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격리가 지옥 같았어요”…중증 장애인들의 목숨을 건 ‘자가 격리’

입력 2022.02.15 (09:28) 수정 2022.02.1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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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감염병은 누군가에게 훨씬 더 위협적입니다. 다른 이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장애인들에게 더욱 그렇습니다. 생존의 위협에 내몰린 장애인들은 '우리를 위한 코로나19 대책이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코로나19 3년째, KBS는 장애인이 처한 현실과 관련 대책을 짚어보는 기획 보도를 연재합니다.

① "코로나 검사도 받기 어려워" 장애인들의 호소
② "격리가 지옥 같았어요"…중증 장애인들의 목숨을 건 '자가 격리'
③ 전국 절반이 '0건'…격리 장애인 24시간 활동지원 유명무실
④ 코로나 3년째, 장애인 대책은 여전히 '준비 중'

2020년 9월 자가격리 경험을 한 중증 장애인 정향기 씨.2020년 9월 자가격리 경험을 한 중증 장애인 정향기 씨.

이틀은 너무도 길었다. '격리'의 무게가 실감 났다. 늘상 있던 도움의 손길이 갑자기 사라졌다. 밥 먹고 화장실 간다는 기본적인 욕구조차 해결하기 어려웠다.

■ '지옥' 같았던 중증 장애인의 자가 격리

1년 반이 지났지만, 정향기 씨는 이틀간 자가 격리의 기억이 여전히 고통스럽다. 정 씨는 장애인 활동지원사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이다. 매일 지원사들이 집에 찾아와 정 씨를 돕는다.

그런 정 씨에게 타인과의 접촉을 금지하는 자가 격리 통보는 날벼락이었다. 격리가 해제될 때까지 활동 지원은 중단됐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격리였다.

"자가 격리가 되니까 활동 보조도 구할 수 없고, 그렇다고 보건소에서 인력을 보내주지도 않고, 보낸다고 해도 24시간 상주가 안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계속 공백이 생기는 거예요. 거의 굶다시피 했죠. 그 이틀이 정말 지옥같았어요."

(정향기 씨)

정향기 씨는 활동 지원 없이는 일상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정향기 씨는 활동 지원 없이는 일상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자가 격리로 시작된 '지옥'이 이틀로 끝나지 않으면 어떻게 됐을까? 가정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정 씨는 차라리 감염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증 장애인들이 2주 자가 격리 하라고 하면 그거는 사형 선고나 다름 없어요. 그래서 저희가 우스갯소리로 '차라리 코로나 걸려서 병원에 들어가는 게 훨 낫다' 이 얘기 하거든요."

(정향기 씨)


■ 자가격리된 장애인 아내…확진된 장애인 남편이 돌봐

김형국 씨의 '돌봄 공백' 경험은 더 복합적이다. 김 씨는 뇌병변 장애인이고, 부인은 혼자서 생활이 불가능해 활동 지원을 받는 중증 장애인이다.

김 씨는 지난해 12월 말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보건소에서는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라고 했다.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의 확진으로 자가 격리자가 되면서 활동 지원을 못 받게 된 아내를 돌볼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확진 상태로 중증 장애인인 아내까지 돌봐야 했던 김형국 씨.확진 상태로 중증 장애인인 아내까지 돌봐야 했던 김형국 씨.

확진자가 된 자신의 건강은 뒷전이었다. 아내를 돌보는 일. 그리고 아내를 감염시키지 않는 일. 양립하기 어려운 두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답답했지만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완전한 분리 조치와 돌봄을 동시에 시도했다. 아내 밥상을 차린 뒤 아내가 식사하는 동안 방으로 몸을 피했다. 손이 닿는 모든 곳은 소독했다. 떨리는 손으로 소독제를 계속 뿌렸다.

난감한 건 화장실이었다. 집에 화장실이 하나뿐이었다. 공간을 공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문 손잡이며 화장실 벽에 소독제를 뿌리며 방역을 시도했다. 보건소에서 준 500㎖ 소독제가 하루 만에 떨어졌다. 더 달라고 하니 없단다. 인터넷으로 소독제를 더 주문했다.

자가격리된 아내의 확진을 막기 위해 집안 곳곳을 소독했던 김형국 씨.자가격리된 아내의 확진을 막기 위해 집안 곳곳을 소독했던 김형국 씨.

결과는 노력을 배신했다. 김 씨가 확진되고 사흘 뒤 아내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보건소는 아내에게 입원하라고 말했다. 아내는 중증 장애인 편의 시설이 병원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 것은 없다고 했다. 입원을 포기하고 재택 치료를 선택했다.

■ "장애인들은 자가 격리하면 죽으라는 건가?"

김 씨는 결국 무사히 코로나19를 이겨냈다. 그러나 뒷맛은 너무나도 씁쓸했다. 장애인들은 알아서 생존하라는 건가? 비장애인들과는 상황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건가?

"저는 가정이 있기 때문에 저라도 생활할 수 있는데, 만약 혼자 거주하게 있는 중증 장애인이 확진이 되었다면 어떻게 생활을 하지? 자가 격리하면 죽으라는 말 밖에 없구나."

(김형국 씨)

코로나19 장애인 확진자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7천7백여 명이다. (최혜영 의원실/중앙방역대책본부) 확진자가 장애인인지를 조사하기 시작한 건 2020년 11월부터다. 올해 오미크론 변이 확산을 고려하면 실제 장애인 확진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장애인 자가격리자는 통계조차 집계되지 않고 있다.

김용목 광주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한 사람이 안전하지 않으면 사회 전체가 안전하지 않은 것이다. 코로나 상황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구체적인 지원 체계가 없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생각하는 불안과 공포는 보통 시민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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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② “격리가 지옥 같았어요”…중증 장애인들의 목숨을 건 ‘자가 격리’
    • 입력 2022-02-15 09:28:08
    • 수정2022-02-17 09:59:40
    취재K
감염병은 누군가에게 훨씬 더 위협적입니다. 다른 이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장애인들에게 더욱 그렇습니다. 생존의 위협에 내몰린 장애인들은 '우리를 위한 코로나19 대책이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코로나19 3년째, KBS는 장애인이 처한 현실과 관련 대책을 짚어보는 기획 보도를 연재합니다.<br /><br /><a href="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94206" target="_blank" title="(새창)">① "코로나 검사도 받기 어려워" 장애인들의 호소</a><br /><strong>② "격리가 지옥 같았어요"…중증 장애인들의 목숨을 건 '자가 격리'</strong><strong><br /></strong>③ 전국 절반이 '0건'…격리 장애인 24시간 활동지원 유명무실<br />④ 코로나 3년째, 장애인 대책은 여전히 '준비 중'
2020년 9월 자가격리 경험을 한 중증 장애인 정향기 씨.
이틀은 너무도 길었다. '격리'의 무게가 실감 났다. 늘상 있던 도움의 손길이 갑자기 사라졌다. 밥 먹고 화장실 간다는 기본적인 욕구조차 해결하기 어려웠다.

■ '지옥' 같았던 중증 장애인의 자가 격리

1년 반이 지났지만, 정향기 씨는 이틀간 자가 격리의 기억이 여전히 고통스럽다. 정 씨는 장애인 활동지원사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이다. 매일 지원사들이 집에 찾아와 정 씨를 돕는다.

그런 정 씨에게 타인과의 접촉을 금지하는 자가 격리 통보는 날벼락이었다. 격리가 해제될 때까지 활동 지원은 중단됐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격리였다.

"자가 격리가 되니까 활동 보조도 구할 수 없고, 그렇다고 보건소에서 인력을 보내주지도 않고, 보낸다고 해도 24시간 상주가 안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계속 공백이 생기는 거예요. 거의 굶다시피 했죠. 그 이틀이 정말 지옥같았어요."

(정향기 씨)

정향기 씨는 활동 지원 없이는 일상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자가 격리로 시작된 '지옥'이 이틀로 끝나지 않으면 어떻게 됐을까? 가정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정 씨는 차라리 감염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증 장애인들이 2주 자가 격리 하라고 하면 그거는 사형 선고나 다름 없어요. 그래서 저희가 우스갯소리로 '차라리 코로나 걸려서 병원에 들어가는 게 훨 낫다' 이 얘기 하거든요."

(정향기 씨)


■ 자가격리된 장애인 아내…확진된 장애인 남편이 돌봐

김형국 씨의 '돌봄 공백' 경험은 더 복합적이다. 김 씨는 뇌병변 장애인이고, 부인은 혼자서 생활이 불가능해 활동 지원을 받는 중증 장애인이다.

김 씨는 지난해 12월 말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보건소에서는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라고 했다.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의 확진으로 자가 격리자가 되면서 활동 지원을 못 받게 된 아내를 돌볼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확진 상태로 중증 장애인인 아내까지 돌봐야 했던 김형국 씨.
확진자가 된 자신의 건강은 뒷전이었다. 아내를 돌보는 일. 그리고 아내를 감염시키지 않는 일. 양립하기 어려운 두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답답했지만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완전한 분리 조치와 돌봄을 동시에 시도했다. 아내 밥상을 차린 뒤 아내가 식사하는 동안 방으로 몸을 피했다. 손이 닿는 모든 곳은 소독했다. 떨리는 손으로 소독제를 계속 뿌렸다.

난감한 건 화장실이었다. 집에 화장실이 하나뿐이었다. 공간을 공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문 손잡이며 화장실 벽에 소독제를 뿌리며 방역을 시도했다. 보건소에서 준 500㎖ 소독제가 하루 만에 떨어졌다. 더 달라고 하니 없단다. 인터넷으로 소독제를 더 주문했다.

자가격리된 아내의 확진을 막기 위해 집안 곳곳을 소독했던 김형국 씨.
결과는 노력을 배신했다. 김 씨가 확진되고 사흘 뒤 아내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보건소는 아내에게 입원하라고 말했다. 아내는 중증 장애인 편의 시설이 병원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 것은 없다고 했다. 입원을 포기하고 재택 치료를 선택했다.

■ "장애인들은 자가 격리하면 죽으라는 건가?"

김 씨는 결국 무사히 코로나19를 이겨냈다. 그러나 뒷맛은 너무나도 씁쓸했다. 장애인들은 알아서 생존하라는 건가? 비장애인들과는 상황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건가?

"저는 가정이 있기 때문에 저라도 생활할 수 있는데, 만약 혼자 거주하게 있는 중증 장애인이 확진이 되었다면 어떻게 생활을 하지? 자가 격리하면 죽으라는 말 밖에 없구나."

(김형국 씨)

코로나19 장애인 확진자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7천7백여 명이다. (최혜영 의원실/중앙방역대책본부) 확진자가 장애인인지를 조사하기 시작한 건 2020년 11월부터다. 올해 오미크론 변이 확산을 고려하면 실제 장애인 확진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장애인 자가격리자는 통계조차 집계되지 않고 있다.

김용목 광주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한 사람이 안전하지 않으면 사회 전체가 안전하지 않은 것이다. 코로나 상황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구체적인 지원 체계가 없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생각하는 불안과 공포는 보통 시민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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