 이제 어머님 모시고 가족들이 하면서 아버님을 회상했는데 그 아버님에게 내가 어릴 때 들었던 굉장히 많은 이야기. 저희 집은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김방희> 네.

◆최영일> 대한민국 최초이자 마지막 우라늄 광산을 개발했던 집이에요.

◇김방희> 그래요?

◆최영일> 그래서 제가 누가 봐도 ‘문돌이’인데. 저 사람은 이야기 좋아하고 책 좋아하고 그럴 것 같은데 공대를 굳이 갔던 이유가 장남이어서 또 가업을 이어야지. 그래서 우리는 광산업을 해야 되는구나. 기계공학과를 갔단 말이에요. 그런데 저와 맞지 않는 전공이었지만 공대를 다녔다는 게 지금 과학기술 산업사회에 얼마나 또 이제 적지 않은 경험과 지식을 쌓았겠습니까? 평론에도 아주 큰 도움이 되는 거예요.

◇김방희> 제가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나는 건데 국내에 왜 이렇게 실패학이 없느냐. 혹은 실패와 관련된 책이 없느냐 생각해 보니까 그거를 하려면 자신을 지금 우리 최 선생님처럼 털어놔야 돼요.

◆최영일> 맞아요.

◇김방희> 가감 없이 자기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하는데.

◆최영일> 객관화할 수 있어야 되고.

◇김방희> 그런 문화는 좀 없죠.

◆최영일> 그러니까 부끄러움이 많다.

◇김방희> 그렇죠.

◆최영일> 실패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김방희> 혹은 뭐 허세도 좀 있죠. 예를 들어서 조찬모임이라고 성공한 사람들의 강연에 가보면 대개 성공담이지 실패담은 거의 빠지거든요. 그런 점에서 보면 실패하기 굉장히 중요하다는데 저랑 공감을 갖고 계시고 또 하나 흥미로운 건 저는 최 선생님이 이제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과거에 13개의 직업을 가진 이력서. 경력 중심의 사회였다면 이걸 어떤 기업이나 다른 데 내밀었으면 뭐야, 뭐 이렇게 하는 일이 많아. 그런데 뭐 하나 제대로 한 일은 없어. 이렇게 얘기할지도 몰라요.

◆최영일> 그렇죠.

◇김방희>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라 정말 다양하게 살았고, 그래서 현장에 대해서 아는 게 많구나. 많은 분들이 그렇게 얘기하거든요.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러니까 운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최영일> 네, 맞습니다. 운도 있죠. 운도 있는데 운은 우리 주변에 오늘 하루도 수많은 운이 우리를 찾아오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운을 잡느냐, 잡지 못하고 놓치느냐. 혹은 운이 내 곁을 지나가는지도 전혀 감지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도 결국은 우리의 능력이에요. 경험에서의 능력. 그래서 이제 경험이라는 게 처음 시초로 돌아가면 감각에서 시작을 하는 거거든요. 경험은 나 자신과 내 밖에 있는 세계가 끊임없이 만나는 사건들인데 ‘나와 내 밖의 세계가 만난다’라는 말이 추상적인 것 같지만 오늘 제가 집 밖으로 딱 출근을 시작할 때 추워. 이게 새로운 경험이에요. 오늘은 날씨가 춥구나. 그건 제 살갗이 온도를 느끼는 거잖아요.

◇김방희> 그렇죠.

◆최영일> 그래서 우리의 피부. 이 피부가 피부 안쪽은 나고, 피부 밖은 내가 아닌 세상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피부에 감각기관이 다 몰려 있잖아요. 냉점, 온점, 통점. 이런 게 다 모여 있는데 이 감각을 집중하는 훈련을 좀 해야 돼요. 그래서 바깥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그 안에서 내가 생존 적응을 하려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하는 걸 매일 우리는 습관적으로 하는데 무의식을 스쳐가니까 저장이 안 되는데 이걸 좀 우리가 집중해서 기록하고 저장하는 훈련을 하면 매일매일 새로운 경험이, 똑같은 길을, 똑같은 버스를 타고 똑같이 출근을 하지만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어떻게 또 새로운 사건이 있는지를 느껴야 되는데 그 안에 운이라고 이야기한 것들이 녹아들어 있는 거죠. 그래서 지금 『경험의 힘』 다음 권을 또 집필하고 있는데 관계의 힘이에요.

◇김방희> 관계.

◆최영일> 제가 매일 KBS 라디오 스튜디오를 오는데 명절 연휴가 끝나고 오늘은 어후, 존경하는 김방희 소장님을 만날 기회가 있는 거예요. 어제와 또 다른 거죠. 그래서 이 만남을 통해서 방송 들어가기 전에 아휴, 언제 코로나 좀 가라앉으면 우리가 한 잔 나눠요. 그러면 또 이 소장님의 경험을 제가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약속 받았잖아요? 이게 오늘의 저에게는 큰 행운이에요.

◇김방희> 아까 중요한 말씀을 거듭해 주셨는데 그걸 여쭤봐야 되겠네요. 훈련해야 한다. 그리고 훈련의 방법으로 내 경험들을 기록하고 저장한다고 합니다. 그건 구체적으로 실제로 뭘 쓰는, 일기 같은 걸 쓰는 걸 뜻합니까?

◆최영일> 일기 쓰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저는 일기를 쓰는데 지금 장황하게 어릴 때처럼 오늘 날씨 맑음. 이렇게 쭉 쓸 겨를이 없으니까 주머니에 이제 메모 수첩이 있는 거죠. 스케줄러. 그런데 이걸 폰으로 하는 분들도 많고, 저는 굳이 이제 수첩에 쓰는데 하루에 있었던 일을 짧게짧게 메모하는 거예요. 그리고 나서 중요한 건 우리가 사진으로 찍어서 SNS에 올립니다. 그게 뭐 무슨 인별그램이 되든 아니면 뭐 이제 얼굴책이 되든 올리는데 거기에 올리는 건 조금 인상적인 장면들이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이걸 돌이켜봐야 돼요. 그러면 한 몇 년 전에 어떠한 사건이 있었지? 저의 수첩과 디지털 기록을 이렇게 합쳐보면 아, 이날 내가 이 김방희의 《성공예감》에 출연했구나. 이런 이야기를 청취자들과 공유하고 왔더니 어떤 피드백들이 왔구나. 거기서 내가 어떤 깨달음을 얻었구나하는 걸 오늘 이 방송은 휘발되고 마는 것 같지만 한 달 후든 1년 후든 10년 후든 복귀했을 때 복귀하면 지금 보지 못했던 것들을 그때의 눈으로 또 볼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는 사회가 됐다는 안타까움이 있는데 과거를 되돌아보는 걸 우리가 성찰이라고 부르거든요. 성찰이 요새는 너무 없어졌어요. 그러니까 기록을 하시고 그 기록을 시간이 흘러서 한 번 다시 열어보시면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밴드의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노래처럼 먼지 덮인 일기장을 열어보면 주옥같은 이야기가 있고 그걸 지금 다시 가족에게, 친구에게, 주변인에게 얘기해 주면 함께 너무 즐길 수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 문화가 좀 일천할 때는 사대주에 빠져 있었어요. 저희 때는 팝송이 더 좋은 건 줄 알고 자유를 무시했는데 가요가 이제 반세기 이상 쌓이다 보니까 우리가 레트로라고 해서 너무 좋아하잖아요? 제 20대 딸이 최근에 나미, 가수 나미의 노래를 듣는 걸 굉장히 깜짝 놀랐거든요. 아, 우리도 레트로의 힘이 생겼구나. 그런데 이게 다른 말로 하면 집단 경험의 힘이다. 개인 경험도 있고.

◇김방희> 그렇군요.

◆최영일> 자꾸 들여다봐야 됩니다.

◇김방희> 그래서 기록과 저장을 개인적인 경험이 생명력을 얻는 방편으로 얘기해 주셨고.

◆최영일> 맞습니다.

◇김방희> 그러니까 쭉 돌아보시면서 개인적으로 그런 훈련을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 사회가 경력 중심에서 경험 중심으로 가야 되니까 가장 필요한 건 뭐라고 보세요?

◆최영일> 그래서 아까 경험 은행 이런 좀 추상적인 얘기를 했지만 저는 우리나라에 이야기 클럽이 많아져야 되겠다. 그래서 저도 제 책을 용기를 내서 한 권. 평론회 하는 것과 다르게. 왜 평론집을 안 썼어? 왜 부를 만드는 경험의 힘이야? 그래서 평론은 남의 얘기를 계속 하는 거고 말하면 돈 주니까 고마운데 나는 이제 내 얘기도 좀 얘기되겠다. 대신 내 얘기를 세상에 던지면서 말씀하신대로 실패경험을 자연스럽게 털어놓을 수 있는 문화가 돼야 되고 그러면 다른 분들이 나오거든요. 나도 실패 했었어요, 나도 실패 했었어요. 아까 청취자 분 문자에 제가 빵 터졌는데 아들은 비트코인하고 아버지는 주식하고 나는 고스톱치고 딸은 로또 한다. 그래도 저 가족은 분산투자를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 짧은 글이지만 그 이야기가 또 글로 엮이면 너무 재미있는 가족 경험이 되겠다. 다른 가족들이 또 들으면 반면교사도 되고 또 우리 가족도 비슷해요. 경험이 모일수록 시너지가 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체계에 사실 제가 도발하고자 하는 점은 여러분들의 성취의 이야기, 실패의 이야기 또 사랑에 성공해서 결혼한 이야기, 실연당한 이야기. 다 털어내서 우리 한국사회에 이야기 클럽이 많아진다면. 수다가 아니라 이것은 콘텐츠로 엮인다. 대형서점에 그런 표어가 있었어요.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이다. 우리가 읽을 수만 있다면.’ 그래서 저는 한 분 한 분 이 세상 떠나는 분들이 있을 때 이 친구들의 부모님, 빈소에 가면 이분은 어떤 또 인생역정을 가지고 계실까. 그걸 우리가 다 듣지 못하고 떠나보내잖아요. 그걸 좀 모으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김방희> 경력 중심의 사회에서 경험 중심의 사회로 바꾸자. 박무송 님이 성공담 늘어놓는 것보다 실패를 하면 재미있게 나가는 게 후배들이 참 좋아하거든요.

◆최영일> 좋아해요.

◇김방희> 그럼요. 2746번 님. 최영일 평론가님 파란만장한 삶이셨네요. 보기에는 귀공자 같으신데.

◆최영일> 저 유복하게 자란 줄 아는데, 자랄 때는 유복했어요. 그런데 자신의 선택으로 성인이 돼서 굴곡을 많이 겪었는데 그게 평론에 힘이 됩니다.

◇김방희> 그럼요. 자, 이제 사업과 투자에 지금 말씀 해 주신 경험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들어야 되겠습니다. 저희 2부 심화학습의 목표는 성공을 위해서 조금의 힌트라도 드리는 거니까. 3074번 님이 저도 평론가님처럼 기록과 메모를 쭉 해 왔는데요. ‘카스’에 하시는군요. 한 10년 정도 됐는데 그걸 다시 들여다 볼 때마다 다양한 생각들이, 느낌들이 떠오르신다고요. 그게 이제 커다란 자산입니다. 해 주셨는데 돈도 좀 만들어야 되잖아요.

◆최영일> 그렇죠.

◇김방희> 지금 말씀하시는 건 돈, 그러니까 돈 걱정 하시는 분들이 훨씬 많을 테니까. 내 경험을 돈으로 만드는 방법이나 노하우는 없을까요.

◆최영일> 그게 바로 이번에 출간한 제 책이에요. 저도 이제 소득은 고소득이에요. 방송을, 방송 출연료가 택시기사 분들이 그 종편 한번 나가면 얼마 줘요? 이렇게 물어보세요. 얘기해 드리기가 민망한 게 생각보다 높지 않은데.

◇김방희> 높지는 않죠.

◆최영일> 그분들은 연예인처럼 버는 줄 아시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제 다다익선이라고 많이 해서 소득이 많아요. 그걸 좀 줄이고 있는 중인데 문제는 이 소득이 끊기면 제가 건물 한 채를 사놓은 것도 아니고 노후가 쉽지 않겠다. ‘그럼 내 콘텐츠를 쌓아야겠다’라고 첫 단추를 끼운 게 이 책인데 나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든 거예요. 책일 수도 있지만 제가 즉각적인 공유를 더 원했으면 유튜브를 개설했을 수도 있어요.

◇김방희> 그렇겠죠.

◆최영일> 최영일 TV를 만들어서 정치 평론은 미디어를 통해 보시고요. 제가 여기서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건 우리가 돈 버는 경험들이에요. 여러분 이야기도 들려주시고 제 이야기도 좀 들어주세요. 할 수도 있는 거고 미디어가 다양해 져서 여러분들이 편한 미디어를 선택하시면 되고 아까 기록하라, 저장하라. 그리고 그걸 다시 끄집어내서 빤짝빤짝 닦아 보라. 그런데 그걸 혼자만 보면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공유해야죠. 공유의 채널과 수단을 찾으셔야 되는데 그것은 올드미디어부터 뉴미디어까지 다양하니까 골라 보셔라. 그런데 거기서 몇 가지 팁들을 제가 책에 써 놨는데 경험을 다시 꺼내서 회고해 볼 때 사학자처럼 보지 마시라. 그러니까 연대기적 기록. 우리가 뭐 왕조를 기록하는 것도 아닌데 태정태세문단세 하지 마시고 이 10년 전에 내가 겪었던 경험을 지금의 시각으로, 지금 상황에 오버랩해서 보면 새로운 창조력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퍼즐처럼 보지 말고 레고블록처럼 만져라. 퍼즐은 그림이 그려져있는데 맞추는 거잖아요. 이게 10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아, 그래 이런 조각을 내가 까먹고 있었네. 아이고, 이제 다 스토리가 완성됐다 끝. 이게 아니라 입체적으로 보셔야 되는 게 퍼즐은 항상 똑같은 그림이지만 레고블록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지잖아요. 그래서 이걸 자꾸 주무르시고 지금 내가 이 과거 경험에서 끄집어낼 경험이 한 가지로 정해져 있는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또 다른 경험, 또 다른 경험. 제가 한 15년 전, 20년 전에 실패했는데 그 대실패 경험을 10년 전에 다시 간추려 볼 때는 아픔으로만 다가와요.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20년이 지나서 지금 숨 쉴 만하고 먹고 살만 하니까 안 보이던 게 또 보이는 거죠. 아, 그때 그 무리한 시도는 좋았는데 사회적 맥락이 조금 빨랐구나. 그때 했던 사업을 지금 했더라면 괜찮았을 걸?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고요.

◇김방희> 우리 국민들 한 분 한 분이 위대한 경험의 소유자들이니까.

◆최영일> 맞습니다.

◇김방희> 각자 개인의 경험으로는 위대한 거니까.

◆최영일> 저보다 훨씬 유리한 경험이 지금 보이지 않는 게 많이 쌓여 있죠.

◇김방희> 경험의 시대로 가자는 얘기는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실 텐데. 정말 현실에서 그럴 수 있느냐에 대해서 약간의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게 거꾸로 입장이 바뀌어서 누군가 와서 우리 최 선생님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해요. 한 쪽은 기가 막힌 대학교를 나왔고 경력이 화려합니다. 언변도 아주 좋고요. 다른 쪽은 다양한 경험을 가졌지만 뭐 하나 제대로 성공하지 못한 분이 있어요. 젊은 시절에 우리 최 선생님하고 비슷할 수도 있고. 두 분이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마음은 경력 좋은 쪽으로 가지 않아요?

◆최영일> 아, 제가 정말 잘나갈 때 대기업 현대자동차그룹에서 한 20억 짜리 컨설팅 프로젝트를 따느라고 PT를 했어요.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만 점 가까이 받았어요. 그래 우리는 잘났지 그럴 때예요. 두 개의 회사가 PT를 했어요. 그런데 이제 상대사에는 여성 CEO분이 오셔서 PT를 했는데 그 회사는 신생회사였고 조그맸어요. 그런데 저희가 떨어졌어요.

◇김방희> 그래요?

◆최영일> 그래서 이거는 확실히 따는 프로젝트인데 왜 떨어졌지? 그리고 이제 알고 지내던 과장님한테 전화를 해서 왜 저희가 떨어졌어요? 그랬더니 당신들은 잘나서 타사 프로젝트도 먹고 살게 많지만 저 B사는 절박해 보였다. 그러니까 B사를 선택하면 오직 1년 내내 우리 회사의 프로젝트만.

◇김방희> 목숨 걸고 할 것 같다.

◆최영일> 또 해 주고, 또 해 주고, 또 해 주고. 그래서 이번에 저희의 선정의 이유는 절박한 회사를 고른 거였어요. 그때 제가 크게 충격 받았는데 아, 잘나서 떨어지는구나 오히려. 그런데 그때 저희 회사는 먹고 살게 별로 없었거든요. 그냥 표면적으로만 잘나보였을 뿐이지 저희도 그 프로젝트가 절박했는데 잘나 보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김방희> 알겠습니다.

◆최영일> 이것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김방희> 이분의 경륜과 지혜는 참 제약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오늘은 이쯤 보내드려야 되겠군요. 본인 방송 준비도 좀 하셔야 될 테니까.

◆최영일> 그런데 어쨌든 청취자 여러분 많이 경험을 좀 끄집어내서 공유해 주세요. 어떤 방법으로든요.

◇김방희> 그러니까요.

◆최영일> 그러면 이제 단초가 풀립니다.

◇김방희> 이제 또 최영일 시사평론가께서 제안해 주셨으니까 우리 사회를 경력이 아니라 경험 중심으로 바꾸는 데 또 일익을 담당해 주시고요.

◆최영일> 네. 김방희 소장님께서 경험 은행장, 제가 참모학 강조했으니까 참모.

◇김방희> 저는 창구직원 정도 될 겁니다. 제 경험가지고는. 최영일 시사평론가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최영일> 네. 고맙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성공예감] 경험을 돈으로 바꾸는 법 - 최영일 시사평론가
    • 입력 2022-02-03 16:38:27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
■ 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KBS 라디오에 있습니다.
인용보도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프로그램명 :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
■ 방송시간 : 2월 3일(목) 09:05-10:53 KBS1R FM 97.3 MHz
■ 진행 : 김방희 소장 (생활경제연구소)
■ 출연 : 최영일 시사평론가 (『부를 만드는 경험의 힘』, 《시사본부》)

- 경험을 콘텐츠화하는 대표적 미디어 유튜브, 평범한 일상 경험이라도 공유해 볼 것
- 경력은 없어도 경험은 있다... 경험을 반추해 숨은 능력 끌어내는 것 필요
- 개개인의 불안감 커지는 사회, 과거 역경을 이겨낸 경험의 힘 되짚어 보라
- 경험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캐릭터 만들고, 스토리텔링 훈련하면 콘텐츠 만들 수 있어
- 경험을 기록하고 저장하는 ‘일기’ 쓰기 추천... 이후 일기를 통해 지금 이 시간을 되돌아봐야
-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실패 경험을 털어놓는 문화가 확산되어야



◇김방희> 제가 늘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부족한 경륜과 지혜가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참모학이라는 겁니다. 좋은 리더가 되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좋은 참모가 되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당장 1인자가 되기 어려운 게 우리 현실인데 기업에 가도 오너가 있는데 어떻게 1인자가 되겠습니까? 또 하나는 실패하기입니다. 실패. 성공보다 많은 게 실패인데 실패를 개인적인 경험으로 끝낼 게 아니라 사회적 자산으로 만들어야 되는데 그러자면 개인적으로도 그런 실패의 힘이 콘텐츠도 되고 돈도 돼야 될 텐데요.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성공한 경험뿐만 아니라 실패한 경험 그리고 평범한 일상까지 잘 정리하고 가공하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훌륭한 콘텐츠이자 돈도 벌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건데요. 최근에 『부를 만드는 경험의 힘』이라는 책을 내신 《시사본부》 진행자 최영일 시사평론가 모시고 내 경험, 실패의 경험을 포함해서 말이죠. 이걸 부를 일구는 도구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얘기 나누겠습니다. 연초니까 여러분들 각오 다지시라는 의미에서 이분 특히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최영일> 안녕하세요.

◇김방희> 저희 1라디오 동료 진행자인데요. 굉장히 바쁘실 텐데 우리 시사평론가로서 꼭 진행하시는 방송이 아니더라도 나와서 뉴스에 대한 코멘트하시는 거 보면 따라잡기도 힘드실 텐데 책은 언제 쓰셨어요?

◆최영일> 아니, 너무 좋습니다. 《성공예감》 은, 특히 김방희 소장님은 저의 롤모델이세요.

◇김방희> 왜 이러십니까?

◆최영일> 배우가 아니시지만 이렇게 뵈면 이게 한국의 조지 클루니가 아닌가. 혼자 이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김방희> 왜 이러십니까? 이거 남들이 오해합니다.

◆최영일> 제가 직장인일 때, 비즈니스 할 때도 출근하는 차 안에서 김방희 소장님의 성공예감을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거든요. 그런데 어언 저도 방송인이 돼서 동료 진행자라고 해 주시니까 대대선배님 앞에서.

◇김방희> 무슨 말씀이세요.

◆최영일> 부끄럽기도 한데 또 뿌듯하기도 하고요. 지금 제가 책에 보면 띠지가 있는데 출판사에서 광고로 12개의 직업, 20개의 명함, 연평균 2400회의 방송. 지난해까지는 방송이 너무 많아서 바쁘다가 이렇게 살다가는 뉴스라는 게 남의 얘기인데 남의 얘기만 하고 내 얘기는 못하고 죽겠구나 싶어서 여름부터 일을 한 4분의 1로 줄였어요. 그 와중에 또 KBS 1라디오에서 진행자 자리도 주셨고 시간이 좀 남는 김에 여름에 한 두어 달 동안 조각글들을 써서 모은 게 부를 만드는 경험의 힘, 이렇게 됐는데 경험의 중요성은 늘 절감하고 있는 건데 그걸 좀 주변 사람들과 많이 나누고 싶었고 이 책에는 제 얘기를 주로 담고 있지만 이 책을 많이 읽으시면 계속 권고하고 있어요. 여러분의 경험을 정리해 보시라고. 그걸 좀 콘텐츠로 만들어보시라고. 그런 또 방향이 있으면 좋겠다. 여러 사람들의 경험을 저도 좀 수집하고 듣고 뒷부분에는 경험 비즈니스 얘기를 좀 했어요. 경험 은행이 좀 만들어지면 좋겠다.

◇김방희> 경험 은행.

◆최영일>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김방희> 그렇군요. 저는 최 선생님 보면서 느끼는 게 방송에서도 늘 드리는 말씀인데 성공하든 실패하든 계속 자주 시도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게 벌써 그렇게 많은 직업, 다 성공한 건 아니시잖아요.

◆최영일> 그럼요. 실패가 더 많죠.

◇김방희> 방송 진행자로서 성공하고 계시지만 그런 것들을 다 자신의 개인적인 부로만 만든 게 아니라 사회적 자산으로 만들겠다고 또 책을 내신 거니까 저는 굉장히 반갑고요. 그래서 이것저것 여쭤볼 텐데 그 전에 방송 내용을 하나 정정하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조지 클루니라는 말은 선배에 대해서 없는 말을 갖다 붙인 거고요. 굳이 비슷한 별명 하나가 있기는 한데요. 이 방송에서 써도 될지 모르겠네요. 친구들은 그렇게 부릅니다. ‘조진 클루니’라고. 될 뻔하다 잘못됐다고. 어쨌든요.

◆최영일> 빵 터지네요.

◇김방희> 시사평론가시니까 지금 아마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은 대선에 대한 판세 분석이겠죠.

◆최영일> 맞습니다.

◇김방희> 어떻게 보세요?

◆최영일> 매일 그거 하고 있고요. 여기저기 저도 진행을 하면서 대선 뉴스가 가장 많은데 제가 방송 평론가를 전업으로 시작하고 세 번째 대선이에요. 그 와중에 총선도 있고 지방선거도 있고 그 전에는 또 일반 시민으로 유권자로 선거를 쭉 봐왔고 요즘에 86그룹 용퇴론, 이런 게 나오는데 제가 딱 586그룹의 중간 세대거든요. 60년대 중반생, 80년대 중반 학번. 그러다 보니까 저희는 젊을 때부터 정치에 민감했지 않습니까?

◇김방희> 그렇죠.

◆최영일> 그러니까 수많은 대선을 봐오면서 보다보다 처음 보는 대선이다. 그러니까 시대정신, 국정철학, 미래 비전은 실종돼 있고 연일 공약은 쏟아지는데 이런 비아냥도 있어요. 이장 선거냐, 구청장 선거냐. 무슨 아주 이렇게 자잘한 공약들은 많이 나와요. 이름은 소확행, 심쿵. 좋기는 한데 그것도 다 좋습니다. 이걸 묶어낼 수 있는 굵은 ‘대한민국호를 5년간 어떻게 이끌겠습니다’ 하는 방향이 실종돼 있다 보니까.

◇김방희> 기준이나 철학이 잘 안 보인다.

◆최영일> 네거티브와 의혹이 너무 난무한다. 그래서 이것이 언론 책임도 좀 있다고 봐요. 그러면 우리 시민들이 잘 걸러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시민의식이 많이 고도화돼서 그래도 올바른 선택을 만들어낼 것이다. 시민과 국민을 믿어야겠죠.

◇김방희> 저도 가끔 외국에 있는 친구들이 한국 정치나 대선과 관련해서 궁금증이 있을 거 아닙니까? 외국은 시장이 또 어떻게 변할지를 봐야 되기 때문에 물어보면 분명히 민주주의의 중추기구 중에 하나인 언론은 우리가 약하다.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그러나 유권자는 우리가 교육도 많이 받았고 훨씬 현명하다. 그래서 그간 많은 걸 성취해 왔기 때문에 너무 비관적으로 보지 말아 달라, 이런 정도로 코멘트를 하는데.

◆최영일> 어제 저녁에 타 방송에서 이재명 후보와 김동연 후보의 토론이 있었죠. 양자토론. 어제 굉장히 모범적이고 좋았어요. 모처럼. 경제만 놓고 한 95분 동안 두 분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고성 한 번 오가지 않고 서로의 이견도 짚으면서 또 공통점을 많이 찾아내는 생산적인 토론이었어요. 오늘 저녁에 드디어 4자 토론을 보게 되는데 고성 많이 오가고 치열하겠습니다마는 어쩔 수 없지만 네 분 다 캐릭터가 다르고 완주할 의지니까 하지만 그런 치열한 와중에도 생산적인 토론을 만들어낸다면 국민들에게는 올바른 선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조금은 기대해 봅니다.

◇김방희> 좋습니다. 평상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을 드렸고 지금 저희들이 드리고 싶은 질문은 결이 다릅니다. 13개의 직업을 거치셨는데 몇 가지만 제가 책을 보고 소개해 드리자면 엔지니어, 대학 강사, 벤처기업 CEO 그리고 신용불량자까지. 지금 시사평론가라는 현재의 직업 올 때까지 많은 경험을 하셨는데 지금의 직업 혹은 지금의 상태에 만족하십니까?

◆최영일> 만족하죠.

◇김방희> 그래요?

◆최영일> 네, 굉장히 평론가를 하면서 예전에 비즈니스 동료들이나 또 동창들 만나면 평론가가 좋은 이유가 하나가 있어. 말을 하면 돈을 줘. 제가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왜냐하면 제가 수많은 직업을 거치면서 소통은 기본의 기본이죠. 비즈니스와 영업에. 회의도 엄청나게 하고 또 영업활동도 하고 제가 지금 방송을 하는 근간은 어디냐 보면 프레젠테이션이에요. 그러니까 타 회사 거래처의 CEO들 앞에서 한 시간을 주면 1시간, 5분을 주면 5분 안에 이 프로젝트의 핵심을 짚어서 ‘우리는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하고 계약을 따내야 되잖아요.

◇김방희> 그렇죠.

◆최영일> 그러니까 그게 중요한 영업활동인데 방송도 5분 동안 3개의 뉴스를 정리하시오. 이런 미션도 있고 1시간 동안 대선에 대한 토론을 하시오. 이런 미션도 있는데 그 주어진 시간 동안에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하는 스킬은 보통 평론가가 언론인 출신이거나 정치인 출신이거나 변호사 등 전문가 출신인데 저는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거든요. 그래도 만 10년 동안 평론을 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비즈니스 현장에서의 소통 경험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지금 말씀하신 질문처럼 저 같은 경우에도 평론가는 말을 하면 돈을 준다. 다른 지금 듣고 계신 청취자분들은 영업을 하는 분이다. 말은 기본인데 말하면 돈 안 주죠. 한 시간 영업해도 안 사요 그러면 빈손으로 돌아오는 거고 그리고 저처럼 컨설팅을 했던 분들은 말은 기본이고 페이퍼워크. 엄청난 자료들을 바인더 여러 개로 만들어서 제공해도 그다음에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계약이 되면 그때부터 업무가 시작되는 겁니다. 돈은 몇 달 후에 수금을 하는 거고요. 그래서 그런 비즈니스의 애로사항을 경험한 분들은 저는 말하면 돈을 줘, 이거 너무 좋은 직업이야. 이렇게 자랑하고 다니죠.

◇김방희> 그래서 만족하신다. 다만 평론가들끼리는 그런 얘기도 하는데 평론가와 거지의 공통점. 즉, 수입이 일정치 않지 않습니까?

◆최영일> 그렇죠.

◇김방희> 그건 본인이 감당해야 될 몫이고.

◆최영일> 부지런하게 많이 하면 된다. 하지만 이게 육체노동이더라고요.

◇김방희> 육체노동이죠.

◆최영일> 제가 젊을 때는 이륜차, 오토바이는 저렇게 위험한 걸 왜 타지 그랬는데 50이 돼서 평론을 하다 보니까 시사평론은 다 생방송이잖아요.

◇김방희> 그럼요.

◆최영일> 생방송의 시간을 맞추는 게 기본의 기본이더라고요. 그래서 늦지 않기 위해서 이륜차를 처음 사고 면허를 따고 새로운 경험에 도전을 해서 지금은 출퇴근할 때 주로 이륜차로 다니다 보니까 뉴스 퀵 서비스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김방희> 뉴스 퀵 서비스.

◆최영일> 퀵 서비스가 많이 다니시잖아요. 서류나 물건을 전달하는데 저는 뉴스를 전달하러 방송사에서 방송사로 이 중형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죠.

◇김방희>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사고 없이 안전하게 실제로 다니기도 해야 되지만 시사평론을 한다는 게 상당히 많은 이해집단이 있기 때문에.

◆최영일> 맞습니다.

◇김방희> 균형을 잡는 게 쉽지 않잖아요.

◆최영일>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할수록 양 진영에서, 우리나라에는 진영 논리가 있는데 욕을 먹어요. 한쪽 진영에서만 욕을 먹으면 편향이에요. 그런데 저처럼 양 진영에서 다 욕을 먹으면.

◇김방희> 그건 괜찮은 거죠.

◆최영일> 균형이에요. 그래서 저는 욕이 골고루 들어오면 잘하고 있구나. 욕이 한쪽에서만 오면 좀 치우쳤나, 이렇게 자신을 바로잡는 하나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김방희> 경험을 상품화한다. 자신의 경험을 특히 자산으로 만든다. 이 얘기에서 한 가지 조금 전과 다른 기류를 읽을 수 있는 건 예전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면 한 직장에서 평생직장이라고 그래서 아주 한정된 경험을 하게 되죠. 조직도 하나고 경험의 내용도 지금 최 선생님처럼 다양할 수가 없는데 그러다 보니까 이걸 콘텐츠화한다든가 상품화하기가 어려웠는데 지금 경험을 상품화해야 된다는 얘기를 하시는 이유는 뭡니까?

◆최영일> 좋은 시절이 왔죠. 대표적으로 많은 유튜버들이 있는데 유튜버들이 이런 얘기를 해요. 일상의 경험이 정말 돈이 돼? 그런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구독하고 또 트래픽을 올려주는 방송을 보면 대체로 의외로 시시껄렁해요. 예를 들면 먹방. 아니, 우리는 삼시 세끼를 매일 먹으면서 점심 뭐 먹을까, 저녁 뭐 해 먹을까, 이런 걱정하고 또 맛있게 먹고 이 식당은 맛없어. 평가도 하고 그런데 그 먹는 방송을 왜 볼까요? 우리가. 우리는 늘 하는 일상적인 행위인데.

◇김방희> 그러게요.

◆최영일> 그런데 다른 사람이 먹는 걸 보면서 와, 맛있겠다. 나도 저거 먹어봐야지. 어쩌면 저렇게 많이 먹을까. 이런 걸 하면서 본단 말이죠. 일상에 우리가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타인의 경험에 대해서 또 궁금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좀 이래요 아주 평범하건 아니면 독특하건 그러한 경험들을 공유하면 누군가는 관심을 가져주고 그 관심의 폭을 넓혀 가면 나의 경험이라는 게 의외로 가치 있는 콘텐츠구나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3개인데 하나는 젊은이들에 대한 걱정이에요. 경험을 다른 말로 하면 행정적인 표현으로 쓰면 경력인데 젊은이들은 경력이 없어요. 그런데 나는 비경력자예요. 그런데 경력자만 뽑아요. 영어로는 이게 experienced인데 경력이라는 말과 유경험이라는 말이 똑같거든요. experienced, 나는 경험해 본 사람이다. 그런데 경력자라고 하면 사람들이 흠칫, 나 경력 없는데, 이력서에 한 줄 쓸 뭐가 없는데 그런데 당신의 경험을 얘기해 보세요. 경력이 없는데 경험은 있더란 말이죠. 그러면 그걸 좀 끄집어내 보자. 사회생활을 1년을 했든 10년을 했든. 그래서 우리가 경력, 경력 중심의 사회를 경험 중심의 사회로 바꾸면 없는 줄 알았는데 있는 1인치가 숨어 있더라. ‘젊은이들이여 그걸 좀 끌어내 봅시다’이고요. 첫 번째는 그리고 너무 정보와 지식이 난무하는 세상이잖아요. 가장 고도화된 문명에 우리가 살고 있고 폰에서 검색하면 모든 정보가 튀어나오는데 지금 이 고도화된 문명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너무 불안이 커졌어요. 불안하고 불행하고 불확실하고 불안정하고 그래요. 그런데 결국 이것은 미래만 바라보니까 변화가 닥쳐오는데 걱정이 많죠. 그런데 과거를 돌아보고 지금까지 우리가 어떻게 수많은 난관을 거쳐 왔는지를 생각해 보면 나의 내면에 숨어 있는 힘이 있다. 그런데 그걸 자꾸 잊어버리고 성공한 사람들만 바라보면 제가 불행하게 느껴지지만 나의 과거를 돌아보면 잘 버텨왔네. 난 지금 서바이벌 하고 있어.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 모두에게 내면의 힘이 있다. 그런데 그것을 굳이 하나의 키워드를 붙인다면 경험의 힘이다. 그걸 한번 다시 복기해 보고 찾아보자. 그런 자신감을 드리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실패를 참 많이 했는데 그래도 지금 이렇게 열심히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저보다 나은 여러분들은 아까 직업은 아니지만 소개란에 신용불량자. 이거 제가 8년 겪었거든요.

◇김방희> 아이고야. 그렇게 오래요?

◆최영일>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제가 여의도 국회에 연구원으로도 있다가 정치를 가까이서 보는데 90년대 정치가 너무 썩은 거예요. 여기 있다가 내가 청춘 시절에 타락하겠구나. 도망간 곳이 요즘은 좀 유명해진 최일도 목사님의 공동체인데 노숙자들에게 밥 주고 거기 성매매 집결지가 있었어요. 그 여성들 탈출도 시키고 험난한 시기였는데 거기서 제가 급여를 받고 일하다 보니까 아니, 사지 멀쩡한 청년인 내가 여기서 왜 후원금으로 또 급여를 받아야 되나. 오히려 돈을 많이 벌어서 후원하고 싶다. 이런 욕심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벤처를 창업했습니다. 그런데 최일도 목사님에게 제가 여기서 연구소 일을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회사를 만들어서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도 크게 기부한다는 한국의 워런 버핏 사례를 만들어보겠습니다. 호기롭게. 그게 32살이었어요. 그런데 IMF가 와서 고생을 하다가 그걸 넘어가니까 벤처 열풍이 왔죠. 그래서 서른다섯쯤에는 제가 한 500억 마켓 캡 시총을 가지고 있는 회사 CEO가 됐는데 그 잘 되는 다음 단계에 또 망하는 거예요. 격변이 오면서 벤처버블이 꺼졌다. 줄도산을 했어요. 그때 저희 관련 회사들이. 그러고 나서 한 2~3억쯤 남겠고 공부를 더해서 또 사업을 해야지 결산해 보니까 남는 게 웬걸 마이너스 10억. 그런데 이게 기업을 경영할 때는 10억이 큰돈이 아니었는데 그냥 홀랑 개인으로 돌아와 보니까 10억은.

◇김방희> 엄청나게 큰돈이죠.

◆최영일> 내가 1년에 1억씩 벌어서 한 푼도 안 쓰고 갚아도 10년 동안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1년에 1억 원이 뭡니까? 2000~3000만 원을 어떻게 벌겠어요. 그래서 그때 기업체 강사를 뛰기 시작했어요. 기업체에 가서 경영을 했던 경험들. 특히 IT와 관련된 변화들, 이런 것으로 대기업의 직원들에게 조직 변화 관리도 강의하고 또 팀 빌딩, 팀워크도 강의하고 그랬는데 제일 큰 건 실패학 강의였죠.

◇김방희> 그런데 지금 말씀 듣는 많은 청취자분들이 위안을 받으실 대목은 나도 그런 실패 경험 정도는 있어. 실패 경험이 있고. 그렇지, 그것도 하나의 내 자산이 될 수 있지, 이렇게 생각하실 텐데 구체적으로 그걸 어떻게 내 상품으로 만드느냐,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에 들어가면 좀 난감해요. 예전에는 그래, 내가 자서전을 써볼까. 어디 받아주는 출판사. 지금은 내가 유튜브를 좀 해볼까. 그러나 지금 구독자 수는 모으기 힘들고.

◆최영일> 맞습니다.

◇김방희> 어떻게 활용해야 됩니까?

◆최영일> 그러니까 그게 한 두 가지인데요. 최영일이라는 시사평론가는 제가 10년 동안 시사도 많이 평론을 했지만 미디어를 통해서 보는 분들에게 하나의 캐릭터가 형성이 됐어요. 저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다. 이런 점에서는 신뢰할 만하고 또 이런 점에서는 좀 부족하다 그건 제가 메워야 할 과제인데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드셔야 되는데 경험을 중심으로 해서는 경험은 쌓여 있어요. 그런데 그 경험을 주물러야 돼요. 그러니까 나의 과거, 10년, 20년의 경험을. 이 책을 쓰게 된 저는 92년에 제가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엔지니어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는데 만 30년이 지나서 보니까 내가 미디어에서 방송 평론을 하고 있네. 정치, 경제, 사회를 논하고 있네. 그러면 이 30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인가 하고 저 자신을 돌아보니까 오만 가지 일이 있었는데 평론과는 1도 관계가 없는 거예요. 언론 종사자도 아니고 제가 정치인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데 평론을 그럭저럭 하고 있단 말이죠.

◇김방희> 잘하시죠.

◆최영일> 그러면 그 20년 동안의 나의 경험은 지금 나의 평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런데 경제 평론을 할 때 이론으로 ‘경제학 석사입니다. 박사입니다.’ 보다는 제가 CEO로 한 10년 가까이 기업을 경영해 봤고 한 100명 정도 직원과 일을 해 봤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중견기업체 임원으로 경영에 참여를 해 보니까 실물경제는 이렇더라 하는 얘기를 교수님보다 좀 더 해 드릴 수 있잖아요.

◇김방희> 그럼요.

◆최영일> 경험에서 나오는 실무적인 이야기.

◇김방희> 경제 현장 얘기니까 훨씬 더 도움이 됐죠.

◆최영일> 그리고 정치에 대해서는 우리 유권자들은 다 정치 유경험자들이세요. 대통령을 이런 사람을 뽑았더니 이런 일이 벌어지더라, 저런 사람을 뽑았더니 저런 일이 벌어지더라, 이걸 경험해 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걸 말로 풀면, 스토리텔링을 하면 제가 킹메이커라는 영화를 어제 봤거든요. 그런데 이게 고 김대중 대통령 이야기더라고요. 저희 젊었을 시절에 다 겪었던 선거 이야기예요. 그런데 그 이면에는 저런 보좌관이 있고 저런 책사가 있었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데 저런 이야기는 우리도 풀어낼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스토리텔링을 조금 잘하시고 이야기의 기법만 우리가 훈련을 하면 아주 평범한 나의 일상경험도 반짝반짝 빛나는 콘텐츠가 될 수 있습니다.

◇김방희> 그런데 이게 사실은 경력이 아니라 경험 중심의 사회로 가자, 이런 말씀을 해 주셨는데 경력은 어떻게 보면 기술하기가 쉬워요. 스토리가. 어느 대학 나왔고 어디 있었다.

◆최영일> 규격화돼 있고.

◇김방희> 그런데 경험을 스토리텔링으로 자기 자신의 캐릭터에 맞게 구술한다는 게 참 버겁게 느껴지거든요. 보통 사람들한테.

◆최영일> 그래서 예를 제가 드리는데.

◇김방희> 좋죠.

◆최영일> 성공한 작가들의 예를 책 안에서 들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해리포터 시리즈를 쓴 조앤 롤링 여사. 이 롤링 여사는 인해서 이혼하고 아이들을 끌어안고 생계에 아주 궁핍한 현상에 있다가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좋아했다는 거죠. 전설, 신화, 민담. 그런데 영국에 가보면 정말 그런 이야기 클럽이 많아요. 그러니까 동화책도 읽고 또는 내가 들었던 이야기를 구술하고 거기에 대해서 토론하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처럼 또 전설, 민담. 이러한 설화. 이런 게 많은 민족도 별로 없고,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이야기를 좋아하죠.

◇김방희> 좋아하죠.

◆최영일> 드라마 좋아하고, 영화 좋아하고, 그러니까 우리 K-콘텐츠가 드디어 이제 막 폭발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 기반은 우리의 이야기들인데 그 이야기가 영국하고 비교해 보면 잘 공유되지 않아요. 그런데 공유가 되기는 해요. 왜냐하면 전화를 붙들고 카페에서 친구 만나면 그 끊임없이 쏟아지는 수다. 우리가 수다 그러면 좀 편해하죠. 그냥 작가한 이야기. 흘려듣고 마는 이야기. 그런데 그것 정리하면 그게 다 단편 드라마고 단편 영화 작품들이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정말 안타까운 게 저희 나이대가 되면 이제 부모님들이 돌아가시잖아요?

◇김방희> 네.

◆최영일> 저도 이제 엊그제 설날, 아버님이 돌아가신 날이 1월 30일이어서 18주기를 이제 어머님 모시고 가족들이 하면서 아버님을 회상했는데 그 아버님에게 내가 어릴 때 들었던 굉장히 많은 이야기. 저희 집은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김방희> 네.

◆최영일> 대한민국 최초이자 마지막 우라늄 광산을 개발했던 집이에요.

◇김방희> 그래요?

◆최영일> 그래서 제가 누가 봐도 ‘문돌이’인데. 저 사람은 이야기 좋아하고 책 좋아하고 그럴 것 같은데 공대를 굳이 갔던 이유가 장남이어서 또 가업을 이어야지. 그래서 우리는 광산업을 해야 되는구나. 기계공학과를 갔단 말이에요. 그런데 저와 맞지 않는 전공이었지만 공대를 다녔다는 게 지금 과학기술 산업사회에 얼마나 또 이제 적지 않은 경험과 지식을 쌓았겠습니까? 평론에도 아주 큰 도움이 되는 거예요.

◇김방희> 제가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나는 건데 국내에 왜 이렇게 실패학이 없느냐. 혹은 실패와 관련된 책이 없느냐 생각해 보니까 그거를 하려면 자신을 지금 우리 최 선생님처럼 털어놔야 돼요.

◆최영일> 맞아요.

◇김방희> 가감 없이 자기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하는데.

◆최영일> 객관화할 수 있어야 되고.

◇김방희> 그런 문화는 좀 없죠.

◆최영일> 그러니까 부끄러움이 많다.

◇김방희> 그렇죠.

◆최영일> 실패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김방희> 혹은 뭐 허세도 좀 있죠. 예를 들어서 조찬모임이라고 성공한 사람들의 강연에 가보면 대개 성공담이지 실패담은 거의 빠지거든요. 그런 점에서 보면 실패하기 굉장히 중요하다는데 저랑 공감을 갖고 계시고 또 하나 흥미로운 건 저는 최 선생님이 이제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과거에 13개의 직업을 가진 이력서. 경력 중심의 사회였다면 이걸 어떤 기업이나 다른 데 내밀었으면 뭐야, 뭐 이렇게 하는 일이 많아. 그런데 뭐 하나 제대로 한 일은 없어. 이렇게 얘기할지도 몰라요.

◆최영일> 그렇죠.

◇김방희>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라 정말 다양하게 살았고, 그래서 현장에 대해서 아는 게 많구나. 많은 분들이 그렇게 얘기하거든요.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러니까 운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최영일> 네, 맞습니다. 운도 있죠. 운도 있는데 운은 우리 주변에 오늘 하루도 수많은 운이 우리를 찾아오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운을 잡느냐, 잡지 못하고 놓치느냐. 혹은 운이 내 곁을 지나가는지도 전혀 감지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도 결국은 우리의 능력이에요. 경험에서의 능력. 그래서 이제 경험이라는 게 처음 시초로 돌아가면 감각에서 시작을 하는 거거든요. 경험은 나 자신과 내 밖에 있는 세계가 끊임없이 만나는 사건들인데 ‘나와 내 밖의 세계가 만난다’라는 말이 추상적인 것 같지만 오늘 제가 집 밖으로 딱 출근을 시작할 때 추워. 이게 새로운 경험이에요. 오늘은 날씨가 춥구나. 그건 제 살갗이 온도를 느끼는 거잖아요.

◇김방희> 그렇죠.

◆최영일> 그래서 우리의 피부. 이 피부가 피부 안쪽은 나고, 피부 밖은 내가 아닌 세상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피부에 감각기관이 다 몰려 있잖아요. 냉점, 온점, 통점. 이런 게 다 모여 있는데 이 감각을 집중하는 훈련을 좀 해야 돼요. 그래서 바깥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그 안에서 내가 생존 적응을 하려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하는 걸 매일 우리는 습관적으로 하는데 무의식을 스쳐가니까 저장이 안 되는데 이걸 좀 우리가 집중해서 기록하고 저장하는 훈련을 하면 매일매일 새로운 경험이, 똑같은 길을, 똑같은 버스를 타고 똑같이 출근을 하지만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어떻게 또 새로운 사건이 있는지를 느껴야 되는데 그 안에 운이라고 이야기한 것들이 녹아들어 있는 거죠. 그래서 지금 『경험의 힘』 다음 권을 또 집필하고 있는데 관계의 힘이에요.

◇김방희> 관계.

◆최영일> 제가 매일 KBS 라디오 스튜디오를 오는데 명절 연휴가 끝나고 오늘은 어후, 존경하는 김방희 소장님을 만날 기회가 있는 거예요. 어제와 또 다른 거죠. 그래서 이 만남을 통해서 방송 들어가기 전에 아휴, 언제 코로나 좀 가라앉으면 우리가 한 잔 나눠요. 그러면 또 이 소장님의 경험을 제가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약속 받았잖아요? 이게 오늘의 저에게는 큰 행운이에요.

◇김방희> 아까 중요한 말씀을 거듭해 주셨는데 그걸 여쭤봐야 되겠네요. 훈련해야 한다. 그리고 훈련의 방법으로 내 경험들을 기록하고 저장한다고 합니다. 그건 구체적으로 실제로 뭘 쓰는, 일기 같은 걸 쓰는 걸 뜻합니까?

◆최영일> 일기 쓰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저는 일기를 쓰는데 지금 장황하게 어릴 때처럼 오늘 날씨 맑음. 이렇게 쭉 쓸 겨를이 없으니까 주머니에 이제 메모 수첩이 있는 거죠. 스케줄러. 그런데 이걸 폰으로 하는 분들도 많고, 저는 굳이 이제 수첩에 쓰는데 하루에 있었던 일을 짧게짧게 메모하는 거예요. 그리고 나서 중요한 건 우리가 사진으로 찍어서 SNS에 올립니다. 그게 뭐 무슨 인별그램이 되든 아니면 뭐 이제 얼굴책이 되든 올리는데 거기에 올리는 건 조금 인상적인 장면들이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이걸 돌이켜봐야 돼요. 그러면 한 몇 년 전에 어떠한 사건이 있었지? 저의 수첩과 디지털 기록을 이렇게 합쳐보면 아, 이날 내가 이 김방희의 《성공예감》에 출연했구나. 이런 이야기를 청취자들과 공유하고 왔더니 어떤 피드백들이 왔구나. 거기서 내가 어떤 깨달음을 얻었구나하는 걸 오늘 이 방송은 휘발되고 마는 것 같지만 한 달 후든 1년 후든 10년 후든 복귀했을 때 복귀하면 지금 보지 못했던 것들을 그때의 눈으로 또 볼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는 사회가 됐다는 안타까움이 있는데 과거를 되돌아보는 걸 우리가 성찰이라고 부르거든요. 성찰이 요새는 너무 없어졌어요. 그러니까 기록을 하시고 그 기록을 시간이 흘러서 한 번 다시 열어보시면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밴드의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노래처럼 먼지 덮인 일기장을 열어보면 주옥같은 이야기가 있고 그걸 지금 다시 가족에게, 친구에게, 주변인에게 얘기해 주면 함께 너무 즐길 수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 문화가 좀 일천할 때는 사대주에 빠져 있었어요. 저희 때는 팝송이 더 좋은 건 줄 알고 자유를 무시했는데 가요가 이제 반세기 이상 쌓이다 보니까 우리가 레트로라고 해서 너무 좋아하잖아요? 제 20대 딸이 최근에 나미, 가수 나미의 노래를 듣는 걸 굉장히 깜짝 놀랐거든요. 아, 우리도 레트로의 힘이 생겼구나. 그런데 이게 다른 말로 하면 집단 경험의 힘이다. 개인 경험도 있고.

◇김방희> 그렇군요.

◆최영일> 자꾸 들여다봐야 됩니다.

◇김방희> 그래서 기록과 저장을 개인적인 경험이 생명력을 얻는 방편으로 얘기해 주셨고.

◆최영일> 맞습니다.

◇김방희> 그러니까 쭉 돌아보시면서 개인적으로 그런 훈련을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 사회가 경력 중심에서 경험 중심으로 가야 되니까 가장 필요한 건 뭐라고 보세요?

◆최영일> 그래서 아까 경험 은행 이런 좀 추상적인 얘기를 했지만 저는 우리나라에 이야기 클럽이 많아져야 되겠다. 그래서 저도 제 책을 용기를 내서 한 권. 평론회 하는 것과 다르게. 왜 평론집을 안 썼어? 왜 부를 만드는 경험의 힘이야? 그래서 평론은 남의 얘기를 계속 하는 거고 말하면 돈 주니까 고마운데 나는 이제 내 얘기도 좀 얘기되겠다. 대신 내 얘기를 세상에 던지면서 말씀하신대로 실패경험을 자연스럽게 털어놓을 수 있는 문화가 돼야 되고 그러면 다른 분들이 나오거든요. 나도 실패 했었어요, 나도 실패 했었어요. 아까 청취자 분 문자에 제가 빵 터졌는데 아들은 비트코인하고 아버지는 주식하고 나는 고스톱치고 딸은 로또 한다. 그래도 저 가족은 분산투자를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 짧은 글이지만 그 이야기가 또 글로 엮이면 너무 재미있는 가족 경험이 되겠다. 다른 가족들이 또 들으면 반면교사도 되고 또 우리 가족도 비슷해요. 경험이 모일수록 시너지가 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체계에 사실 제가 도발하고자 하는 점은 여러분들의 성취의 이야기, 실패의 이야기 또 사랑에 성공해서 결혼한 이야기, 실연당한 이야기. 다 털어내서 우리 한국사회에 이야기 클럽이 많아진다면. 수다가 아니라 이것은 콘텐츠로 엮인다. 대형서점에 그런 표어가 있었어요.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이다. 우리가 읽을 수만 있다면.’ 그래서 저는 한 분 한 분 이 세상 떠나는 분들이 있을 때 이 친구들의 부모님, 빈소에 가면 이분은 어떤 또 인생역정을 가지고 계실까. 그걸 우리가 다 듣지 못하고 떠나보내잖아요. 그걸 좀 모으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김방희> 경력 중심의 사회에서 경험 중심의 사회로 바꾸자. 박무송 님이 성공담 늘어놓는 것보다 실패를 하면 재미있게 나가는 게 후배들이 참 좋아하거든요.

◆최영일> 좋아해요.

◇김방희> 그럼요. 2746번 님. 최영일 평론가님 파란만장한 삶이셨네요. 보기에는 귀공자 같으신데.

◆최영일> 저 유복하게 자란 줄 아는데, 자랄 때는 유복했어요. 그런데 자신의 선택으로 성인이 돼서 굴곡을 많이 겪었는데 그게 평론에 힘이 됩니다.

◇김방희> 그럼요. 자, 이제 사업과 투자에 지금 말씀 해 주신 경험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들어야 되겠습니다. 저희 2부 심화학습의 목표는 성공을 위해서 조금의 힌트라도 드리는 거니까. 3074번 님이 저도 평론가님처럼 기록과 메모를 쭉 해 왔는데요. ‘카스’에 하시는군요. 한 10년 정도 됐는데 그걸 다시 들여다 볼 때마다 다양한 생각들이, 느낌들이 떠오르신다고요. 그게 이제 커다란 자산입니다. 해 주셨는데 돈도 좀 만들어야 되잖아요.

◆최영일> 그렇죠.

◇김방희> 지금 말씀하시는 건 돈, 그러니까 돈 걱정 하시는 분들이 훨씬 많을 테니까. 내 경험을 돈으로 만드는 방법이나 노하우는 없을까요.

◆최영일> 그게 바로 이번에 출간한 제 책이에요. 저도 이제 소득은 고소득이에요. 방송을, 방송 출연료가 택시기사 분들이 그 종편 한번 나가면 얼마 줘요? 이렇게 물어보세요. 얘기해 드리기가 민망한 게 생각보다 높지 않은데.

◇김방희> 높지는 않죠.

◆최영일> 그분들은 연예인처럼 버는 줄 아시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제 다다익선이라고 많이 해서 소득이 많아요. 그걸 좀 줄이고 있는 중인데 문제는 이 소득이 끊기면 제가 건물 한 채를 사놓은 것도 아니고 노후가 쉽지 않겠다. ‘그럼 내 콘텐츠를 쌓아야겠다’라고 첫 단추를 끼운 게 이 책인데 나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든 거예요. 책일 수도 있지만 제가 즉각적인 공유를 더 원했으면 유튜브를 개설했을 수도 있어요.

◇김방희> 그렇겠죠.

◆최영일> 최영일 TV를 만들어서 정치 평론은 미디어를 통해 보시고요. 제가 여기서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건 우리가 돈 버는 경험들이에요. 여러분 이야기도 들려주시고 제 이야기도 좀 들어주세요. 할 수도 있는 거고 미디어가 다양해 져서 여러분들이 편한 미디어를 선택하시면 되고 아까 기록하라, 저장하라. 그리고 그걸 다시 끄집어내서 빤짝빤짝 닦아 보라. 그런데 그걸 혼자만 보면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공유해야죠. 공유의 채널과 수단을 찾으셔야 되는데 그것은 올드미디어부터 뉴미디어까지 다양하니까 골라 보셔라. 그런데 거기서 몇 가지 팁들을 제가 책에 써 놨는데 경험을 다시 꺼내서 회고해 볼 때 사학자처럼 보지 마시라. 그러니까 연대기적 기록. 우리가 뭐 왕조를 기록하는 것도 아닌데 태정태세문단세 하지 마시고 이 10년 전에 내가 겪었던 경험을 지금의 시각으로, 지금 상황에 오버랩해서 보면 새로운 창조력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퍼즐처럼 보지 말고 레고블록처럼 만져라. 퍼즐은 그림이 그려져있는데 맞추는 거잖아요. 이게 10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아, 그래 이런 조각을 내가 까먹고 있었네. 아이고, 이제 다 스토리가 완성됐다 끝. 이게 아니라 입체적으로 보셔야 되는 게 퍼즐은 항상 똑같은 그림이지만 레고블록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지잖아요. 그래서 이걸 자꾸 주무르시고 지금 내가 이 과거 경험에서 끄집어낼 경험이 한 가지로 정해져 있는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또 다른 경험, 또 다른 경험. 제가 한 15년 전, 20년 전에 실패했는데 그 대실패 경험을 10년 전에 다시 간추려 볼 때는 아픔으로만 다가와요.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20년이 지나서 지금 숨 쉴 만하고 먹고 살만 하니까 안 보이던 게 또 보이는 거죠. 아, 그때 그 무리한 시도는 좋았는데 사회적 맥락이 조금 빨랐구나. 그때 했던 사업을 지금 했더라면 괜찮았을 걸?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고요.

◇김방희> 우리 국민들 한 분 한 분이 위대한 경험의 소유자들이니까.

◆최영일> 맞습니다.

◇김방희> 각자 개인의 경험으로는 위대한 거니까.

◆최영일> 저보다 훨씬 유리한 경험이 지금 보이지 않는 게 많이 쌓여 있죠.

◇김방희> 경험의 시대로 가자는 얘기는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실 텐데. 정말 현실에서 그럴 수 있느냐에 대해서 약간의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게 거꾸로 입장이 바뀌어서 누군가 와서 우리 최 선생님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해요. 한 쪽은 기가 막힌 대학교를 나왔고 경력이 화려합니다. 언변도 아주 좋고요. 다른 쪽은 다양한 경험을 가졌지만 뭐 하나 제대로 성공하지 못한 분이 있어요. 젊은 시절에 우리 최 선생님하고 비슷할 수도 있고. 두 분이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마음은 경력 좋은 쪽으로 가지 않아요?

◆최영일> 아, 제가 정말 잘나갈 때 대기업 현대자동차그룹에서 한 20억 짜리 컨설팅 프로젝트를 따느라고 PT를 했어요.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만 점 가까이 받았어요. 그래 우리는 잘났지 그럴 때예요. 두 개의 회사가 PT를 했어요. 그런데 이제 상대사에는 여성 CEO분이 오셔서 PT를 했는데 그 회사는 신생회사였고 조그맸어요. 그런데 저희가 떨어졌어요.

◇김방희> 그래요?

◆최영일> 그래서 이거는 확실히 따는 프로젝트인데 왜 떨어졌지? 그리고 이제 알고 지내던 과장님한테 전화를 해서 왜 저희가 떨어졌어요? 그랬더니 당신들은 잘나서 타사 프로젝트도 먹고 살게 많지만 저 B사는 절박해 보였다. 그러니까 B사를 선택하면 오직 1년 내내 우리 회사의 프로젝트만.

◇김방희> 목숨 걸고 할 것 같다.

◆최영일> 또 해 주고, 또 해 주고, 또 해 주고. 그래서 이번에 저희의 선정의 이유는 절박한 회사를 고른 거였어요. 그때 제가 크게 충격 받았는데 아, 잘나서 떨어지는구나 오히려. 그런데 그때 저희 회사는 먹고 살게 별로 없었거든요. 그냥 표면적으로만 잘나보였을 뿐이지 저희도 그 프로젝트가 절박했는데 잘나 보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김방희> 알겠습니다.

◆최영일> 이것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김방희> 이분의 경륜과 지혜는 참 제약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오늘은 이쯤 보내드려야 되겠군요. 본인 방송 준비도 좀 하셔야 될 테니까.

◆최영일> 그런데 어쨌든 청취자 여러분 많이 경험을 좀 끄집어내서 공유해 주세요. 어떤 방법으로든요.

◇김방희> 그러니까요.

◆최영일> 그러면 이제 단초가 풀립니다.

◇김방희> 이제 또 최영일 시사평론가께서 제안해 주셨으니까 우리 사회를 경력이 아니라 경험 중심으로 바꾸는 데 또 일익을 담당해 주시고요.

◆최영일> 네. 김방희 소장님께서 경험 은행장, 제가 참모학 강조했으니까 참모.

◇김방희> 저는 창구직원 정도 될 겁니다. 제 경험가지고는. 최영일 시사평론가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최영일> 네. 고맙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