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5살, 몸은 2살”…아동학대 외조모·친모 항소 기각

입력 2022.02.1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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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23일 강원도 춘천.

극단적 선택을 하겠다고 난동을 부리던 50대 여성.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은 이 여성을 진정시키는 과정에서 집 안에 있는 한 여자아이를 발견합니다.

이 아이의 모습, 또래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한껏 웅크리며 주변을 경계하는 듯했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몸 군데군데 상처와 멍이 보였습니다.

경찰은 아동학대를 의심했습니다. 그리고, 즉각 양육자인 50대 외할머니와 20대 친어머니로부터 이 아이를 분리시켰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아이의 나이는 만5살을 넘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발견 당시 키는 97㎝, 몸무게는 10㎏이었습니다. 특히, 몸무게가 또래보다 4~5㎏ 적었습니다. 신체 발달 수준은 겨우 2살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발견 당시 5살 피해아동의 발육 수준은 2살에 불과했다발견 당시 5살 피해아동의 발육 수준은 2살에 불과했다

■ 말썽부린다는 이유로 1년 6개월 굶기고, 잠 안 재우고

수사와 재판과정을 통해, 친어머니와 외할머니의 범행이 속속 드러났습니다.

두 사람은 2019년 11월 27일부터 지난해 3월 23일까지 딸이자 손녀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또, 잠을 제대로 재우지 않았습니다.

말을 잘 듣지 않고 말썽을 부린다는 이유, 친할머니 집에 간다고 말했다는 이유,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 또래라면 으레 할 법한 일들인데도 참 가혹했습니다.

이로 인해, 영양결핍과 성장 부진 상태에 빠진 겁니다.

정서적 학대도 지속됐습니다.

말을 안 듣는다며 훈육을 하면서 대답을 강요했습니다.

이 아이는 외할머니의 질문에 "바로 고아원에 보낸다고 했어요", "때려야 돼요"라는 식의 말을 해야했습니다.

심지어, 아이로 하여금 유서 형식의 문장을 따라 하도록 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런 외할머니의 학대 행위가 있을 때마다 친어머니는 두 사람의 내용을 녹음했습니다.

또, 아이가 바지를 입은 채로 소변을 봤다는 이유로 때리며 신경안정제를 먹이려는 시도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외할머니와 친어머니는 1년 6개월 가까이 손녀이자 딸을 학대해왔다외할머니와 친어머니는 1년 6개월 가까이 손녀이자 딸을 학대해왔다

■ 1심 외조모 징역 4년 6개월…친모 징역 2년 6개월


외할머니와 친어머니는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등의 혐의로 기소됐고, 지난해 9월 29일 1심 재판 결과가 나왔습니다.

춘천지방법원 형사2단독은 외할머니에게 징역 4년 6개월, 친어머니에겐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검찰이 구형한 형량보다 각각 6개월씩 높았습니다.

또, 이들에게 8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아동 관련 기관에 5년간 취업 제한도 명령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두 사람에게 독일 교육 사상가의 말을 인용하며 꾸짖었습니다.

독일의 교육 사상가인 프뢰벨은 '어린이는 5세까지 그 일생 동안 배우는 모든 것을 익혀버린다'라고 말하였다. 부모나 조부모의 언행이 보호 아래 있는 어린 자녀의 심리나 자아 및 인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하는 것에는 반론이 없다.

-춘천지방법원 1심 판결문 일부 발췌

이후 아이는 학대피해아동쉼터에서 보호를 받으며, 건강을 되찾아갔습니다.

사건 발생 4개월 만에 키는 4㎝가 더 컸고, 몸무게도 또래 평균 수준으로 늘었습니다.

비정상적이었던 빈혈과 간기능 관련 수치도 호전됐습니다.

■ 외조모·친모 "형 무겁다" 항소…2심 "항소 기각"

외할머니와 친어머니는 즉각 항소했습니다.

'밥을 먹이지 않았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형이 너무 무겁다'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1심 재판 이후 4개월여 만인 11일(어제) 항소심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결과는 피고인의 항소 기각, 1심 유지였습니다.

춘천지방법원 제1형사부는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와 방임 등으로 기소된 외할머니와 친어머니의 항소를 기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외할머니와 친어머니는 1심과 같은 징역 4년 6개월과 징역 2년 6개월 동안 죗값을 치르게 됐습니다.

재판부는 "기본적인 보호를 소홀히 해서 방임하고 정서적인 학대 행위를 한 것은 물론, 위험한 물건으로 피해아동에게 상해를 가한 것은 죄질이 좋지 않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감정 표현도 능숙하게 할 수 없는 어린 피해자가 견뎌야만 했던 굶주림과 정서적 불안과 혼란, 상처와 고통, 공포 등이 매우 클 것으로 보여 그에 상응한 엄중한 형사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습니다.


■ 친할머니, 어머니 상대 친권상실심판 청구

이와 별개로 피해 어린이를 보호하려는 법적인 절차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친권자는 구속된 어머니입니다.

사실상 보호자 공백이 생긴 셈입니다.

이에 따라, 친할머니가 친권자인 어머니를 상대로 친권상실심판 청구를 해 둔 상태입니다.

이 친권상실심판이 받아들여지게 되면, 친할머니는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법정 대리인인 미성년 후견인을 지정하는 것도 신청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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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는 5살, 몸은 2살”…아동학대 외조모·친모 항소 기각
    • 입력 2022-02-12 10:03:09
    취재K

지난해 3월 23일 강원도 춘천.

극단적 선택을 하겠다고 난동을 부리던 50대 여성.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은 이 여성을 진정시키는 과정에서 집 안에 있는 한 여자아이를 발견합니다.

이 아이의 모습, 또래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한껏 웅크리며 주변을 경계하는 듯했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몸 군데군데 상처와 멍이 보였습니다.

경찰은 아동학대를 의심했습니다. 그리고, 즉각 양육자인 50대 외할머니와 20대 친어머니로부터 이 아이를 분리시켰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아이의 나이는 만5살을 넘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발견 당시 키는 97㎝, 몸무게는 10㎏이었습니다. 특히, 몸무게가 또래보다 4~5㎏ 적었습니다. 신체 발달 수준은 겨우 2살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발견 당시 5살 피해아동의 발육 수준은 2살에 불과했다
■ 말썽부린다는 이유로 1년 6개월 굶기고, 잠 안 재우고

수사와 재판과정을 통해, 친어머니와 외할머니의 범행이 속속 드러났습니다.

두 사람은 2019년 11월 27일부터 지난해 3월 23일까지 딸이자 손녀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또, 잠을 제대로 재우지 않았습니다.

말을 잘 듣지 않고 말썽을 부린다는 이유, 친할머니 집에 간다고 말했다는 이유,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 또래라면 으레 할 법한 일들인데도 참 가혹했습니다.

이로 인해, 영양결핍과 성장 부진 상태에 빠진 겁니다.

정서적 학대도 지속됐습니다.

말을 안 듣는다며 훈육을 하면서 대답을 강요했습니다.

이 아이는 외할머니의 질문에 "바로 고아원에 보낸다고 했어요", "때려야 돼요"라는 식의 말을 해야했습니다.

심지어, 아이로 하여금 유서 형식의 문장을 따라 하도록 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런 외할머니의 학대 행위가 있을 때마다 친어머니는 두 사람의 내용을 녹음했습니다.

또, 아이가 바지를 입은 채로 소변을 봤다는 이유로 때리며 신경안정제를 먹이려는 시도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외할머니와 친어머니는 1년 6개월 가까이 손녀이자 딸을 학대해왔다
■ 1심 외조모 징역 4년 6개월…친모 징역 2년 6개월


외할머니와 친어머니는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등의 혐의로 기소됐고, 지난해 9월 29일 1심 재판 결과가 나왔습니다.

춘천지방법원 형사2단독은 외할머니에게 징역 4년 6개월, 친어머니에겐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검찰이 구형한 형량보다 각각 6개월씩 높았습니다.

또, 이들에게 8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아동 관련 기관에 5년간 취업 제한도 명령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두 사람에게 독일 교육 사상가의 말을 인용하며 꾸짖었습니다.

독일의 교육 사상가인 프뢰벨은 '어린이는 5세까지 그 일생 동안 배우는 모든 것을 익혀버린다'라고 말하였다. 부모나 조부모의 언행이 보호 아래 있는 어린 자녀의 심리나 자아 및 인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하는 것에는 반론이 없다.

-춘천지방법원 1심 판결문 일부 발췌

이후 아이는 학대피해아동쉼터에서 보호를 받으며, 건강을 되찾아갔습니다.

사건 발생 4개월 만에 키는 4㎝가 더 컸고, 몸무게도 또래 평균 수준으로 늘었습니다.

비정상적이었던 빈혈과 간기능 관련 수치도 호전됐습니다.

■ 외조모·친모 "형 무겁다" 항소…2심 "항소 기각"

외할머니와 친어머니는 즉각 항소했습니다.

'밥을 먹이지 않았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형이 너무 무겁다'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1심 재판 이후 4개월여 만인 11일(어제) 항소심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결과는 피고인의 항소 기각, 1심 유지였습니다.

춘천지방법원 제1형사부는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와 방임 등으로 기소된 외할머니와 친어머니의 항소를 기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외할머니와 친어머니는 1심과 같은 징역 4년 6개월과 징역 2년 6개월 동안 죗값을 치르게 됐습니다.

재판부는 "기본적인 보호를 소홀히 해서 방임하고 정서적인 학대 행위를 한 것은 물론, 위험한 물건으로 피해아동에게 상해를 가한 것은 죄질이 좋지 않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감정 표현도 능숙하게 할 수 없는 어린 피해자가 견뎌야만 했던 굶주림과 정서적 불안과 혼란, 상처와 고통, 공포 등이 매우 클 것으로 보여 그에 상응한 엄중한 형사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습니다.


■ 친할머니, 어머니 상대 친권상실심판 청구

이와 별개로 피해 어린이를 보호하려는 법적인 절차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친권자는 구속된 어머니입니다.

사실상 보호자 공백이 생긴 셈입니다.

이에 따라, 친할머니가 친권자인 어머니를 상대로 친권상실심판 청구를 해 둔 상태입니다.

이 친권상실심판이 받아들여지게 되면, 친할머니는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법정 대리인인 미성년 후견인을 지정하는 것도 신청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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