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② 홀로 굶어죽은 16개월 아기, “어쩌면 살릴 수 있었던…”

입력 2022.02.13 (08:01) 수정 2022.02.1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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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KBS 창원총국 아동학대 특별취재팀(이형관, 차주하, 윤경재 기자)은 최근 2년간의 아동학대 형사 판결문 1,400여 건을 전수조사해 분석했습니다.

아동학대 범죄의 실태와 특수성,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살펴보는 다큐멘터리가 KBS '시사기획 창'(2월 6일)으로 보도됐습니다. 다큐멘터리에 담긴 핵심 내용과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인터넷판 특별기사 시리즈로 정리했습니다.

두 번째 순서는 충남 당진시의 한 원룸에서 벌어진 아동학대 사건입니다.

아이가 다치거나 숨지는 등 피해가 큰 아동학대 사건들은 대부분 '가정'에서 벌어졌다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주변 목격이 어렵고, 학대 정황이 있어도 신고하는 경우도 적어 아이들을 구할 기회조차 놓치는 현실입니다.

16개월 아기가 작은 원룸에서 홀로 울며 서서히 굶어 죽는 사이, 누구도 아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충남 당진시의 종합병원 응급실충남 당진시의 종합병원 응급실

■ Chapter 1. "아기가 숨을 안 쉬어요."

2019년 2월 12일 오전 11시쯤, 충남 당진시의 한 종합병원. 승용차를 타고 온 20대 엄마가 담요 뭉치에 아기를 둘러싸고 응급실로 천천히 들어섰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 감기나 가벼운 질환이겠거니, 의료진은 생각했다.

“아기가 숨을 안 쉬어요.”
엄마의 담담한 한마디에, 응급실은 삽시간에 비상이 걸렸다. 황급히 아기를 눕히고 담요를 걷자 기저귀 차림의 여자 아기가 뻣뻣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심폐소생술을 하며 기도 삽관을 시도했지만 이미 사후강직이 진행돼 입술이 벌어지지도 않았다. 아기는 최소 2~3시간 전에 숨진 걸로 보였다.

“아기가 이미 사망했습니다. 사망 시간이 좀 된 것 같네요.”
의료진의 사망 통보에 엄마는 묵묵히 수긍했다.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비통함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다’는 불길한 예감과 함께, 아기의 온몸이 의료진의 눈에 자세히 들어왔다.

사망 당시 소망이(가명)의 신체 상태사망 당시 소망이(가명)의 신체 상태

멍이나 골절 같은 외상은 없었지만, 너무도 야위어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났고 기저귀를 꽉 채워도 헐렁할 정도였다. 마지막 숨을 뱉을 때까지 울었는지 아기는 눈을 채 감지도 못했다.

키는 71cm, 체중은 6.2kg, 겨우 생후 백일 수준이었다. 소망이(가명)이의 16개월 짧은 생이 그렇게 저물었다. 의료진은 ‘아동학대 보고서’를 작성하며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다.

소망이와 엄마가 살았던 원룸 밀집 지역소망이와 엄마가 살았던 원룸 밀집 지역

■ 그 밤, 소망이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아동학대 신고를 받은 당진경찰서 이계백 형사는 병원에서 소망이의 시신을 확인하고 사건 현장인 ‘집’으로 향했다.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원룸 밀집 단지가 소망이가 살던 집이었다.

주변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홀로 사는 이곳에서, 엄마는 이제 막 걸음을 딛는 16개월 소망이와 4살 큰아들을 혼자 키웠다. 엄마는 “아이가 전날 밤 10시에 잤고, 새벽에 기저귀를 갈아줄 때도 괜찮았어요. 아침에 보니 숨을 쉬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그 밤, 소망이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소망이와 엄마가 살았던 원룸 내부소망이와 엄마가 살았던 원룸 내부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서자, 이계백 형사의 말문이 막혔다. 소망이 또래의 딸을 키우고 있는 이 형사였다.

“냉장고에는 생수 한 병에 탄산음료, 먹다 남은 과일 한두 조각 정도로 음식도 거의 없고 집 안이 너무 휑해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었어요. 결정적인 건, 방에 중문이 있는데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거예요. 아동학대 방임이 의심된다고 봤죠.”

가스가 끊겨 싸늘한 방에는 온수 매트와 간밤에 아이가 누웠을 커다란 이불만이 깔려있었고, 부엌에는 설거짓거리와 먹다 만 음료수 등이 쌓여있었다. 베란다에는 쓰레기가, 화장실에는 담뱃갑이 가득했고 방 한구석에 널브러진 아기 기저귀와 장난감 일부가 아니었다면 아기를 키우는 집이라는 걸 알기 어려울 정도였다.

방임 정황을 포착한 이 형사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엄마는 비로소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린 엄마는 아기를 돌본다기보다, 그저 한 공간에서 살 뿐이었다.

소망이가 태어날 무렵, 이미 남편과 헤어져 혼자 두 아이를 키워야 했던 엄마는 일자리를 찾아 가족도 친척도 없는 당진의 좁은 원룸에 자리 잡았다. 4살 큰아들은 24시간 돌봐주는 어린이집에 맡기고 한 달에 한 번쯤 집에 데려왔고, 소망이는 1년 넘게 지인에게 맡겼다가 13개월 즈음부터 함께 살았다. 2.6kg으로 건강하게 태어나 나날이 살이 오르고 웃음이 많던 소망이는 이 무렵부터 조금씩 말라가고, 웃음소리보다 울음소리를 내는 날이 많아졌다. 하지만 소망이의 울음소리를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 일주일 중 나흘씩 저녁마다 집을 나서 아침이 돼서야 돌아왔다. 그사이 소망이는 오롯이 혼자였다.

방안에는 물이나 음식도 없었고, 굳게 닫힌 현관문은 이제 겨우 걸음을 딛는 소망이에게는 쇠창살과도 같았다. 배가 고파도, 목이 말라도, 어딘가 아파도, 혼자 있던 소망이가 할 수 있는 건 울음소리를 내는 것뿐이었다.

울다 지친 소망이가 귀가한 엄마를 맞아도 그리 나아지는 건 없었다. 엄마는 굶주린 소망이에게 하루 두어 번 편의점 도시락이나 삼각김밥, 배달음식 등을 먹였다. 소망이가 토해도, 고열이 있어도, 예방주사를 접종할 때가 돼도, 병원에는 단 한 번도 데려가지 않았다. 생후 8개월 당시 7.8kg였던 소망이는 16개월 무렵 6.2kg으로 더욱 야위어갔다.

소망이가 숨을 거두던 그 밤에도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날 저녁, 소망이는 여느 때보다 기운이 없었다. 미열이 있고 구토를 해 밥도 먹지 못했고, 제대로 앉아있기조차 힘겨워했다. 하지만 엄마는 여느 때처럼 출근하기 위해 저녁 6시부터 집을 나섰고, 새벽 무렵 퇴근하고도 친구의 집에 들렀다가 아침 8시가 되어서야 귀가했다.

그 밤과 새벽 사이, 소망이는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부검 결과, 소망이의 사인은 중증 영양실조와 탈수였다.


■ Chapter 2. 어쩌면 살릴 수 있었던 작은 목숨, '모두가 놓쳤다.'

“소망이, 병원에 데리고 가봐.” 소망이가 숨지기 직전, 소망이의 상태를 본 지인은 엄마에게 이렇게 권했다. 엄마가 평소 아이들만 두고 출근한다는 것도, 밥을 부실하게 먹인다는 것도, 가스가 끊겨 한겨울인데도 집에 난방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 어디에도 신고는 하지 않았다.
소망이와 엄마가 살았던 원룸 이웃집.소망이와 엄마가 살았던 원룸 이웃집.
"주로 저녁이나 밤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죠.” 이웃도 수개월 간 소망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취재진은 소망이와 엄마가 살았던 원룸을 수소문해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이웃을 만났다. 2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이가 드문 원룸이었기에 이웃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엄마가 달래주는 소리는 안 들리고, 아기가 울다가 지쳐서 끝나곤 했어요. 길게는 안 울고 잠깐 잠깐 울었어요.” 이웃은 소망이와 엄마가 단둘이 살았고, 어느 날 불현듯 이사를 했다고만 알고 있었다.

소망이가 밤마다 집에 홀로 남아 울었다는 것도, 그러다 쓸쓸히 떠났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문 너머에서 일어난 소망이의 비극을 뒤늦게 알게 된 이웃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지었다.

“그걸 모를 정도로 (우리가) 그렇게 무관심했단 말이에요? 아기가 울다 지쳐서 울음을 더 못 낸 거였네요. 낌새라도 챘으면 부동산 불러서라도 문을 따서 (신고를) 했을 텐데….”

벽 하나,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집의 생활소음마저 들리는 그곳에서는 아마도 복도 가득 소망이의 울음소리가 퍼졌을 것이다. 하지만 소망이가 마지막 숨을 내뱉던 그 날까지도, 그 누구의 신고도 없었다.

위기 아동을 미리 찾아내기 위해 정부가 만든 시스템에도 소망이는 포착되지 못했다. 2018년부터 가동되기 시작한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은 전기나 가스 끊김, 영유아 건강검진이나 영유아 예방접종 미실시 등 40여 가지 항목을 토대로 위기에 놓인 아동을 분기마다 수만 명씩 찾아낸다고 알려졌다.

소망이네는 가스비를 못 내 난방이 끊겼고, 수개월 간 병원에 가지 않아 예방주사 20여 가지를 접종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스템에는 포착되지 못했고, 자치단체에서도 소망이의 위기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엄마는 소망이가 숨지기 하루 전에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을 하러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했던 터라 복지 대상자로 관리되지도 못했다. 소망이네를 둘러싸고 수많은 위기 신호가 나타났지만, 어디에도 포착되지 못한 채, 어린 목숨만이 스러지고 말았다.


■ Chapter 3. 엄마의 죗값, 징역 3년…16개월 소망이는 떠났고, 4살 첫째는 살아남았다.

징역 3년, 1심 재판부가 내린 엄마의 ‘죗값’이다. 아동학대 치사죄와 아동 유기와 방임 등 아동복지법 위반죄였다. 판결문에는 양형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피고인은 두 자녀를 제대로 양육하지 아니하고 유기 방임하였으며 그 결과 생후 17개월에 불과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 다만 주위 도움 없이 홀로 피해자를 양육하는 등으로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었으며, 아이를 돌보는 것이 미숙한 상황에서 이 사건이 발생하였다. 책임을 오로지 피고인 개인에게만 돌리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아이의 비극적 죽음과 엄마의 딱한 사정이 담긴 7쪽짜리 짧은 판결문에는, 그러나 소망이가 얼마나 잘 웃던 아기였는지, 그런 소망이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어떻게 서서히 잦아들었는지, 소망이의 죽음 이후 애도와 장례조차 부실해 떠나는 길마저 얼마나 쓸쓸했는지는 채 담겨있지 않다.

엄마는 1심 판결에 불복해 고등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항소를 취하하고 복역 중이다.

그리고 남겨진 또 다른 아이가 있다. 소망이와 두 살 터울의 오빠, 희망이(가명)다. 엄마가 일하러 집을 나설 때마다 네 살 희망이는 돌을 갓 넘긴 소망이와 둘만 남아 불안에 떨며 울었고, 한밤중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가 캄캄한 복도를 헤매기도 했다. 엄마는 희망이가 나가지 못하도록 원룸 중문의 자물쇠를 굳게 채우고 또다시 집을 나섰다가 결국 희망이를 24시간 보육시설에 맡기고 소망이만 집에 남겨뒀다.

소망이는 속절없이 잃었지만, 희망이는 살아남았다. 수사기관이 확인한 희망이는 오랜 방임의 후유증 탓인지 영양이 부족해 또래보다 발육이 더뎠고, 불안 증세도 보였다. 수사 후 희망이는 보육기관에서 지내게 됐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보살핌을 받지는 않아 학대 후유증을 극복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여전히 어린 희망이에게도, 또 다른 수많은 살아남은 아이들에게도, 후유증을 치유하고 안전한 곳에서 자라날 울타리가 절실하다. 우리가 놓친 어린 목숨만이 아니라, 살아남은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해야 할 최소한의 책무이지만 우리는 이마저 온전히 다하고 있지 못한다.

고통과 외로움 속에 짧은 생을 살다 간 소망이는 지금쯤 천국에서 편안히 쉬고 있을까. 아이에게는 이곳에서의 짧은 생이 어쩌면 지옥은 아니었을까. 저 벽 너머 들리는 또 다른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우리는 얼마나 유심히 귀 기울이고 있을까. 이것은 1,406건의 아동학대 형사 판결문 가운데 하나의 이야기, 한해 4만여 건의 아동학대 신고 중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던 숨겨진 비극 중 하나일 뿐이다.

* 본 기획물은 한국 언론학회- 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KBS 시사기획 창 '암수범죄, 아동학대를 부검하다'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j7Qp3Lb0G60

아동학대 심층취재 인터랙티브 페이지 보기
https://news.KBS.co.kr/special/childabuse/index.html

아동학대 판결문 전수분석 아카이브 보기
http://lab.KBS.co.kr/2022/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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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학대]② 홀로 굶어죽은 16개월 아기, “어쩌면 살릴 수 있었던…”
    • 입력 2022-02-13 08:01:09
    • 수정2022-02-14 16:21:09
    취재K
KBS 창원총국 아동학대 특별취재팀(이형관, 차주하, 윤경재 기자)은 최근 2년간의 아동학대 형사 판결문 1,400여 건을 전수조사해 분석했습니다.<br /><br />아동학대 범죄의 실태와 특수성,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살펴보는 다큐멘터리가 KBS '시사기획 창'(2월 6일)으로 보도됐습니다. 다큐멘터리에 담긴 핵심 내용과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인터넷판 특별기사 시리즈로 정리했습니다.<br /><br />두 번째 순서는 충남 당진시의 한 원룸에서 벌어진 아동학대 사건입니다.<br /><br />아이가 다치거나 숨지는 등 피해가 큰 아동학대 사건들은 대부분 '가정'에서 벌어졌다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주변 목격이 어렵고, 학대 정황이 있어도 신고하는 경우도 적어 아이들을 구할 기회조차 놓치는 현실입니다.<br /><br />16개월 아기가 작은 원룸에서 홀로 울며 서서히 굶어 죽는 사이, 누구도 아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br />
충남 당진시의 종합병원 응급실
■ Chapter 1. "아기가 숨을 안 쉬어요."

2019년 2월 12일 오전 11시쯤, 충남 당진시의 한 종합병원. 승용차를 타고 온 20대 엄마가 담요 뭉치에 아기를 둘러싸고 응급실로 천천히 들어섰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 감기나 가벼운 질환이겠거니, 의료진은 생각했다.

“아기가 숨을 안 쉬어요.”
엄마의 담담한 한마디에, 응급실은 삽시간에 비상이 걸렸다. 황급히 아기를 눕히고 담요를 걷자 기저귀 차림의 여자 아기가 뻣뻣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심폐소생술을 하며 기도 삽관을 시도했지만 이미 사후강직이 진행돼 입술이 벌어지지도 않았다. 아기는 최소 2~3시간 전에 숨진 걸로 보였다.

“아기가 이미 사망했습니다. 사망 시간이 좀 된 것 같네요.”
의료진의 사망 통보에 엄마는 묵묵히 수긍했다.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비통함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다’는 불길한 예감과 함께, 아기의 온몸이 의료진의 눈에 자세히 들어왔다.

사망 당시 소망이(가명)의 신체 상태
멍이나 골절 같은 외상은 없었지만, 너무도 야위어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났고 기저귀를 꽉 채워도 헐렁할 정도였다. 마지막 숨을 뱉을 때까지 울었는지 아기는 눈을 채 감지도 못했다.

키는 71cm, 체중은 6.2kg, 겨우 생후 백일 수준이었다. 소망이(가명)이의 16개월 짧은 생이 그렇게 저물었다. 의료진은 ‘아동학대 보고서’를 작성하며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다.

소망이와 엄마가 살았던 원룸 밀집 지역
■ 그 밤, 소망이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아동학대 신고를 받은 당진경찰서 이계백 형사는 병원에서 소망이의 시신을 확인하고 사건 현장인 ‘집’으로 향했다.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원룸 밀집 단지가 소망이가 살던 집이었다.

주변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홀로 사는 이곳에서, 엄마는 이제 막 걸음을 딛는 16개월 소망이와 4살 큰아들을 혼자 키웠다. 엄마는 “아이가 전날 밤 10시에 잤고, 새벽에 기저귀를 갈아줄 때도 괜찮았어요. 아침에 보니 숨을 쉬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그 밤, 소망이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소망이와 엄마가 살았던 원룸 내부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서자, 이계백 형사의 말문이 막혔다. 소망이 또래의 딸을 키우고 있는 이 형사였다.

“냉장고에는 생수 한 병에 탄산음료, 먹다 남은 과일 한두 조각 정도로 음식도 거의 없고 집 안이 너무 휑해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었어요. 결정적인 건, 방에 중문이 있는데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거예요. 아동학대 방임이 의심된다고 봤죠.”

가스가 끊겨 싸늘한 방에는 온수 매트와 간밤에 아이가 누웠을 커다란 이불만이 깔려있었고, 부엌에는 설거짓거리와 먹다 만 음료수 등이 쌓여있었다. 베란다에는 쓰레기가, 화장실에는 담뱃갑이 가득했고 방 한구석에 널브러진 아기 기저귀와 장난감 일부가 아니었다면 아기를 키우는 집이라는 걸 알기 어려울 정도였다.

방임 정황을 포착한 이 형사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엄마는 비로소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린 엄마는 아기를 돌본다기보다, 그저 한 공간에서 살 뿐이었다.

소망이가 태어날 무렵, 이미 남편과 헤어져 혼자 두 아이를 키워야 했던 엄마는 일자리를 찾아 가족도 친척도 없는 당진의 좁은 원룸에 자리 잡았다. 4살 큰아들은 24시간 돌봐주는 어린이집에 맡기고 한 달에 한 번쯤 집에 데려왔고, 소망이는 1년 넘게 지인에게 맡겼다가 13개월 즈음부터 함께 살았다. 2.6kg으로 건강하게 태어나 나날이 살이 오르고 웃음이 많던 소망이는 이 무렵부터 조금씩 말라가고, 웃음소리보다 울음소리를 내는 날이 많아졌다. 하지만 소망이의 울음소리를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 일주일 중 나흘씩 저녁마다 집을 나서 아침이 돼서야 돌아왔다. 그사이 소망이는 오롯이 혼자였다.

방안에는 물이나 음식도 없었고, 굳게 닫힌 현관문은 이제 겨우 걸음을 딛는 소망이에게는 쇠창살과도 같았다. 배가 고파도, 목이 말라도, 어딘가 아파도, 혼자 있던 소망이가 할 수 있는 건 울음소리를 내는 것뿐이었다.

울다 지친 소망이가 귀가한 엄마를 맞아도 그리 나아지는 건 없었다. 엄마는 굶주린 소망이에게 하루 두어 번 편의점 도시락이나 삼각김밥, 배달음식 등을 먹였다. 소망이가 토해도, 고열이 있어도, 예방주사를 접종할 때가 돼도, 병원에는 단 한 번도 데려가지 않았다. 생후 8개월 당시 7.8kg였던 소망이는 16개월 무렵 6.2kg으로 더욱 야위어갔다.

소망이가 숨을 거두던 그 밤에도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날 저녁, 소망이는 여느 때보다 기운이 없었다. 미열이 있고 구토를 해 밥도 먹지 못했고, 제대로 앉아있기조차 힘겨워했다. 하지만 엄마는 여느 때처럼 출근하기 위해 저녁 6시부터 집을 나섰고, 새벽 무렵 퇴근하고도 친구의 집에 들렀다가 아침 8시가 되어서야 귀가했다.

그 밤과 새벽 사이, 소망이는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부검 결과, 소망이의 사인은 중증 영양실조와 탈수였다.


■ Chapter 2. 어쩌면 살릴 수 있었던 작은 목숨, '모두가 놓쳤다.'

“소망이, 병원에 데리고 가봐.” 소망이가 숨지기 직전, 소망이의 상태를 본 지인은 엄마에게 이렇게 권했다. 엄마가 평소 아이들만 두고 출근한다는 것도, 밥을 부실하게 먹인다는 것도, 가스가 끊겨 한겨울인데도 집에 난방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 어디에도 신고는 하지 않았다.
소망이와 엄마가 살았던 원룸 이웃집. "주로 저녁이나 밤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죠.” 이웃도 수개월 간 소망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취재진은 소망이와 엄마가 살았던 원룸을 수소문해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이웃을 만났다. 2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이가 드문 원룸이었기에 이웃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엄마가 달래주는 소리는 안 들리고, 아기가 울다가 지쳐서 끝나곤 했어요. 길게는 안 울고 잠깐 잠깐 울었어요.” 이웃은 소망이와 엄마가 단둘이 살았고, 어느 날 불현듯 이사를 했다고만 알고 있었다.

소망이가 밤마다 집에 홀로 남아 울었다는 것도, 그러다 쓸쓸히 떠났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문 너머에서 일어난 소망이의 비극을 뒤늦게 알게 된 이웃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지었다.

“그걸 모를 정도로 (우리가) 그렇게 무관심했단 말이에요? 아기가 울다 지쳐서 울음을 더 못 낸 거였네요. 낌새라도 챘으면 부동산 불러서라도 문을 따서 (신고를) 했을 텐데….”

벽 하나,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집의 생활소음마저 들리는 그곳에서는 아마도 복도 가득 소망이의 울음소리가 퍼졌을 것이다. 하지만 소망이가 마지막 숨을 내뱉던 그 날까지도, 그 누구의 신고도 없었다.

위기 아동을 미리 찾아내기 위해 정부가 만든 시스템에도 소망이는 포착되지 못했다. 2018년부터 가동되기 시작한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은 전기나 가스 끊김, 영유아 건강검진이나 영유아 예방접종 미실시 등 40여 가지 항목을 토대로 위기에 놓인 아동을 분기마다 수만 명씩 찾아낸다고 알려졌다.

소망이네는 가스비를 못 내 난방이 끊겼고, 수개월 간 병원에 가지 않아 예방주사 20여 가지를 접종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스템에는 포착되지 못했고, 자치단체에서도 소망이의 위기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엄마는 소망이가 숨지기 하루 전에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을 하러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했던 터라 복지 대상자로 관리되지도 못했다. 소망이네를 둘러싸고 수많은 위기 신호가 나타났지만, 어디에도 포착되지 못한 채, 어린 목숨만이 스러지고 말았다.


■ Chapter 3. 엄마의 죗값, 징역 3년…16개월 소망이는 떠났고, 4살 첫째는 살아남았다.

징역 3년, 1심 재판부가 내린 엄마의 ‘죗값’이다. 아동학대 치사죄와 아동 유기와 방임 등 아동복지법 위반죄였다. 판결문에는 양형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피고인은 두 자녀를 제대로 양육하지 아니하고 유기 방임하였으며 그 결과 생후 17개월에 불과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 다만 주위 도움 없이 홀로 피해자를 양육하는 등으로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었으며, 아이를 돌보는 것이 미숙한 상황에서 이 사건이 발생하였다. 책임을 오로지 피고인 개인에게만 돌리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아이의 비극적 죽음과 엄마의 딱한 사정이 담긴 7쪽짜리 짧은 판결문에는, 그러나 소망이가 얼마나 잘 웃던 아기였는지, 그런 소망이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어떻게 서서히 잦아들었는지, 소망이의 죽음 이후 애도와 장례조차 부실해 떠나는 길마저 얼마나 쓸쓸했는지는 채 담겨있지 않다.

엄마는 1심 판결에 불복해 고등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항소를 취하하고 복역 중이다.

그리고 남겨진 또 다른 아이가 있다. 소망이와 두 살 터울의 오빠, 희망이(가명)다. 엄마가 일하러 집을 나설 때마다 네 살 희망이는 돌을 갓 넘긴 소망이와 둘만 남아 불안에 떨며 울었고, 한밤중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가 캄캄한 복도를 헤매기도 했다. 엄마는 희망이가 나가지 못하도록 원룸 중문의 자물쇠를 굳게 채우고 또다시 집을 나섰다가 결국 희망이를 24시간 보육시설에 맡기고 소망이만 집에 남겨뒀다.

소망이는 속절없이 잃었지만, 희망이는 살아남았다. 수사기관이 확인한 희망이는 오랜 방임의 후유증 탓인지 영양이 부족해 또래보다 발육이 더뎠고, 불안 증세도 보였다. 수사 후 희망이는 보육기관에서 지내게 됐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보살핌을 받지는 않아 학대 후유증을 극복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여전히 어린 희망이에게도, 또 다른 수많은 살아남은 아이들에게도, 후유증을 치유하고 안전한 곳에서 자라날 울타리가 절실하다. 우리가 놓친 어린 목숨만이 아니라, 살아남은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해야 할 최소한의 책무이지만 우리는 이마저 온전히 다하고 있지 못한다.

고통과 외로움 속에 짧은 생을 살다 간 소망이는 지금쯤 천국에서 편안히 쉬고 있을까. 아이에게는 이곳에서의 짧은 생이 어쩌면 지옥은 아니었을까. 저 벽 너머 들리는 또 다른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우리는 얼마나 유심히 귀 기울이고 있을까. 이것은 1,406건의 아동학대 형사 판결문 가운데 하나의 이야기, 한해 4만여 건의 아동학대 신고 중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던 숨겨진 비극 중 하나일 뿐이다.

* 본 기획물은 한국 언론학회- 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KBS 시사기획 창 '암수범죄, 아동학대를 부검하다'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j7Qp3Lb0G60

아동학대 심층취재 인터랙티브 페이지 보기
https://news.KBS.co.kr/special/childabuse/index.html

아동학대 판결문 전수분석 아카이브 보기
http://lab.KBS.co.kr/2022/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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