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 탄 수령 김정은, 그리고 북한 매체 속 설날 풍경

입력 2022.02.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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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바다 위로 시뻘건 태양이 솟아오릅니다. 솟구치는 태양을 흰 옷을 입은 남자가 백마를 탄 채 비장하게 바라봅니다. 파도는 넘실거리며 해안으로 밀려옵니다. 장엄한 배경 음악과 함께 아나운서의 설명이 흐릅니다.

"시련은 유례 없이 엄혹했어도 한 걸음의 양보도 없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꿋꿋이 전진 또 전진하여 바라던 대로 모든 것을 이루고 믿었던 대로 위대한 승리를 얻어온 잊을 수 없는 2021년이여…"



장면이 바뀌어 이제는 푸른 숲길입니다. 아까 그 남자가 백마를 타고 전 속력으로 질주합니다. 고삐를 한 손으로만 쥔 채 내달리기도 합니다. 남자 1명, 여자 3명이 그를 뒤따릅니다. 모두가 수준급 승마 실력을 자랑합니다.

설날이었던 지난 1일 오전 9시, 조선중앙TV가 방송한 새로운 기록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모습입니다.

기록영화의 제목은 '위대한 승리의 해 2021년'. 백마 탄 남자는 예상했듯이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 그와 함께 들판을 질주한 일행은 여동생 김여정, 아내 리설주, 상무위원 조용원, 당 부부장 현송월 등 가족과 최측근들입니다.

북한에서 백마는 김일성 주석 때부터 이른바 '백두혈통'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북한 매체는 새해 또는 국가적 위기에서 결단이 필요한 시점에 김 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을 달리는 모습을 종종 내보내곤 했습니다.

2022년을 시작하며 한 달 동안 7차례나 미사일 발사를 퍼부은 북한. 백마 탄 수령의 질주가 올 한 해를 군사적 긴장 고조로 '질주'하겠다는 암시가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북한이 지난 1일 설을 맞이해 평양교예극장과 국립교예단 요술극장에서 종합교예공연과 요술공연을 진행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북한이 지난 1일 설을 맞이해 평양교예극장과 국립교예단 요술극장에서 종합교예공연과 요술공연을 진행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1일 설을 맞이해 평양교예극장과 국립교예단 요술극장에서 종합교예공연과 요술공연을 진행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북한이 지난 1일 설을 맞이해 평양교예극장과 국립교예단 요술극장에서 종합교예공연과 요술공연을 진행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설날 북한 국립연극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멸사복무’ (사진출처 : 연합뉴스)설날 북한 국립연극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멸사복무’ (사진출처 : 연합뉴스)

설을 맞아 북한의 텔레비전과 신문, 통신 등 매체들은 다양한 행사를 소개했습니다. 종합교예공연과 연극, 예술단 야외 공연 모습과 공연을 즐기는 주민들의 모습도 함께 방송했습니다.



때마침 평양에는 눈이 내렸습니다. 조선중앙TV는 눈 쌓인 평양 거리 모습과 설을 맞은 주민들의 모습을 '평양의 설풍경'이란 제목의 별도 영상으로 제작해 방송했습니다.


민족의 대명절인 설. 남측 주민들은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냈고,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헌화를 하며 설인사를 했습니다.

조선중앙TV 화면조선중앙TV 화면

이번 북한 설 특집 방송에서 단연 눈에 띈 것은 승마경기였습니다. 설 당일인 1일, 조선중앙TV는 평양 미림승마구락부(클럽)에서 승마경기가 열린다는 사전 안내 광고를 내보냈고, 다음날인 2일에는 승마경기 영상을 편집해 방송했습니다.


성인 경기에 이어 초등학생 선수들도 출전했습니다. 작은 말인 포니를 타고 장애물 뛰어넘기 경기를 벌였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경기 소식을 전하며 "예로부터 말타기를 즐기며 용감성과 대담성을 키우고 체력을 단련해온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승마풍습"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승마경기에 앞서, 예술단의 축하 공연과 말을 타고 펼치는 묘기가 펼쳐졌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마스크를 쓰고 공연과 경기를 관람했습니다.

경기 종료 뒤에는 불꽃놀이도 열렸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일 평양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열린 설 명절 경축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아내 리설주가 동행했습니다. 리설주의 공개 행보는 북한 정권수립 73주년인 지난해 9월 9일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이후 145일 만입니다.

특히 리설주는 공연이 끝난 뒤 예술단 단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최고 존엄'인 김 위원장을 앞질러 나가 악수를 하는 모습이 그대로 방송에 노출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날 공연 영상에는 김 위원장의 고모이자, 숙청된 장성택의 부인 김경희의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북한 매체에서 김경희의 공식 활동이 포착된 것은 2020년 1월 삼지연극장에서 설명절 기념 공연 관람 이후 2년여 만입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경희가 고령인데다 공식 직책을 맡고 있지 않아 공식 활동도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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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마 탄 수령 김정은, 그리고 북한 매체 속 설날 풍경
    • 입력 2022-02-04 08:00:03
    취재K

동해 바다 위로 시뻘건 태양이 솟아오릅니다. 솟구치는 태양을 흰 옷을 입은 남자가 백마를 탄 채 비장하게 바라봅니다. 파도는 넘실거리며 해안으로 밀려옵니다. 장엄한 배경 음악과 함께 아나운서의 설명이 흐릅니다.

"시련은 유례 없이 엄혹했어도 한 걸음의 양보도 없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꿋꿋이 전진 또 전진하여 바라던 대로 모든 것을 이루고 믿었던 대로 위대한 승리를 얻어온 잊을 수 없는 2021년이여…"



장면이 바뀌어 이제는 푸른 숲길입니다. 아까 그 남자가 백마를 타고 전 속력으로 질주합니다. 고삐를 한 손으로만 쥔 채 내달리기도 합니다. 남자 1명, 여자 3명이 그를 뒤따릅니다. 모두가 수준급 승마 실력을 자랑합니다.

설날이었던 지난 1일 오전 9시, 조선중앙TV가 방송한 새로운 기록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모습입니다.

기록영화의 제목은 '위대한 승리의 해 2021년'. 백마 탄 남자는 예상했듯이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 그와 함께 들판을 질주한 일행은 여동생 김여정, 아내 리설주, 상무위원 조용원, 당 부부장 현송월 등 가족과 최측근들입니다.

북한에서 백마는 김일성 주석 때부터 이른바 '백두혈통'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북한 매체는 새해 또는 국가적 위기에서 결단이 필요한 시점에 김 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을 달리는 모습을 종종 내보내곤 했습니다.

2022년을 시작하며 한 달 동안 7차례나 미사일 발사를 퍼부은 북한. 백마 탄 수령의 질주가 올 한 해를 군사적 긴장 고조로 '질주'하겠다는 암시가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북한이 지난 1일 설을 맞이해 평양교예극장과 국립교예단 요술극장에서 종합교예공연과 요술공연을 진행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1일 설을 맞이해 평양교예극장과 국립교예단 요술극장에서 종합교예공연과 요술공연을 진행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설날 북한 국립연극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멸사복무’ (사진출처 : 연합뉴스)
설을 맞아 북한의 텔레비전과 신문, 통신 등 매체들은 다양한 행사를 소개했습니다. 종합교예공연과 연극, 예술단 야외 공연 모습과 공연을 즐기는 주민들의 모습도 함께 방송했습니다.



때마침 평양에는 눈이 내렸습니다. 조선중앙TV는 눈 쌓인 평양 거리 모습과 설을 맞은 주민들의 모습을 '평양의 설풍경'이란 제목의 별도 영상으로 제작해 방송했습니다.


민족의 대명절인 설. 남측 주민들은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냈고,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헌화를 하며 설인사를 했습니다.

조선중앙TV 화면
이번 북한 설 특집 방송에서 단연 눈에 띈 것은 승마경기였습니다. 설 당일인 1일, 조선중앙TV는 평양 미림승마구락부(클럽)에서 승마경기가 열린다는 사전 안내 광고를 내보냈고, 다음날인 2일에는 승마경기 영상을 편집해 방송했습니다.


성인 경기에 이어 초등학생 선수들도 출전했습니다. 작은 말인 포니를 타고 장애물 뛰어넘기 경기를 벌였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경기 소식을 전하며 "예로부터 말타기를 즐기며 용감성과 대담성을 키우고 체력을 단련해온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승마풍습"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승마경기에 앞서, 예술단의 축하 공연과 말을 타고 펼치는 묘기가 펼쳐졌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마스크를 쓰고 공연과 경기를 관람했습니다.

경기 종료 뒤에는 불꽃놀이도 열렸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일 평양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열린 설 명절 경축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아내 리설주가 동행했습니다. 리설주의 공개 행보는 북한 정권수립 73주년인 지난해 9월 9일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이후 145일 만입니다.

특히 리설주는 공연이 끝난 뒤 예술단 단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최고 존엄'인 김 위원장을 앞질러 나가 악수를 하는 모습이 그대로 방송에 노출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날 공연 영상에는 김 위원장의 고모이자, 숙청된 장성택의 부인 김경희의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북한 매체에서 김경희의 공식 활동이 포착된 것은 2020년 1월 삼지연극장에서 설명절 기념 공연 관람 이후 2년여 만입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경희가 고령인데다 공식 직책을 맡고 있지 않아 공식 활동도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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