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① 무용수를 꿈꾸던 보라의 죽음…“물고문에 의한 익사”

입력 2022.02.12 (08:00) 수정 2022.02.1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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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KBS 창원총국 아동학대 특별취재팀(이형관, 차주하, 윤경재 기자)은 최근 2년간의 아동학대 형사 판결문 1,400여 건을 전수조사해 분석했습니다. 아동학대 범죄의 실태와 특수성,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살펴보는 다큐멘터리가 KBS '시사기획 창'(2월 6일)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에 담긴 핵심 내용과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인터넷판 특별기사 시리즈로 정리했습니다.

첫 순서는 경남 통영시에서 벌어진 한 아동학대 사건입니다. 아동학대는 가해자와 피해자 외 다른 사람이 발견하기 어려운 '암수적' 특성이 있습니다. 무용가를 꿈꾸던 10대 소녀가 잔혹한 학대를 당해 숨진 사실은 여전히 세상에 잘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경남 통영시의 한 항구경남 통영시의 한 항구

■Chapter 1. 무용수를 꿈꾸던 아이들

바닷가 주변의 인구 20만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 한때는 이 도시의 중심가였던 곳,
지금은 구도심이란 이름으로 3~4층짜리 낡은 건물들이 빼곡히 자리한 곳.

이곳에 한때 생기가 넘쳤을, 생기가 넘쳤어야 하는 6명의 소녀가 있었다.

구도심 가운데 시골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무용학원이 있었다. 6명의 소녀들은 작은 도시에서 접하기 쉽지 않은 무용을 배우고 있었고, 무용가라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작은 도시에서 청소년들에게 무용을 가르치는 학원이 흔치 않았다. 그래서 지역 행사나 축제 무대에 서는 일이 잦았다. 대도시와는 다른 작은 무대였겠지만 아이들에게는 꿈을 펼치고 실력을 뽐낼 기회였다.

지역 학생들이 펼치는 무용 무대. 인기가 좋았다고 했다.

지역 신문에도 두 차례나 실렸다. 작은 상자 기사가 아니라 전면을 할애한 기사였다. 명랑소녀들의 성공기였다. 생활무용대회, 그것도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했다고 축하했다. 우승 특전으로 동남아 해외 공연을 떠나기도 했다.

사진 속 아이들의 입꼬리는 환하게 올라가 있었다. 기사는 아이들에게 축하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무용단을 이끄는 학원장에게도 찬사가 이어졌다.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와 축제마다 빠지지 않고 무대를 따오는 원장이었다. 아이들을 무려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끈 명강사였다. 어깨를 부대끼며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들의 중심에는 항상 원장이 있었다.

무용학원 아이들의 이야기가 실린 지역신문무용학원 아이들의 이야기가 실린 지역신문

■Chapter2. 보라가 죽었다. 경찰 수사 결론은 '사인 미상'

보라(가명)라는 아이가 있었다. 무용학원을 다니던 6명의 아이들 가운데 맏언니였다. 집안 사정이 좋지 못해 학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원장 대신 강사의 역할을 도맡아 일반인에게 무용을 가르치고 학교에 무용수업까지 나가던 아이였다. 아이들은 모두 보라를 착하고 배려심 깊은 언니로 기억했다.

그런 보라가 2013년 10월 2일, 19살의 나이로 숨졌다. 숨진 장소는 무용학원 화장실이었다.

출동한 경찰에게 학원장은 아이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진술했다. 함께 학원을 다녔던 친구와 동생들도 비슷하게 말했다. 보라가 평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종종 자해를 하곤 했다고 말했다.

경찰의 수사는 학원장과 아이들의 말처럼 흘러갔다.

사인미상. 경찰 수사의 결론이었다. 국립과학수사원은 아이 죽음의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자살로 알려졌다. 아이가 스스로 화장실에서 목숨을 끊었다는 이 사건은 소문조차 나지 않았다.
지역 신문의 조그만 귀퉁이 기사에서 약물중독의 가능성도 있는 안타까운 죽음으로 짧게 마무리지은 것이 다였다.

원장은 아이들을 데리고 작은 추모식을 열었다. 무용학원 바닥에서 촛불을 켜고 숨진 아이를 잘 보내주자는 작은 의식을 치렀다.

원장은 언니는 좋은 곳으로 갔을 것이라며, 하던 것처럼 자신을 엄마처럼 대하라고 했다. 이 세상에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자신과 너희들 밖에 없다며 끈끈한 사제의 정을 강조했다.


■Chapter3. 사망 5년 뒤 시작된 재수사 "사인미상일 수 없다"

아이가 숨진 지 꼭 5년째 되던 2018년 10월이었다.

경남경찰청 미제수사팀에 익명의 첩보가 접수됐다. 소문조차 나지 않았던 그 아이의 자살이 사실은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사건을 배정받은 미제수사팀 김학민 형사는 당시 사건파일을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김 형사는 사건이 벌어진 무용학원으로 찾아갔다. 무용학원은 운영을 중단하고 없었지만 뒤이은 세입자가 없어 무용학원 구조를 그대로 볼 수 있었다. 또 당시 과학수사팀은 5년 전 사건 당시 현장 사진들을 컴퓨터에 보관하고 있었다. 사진으로나마 5년 전 사건 현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건 큰 수확이었다.

결정적인 증거는 숨진 아이의 시신을 처음으로 본 의사에게 있었다. 대부분 검안의는 기록을 남겨두지 않는다. 사망 판정을 하고 1차적인 사망 원인을 판단할 뿐, 결정적인 사망 원인은 국과수에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검의는 당시 숨진 아이의 CT 촬영 사진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숨진 아이가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김 형사는 5년째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CT 사진을 본 순간 숨진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경남경찰청 미제수사팀 김학민 형사경남경찰청 미제수사팀 김학민 형사

김 형사는 CT 사진을 국내에서 가장 저명하고 권위 있는 두 명의 법의학자에게 가져갔다. 기차로 몇 시간씩 걸리는 서울을 오가기를 수차례, 고된 길이었지만 이 CT 사진이 아이의 죽음이 자살이 아닐 수 있음을 말해줄 열쇠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 확신은 맞았다.

서울대학교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는 자살일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에는 아이의 죽음이 결코 자살이 아니라는 증거가 많았다.

우선 숨진 아이의 코와 입에는 하얀 기포가 남아 있었다. 법의학적으로 물에 의한 사망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뜻이다. 익사일 경우 몸에 물이 가득 찬 상태에서 마지막 숨을 쉬면 코와 입엔 하얀 거품이 인다고 했다.

CT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폐에서 물거품이 발견됐다. 공기가 차 있어야 할 기도는 물로 막혀 있었다.
아주 상식적이게도 두 명의 법의학자의 결론은 같았다. 물로 인한 죽음. 익사였다.

서울대학교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서울대학교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

■Chapter4. 물고문에 의한 익사…드러난 학대

가로 83cm, 세로 1m 20cm의 아주 좁은 화장실이었다. 성인이 가로로 양 다리를 쫙 펼 수조차 없는 좁은 공간에 변기가 있었다. 세면대도 둘 수 없을 정도였다. 숨진 아이가 발견된 곳은 화장실 바닥이었다. 화장실 바닥에는 물기가 젖어 있을 수 있지만 물이 가득차거나 고일 수 없다. 그런데 아이는 화장실 바닥에서 익사로 숨졌다.

원장은 아이의 머리에 비닐 봉투를 뒤집어 씌웠다. 아이의 얼굴이 봉투 속에서 물에 잠기게 했다.

아이의 두 팔엔 노끈으로 결박된 흔적이 있었다. 아이의 쇄골뼈에는 손가락 자국이 빨갛고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누군가 아이의 몸을 손으로 강하게 누른 흔적이었다. 갈비뼈 2개는 이미 부러진 뒤 아문 흔적이 있었다.

머리에도 어딘가에 강하게 찍힌 자국이 있었다. 아이 몸 곳곳의 상처는 단순 익사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 익사를 '당했을'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진료 기록도 있었다. 머리가 찢어져 탈모까지 생길 정도로 큰 상처를 얻었던 진료 기록. 갈비뼈가 부러져 치료받은 기록. 허벅지가 괴사해 치료를 받은 기록. 중학생 시절부터 고등학생까지, 10대 여자 아이가 병원을 찾은 이유였다.

보라는 숨지기 5년 전인 2009년, 15살 때부터 학원에서 먹고 잤다. 무용수라는 꿈이 있었다. 원장이 청소를 시키고, 돈도 주지 않으면서 무용수업을 대신 하게 하고, 청소나 잡일을 하며 식모처럼 지내도 무용을 계속할 수 있었기에 묵묵히 버텨냈다.

그렇게 버텨냈기 때문일까? 자신에게 완전히 종속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원장은 학대를 시작했다.

학원 바닥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혀로 바닥을 핥게 했다. 원장이 키우던 반려견의 분변을 제대로 치우지 않았다며 아이의 입에 분변을 우겨 넣었다.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옷을 벗기고 차마 말할 수 없는 수준의 음란행위를 시키기도 했다.

■살아남은 아이들의 증언

살아남은 아이를 어렵게 만났다. 맏언니 보라보다 두어 살 어렸던 아이였다.

"언니가 개 배설물을 먹다가 목이 막혀 숨질 뻔한 일이 있었어요. 그 뒤로 원장은 유독 질식 고문을 계속했어요. 켁켁 대는 모습을 지켜봤어요. 화장실에서 물고문을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물고문도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아이는 2013년 10월 2일 밤 10시 30분쯤 익사로 숨졌다. 2시간 동안 5~6차례에 걸친 물고문을 견디지 못했다.

"이어진 학대 때문이었을 거예요. 어느 순간부터 언니의 눈에서 생기가 사라졌어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눈으로 무기력하게 학대를 견뎌냈어요."

"숨진 날 화장실에서 물고문을 당할 때에도 그 눈이었어요. 자포자기, 생을 포기한 듯한 눈빛이었어요. 물고문의 괴로움에 발버둥칠 뿐, 반항할 힘도 의지도 없어보였어요."

"저는 살아남았지만 제가 당한 일과 언니가 당한 일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성인이 돼서도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부당한 일을 당할 때마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어요. 그때의 경험 때문인 것 같아요."

"저의 한, 숨진 언니의 한을 제대로 털어내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았어요."


■Chapter5. 판결문

5년 만의 재수사 끝에 원장은 폭행치사와 특수상해, 공갈과 상해, 강요, 아동학대, 특수폭행 등 7개의 죄목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판결문에는 원장이 숨진 아이에게 저지른 엽기적인 학대 외에, 나머지 5명의 아이들에게 저지른 만행도 조목조목 적혀졌다.

손바닥으로 뺨을 때렸다.
주먹으로 머리를 때렸다.
몽둥이로 때렸다.
분노를 실어 욕설을 했다.
부모를 욕했다.
학원을 그만두겠다는 아이의 허벅지를 흉기로 찔렀다.
시멘트 바닥에 부딪히게 했다.

아이들을 줄 세워 망치로 머리를 내려찍는 게 평범한 수준의 벌이었다. 요즘은 군대에서도 하지 않는다는 원산폭격을 1시간 넘게 시키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무용학원은 작은 섬나라였다. 원장은 그 나라의 독재자로서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1심 판결문 양형의 이유>
피고인은 제자인 피해자들을 상대로 지속적인 신체·정서적 학대를 해왔다. 가학적 행위를 강요하기도 했다.
물고문으로 19살 아이의 삶을 마감하게 했다. 사건 발생 뒤 피해자들에게 사건에 관한 진실을 은폐할 것을 종용해 5년 넘게 범행을 숨겨왔다. 피해자들이 장기간 정신·신체적 고통을 겪었다.

1심 재판부는 징역 7년을 선고했다.

<2심 판결문 양형의 이유>
제자들을 상대로 신체·정서적 학대를 했다.
특히 숨진 아이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며 상상할 수도 없는 변태·가학적 행위를 반복적으로 강요했다.
물고문으로 인해 무용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피해자는 19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무자비한 행위로 고귀한 생명이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채 희생됐다.
보호해야 할 제자에게 매우 잔혹하고 심각한 학대를 저질렀다.
남은 아이들도 극심한 정신·신체적 고통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그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8년을 선고했다.

<3심 판결문 양형의 이유>
징역 8년 선고가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

대법원은 징역 8년을 확정했다.

보라의 유골이 뿌려진 통영의 한 야산보라의 유골이 뿌려진 통영의 한 야산

■Chapter6. 보라의 한은 풀렸을까?

유골은 바다가 보이고 양지바른 야산 언저리에 뿌려졌다.

함께 학대당했던 아이들은, 사건을 재수사했던 김 형사는 자살로 마무리됐던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고 원장이 감옥에 갇히게 됐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한을 풀었다고 말했다.

보라와 아이들이 수년 동안 잔혹한 학대를 당했던 무용학원 이웃들을 만났다.

“(그 학원) 제가 알죠. 그런데 아동학대? 그런 건 들은 적이 없어요. 지금 너무 황당한 소리를 하셔가지고,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보라가 다녔던 고등학교 선생님도 만났다.

“‘아이가 자살했다’라고 (보라) 친구들이 얘기하더라고요. 저는 이런 학대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 도시의 사람들은 10대 소녀가 수년 간의 끔찍한 학대를 견디다 못해 숨졌다는 사실을, 살아남은 5명의 소녀들은 여전히 학대의 상처를 가지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알지 못한다.

* 본 기획물은 한국 언론학회- 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KBS 시사기획 창 '암수범죄, 아동학대를 부검하다'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j7Qp3Lb0G60

아동학대 심층취재 인터랙티브 페이지 보기
https://news.KBS.co.kr/special/childabuse/index.html

아동학대 판결문 전수분석 아카이브 보기
http://lab.KBS.co.kr/2022/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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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학대]① 무용수를 꿈꾸던 보라의 죽음…“물고문에 의한 익사”
    • 입력 2022-02-12 08:00:47
    • 수정2022-02-14 16: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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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창원총국 아동학대 특별취재팀(이형관, 차주하, 윤경재 기자)은 최근 2년간의 아동학대 형사 판결문 1,400여 건을 전수조사해 분석했습니다. 아동학대 범죄의 실태와 특수성,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살펴보는 다큐멘터리가 KBS '시사기획 창'(2월 6일)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에 담긴 핵심 내용과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인터넷판 특별기사 시리즈로 정리했습니다.<br /><br />첫 순서는 경남 통영시에서 벌어진 한 아동학대 사건입니다. 아동학대는 가해자와 피해자 외 다른 사람이 발견하기 어려운 '암수적' 특성이 있습니다. 무용가를 꿈꾸던 10대 소녀가 잔혹한 학대를 당해 숨진 사실은 여전히 세상에 잘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경남 통영시의 한 항구
■Chapter 1. 무용수를 꿈꾸던 아이들

바닷가 주변의 인구 20만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 한때는 이 도시의 중심가였던 곳,
지금은 구도심이란 이름으로 3~4층짜리 낡은 건물들이 빼곡히 자리한 곳.

이곳에 한때 생기가 넘쳤을, 생기가 넘쳤어야 하는 6명의 소녀가 있었다.

구도심 가운데 시골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무용학원이 있었다. 6명의 소녀들은 작은 도시에서 접하기 쉽지 않은 무용을 배우고 있었고, 무용가라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작은 도시에서 청소년들에게 무용을 가르치는 학원이 흔치 않았다. 그래서 지역 행사나 축제 무대에 서는 일이 잦았다. 대도시와는 다른 작은 무대였겠지만 아이들에게는 꿈을 펼치고 실력을 뽐낼 기회였다.

지역 학생들이 펼치는 무용 무대. 인기가 좋았다고 했다.

지역 신문에도 두 차례나 실렸다. 작은 상자 기사가 아니라 전면을 할애한 기사였다. 명랑소녀들의 성공기였다. 생활무용대회, 그것도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했다고 축하했다. 우승 특전으로 동남아 해외 공연을 떠나기도 했다.

사진 속 아이들의 입꼬리는 환하게 올라가 있었다. 기사는 아이들에게 축하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무용단을 이끄는 학원장에게도 찬사가 이어졌다.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와 축제마다 빠지지 않고 무대를 따오는 원장이었다. 아이들을 무려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끈 명강사였다. 어깨를 부대끼며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들의 중심에는 항상 원장이 있었다.

무용학원 아이들의 이야기가 실린 지역신문
■Chapter2. 보라가 죽었다. 경찰 수사 결론은 '사인 미상'

보라(가명)라는 아이가 있었다. 무용학원을 다니던 6명의 아이들 가운데 맏언니였다. 집안 사정이 좋지 못해 학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원장 대신 강사의 역할을 도맡아 일반인에게 무용을 가르치고 학교에 무용수업까지 나가던 아이였다. 아이들은 모두 보라를 착하고 배려심 깊은 언니로 기억했다.

그런 보라가 2013년 10월 2일, 19살의 나이로 숨졌다. 숨진 장소는 무용학원 화장실이었다.

출동한 경찰에게 학원장은 아이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진술했다. 함께 학원을 다녔던 친구와 동생들도 비슷하게 말했다. 보라가 평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종종 자해를 하곤 했다고 말했다.

경찰의 수사는 학원장과 아이들의 말처럼 흘러갔다.

사인미상. 경찰 수사의 결론이었다. 국립과학수사원은 아이 죽음의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자살로 알려졌다. 아이가 스스로 화장실에서 목숨을 끊었다는 이 사건은 소문조차 나지 않았다.
지역 신문의 조그만 귀퉁이 기사에서 약물중독의 가능성도 있는 안타까운 죽음으로 짧게 마무리지은 것이 다였다.

원장은 아이들을 데리고 작은 추모식을 열었다. 무용학원 바닥에서 촛불을 켜고 숨진 아이를 잘 보내주자는 작은 의식을 치렀다.

원장은 언니는 좋은 곳으로 갔을 것이라며, 하던 것처럼 자신을 엄마처럼 대하라고 했다. 이 세상에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자신과 너희들 밖에 없다며 끈끈한 사제의 정을 강조했다.


■Chapter3. 사망 5년 뒤 시작된 재수사 "사인미상일 수 없다"

아이가 숨진 지 꼭 5년째 되던 2018년 10월이었다.

경남경찰청 미제수사팀에 익명의 첩보가 접수됐다. 소문조차 나지 않았던 그 아이의 자살이 사실은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사건을 배정받은 미제수사팀 김학민 형사는 당시 사건파일을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김 형사는 사건이 벌어진 무용학원으로 찾아갔다. 무용학원은 운영을 중단하고 없었지만 뒤이은 세입자가 없어 무용학원 구조를 그대로 볼 수 있었다. 또 당시 과학수사팀은 5년 전 사건 당시 현장 사진들을 컴퓨터에 보관하고 있었다. 사진으로나마 5년 전 사건 현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건 큰 수확이었다.

결정적인 증거는 숨진 아이의 시신을 처음으로 본 의사에게 있었다. 대부분 검안의는 기록을 남겨두지 않는다. 사망 판정을 하고 1차적인 사망 원인을 판단할 뿐, 결정적인 사망 원인은 국과수에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검의는 당시 숨진 아이의 CT 촬영 사진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숨진 아이가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김 형사는 5년째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CT 사진을 본 순간 숨진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경남경찰청 미제수사팀 김학민 형사
김 형사는 CT 사진을 국내에서 가장 저명하고 권위 있는 두 명의 법의학자에게 가져갔다. 기차로 몇 시간씩 걸리는 서울을 오가기를 수차례, 고된 길이었지만 이 CT 사진이 아이의 죽음이 자살이 아닐 수 있음을 말해줄 열쇠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 확신은 맞았다.

서울대학교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는 자살일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에는 아이의 죽음이 결코 자살이 아니라는 증거가 많았다.

우선 숨진 아이의 코와 입에는 하얀 기포가 남아 있었다. 법의학적으로 물에 의한 사망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뜻이다. 익사일 경우 몸에 물이 가득 찬 상태에서 마지막 숨을 쉬면 코와 입엔 하얀 거품이 인다고 했다.

CT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폐에서 물거품이 발견됐다. 공기가 차 있어야 할 기도는 물로 막혀 있었다.
아주 상식적이게도 두 명의 법의학자의 결론은 같았다. 물로 인한 죽음. 익사였다.

서울대학교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
■Chapter4. 물고문에 의한 익사…드러난 학대

가로 83cm, 세로 1m 20cm의 아주 좁은 화장실이었다. 성인이 가로로 양 다리를 쫙 펼 수조차 없는 좁은 공간에 변기가 있었다. 세면대도 둘 수 없을 정도였다. 숨진 아이가 발견된 곳은 화장실 바닥이었다. 화장실 바닥에는 물기가 젖어 있을 수 있지만 물이 가득차거나 고일 수 없다. 그런데 아이는 화장실 바닥에서 익사로 숨졌다.

원장은 아이의 머리에 비닐 봉투를 뒤집어 씌웠다. 아이의 얼굴이 봉투 속에서 물에 잠기게 했다.

아이의 두 팔엔 노끈으로 결박된 흔적이 있었다. 아이의 쇄골뼈에는 손가락 자국이 빨갛고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누군가 아이의 몸을 손으로 강하게 누른 흔적이었다. 갈비뼈 2개는 이미 부러진 뒤 아문 흔적이 있었다.

머리에도 어딘가에 강하게 찍힌 자국이 있었다. 아이 몸 곳곳의 상처는 단순 익사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 익사를 '당했을'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진료 기록도 있었다. 머리가 찢어져 탈모까지 생길 정도로 큰 상처를 얻었던 진료 기록. 갈비뼈가 부러져 치료받은 기록. 허벅지가 괴사해 치료를 받은 기록. 중학생 시절부터 고등학생까지, 10대 여자 아이가 병원을 찾은 이유였다.

보라는 숨지기 5년 전인 2009년, 15살 때부터 학원에서 먹고 잤다. 무용수라는 꿈이 있었다. 원장이 청소를 시키고, 돈도 주지 않으면서 무용수업을 대신 하게 하고, 청소나 잡일을 하며 식모처럼 지내도 무용을 계속할 수 있었기에 묵묵히 버텨냈다.

그렇게 버텨냈기 때문일까? 자신에게 완전히 종속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원장은 학대를 시작했다.

학원 바닥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혀로 바닥을 핥게 했다. 원장이 키우던 반려견의 분변을 제대로 치우지 않았다며 아이의 입에 분변을 우겨 넣었다.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옷을 벗기고 차마 말할 수 없는 수준의 음란행위를 시키기도 했다.

■살아남은 아이들의 증언

살아남은 아이를 어렵게 만났다. 맏언니 보라보다 두어 살 어렸던 아이였다.

"언니가 개 배설물을 먹다가 목이 막혀 숨질 뻔한 일이 있었어요. 그 뒤로 원장은 유독 질식 고문을 계속했어요. 켁켁 대는 모습을 지켜봤어요. 화장실에서 물고문을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물고문도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아이는 2013년 10월 2일 밤 10시 30분쯤 익사로 숨졌다. 2시간 동안 5~6차례에 걸친 물고문을 견디지 못했다.

"이어진 학대 때문이었을 거예요. 어느 순간부터 언니의 눈에서 생기가 사라졌어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눈으로 무기력하게 학대를 견뎌냈어요."

"숨진 날 화장실에서 물고문을 당할 때에도 그 눈이었어요. 자포자기, 생을 포기한 듯한 눈빛이었어요. 물고문의 괴로움에 발버둥칠 뿐, 반항할 힘도 의지도 없어보였어요."

"저는 살아남았지만 제가 당한 일과 언니가 당한 일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성인이 돼서도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부당한 일을 당할 때마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어요. 그때의 경험 때문인 것 같아요."

"저의 한, 숨진 언니의 한을 제대로 털어내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았어요."


■Chapter5. 판결문

5년 만의 재수사 끝에 원장은 폭행치사와 특수상해, 공갈과 상해, 강요, 아동학대, 특수폭행 등 7개의 죄목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판결문에는 원장이 숨진 아이에게 저지른 엽기적인 학대 외에, 나머지 5명의 아이들에게 저지른 만행도 조목조목 적혀졌다.

손바닥으로 뺨을 때렸다.
주먹으로 머리를 때렸다.
몽둥이로 때렸다.
분노를 실어 욕설을 했다.
부모를 욕했다.
학원을 그만두겠다는 아이의 허벅지를 흉기로 찔렀다.
시멘트 바닥에 부딪히게 했다.

아이들을 줄 세워 망치로 머리를 내려찍는 게 평범한 수준의 벌이었다. 요즘은 군대에서도 하지 않는다는 원산폭격을 1시간 넘게 시키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무용학원은 작은 섬나라였다. 원장은 그 나라의 독재자로서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1심 판결문 양형의 이유>
피고인은 제자인 피해자들을 상대로 지속적인 신체·정서적 학대를 해왔다. 가학적 행위를 강요하기도 했다.
물고문으로 19살 아이의 삶을 마감하게 했다. 사건 발생 뒤 피해자들에게 사건에 관한 진실을 은폐할 것을 종용해 5년 넘게 범행을 숨겨왔다. 피해자들이 장기간 정신·신체적 고통을 겪었다.

1심 재판부는 징역 7년을 선고했다.

<2심 판결문 양형의 이유>
제자들을 상대로 신체·정서적 학대를 했다.
특히 숨진 아이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며 상상할 수도 없는 변태·가학적 행위를 반복적으로 강요했다.
물고문으로 인해 무용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피해자는 19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무자비한 행위로 고귀한 생명이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채 희생됐다.
보호해야 할 제자에게 매우 잔혹하고 심각한 학대를 저질렀다.
남은 아이들도 극심한 정신·신체적 고통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그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8년을 선고했다.

<3심 판결문 양형의 이유>
징역 8년 선고가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

대법원은 징역 8년을 확정했다.

보라의 유골이 뿌려진 통영의 한 야산
■Chapter6. 보라의 한은 풀렸을까?

유골은 바다가 보이고 양지바른 야산 언저리에 뿌려졌다.

함께 학대당했던 아이들은, 사건을 재수사했던 김 형사는 자살로 마무리됐던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고 원장이 감옥에 갇히게 됐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한을 풀었다고 말했다.

보라와 아이들이 수년 동안 잔혹한 학대를 당했던 무용학원 이웃들을 만났다.

“(그 학원) 제가 알죠. 그런데 아동학대? 그런 건 들은 적이 없어요. 지금 너무 황당한 소리를 하셔가지고,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보라가 다녔던 고등학교 선생님도 만났다.

“‘아이가 자살했다’라고 (보라) 친구들이 얘기하더라고요. 저는 이런 학대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 도시의 사람들은 10대 소녀가 수년 간의 끔찍한 학대를 견디다 못해 숨졌다는 사실을, 살아남은 5명의 소녀들은 여전히 학대의 상처를 가지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알지 못한다.

* 본 기획물은 한국 언론학회- 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KBS 시사기획 창 '암수범죄, 아동학대를 부검하다'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j7Qp3Lb0G60

아동학대 심층취재 인터랙티브 페이지 보기
https://news.KBS.co.kr/special/childabuse/index.html

아동학대 판결문 전수분석 아카이브 보기
http://lab.KBS.co.kr/2022/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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