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관광버스’ 방역 사각?…처벌은 운전기사만

입력 2022.02.14 (15:45) 수정 2022.02.1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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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관광버스 내부의 블랙박스 영상

"자네를 쓰지 않기로 했네. 다른 사람 쓰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요."

지난달 초, 전세버스 기사 A씨는 돌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습니다. A씨는 광주의 한 산악회와 계약을 맺고 지난해 10월부터 해당 산악회 운행을 전담하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럽게 해약 통보를 받은 A씨.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달리는 버스 안 춤판...춤 제지했더니 계약 해지?

시간은 지난해 12월 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달리는 버스 안. 비좁은 통로에서 두 남녀가 서 있습니다.

얼굴이 맞닿을 만큼 몸을 맞대고 춤을 춥니다. 두 남녀 뒤로도 춤추는 사람들은 또 있었습니다. 춤판은 한동안 계속 됐고, 1시간여 만에야 끝이 났습니다. 버스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입니다.

거제도에 갔다 광주로 돌아오는 길, 산악회 회원들은 버스 안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췄습니다. 버스 기사 A씨는 당시 스무 명 이상이 한꺼번에 복도로 뛰쳐나와 춤을 췄다고 말했습니다.

A씨는 수차례 이들을 말렸습니다. 춤을 추지 못하게 음악 소리를 줄여보기도, 음악을 꺼보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성화를 부리는 승객들과의 충돌이 계속됐고, 고성이 오갔습니다. 그로부터 약 일주일 뒤 A씨는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습니다.

■ '버스 안 가무행위'는 엄연한 불법

버스 안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는 행위는 엄연한 불법입니다. 두 가지 법에 걸립니다.

▲도로교통법 제49조, 제156조

운전자는 승객이 차 안에서 안전운전에 현저히 장해가 될 정도로 춤을 추는 등 소란행위를 하도록 내버려 두고 차를 운행하지 아니할 것. 위반한 경우에 20만 원 이하의 벌금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88조, 시행령 제46조 제1항

전세버스 운송사업자가 운수종사자로 하여금 운행 중인 전세버스 운송사업용 자동차 안에서 가요반주기, 스피커, 조명시설 등을 이용하여 안전 운전에 현저히 장애가 될 정도로 춤과 노래 등 소란 행위를 하는 승객을 제지하고, 필요한 사항을 안내하도록 지도, 감독하기를 게을리 한 경우 1차 위반 180만 원, 2차 위반 360만 원, 3차 이상 540만 원의 과징금

하지만 처벌은 받는 사람은 춤을 춘 승객이 아닌, 버스 운전사와 운송 사업자입니다. 여객법과 도로교통법은 처벌 대상을 버스 운전 기사와 운송사업자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운전 기사들은 이러한 법률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합니다. 운전 기사 A씨는 "버스 기사는 승객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잘릴 수 있는 파리목숨과도 같다"며 "승객들이 춤을 추면 말리는 것이 쉽지 않은데, 처벌은 운전 기사와 사업자에게만 내려진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가무 행위를 벌인 승객을 처벌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경범죄 처벌법 제3조는 '여러 사람이 타는 자동차 등에서 주위를 시끄럽게 하는 경우'에 대해 10만 원 이하 벌금 등의 처벌을 부과합니다. 해당 조항을 근거로 버스 안에서 가무 행위를 벌인 승객을 처벌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법률은 '버스 안 가무 행위'를 직접적으로 명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 코로나19 확산세지만 춤추는 관광버스.."방역지침 위반 아냐" 방역 사각지대


그렇다면 방역 당국은 버스 안에서의 가무 행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생활 방역 세부 수칙 안내서>는 모임·행사나 단체 취미 활동을 할 경우, 노래 부르기 등 침방울이 튀는 행위나 신체 접촉을 자제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제재를 가할 방법은 없습니다. 말 그대로 '권고' 사항이다 보니 '방역 수칙 위반 행위'라고 단정 지어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정부의 방역지침도 '버스 안 가무 행위'를 별도로 분류해 금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방역 당국 관계자들의 말도 엇갈립니다.

한 방역당국 관계자는 "법률상 불법 행위이기 때문에 방역 수칙에 따로 규정하고 있진 않다"면서도 "사실상 방역 수칙 위반 행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다른 관계자는 "방역 수칙 위반 행위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또 "밀접해 춤을 췄다 하더라도 버스라는 공간의 특성상 좌석 배치로 인해 2m 거리 두기를 지키기 어려울뿐더러, 마스크를 쓴 채로 가무 행위를 했다면 문제 삼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관광버스 내부관광버스 내부

이처럼 방역 수칙 위반 여부에 대한 방역 당국의 판단부터 갈리는 상황이다 보니, 적절한 규제가 이루어질 리 만무합니다.

A씨는 "산악회가 빌려 타는 버스 대부분에서 춤판이 벌어진다"고 전했습니다. 승객이 춤을 춰도 처벌받지 않는 관광 버스. 코로나19 속 위험한 질주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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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추는 관광버스’ 방역 사각?…처벌은 운전기사만
    • 입력 2022-02-14 15:45:06
    • 수정2022-02-14 15:45:29
    취재K
해당 관광버스 내부의 블랙박스 영상

"자네를 쓰지 않기로 했네. 다른 사람 쓰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요."

지난달 초, 전세버스 기사 A씨는 돌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습니다. A씨는 광주의 한 산악회와 계약을 맺고 지난해 10월부터 해당 산악회 운행을 전담하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럽게 해약 통보를 받은 A씨.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달리는 버스 안 춤판...춤 제지했더니 계약 해지?

시간은 지난해 12월 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달리는 버스 안. 비좁은 통로에서 두 남녀가 서 있습니다.

얼굴이 맞닿을 만큼 몸을 맞대고 춤을 춥니다. 두 남녀 뒤로도 춤추는 사람들은 또 있었습니다. 춤판은 한동안 계속 됐고, 1시간여 만에야 끝이 났습니다. 버스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입니다.

거제도에 갔다 광주로 돌아오는 길, 산악회 회원들은 버스 안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췄습니다. 버스 기사 A씨는 당시 스무 명 이상이 한꺼번에 복도로 뛰쳐나와 춤을 췄다고 말했습니다.

A씨는 수차례 이들을 말렸습니다. 춤을 추지 못하게 음악 소리를 줄여보기도, 음악을 꺼보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성화를 부리는 승객들과의 충돌이 계속됐고, 고성이 오갔습니다. 그로부터 약 일주일 뒤 A씨는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습니다.

■ '버스 안 가무행위'는 엄연한 불법

버스 안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는 행위는 엄연한 불법입니다. 두 가지 법에 걸립니다.

▲도로교통법 제49조, 제156조

운전자는 승객이 차 안에서 안전운전에 현저히 장해가 될 정도로 춤을 추는 등 소란행위를 하도록 내버려 두고 차를 운행하지 아니할 것. 위반한 경우에 20만 원 이하의 벌금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88조, 시행령 제46조 제1항

전세버스 운송사업자가 운수종사자로 하여금 운행 중인 전세버스 운송사업용 자동차 안에서 가요반주기, 스피커, 조명시설 등을 이용하여 안전 운전에 현저히 장애가 될 정도로 춤과 노래 등 소란 행위를 하는 승객을 제지하고, 필요한 사항을 안내하도록 지도, 감독하기를 게을리 한 경우 1차 위반 180만 원, 2차 위반 360만 원, 3차 이상 540만 원의 과징금

하지만 처벌은 받는 사람은 춤을 춘 승객이 아닌, 버스 운전사와 운송 사업자입니다. 여객법과 도로교통법은 처벌 대상을 버스 운전 기사와 운송사업자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운전 기사들은 이러한 법률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합니다. 운전 기사 A씨는 "버스 기사는 승객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잘릴 수 있는 파리목숨과도 같다"며 "승객들이 춤을 추면 말리는 것이 쉽지 않은데, 처벌은 운전 기사와 사업자에게만 내려진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가무 행위를 벌인 승객을 처벌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경범죄 처벌법 제3조는 '여러 사람이 타는 자동차 등에서 주위를 시끄럽게 하는 경우'에 대해 10만 원 이하 벌금 등의 처벌을 부과합니다. 해당 조항을 근거로 버스 안에서 가무 행위를 벌인 승객을 처벌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법률은 '버스 안 가무 행위'를 직접적으로 명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 코로나19 확산세지만 춤추는 관광버스.."방역지침 위반 아냐" 방역 사각지대


그렇다면 방역 당국은 버스 안에서의 가무 행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생활 방역 세부 수칙 안내서>는 모임·행사나 단체 취미 활동을 할 경우, 노래 부르기 등 침방울이 튀는 행위나 신체 접촉을 자제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제재를 가할 방법은 없습니다. 말 그대로 '권고' 사항이다 보니 '방역 수칙 위반 행위'라고 단정 지어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정부의 방역지침도 '버스 안 가무 행위'를 별도로 분류해 금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방역 당국 관계자들의 말도 엇갈립니다.

한 방역당국 관계자는 "법률상 불법 행위이기 때문에 방역 수칙에 따로 규정하고 있진 않다"면서도 "사실상 방역 수칙 위반 행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다른 관계자는 "방역 수칙 위반 행위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또 "밀접해 춤을 췄다 하더라도 버스라는 공간의 특성상 좌석 배치로 인해 2m 거리 두기를 지키기 어려울뿐더러, 마스크를 쓴 채로 가무 행위를 했다면 문제 삼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관광버스 내부
이처럼 방역 수칙 위반 여부에 대한 방역 당국의 판단부터 갈리는 상황이다 보니, 적절한 규제가 이루어질 리 만무합니다.

A씨는 "산악회가 빌려 타는 버스 대부분에서 춤판이 벌어진다"고 전했습니다. 승객이 춤을 춰도 처벌받지 않는 관광 버스. 코로나19 속 위험한 질주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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