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글로벌 혐오시대

입력 2022.02.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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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
중국인 노동자가 워낙 많다 보니, 중국어로 된 안전지시판이 계속 늘어난다. 현장소장으로 근무했던 지인이 “세상 말세야...” 라면서 혀를 찼다. 듣고 있던 또 다른 지인이 그랬다. “40년 전에 우리 국민이 광부로 일하던 독일 탄광에 한글 안내문 있으면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거예요?”

누군가 나보다 약한 집단이 괜히 싫고 미우면, 그것이 혐오의 시작이다.

이번 대선 공약 중에 서울 등 자투리 부지에 임대아파트 100만 채 공급이 있다. 쉽지 않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서울 목동의 유수지에 행복주택을 지으려 했다. 지역 주민들이 결사반대했다.

“50만 행복한 목동 주민의 삶을 2,800가구 임대주택으로 망치시겠습니까?”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계획은 무산됐다.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 들어오면 나의 행복이 무너진다는 생각’. 사실은 이런 게 혐오다.

요즘 혐오는 지구촌 트렌드다. 트럼프 대통령이, 또 코로나바이러스가 방아쇠가 됐다. 프랑스인들의 SNS에 “히틀러는 유대인이 아니라 중국인을 죽였어야 했다”는 글이 계속 올라온다. 누군가를 혐오하기 좋은 시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혐오 발언을 할 때마다 혐오범죄가 8%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가 처음 내놓은 정책도 사실상 이민자 추방 정책이었다. 정작 그 나라는 우리 조선 영조 때,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다)

우리도 외국인이 펑펑 썼다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논란이다. 팩트를 떠나 혐오의 그림자가 보인다. “우리 건보를 너희가 왜 쓰니?” 그런데 외국인이 내는 건보료가 그들이 쓰는 건보재정보다 훨씬 더 많다.

그냥 우리와 여권이 다른, 또는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싫다. 중국인이 우한지방 사람들을 혐오하고, 우리가 중국인을 혐오하고, 유럽 사람들은 아시아인을 혐오한다. 혐오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우리에게 다시 돌아와 무한 반복된다.

우리 교민이 LA에서 '말리부비치'에 사는 것은 당연한데, 중국 동포가 신도림에서 장사 잘해서 '구로 자이'에 입주하는 것은 싫다. 죽음을 피해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을 쫓아내자는 청와대 청원을 올리면서, 정작 콩코드광장에서 배낭여행을 하던 한국인이 “원숭이는 떠나라”는 욕설을 들었다고 하면 막 화가 난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7월에 올린 트윗. 유색인종인 여성 하원의원 4명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부패한 당신들의 나라로 떠나라”고 조롱한다. 이 트윗에 15만 명 이상이 좋아요를 눌렀다. 2021년 1월 트위터와 스냅챗, 페이스북 등은 결국 트럼프의 계정을 (영구)중단시켰다.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7월에 올린 트윗. 유색인종인 여성 하원의원 4명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부패한 당신들의 나라로 떠나라”고 조롱한다. 이 트윗에 15만 명 이상이 좋아요를 눌렀다. 2021년 1월 트위터와 스냅챗, 페이스북 등은 결국 트럼프의 계정을 (영구)중단시켰다.

혐오는 일정한 공식이 있다.

루저는 외롭다-->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계층을 타겟팅한다-->우리와 다르다고 타자화(Othering)한다-->문제점을 들춰내 과장하거나 왜곡해서 낙인을 찍는다-->타자를 비난하면서 우리 편을 강화한다-->구역질 날 것 같은 용어로 공격한다-->덜 외롭다

심리학에서 보면 ‘비난’은 ‘고통과 불안을 잊기 위한 기재’ 같은 거다. 더 힘들면 더 혐오한다. 예고 없이 찾아온 이 반감금의 시절, 우리끼리 뭉치는 게 편하고 유리하다. 누군가를 타자화해 내 편을 강화한다. 선동과 공격이 그 다음이다. 오징어게임에서 위기에 몰린 인간이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혐오와 편 가르기였다. (그리고 다들 그렇게 타자화한 대상에게 죽임을 당한다)

우리 편끼리 뭉치면 매출도 올라간다. 일부 정치인이나 일부 언론이 타자화와 혐오에 매달리는 이유도 사실은 인기와 매출 때문이다(막강한 구독자를 보유한 그 극우 유튜버가 혐오의 언어를 달고 사는 것도 사실은 매출 때문 아닌가). 상업적 혐오가 판을 친다.

매출 급감의 우리 언론시장에 '혐오'의 언어가 부쩍 늘어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우리 편만 구독해줘도 얼마든지 먹고 산다. 혐오가 가져오는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은 남의 일이다. 오늘도 더 자극적인 언어로 '혐오'를 해야 한다. 그래야 기사가 읽힌다.

(그러니 여야 원내대표보다 ‘혐오 발언 전문가’들의 말이 언론에 더 자주 등장한다. 유승민 전 의원이나 정세균 전 총리 같은 보통 사람들의 화법을 가진 정치인들은 도무지 기사화될 기회조차 없다.)

그런데 같이 살아야 한다

다민족 국가 미국에서 점점 백인 비중이 줄어든다. 오바마 대통령 말처럼 반 세기 후 미국에 다수 인종은 없다. 결국, 이탈리아계와 아일랜드계가, 흑인과 히스패닉이, 중국계와 한국계가 다 같이 미국인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도 피할 수 없다. 같이 살아야 한다. 지금도 이민족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낮은 이 나라는 이제 피부색이 다른 '한국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일본도 버티다 버티다 결국 받아들이지 않는가). 그런데 은근히 혐오한다.

고추농사마저 외국인 노동자들이 짓는데 “저 친구들 여기서 100만 원 벌어가면 자기 나라 가서 재벌 된다니까”. 우리가 필요해서 고용해 놓고선 뭔가 대단한 시혜를 준다고 믿는다. 혐오로 이어진다.

(그 이민족이 한국 땅에 들어와 1년 동안 소비한 모든 금액이 우리 GDP에 그대로 올라간다. 성장률을 올리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그래서 인구 증가다. 반대로 이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 우리 성장률은 딱 그만큼 내려간다. 당신의 카센터, 피아노학원, 피자가게, 치과, 백화점과 야구장, 대학교까지 모두 그만큼 딱 매출이 줄어든다. 잠재성장률의 가장 큰 요소는 '인구'다)

그들이 필요하다. 한국의 건설현장은 중국 동포들이, 태국의 건설현장은 미얀마인들이 채우고 있다(태국의 1인당 GDP가 미얀마보다 7배 정도 높다). 우리가 사는 집도 학교도 교회도 사실 그들의 손길이 묻어있다. 그래도 은근히 무시한다. 혐오한다.

우리는 교역으로 먹고산다

무역액이 1조 달러 넘는 나라는 전 세계에 한국 등 10개 나라밖에 없다. 그중에서 무역으로 흑자를 보는 나라는 4개 나라뿐이다. 독일 한국 네덜란드 그리고 중국밖에 없다. 그 최대 흑자국 중국에서 해마다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수출도 수입도 당연히 중국의존도가 매우 높다. 미국 일본의 교역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 그 비중이 계속 높아진다. 우리는 뭐가 아쉬워 그렇게 중국에서 수입을 많이 할까? 뭘 그렇게 중국에서 많이 수입할까? 목재나 석탄, 돼지고기? 땡.

주로 반도체(수입 1위)나 화학소재, 전자·전기부품 등을 수입한다. 그러니 수출 대국 한국은 중국 없이는 어렵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천안문 망루까지 올라가 중국군 사열하는데 박수치며 찬사를 보내준거다. 그런데 중국을 무시한다. 은근히 싫어한다. 혐오한다.

혐오는 답이 아니다

괴벨스는 “선동은 한마디로 가능하지만, 이를 반박하려면 수많은 문서와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는 이미 시민들이 선동에 넘어와 있다고 했다. 말 한마디로 누군가를 갈라놓기는 쉬워도 그것을 다시 붙이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가. 혐오는 그래서 나쁘다.

오늘도 포털 댓글에 혐오가 판을 친다. 누군가를 구역질하게 미워한다고 내놓고 외친다. 같이 사는 임대아파트 주민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무슨 남북통일인가. 이웃 일본이나 중국인도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이제 피부색이 다른 파키스탄이나 튀니지 이민자와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이 현상을 잡지 못하면, 우리는 한 발짝도 앞으로 가기 어렵다. 혐오는 답이 아니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 오만과 편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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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글로벌 혐오시대
    • 입력 2022-02-07 07:00:13
    특파원 리포트

서울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
중국인 노동자가 워낙 많다 보니, 중국어로 된 안전지시판이 계속 늘어난다. 현장소장으로 근무했던 지인이 “세상 말세야...” 라면서 혀를 찼다. 듣고 있던 또 다른 지인이 그랬다. “40년 전에 우리 국민이 광부로 일하던 독일 탄광에 한글 안내문 있으면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거예요?”

누군가 나보다 약한 집단이 괜히 싫고 미우면, 그것이 혐오의 시작이다.

이번 대선 공약 중에 서울 등 자투리 부지에 임대아파트 100만 채 공급이 있다. 쉽지 않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서울 목동의 유수지에 행복주택을 지으려 했다. 지역 주민들이 결사반대했다.

“50만 행복한 목동 주민의 삶을 2,800가구 임대주택으로 망치시겠습니까?”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계획은 무산됐다.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 들어오면 나의 행복이 무너진다는 생각’. 사실은 이런 게 혐오다.

요즘 혐오는 지구촌 트렌드다. 트럼프 대통령이, 또 코로나바이러스가 방아쇠가 됐다. 프랑스인들의 SNS에 “히틀러는 유대인이 아니라 중국인을 죽였어야 했다”는 글이 계속 올라온다. 누군가를 혐오하기 좋은 시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혐오 발언을 할 때마다 혐오범죄가 8%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가 처음 내놓은 정책도 사실상 이민자 추방 정책이었다. 정작 그 나라는 우리 조선 영조 때,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다)

우리도 외국인이 펑펑 썼다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논란이다. 팩트를 떠나 혐오의 그림자가 보인다. “우리 건보를 너희가 왜 쓰니?” 그런데 외국인이 내는 건보료가 그들이 쓰는 건보재정보다 훨씬 더 많다.

그냥 우리와 여권이 다른, 또는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싫다. 중국인이 우한지방 사람들을 혐오하고, 우리가 중국인을 혐오하고, 유럽 사람들은 아시아인을 혐오한다. 혐오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우리에게 다시 돌아와 무한 반복된다.

우리 교민이 LA에서 '말리부비치'에 사는 것은 당연한데, 중국 동포가 신도림에서 장사 잘해서 '구로 자이'에 입주하는 것은 싫다. 죽음을 피해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을 쫓아내자는 청와대 청원을 올리면서, 정작 콩코드광장에서 배낭여행을 하던 한국인이 “원숭이는 떠나라”는 욕설을 들었다고 하면 막 화가 난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7월에 올린 트윗. 유색인종인 여성 하원의원 4명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부패한 당신들의 나라로 떠나라”고 조롱한다. 이 트윗에 15만 명 이상이 좋아요를 눌렀다. 2021년 1월 트위터와 스냅챗, 페이스북 등은 결국 트럼프의 계정을 (영구)중단시켰다.
혐오는 일정한 공식이 있다.

루저는 외롭다-->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계층을 타겟팅한다-->우리와 다르다고 타자화(Othering)한다-->문제점을 들춰내 과장하거나 왜곡해서 낙인을 찍는다-->타자를 비난하면서 우리 편을 강화한다-->구역질 날 것 같은 용어로 공격한다-->덜 외롭다

심리학에서 보면 ‘비난’은 ‘고통과 불안을 잊기 위한 기재’ 같은 거다. 더 힘들면 더 혐오한다. 예고 없이 찾아온 이 반감금의 시절, 우리끼리 뭉치는 게 편하고 유리하다. 누군가를 타자화해 내 편을 강화한다. 선동과 공격이 그 다음이다. 오징어게임에서 위기에 몰린 인간이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혐오와 편 가르기였다. (그리고 다들 그렇게 타자화한 대상에게 죽임을 당한다)

우리 편끼리 뭉치면 매출도 올라간다. 일부 정치인이나 일부 언론이 타자화와 혐오에 매달리는 이유도 사실은 인기와 매출 때문이다(막강한 구독자를 보유한 그 극우 유튜버가 혐오의 언어를 달고 사는 것도 사실은 매출 때문 아닌가). 상업적 혐오가 판을 친다.

매출 급감의 우리 언론시장에 '혐오'의 언어가 부쩍 늘어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우리 편만 구독해줘도 얼마든지 먹고 산다. 혐오가 가져오는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은 남의 일이다. 오늘도 더 자극적인 언어로 '혐오'를 해야 한다. 그래야 기사가 읽힌다.

(그러니 여야 원내대표보다 ‘혐오 발언 전문가’들의 말이 언론에 더 자주 등장한다. 유승민 전 의원이나 정세균 전 총리 같은 보통 사람들의 화법을 가진 정치인들은 도무지 기사화될 기회조차 없다.)

그런데 같이 살아야 한다

다민족 국가 미국에서 점점 백인 비중이 줄어든다. 오바마 대통령 말처럼 반 세기 후 미국에 다수 인종은 없다. 결국, 이탈리아계와 아일랜드계가, 흑인과 히스패닉이, 중국계와 한국계가 다 같이 미국인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도 피할 수 없다. 같이 살아야 한다. 지금도 이민족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낮은 이 나라는 이제 피부색이 다른 '한국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일본도 버티다 버티다 결국 받아들이지 않는가). 그런데 은근히 혐오한다.

고추농사마저 외국인 노동자들이 짓는데 “저 친구들 여기서 100만 원 벌어가면 자기 나라 가서 재벌 된다니까”. 우리가 필요해서 고용해 놓고선 뭔가 대단한 시혜를 준다고 믿는다. 혐오로 이어진다.

(그 이민족이 한국 땅에 들어와 1년 동안 소비한 모든 금액이 우리 GDP에 그대로 올라간다. 성장률을 올리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그래서 인구 증가다. 반대로 이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 우리 성장률은 딱 그만큼 내려간다. 당신의 카센터, 피아노학원, 피자가게, 치과, 백화점과 야구장, 대학교까지 모두 그만큼 딱 매출이 줄어든다. 잠재성장률의 가장 큰 요소는 '인구'다)

그들이 필요하다. 한국의 건설현장은 중국 동포들이, 태국의 건설현장은 미얀마인들이 채우고 있다(태국의 1인당 GDP가 미얀마보다 7배 정도 높다). 우리가 사는 집도 학교도 교회도 사실 그들의 손길이 묻어있다. 그래도 은근히 무시한다. 혐오한다.

우리는 교역으로 먹고산다

무역액이 1조 달러 넘는 나라는 전 세계에 한국 등 10개 나라밖에 없다. 그중에서 무역으로 흑자를 보는 나라는 4개 나라뿐이다. 독일 한국 네덜란드 그리고 중국밖에 없다. 그 최대 흑자국 중국에서 해마다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수출도 수입도 당연히 중국의존도가 매우 높다. 미국 일본의 교역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 그 비중이 계속 높아진다. 우리는 뭐가 아쉬워 그렇게 중국에서 수입을 많이 할까? 뭘 그렇게 중국에서 많이 수입할까? 목재나 석탄, 돼지고기? 땡.

주로 반도체(수입 1위)나 화학소재, 전자·전기부품 등을 수입한다. 그러니 수출 대국 한국은 중국 없이는 어렵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천안문 망루까지 올라가 중국군 사열하는데 박수치며 찬사를 보내준거다. 그런데 중국을 무시한다. 은근히 싫어한다. 혐오한다.

혐오는 답이 아니다

괴벨스는 “선동은 한마디로 가능하지만, 이를 반박하려면 수많은 문서와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는 이미 시민들이 선동에 넘어와 있다고 했다. 말 한마디로 누군가를 갈라놓기는 쉬워도 그것을 다시 붙이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가. 혐오는 그래서 나쁘다.

오늘도 포털 댓글에 혐오가 판을 친다. 누군가를 구역질하게 미워한다고 내놓고 외친다. 같이 사는 임대아파트 주민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무슨 남북통일인가. 이웃 일본이나 중국인도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이제 피부색이 다른 파키스탄이나 튀니지 이민자와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이 현상을 잡지 못하면, 우리는 한 발짝도 앞으로 가기 어렵다. 혐오는 답이 아니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 오만과 편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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