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붕괴사고 임무 마친 소방관의 눈물

입력 2022.02.10 (15:4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광주 북부소방서 황선우 소방위가 KBS와의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광주 북부소방서 황선우 소방위가 KBS와의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임무를 마친 날, 소방관은 울었습니다. 광주 아이파크 붕괴사고 29일째, 실종자 6명이 모두 수습된 날입니다. 다음 날(9일), 광주 북부소방서 황선우 소방위를 만났습니다.

황선우 소방위는 붕괴 첫날부터 구조 현장에 투입됐습니다. 사고 발생 29일째, 마지막 실종자를 수습한 날이 임무를 끝낸 날입니다. 취재진과 마주 앉은 황선우 소방위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가족분들이 뒤에서 울고 계셨습니다. 근데 그 눈물이 참…. 그 울음소리를 들으니까…."

2월 8일 밤, 황 소방위와 동료들은 임무를 마친 뒤 사고 현장에 도열했습니다. 119구급차에 실린 마지막 실종자는 구조대원들의 거수경례를 받으며 가족 품으로 향했습니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마지막 실종자를 수습한 지난 8일, 구조대원들이 실종자를 태운 119구급차를 향해 도열해 거수경례하고 있다.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마지막 실종자를 수습한 지난 8일, 구조대원들이 실종자를 태운 119구급차를 향해 도열해 거수경례하고 있다.

구조작업에 투입됐던 김선종 광주 119 특수구조단 소방장은 마지막 실종자를 발견한 순간을 기억합니다. "오래 기다리셨다. 늦게 와서 미안하다"라고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에서 마지막 실종자를 수습한 김선종 광주 119특수구조단 소방장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에서 마지막 실종자를 수습한 김선종 광주 119특수구조단 소방장

현장에서 연락이 끊긴 노동자는 모두 6명. 잔해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꺼낼 때마다 이 미안한 마음은 떠나질 않았습니다. 김 소방장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족 곁으로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주변의 위험 요소도 있고 위험했던 순간들도 많았기 때문에 그러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이 컸다"고 말했습니다.

■ 부분 붕괴는 처음..."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사고 현장"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에서 구조대원과 노동자들이 구조작업을 이어갔다.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에서 구조대원과 노동자들이 구조작업을 이어갔다.

전문가들은 화정 아이파크 붕괴를 두고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사고"라고 입을 모읍니다. 건물 전체가 아닌 일부가 붕괴된 건 국내에서도 처음 있는 일입니다. 불안정하게 기울어진 남은 외벽과 타워크레인은 구조작업 초반부터 가장 큰 위험요인이었습니다.

권철환 국토안전관리원 건설안전관리실장은 "우리나라에서 부분 붕괴로는 처음이다. 특히 신축공사 중에 부분붕괴로 인해서 슬래브들이 22층에서 38층까지 겹겹이 쌓여있는 상황이라 구조가 더욱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권 실장은 "관계 기관 전문가들도 구조에 적어도 2~3개월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는데, 소방대원들의 적극적인 구조 활동으로 빨리 수습된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 맨손으로 깨고 부수고...'필사의 구조 한 달'

붕괴 건물 20층에 설치된 ‘전진 지휘소’에서 난로에 의지해 잠시 쉬고 있는 구조대원들.붕괴 건물 20층에 설치된 ‘전진 지휘소’에서 난로에 의지해 잠시 쉬고 있는 구조대원들.

추가 붕괴 위험에 대형 중장비를 투입할 수 없었습니다. 수색과 구조 작업은 대부분 구조 인력의 손으로 이뤄졌습니다. 구조대원들은 철근과 뒤엉킨 콘크리트를 손으로 깨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비좁은 틈새로 기어들어갔습니다. 1분 1초, 한시가 급한 시간과의 싸움이었습니다. 휴식이라곤 20층 전진 지휘소에서 작은 난로에 불을 쬐는 게 전부였습니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건물 내부.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건물 내부.

김선종 소방장은 "다방면으로 뻗은 철근 때문에 구조대원들이 다칠 뻔한 경우도 많았고, 중장비가 들어가지 못하는 아주 좁은 공간 같은 경우 대원들이 기어들어가서 작업했다"고 말했습니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건물 내부.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건물 내부.

때론 두렵기도 했습니다. 낙석과 추가 붕괴의 위험이 곳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황선우 소방위는 "수습 작업 중에 낙석이 발생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거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종자가 살아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에 의지하며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습니다.


황 소방위는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가더라도 살아계신다는 희망을 품고 구조작업에 임했다"고 말합니다. 지치고 힘들 땐 가족들의 마음을 떠올렸습니다. 전국에서 달려온 전문 구조인력까지, 그렇게 이번 사고 현장에 투입된 구조대원은 연 5천 9백 명입니다.

■ 실종자 수습 마무리...피해자 가족들 "장례 무기한 연기"


가족들의 생환을 간절히 바라며 사고현장을 지켰던 피해자 가족들은 구조대원들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피해자 가족협의회 안정호 대표는 수습 당일 "29일간의 사투 끝에 저희 마지막 가족까지 우리 가족의 품으로 보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유족들은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이 책임 있는 사과와 충분한 보상을 약속할 때까지 장례를 미루고 사고현장 천막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안 대표는 "선례가 있어야 다음에 무수히 많은 이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내가 죽더라도 회사가 내 가족을 위해서 이렇게 책임져 줄 것'이란 것을 믿고 저 위험한 현장에 들어갈 거 아니냐"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실종자 수습이 마무리됐지만, 보상과 사고 원인 규명, 사고 건물 처리 등 남은 과제가 많습니다. 이 과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이 가족들의 긴 기다림과 구조대원들의 노고에 답하는 길일 것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광주 붕괴사고 임무 마친 소방관의 눈물
    • 입력 2022-02-10 15:40:11
    취재K
광주 북부소방서 황선우 소방위가 KBS와의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임무를 마친 날, 소방관은 울었습니다. 광주 아이파크 붕괴사고 29일째, 실종자 6명이 모두 수습된 날입니다. 다음 날(9일), 광주 북부소방서 황선우 소방위를 만났습니다.

황선우 소방위는 붕괴 첫날부터 구조 현장에 투입됐습니다. 사고 발생 29일째, 마지막 실종자를 수습한 날이 임무를 끝낸 날입니다. 취재진과 마주 앉은 황선우 소방위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가족분들이 뒤에서 울고 계셨습니다. 근데 그 눈물이 참…. 그 울음소리를 들으니까…."

2월 8일 밤, 황 소방위와 동료들은 임무를 마친 뒤 사고 현장에 도열했습니다. 119구급차에 실린 마지막 실종자는 구조대원들의 거수경례를 받으며 가족 품으로 향했습니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마지막 실종자를 수습한 지난 8일, 구조대원들이 실종자를 태운 119구급차를 향해 도열해 거수경례하고 있다.
구조작업에 투입됐던 김선종 광주 119 특수구조단 소방장은 마지막 실종자를 발견한 순간을 기억합니다. "오래 기다리셨다. 늦게 와서 미안하다"라고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에서 마지막 실종자를 수습한 김선종 광주 119특수구조단 소방장
현장에서 연락이 끊긴 노동자는 모두 6명. 잔해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꺼낼 때마다 이 미안한 마음은 떠나질 않았습니다. 김 소방장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족 곁으로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주변의 위험 요소도 있고 위험했던 순간들도 많았기 때문에 그러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이 컸다"고 말했습니다.

■ 부분 붕괴는 처음..."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사고 현장"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에서 구조대원과 노동자들이 구조작업을 이어갔다.
전문가들은 화정 아이파크 붕괴를 두고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사고"라고 입을 모읍니다. 건물 전체가 아닌 일부가 붕괴된 건 국내에서도 처음 있는 일입니다. 불안정하게 기울어진 남은 외벽과 타워크레인은 구조작업 초반부터 가장 큰 위험요인이었습니다.

권철환 국토안전관리원 건설안전관리실장은 "우리나라에서 부분 붕괴로는 처음이다. 특히 신축공사 중에 부분붕괴로 인해서 슬래브들이 22층에서 38층까지 겹겹이 쌓여있는 상황이라 구조가 더욱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권 실장은 "관계 기관 전문가들도 구조에 적어도 2~3개월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는데, 소방대원들의 적극적인 구조 활동으로 빨리 수습된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 맨손으로 깨고 부수고...'필사의 구조 한 달'

붕괴 건물 20층에 설치된 ‘전진 지휘소’에서 난로에 의지해 잠시 쉬고 있는 구조대원들.
추가 붕괴 위험에 대형 중장비를 투입할 수 없었습니다. 수색과 구조 작업은 대부분 구조 인력의 손으로 이뤄졌습니다. 구조대원들은 철근과 뒤엉킨 콘크리트를 손으로 깨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비좁은 틈새로 기어들어갔습니다. 1분 1초, 한시가 급한 시간과의 싸움이었습니다. 휴식이라곤 20층 전진 지휘소에서 작은 난로에 불을 쬐는 게 전부였습니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건물 내부.
김선종 소방장은 "다방면으로 뻗은 철근 때문에 구조대원들이 다칠 뻔한 경우도 많았고, 중장비가 들어가지 못하는 아주 좁은 공간 같은 경우 대원들이 기어들어가서 작업했다"고 말했습니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건물 내부.
때론 두렵기도 했습니다. 낙석과 추가 붕괴의 위험이 곳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황선우 소방위는 "수습 작업 중에 낙석이 발생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거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종자가 살아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에 의지하며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습니다.


황 소방위는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가더라도 살아계신다는 희망을 품고 구조작업에 임했다"고 말합니다. 지치고 힘들 땐 가족들의 마음을 떠올렸습니다. 전국에서 달려온 전문 구조인력까지, 그렇게 이번 사고 현장에 투입된 구조대원은 연 5천 9백 명입니다.

■ 실종자 수습 마무리...피해자 가족들 "장례 무기한 연기"


가족들의 생환을 간절히 바라며 사고현장을 지켰던 피해자 가족들은 구조대원들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피해자 가족협의회 안정호 대표는 수습 당일 "29일간의 사투 끝에 저희 마지막 가족까지 우리 가족의 품으로 보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유족들은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이 책임 있는 사과와 충분한 보상을 약속할 때까지 장례를 미루고 사고현장 천막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안 대표는 "선례가 있어야 다음에 무수히 많은 이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내가 죽더라도 회사가 내 가족을 위해서 이렇게 책임져 줄 것'이란 것을 믿고 저 위험한 현장에 들어갈 거 아니냐"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실종자 수습이 마무리됐지만, 보상과 사고 원인 규명, 사고 건물 처리 등 남은 과제가 많습니다. 이 과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이 가족들의 긴 기다림과 구조대원들의 노고에 답하는 길일 것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